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Analysis] 여성과 남성은 어떻게 만들어져왔나
젠더, 그 불편한 개념
[49호] 2014년 05월 01일 (목) 이고르 마르티나슈 economyinsight@hani.co.kr
   
▲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여성들이 일상적인 양성불평등과 성폭력에 항의하는 ‘잡년 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REUTERS

남성성과 여성성은 사회적 권력관계…
여전히 불완전고용과 낮은 소득에 시달리는 여성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젠더가 다른 개념이라는 건 이제 상식이 됐다. ‘세상의 반’인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억압적 현실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대다수에게 페미니즘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 모른다. 젠더 문제가 여전히 폭발적 담론이자 실천적 과제인 이유다.


이고르 마르티나슈 Igor Martinache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1. 성역할의 형성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여권운동가)가 <제2의 성>에서 남긴 이 유명한 말은 ‘젠더’(性) 연구가 인간의 사회적 삶의 영역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모든 단어가 그렇지만 ‘젠더’라는 용어도 그 개념이 생기기 전에 이미 그와 관련된 현상이 먼저 존재했다.

물론 젠더는 다양한 연구자의 관점을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복수가 아닌 단수로 표기된다. 왜냐하면 젠더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과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각 성과 관련된 가치관이나 표상이 하나의 쌍을 이루는 범주 체계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젠더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다양한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각각의 성이 맺고 있는 권력관계나 위계질서에 주목해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각기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류학자들은 수많은 형태의 사회조직을 연구하면서 일찌감치 여성과 남성의 행동 양태는 사회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거릿 미드(미국의 문화인류학자)는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1935)이란 책에서 남녀의 행동양식은 부족별로 다르게 형성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가령 아라페쉬족과 먼더거머족의 경우 남녀의 역할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아라페쉬족은 남녀 모두 부드럽고 이타적인 면을 중시했고, 먼더거머족은 남녀 모두 개인주의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을 보였다. 반면 챔불리족은 남녀의 역할이 더욱 분화돼 나타났다. 그러나 이 부족도 우리의 통념과 달리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쥔 것은 오히려 여성이었고, 남성은 여성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예술활동에 종사했다.

젠더라는 개념을 처음 창안한 사람은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로버트 스톨러였다. 1968년 그는 저서 <성과 젠더>에서 성과 젠더를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성은 생물학적 의미의 성을, 젠더는 각각의 성에 부여된 정형화된 행동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성적 규범이 미치는 영향력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각 주체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이런 성적 규범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심지어 양성성을 타고난 개인에게는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을 해서라도 강제로 특정 성에 합당한 성정체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성적 규범에 대해 처음 문제가 제기된 때는 1972년에 이르러서였다. 인류학자 앤 오클리가 저서 <성, 젠더, 그리고 사회>에서 ‘성역할’을 언급하며 페미니즘 차원에서 이같은 성적 규범을 비판했다. 이듬해 엘레나 벨로티(이탈리아의 페미니즘 교육학자)가 저술한 <여자아이에 관해서>가 출간됐다. 이 책은 어른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 대해 갖고 있는 각기 다른 기대가 출생 순간부터 남아와 여아의 서로 다른 행동양식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했다.

그렇다고 젠더 이론을 순전히 해외에서 프랑스로 수입된 이론으로만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1980년대 말 젠더라는 용어가 프랑스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저항이 일어났다. 가령 어떤 이들은 여전히 젠더가 지닌 위계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성의 사회적 관계’나 ‘남성적 지배’ 혹은 ‘가부장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고집했다. 어찌됐든 젠더라는 꼬리표가 붙은 모든 연구는 역사학·생물학·사회학·경제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 차원에서 연구됐다.

2. 잊기 쉬운 진실들

모든 학문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젠더의 특성이 있었다.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본 세가지 특성은 젠더는 자연적인 것이라기보다 사회적 구성물이며, 관계적 과정이며, 권력관계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젠더의 권력관계는 다른 여러 권력관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젠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은 그 자체로 다양하다. 먼저 첫손에 꼽을 수 있는 게 바로 생산관계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사실 여성의 지위가 격하됐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여러 지배종속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들렌 길베르(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여권운동가)는 1946년 발표한 한 논문에서 “여성이 공장직이나 사무직에 종속된 것은 여성이 단순 반복적이고 보수가 적은 임무에 적합한 기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앙드레 미셸(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여권운동가)도 생산 영역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이 재생산 영역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서로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재생산 영역에서도 가치가 별로 없거나 혹은 가치가 아예 없다고 여겨지는 가사노동이 여성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주장이었다.

크리스틴 델피(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여권운동가)는 여성에게 결혼은 ‘보수가 정해지지 않은 무기한의 노동계약’이라고 분석했다. 이때 여성의 보수는 배우자가 가정의 영역 밖에서 벌어오는 보수에 따라 좌우됐다. 오늘날 겉으로는 모두 남녀평등을 부르짖지만 여러 통계 수치를 보면 여전히 노동분업 구조가 여성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 방직공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여성의 임금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낮으며, 가사노동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REUTERS

특히 아이를 출산한 이후부터 남녀의 불평등한 노동분업 구조는 더욱 심화된다. 가사노동은 그저 가치 없는 노동으로 폄하되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여성이 가사노동으로 인해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지 못하게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가정에서 여성은 언제나 다른 가족 성원을 위해 ‘항시 대기 상태’로 지내야 하는 처지이며, 여성의 일과는 가족의 일과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일쑤다.

따라서 임금노동 영역에서 형성된 관계는 가정의 영역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가정의 영역은 여성노동자가 가장의 가사노동을 하청받아 떠맡고, 타고난 기질을 이유로 저급한 기술을 ‘무상’으로 배우고 수행하는 것을 당연한 현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또한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은 오로지 여성 혼자만의 몫이기에 결국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멀어지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합리화한다.

요컨대 젠더는 남녀의 노동시장 편입을 가르는 결정적인 프리즘 역할을 하고 있다. 수많은 계량경제학적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실업이나 불완전고용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 있고 경력 개발에 대한 희망도 거의 없다(저 유명한 ‘유리 천장’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다른 남성 동료들에 비해 실질적인 보수도 더 낮다. 남녀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원칙을 규정한 1972년 12월 22일자 법률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보수는 여전히 남성보다 평균 24% 더 적고 시간당 임금도 14%나 격차가 난다. 하지만 이 가운데 9%의 격차는 학력·근속연수·회사규모 등 그 어떤 객관적 변수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니 겉으로 공공연히 떠드는 것과 달리 사람들은 여전히 여성의 보수를 주수입에 부가되는 부수입 정도로 여긴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처럼 여성을 남성의 배우자로만 한정하는 태도는 오랫동안 여성의 활동이나 여성의 ‘워킹 푸어’ 현상을 공식 통계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런 오랜 관습은 놀랍기만 하다. 왜냐하면 이런 현상은 가정은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도 비생산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아의 학업 성적이 남아를 추월하기 시작한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3. 매우 정치적인 쟁점

여러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학생은 외부의 기대 때문에 남학생에 비해 불리한 진로를 선택하는 경향이 컸다. 남학생과 성적이 같더라도 여학생은 비교적 덜 유망한 학과를 택하고 그 결과 나중에 얻는 일자리 역시 여성적이라 여겨지는 기술이나 학업과 관련한 업무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여성이 어느 시기부터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가치관을 스스로 내재화하며 남성과는 다른 취향을 형성하고 여성스러운 문화생활이나 운동을 즐기게 되는지 많은 연구들이 입증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젠더의 개념이나 그와 관련한 여러 시각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의·주장을 펴기 위해 이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젠더 연구의 특수한 성격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학문으로서의 젠더 담론이 거기에 담긴 정치적 영향력과 얼마나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려운지를 방증할 뿐이다.

   
▲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2013년 처음 배출된 여성 전투기 조종사 예샤 파루크가 머리에 히잡을 쓴 채 남성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REUTERS

역설적이게도 정치학이 젠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물론 이에 따른 저항도 적지 않았다). 먼저 정치학자들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 전통적인 가부장 제도와 결별했다는 근대 민주주의의 신화를 무참히 깨뜨렸다. 사회계약의 토대를 이루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실은 은연중에 남성적인 사고체계에 젖어 있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여성은 정치적 삶의 영역에서 배제돼 가정의 영역으로 쫓겨났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보수주의자는 물론 진보주의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오래도록 투표권을 누릴 수도 없었고, 주요 공직에도 진출할 수 없었다.

2000년 3월 통과된 남녀동수법이나 그에 앞서 진행된 수많은 논쟁은 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실험장이 되었다. 동시에 이 문제는 페미니스트들의 양면성과 분열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에 대한 특혜를 수용하는 경우 ‘다양성’을 구현하는 범주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결국 차이를 인정하고 도구로 이용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제 정치학자들은 선거와 관련된 사안에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젠더가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국가정책이 성의 사회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사실 젠더 연구는 그 자체로 매춘, 히잡(이슬람 두건) 착용, 심지어 이성애 규범성(이성애적 관계를 바람직한 규범으로 보고 다른 모든 형태의 성행위를 이 규범에서 벗어난 일탈로 보는 경향 -편집자)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쟁거리를 포괄하고 있다.

특히 ‘섹슈얼리티(Sexuality·성적 특질)에 어떤 위상을 부여하는가’ 하는 문제는 불평등한 남녀 간 노동분업에 방점을 찍는 유물론자 페미니스트들과 후기구조주의식 접근법을 옹호하는 이론가들 사이에 결정적인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 주디스 버틀러(미국 문화철학자이자 퀴어 이론의 창시자 -편집자)는 <젠더 트러블>(1990)에서 젠더 정체성을 ‘수행’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요컨대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이나 말을 수행하는지에 따라 젠더 정체성이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 젠더 정체성은 ‘퀴어’ 운동이 부르짖는 것처럼 충분히 남녀 간에 전복될 수 있다.

젠더·계급·인종 사이에서 우리가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질적 그룹 간의 차이보다 동질한 그룹 내부 구성원들의 개인적 차이에 더 주목하는 관점 -편집자)이라는 사조를 옹호하는 이론가들에 따르면, 계급·젠더·인종 같은 각각의 소속관계는 통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요컨대 다양한 소속관계들이 뒤섞여 단순히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부가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특성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젠더 개념 속에는 여전히 우리가 미처 밝혀내지 못한 인간사회의 모습이 더 많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4년 4월호(제334호)
Le genre, une notion qui derange
번역 허보미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일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최우성 | 편집인 : 박종생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대표전화번호 : 02-710-0201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박종생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