▲ 취임 14년째를 맞은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최근 몇년 동안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지점 폐쇄 과정에서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그가 지난 3월7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속속 드러나는 14년 장기집권의 폐해… 실적 악화에도 본사 신임 배경으로 직원들 구조조정

14년 장수 행장인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실적이 부진한데다 개인정보 유출 등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실적 부진과 경영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점 폐쇄와 직원 구조조정으로 모면하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실적 부진과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있지만 정작 미국 본사로부터는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국내 은행장 중 최고인 28억8700만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14년을 장수하는 비결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송경화 <한겨레> 경제부 기자

은행원 생활 34년 중 14년을 ‘행장’으로 보낸 이가 있다. 말 그대로 “직업이 행장”이다. 주인공은 한국씨티은행의 하영구(61) 행장 겸 한국씨티금융지주 대표이사다. 하 행장은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금융사 씨티금융의 한국 정착 역사를 고스란히 함께해온 산증인으로 불린다. 그런 그가 최근 실적 악화와 은행 구조조정에 따른 갈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전남 광양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하 행장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1981년 씨티은행 서울지점 입행으로 은행에 발을 처음 디딘 그는 씨티은행 자금부 수석딜러와 자금담당 총괄이사 등을 지냈다. 그가 단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것은 2001년 48살의 나이로 한미은행 행장을 맡으면서부터다. 국내에선 낯선 40대 행장이었다. 그는 2004년 한미와 씨티가 협병해 통합 씨티은행이 출범한 뒤에도 행장으로서 계속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 행장은 본인의 ‘국내 최장수 행장’이라는 기록을 매해 스스로 경신하고 있다. 평생 씨티은행이라는 ‘한 우물’을 판 점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이력이다. 그런 하 행장의 뒤에는 ‘원칙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십수년째 일관된 외모는 그의 특징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48살 이후 그의 머리 스타일은 그대로다. 왼쪽에 가르마를 타서 반듯이 넘기고 한결같이 짧게 잘랐다. 40대에 처음 행장이 됐을 때처럼 여전히 마른 몸매다.

씨티은행의 한 전직 임원은 “철두철미한 개인 관리”를 하 행장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출근 시각이 아침 8시면 하 행장은 7시에 출근한다. 이른 아침에 트레이닝센터에서 운동까지 다 하고 오는 시각이 그때다. 저녁에 외부 인사와의 식사 약속을 일찍 마치면 밤 9시가 넘었는데도 다시 은행에 들어와서 서류를 보는 사람이다”라고 회고했다. “직원들과 식사할 때도 개인 돈으로 살 자리와 법인 카드로 살 자리를 구분하고, 사적 친분 관계가 있어도 실력이 안 되면 은행에서 내보내는 등 공과 사의 구분이 칼 같은 사람”이라는 게 그에 대한 평가다.

자타 공인하는 자기관리의 달인

국내 은행들은 인사 청탁으로 인한 내부 갈등이 심각하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6월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취임하며 “인사 청탁자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공표했을 정도다. 반면 씨티은행은 이같은 갈등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었다. 씨티은행은 여성 부행장을 복수로 유지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여성 인재 등용에 앞서 있다. 여성 차별이 덜한 게 글로벌 기업의 특징이지만 하 행장의 인사 스타일과도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은행, 우리은행에는 여성 부행장이 한명도 없다.

하 행장은 언론, 금융 당국, 정치권 등 각 분야에 걸쳐 대외 관계가 원만하기로도 정평이 나 있다. 언론 인터뷰 등 노출도 잦은 편이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매해 ‘언론인상’을 수여하는 등 대외 스킨십도 활발하다. 미국 본사의 정책에 따른 활동인데, 국내 금융기관 중 이런 걸 하는 곳은 씨티은행이 유일하다. 정치권에서도 “합리적 스타일”이란 소릴 듣는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한 의원은 “오랜 기간 행장 자리에 있으면서 노사 갈등도 잘 극복해왔고 크게 비판할 만한 게 없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말했다. 하 행장이 수년간 쌓아온 국내 인적 네트워크는 씨티금융 본사가 그를 신임하는 근간으로 평가된다.

반면 은행 내부의 리더십을 두고선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부분이 장기 집권에 따른 폐해다. 한 행장이 10년 넘게 재직 중인 독특한 거버넌스는 임원진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 행장만큼이나 오래 재직한 부행장이 다수다. ‘측근’으로 불릴 만한 이들이다.

대표적으로 박진회(57) 수석부행장이 있다. 그는 2002년 한미은행 부행장, 2004년 씨티은행 수석부행장으로 승진한 뒤 13년 동안 부행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박 부행장은 하 행장의 경기고-서울대 무역학과 후배다. 김명옥(58) 부행장도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임연빈(64) 수석부행장은 9년째 부행장을 맡다 지난 3월31일 퇴임했다. 행장과 임원진이 장기 재직하다보니 밑에서 ‘싫은 소리’ 하기가 쉽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은행 안에서 나온다.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직원들 사이에서 꼽히는 에피소드가 있다. 2007년 발생한 하 행장의 폭행건이다. 우발적인 일이었겠지만 유례없는 일인 만큼 일반 직원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해 4월 하 행장은 한 직원이 뇌출혈로 숨지자 조문하기 위해 방문한 장례식장에서 한 부장 등의 뺨을 때렸다고 전해진다. 여러 직원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말이다.

당시 장면을 목격한 한 직원은 “행장이 이미 취한 상태로 장례식장에 들어와 비서실장이 데리고 나갔으나 다시 들어와 그랬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에도 행장에 반해 다른 의견을 피력하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는데 직원들 앞에서 아랫사람을 때리기까지 하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 뒤에도 미국 본사의 별 조치 없이 은행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사건 이후 은행 내부의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미국 본사의 지시만 따르고 스스로 경영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현지 실정에 맞는 독자적 판단과 본사로의 ‘어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국내에서 은행업은 산업 중 가장 공적인 영역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각종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관련 사안마다 씨티은행은 ‘꼴찌’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씨티은행이 한국에 진출한 지 47년이 되지만 ‘내국인 대출 이자만 빼먹는 외국자본’의 이미지가 여전한 이유다.

대표적으로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3년 서민금융 활동 평가에서 씨티은행은 5등급(저조)을 받았다. 가장 낮은 등급이다. 은행들 가운데 유일하게 2년 연속 5등급을 기록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 민원발생 평가 결과에서는 4등급(미흡)을 받았다. 지난해 5월 발표된 사회공헌활동 실적에서는 경남은행 등 지방 은행보다 낮은 13위를 기록했다.

▲ 지난 4월 씨티캐피탈과 IBK캐피탈에서 수만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창경궁로 씨티캐피탈의 사무실 모습(왼쪽 사진).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왼쪽 다섯번째)와 시중 은행장들이 지난 2월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맨 왼쪽)은 국내 최장수 은행장이다. 뉴시스

본사 눈치만 보는 중간관리자?

중소기업, 한계기업에 대한 소극적 여신 정책도 입길에 오른다. 본사의 정책에 따라 씨티은행의 기업 여신 심사는 다른 은행에 비해 까다로운 편이다. 최근 2년여 사이 더 심해졌다. 씨티은행의 한 지점장급 직원은 “본사에서 나온 지표에 따르면 다른 은행에서 우량기업으로 분류될 곳도 부실 위험으로 평가돼 거래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 행장이 초반에는 현지화 의지를 가지고 본사에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중간관리자 역할만 하는 것 같다. 행장부터 본사를 상대로 한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다보니 국내 고객들의 정서나 가치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은행 안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씨티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에 ‘미확약부 여신약정’을 적용해 지난해 금감원으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는 대출 한도가 남은 약정 금액을 은행이 마음대로 회수하거나 취소할 수 있게 한 약정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표적인 ‘비 올 때 우산 뺏기’ 행태다. 징계 직전 해인 2012년 씨티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3천억원 줄였다. 그해 전체 은행의 실적이 2조4천억원 늘었던 것과 대조되는 행태다.

씨티은행이 주도적으로 국내에 도입했으나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금융기법들도 한국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경영 전략의 사례로 꼽힌다. 이른바 ‘선진 금융기법’들이다. 키코(KIKO), 리볼빙이 대표적 예다. 통화옵션 금융상품인 키코에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뒤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이 속출했다. 가장 많이 판 은행이 씨티였다. 대규모 소송이 이어졌고 사회적 비판이 뒤따랐다.

미국의 보편적 카드 결제 수단인 리볼빙 제도도 씨티은행이 먼저 시작했다. 씨티은행은 국내의 모든 카드를 미국식 리볼빙 결제 기반으로만 만들어오다 ‘고객을 헷갈리게 하는 수수료 상술’이라는 비판을 받자 2012년에야 일반 카드를 출시했다. 대출 모집인도 씨티은행의 도입과 함께 국내에 확산됐다. 대출 모집인 제도는 씨티은행에 소매금융 여신을 늘려줬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계부채 급증과 불완전판매 증가의 원인으로 꼽히며 은행권에서 퇴출되는 추세다.

현지화 실패는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씨티은행의 시장점유율은 2%대(2012년 대출 기준)로 떨어졌다. 수익성도 나빠지고 있다. 씨티은행의 자기자본순이익률(ROE·대손전입액 차감 후 기준)은 2013년 1.33%에 불과했다. 2011년 4.93%였으나 2012년 3.31%로 떨어진 뒤 계속 하락 추세다. 지난해 국내 은행 평균(특수은행 제외)이 4.91%인 것에 견주면 한참 뒤떨어진다. 일반 은행 중 최저치다. 총자산순이익률(ROA·대손전입액 차감 후 기준)도 지난해 0.13%로 떨어졌다. 국내 은행 평균(0.37%)에 한참 못 미친다. 영업점 수도 줄고 있다. 2008년 230개였던 게 올해 134개로 줄어들 예정이다. 6년 사이 100여개가 문을 닫는 것이다. 직원은 4708명에서 4240명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하 행장은 국내 은행장, 금융지주 회장을 통틀어 가장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2013년 한해에만 28억8700만원을 받았다. 지난해 다른 행장과 회장들의 연봉은 대체로 10억원 초반대였다.

대형 사고도 겹쳤다. 지난해 12월 고객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됐다. 2만6천여건에 이른다. 그즈음 몇몇 금융사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씨티은행의 경우 유일하게 은행 직원의 소행이어서 내부 통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KB국민카드와 SC은행의 경우 외부 신용정보회사나 외주 전산개발업체 직원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다. 금감원은 최근 이 사건을 두고 씨티은행 경영진의 내부 통제 미흡 여부에 대해 검사를 벌였다. 하 행장에 대한 징계 여부 및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익률, 국내 은행 중 최하위권

씨티은행에는 지금 ‘칼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5월9일부터 지점 폐쇄가 시작됐다. 6월 말까지 56개 지점을 폐쇄한다는 계획이다. 전체 지점 190개의 30%에 이르는 수다. “디지털뱅킹 중심의 전략을 위한 효율화 방안”이라는 게 씨티은행의 설명이지만 수익성 악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향후 600여명 규모의 인력 구조조정도 예상된다. 한국에서의 소매금융 철수설도 흘러나온다. 지난 5월14일에는 금융지주를 은행에 합병시키기로 결정했다. 경영 실패로 인한 실적 부진을 직원의 희생으로 메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씨티은행 노동조합은 이에 맞서 10년 만에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미국 본사에 대한 고배당 논란이 일자 배당 대신 경영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지난해 1390억원을 지급하는 등 미국 본사로 유출되는 금액이 지나치게 많다”면서 이를 수익성 악화의 주된 요인으로 꼽으며 반발하고 있다. 금감원과 한국은행도 5월26일부터 씨티은행에 대해 4년 만에 정기검사에 돌입한다. 경영 전반에 대한 강도 높은 검사가 예상된다. 하 행장의 임기는 2016년 3월까지다. 그가 과연 16년 행장의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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