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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해운업계, 쌓이는 적자에 P3 동맹까지…
한국경제 3대 블랙홀- ① 해운업
[49호] 2014년 05월 01일 (목) 홍대선 economyinsight@hani.co.kr
   
 

불황 탈출구 찾는 한국경제 3대 블랙홀

장기 불황터널 지나는 해운·조선·건설 기업들의 생존 전략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깊은 불황의 골에 빠졌던 세계경제가 조심스러운 회복 국 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유럽은 바닥을 다지면서 반등을 준비 중이다. 다만 거품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중국은 아직 예측이 어렵다. 한국 경제는 혼란스러운 양상이다.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거품을 빼고 바닥을 다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 봄바람이 불지는 알 수 없다. 몇개월 뒤일 수 도 있고 몇년 뒤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 길게 이어져온 불황의 터널이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버티기 게임에 들어갔다. 이 고비를 넘기고 경기회복기를 맞으면 한동안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특 히 조선·해운·건설은 한국 경제의 3대 블랙홀이다. 지난 몇년 동안 최악의 불황 을 겪으며 한국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아왔다. 이들 산업이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 국 경제도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기업들은 마지막 고비 를 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_편집자

선박 공급과잉, 운임 하락에 적자 수렁…
경기 반등해도 2016년 돼야 수익성 회복할 듯


국내 해운업체에 2014년은 중요한 해다. 적자 늪에 빠져 그대로 좌초할지, 아니면 반등할 기회를 잡을지 기로에 서 있다. 2014년 시황은 개선될 기미가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해운 경기가 워낙 바닥이어서 ‘기저 효과’에 머물 수 있다. 앞길도 험난하다. 높은 파도를 넘었다 싶었는데 또 거친 파도가 기다린다. 5월 중 출범할 세계 최대 해운동맹 ‘P3 네크워크’는 국내 선사들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악재다.

   
▲ 경기도 의왕시 내륙 컨테이너 기지 터미널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 2013년 전세계적으로 컨테이너 물동량이 늘어났지만 해운 경기는 요지부동이다. 뉴시스

홍대선 부편집장

2014년 4월2일 아침 화물을 가득 싣고 부산 신항을 출항한 1만3천TEU급(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 화물선 한진수호호의 평균 운항 속도는 18노트(시속 32km)가 채 안 된다.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운항 속도를 예전보다 20%가량 줄였다. 정재순 한진해운 해사담당 상무는 “1만3천TEU급 선박을 경제속도인 18노트로 운항하면 21노트로 운항할 때보다 33% 정도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 선박들은 밀려드는 화물을 빨리 실어나르기 위해 항해 속도를 최대한 높였다. 그러나 유가가 오르고 물동량이 줄어든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오히려 경제속도를 지키는 ‘저속 운항’이 중요해졌다. 평소보다 운항 시간은 더 걸리지만 연료 소비 효율을 따지면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대형 선사들은 이런 감속 운항을 통해 연료비를 15~20% 정도 아낀다고 한다. 한진해운이 연간 연료비로 2조원가량 쓰는 것을 감안하면 한해 3천~4천억원의 연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장기 불황의 골에 빠진 해운업체들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적자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한방울의 기름이라도 아껴야 할 절박한 처지다. 조직을 재편해 간소화하고 선박 부문 등 돈이 될 만한 보유 자산을 시장에 내놨다. 자구책이라지만 배로 먹고 사는 해운사가 배까지 매각해야 하는 현실은 경영 사정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방증한다.

해운업계는 지난해 혹독한 한해를 보냈다. 업계 3위였던 STX팬오션은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끝내 좌초했다. 4위 대한해운은 삼라마이더스(SM)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으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서 벗어났다. 1·2위 업체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유동성 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올해도 적자를 내면 두 업체는 그룹사와 금융권의 추가 지원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장기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국내 해운사들은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선박 대형화로 공급과잉 악순환

해운산업은 그동안 구조적인 불황에 빠져 있었다. 대형 해운사들을 장기 불황의 수렁으로 밀어넣은 결정적 요인은 국제 유가 상승과 물동량 감소다. 해운업의 특성상 연료비는 전체 운항 경비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선사들은 ‘선박 대형화’에 매달렸다. 초대형 선박은 운항 비용의 단가를 낮추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박 대형화 경쟁은 선사들의 발목을 잡았다. 해운시장이 선복량(선박에 실을 수 있는 적재 용량)의 과잉 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새로 발주한 배까지 큰 배로 쏠리다보니 공급과잉의 악순환에 갇힌 것이다.

영국 해운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의 집계를 보면, 지난해 세계 컨테이너선 물동량은 1억6050만TEU로 5년 전에 비해 20%도 채 늘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세계 컨테이너선 선복량은 40% 넘게 증가했다. 선복량(공급)이 물동량(수요)보다 훨씬 빨리 늘어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양상이다. 선박의 공급과잉은 운임 하락을 부추겨 해운사들의 실적을 악화시켰다.

국내 해운업체들은 지금 심각한 적자의 수렁에 빠져 있다. 컨테이너선 기준으로 세계 8위인 한진해운은 지난해 2424억원의 영업손실(연결재무제표 기준)을 냈다. 전년(1098억원)보다 손실 규모가 곱절 넘게 커졌다. 2011년부터 3년째 영업 적자다. 2009년 1조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것까지 감안하면 금융위기 이후 적자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10조3317억원으로 전년(10조5894억원)보다 2.4% 줄었다. 현대상선과 STX팬오션도 지난해 각각 3302억원, 224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정책연구실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선사가 더 어려운 이유를 3가지로 꼽았다. 먼저 사업모델의 차이다. 수익 구조를 다각화해놓은 외국 선사와 달리 국내 선사는 대부분 해상운송 수입에 의존해 운임 변동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외국 선사보다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선박 확보 시기를 직관에 의존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국내 해운업계는 올해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적잖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만 세계경제 동향과 물동량·선복량 등 해운시장의 수급 상황을 고려했을 때 2014년을 해운 경기의 회복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해로 꼽는다. 우선 벌크선 시장에서 대형 화물선을 중심으로 수급 불균형이 점차 해소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업계는 부실 해운사 퇴출과 노후 선박 폐선 등으로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벌크선 공급 증가율이 5% 미만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오스트레일리아 광산업체의 생산 증대로 철광석 수요 증가율도 10%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벌크화물 운송시장이 공급과잉에서 벗어나는 첫해로, 10년 만에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각국의 수출품을 실어나르는 해운산업은 세계 경기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기도 하다. 매달 또는 분기별로 집계되는 주요 선박 운임지수를 보면 앞으로의 해운 경기를 점칠 수 있다. 벌크선 운임 수준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Baltic Dry Index)는 2014년 1분기 평균 지수가 1356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96에 비해 70% 상승했다. 영국 런던의 발틱해운거래소가 발표하는 이 지수는 석탄·철광석·원유·곡물·커피 등 건화물을 실어나르는 벌크선의 시황을 잘 보여준다.

   
▲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2012년 12월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사내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 회장은 2013년 해운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진해운의 경영권을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기기로 했다. 뉴시스

유조선 운임지수인 WS(World Scale)는 2014년 1분기 평균 지수가 53으로, 지난해 1분기 평균 지수 35에 비해 51% 올랐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컨테이너 항로 운임이 최근 상승하고 있고 벌크선 운임지수(BDI)도 조금씩 올라가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성수기로 접어드는 2분기부터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 해운업계는 시황 개선을 명분으로 지난 4월 컨테이너 전 노선의 운임 인상에 나섰다. 해운선사들의 협의체인 태평양항로안정화협정(TSA)은 4월15일자로 아시아발 미국행 컨테이너 운임을 올린다고 최근 발표했다. TSA는 상승폭 가이드라인으로 미국 지역의 경우 FEU(1FEU는 40피트 컨테이너)당 300달러를 제시했다. 앞서 글로벌 선사들은 유럽 지역 전 노선에서 지난 4월1일부터 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750달러에서 1천달러까지 인상한다고 밝혔다. 1위 선사인 머스크가 TEU당 1천달러를 올린 것을 비롯해 현대상선 950달러, 한진해운은 750달러를 인상했다.

전통적으로 컨테이너 시장은 2분기부터 시황이 좋아지기 시작해 7~9월을 최대 성수기로 꼽는다. 2분기로 접어들면서 주요 지역별 물동량이 늘어나 운임 인상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그러나 기대만큼 효과를 낼지 장담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해운사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운임비 인상 방침을 발표했지만 구속력 없는 지침인 탓에 화주와 협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난해부터 2~3개월마다 올린 운임비는 얼마 있지 않아 떨어졌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사들은 업황 턴어라운드 시기를 언제쯤 보고 있을까. 현대상선 쪽은 “예측하기 쉽지 않다. 다만 지난해보다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진해운 쪽은 “올해 시황이 다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지만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내년까지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적어도 한두 해 안에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해운사들은 이르면 2016년에야 수급 균형을 맞춰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16년에야 수요·공급 균형 찾을 듯

문제는 시황이 살아나도 국내 해운사들은 큰 파고를 또 하나 넘어야 한다. 5월에 출범할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P3 네트워크’다. 세계 1·2·3위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덴마크), MSC(스위스), CMA-CGM(프랑스)이 손잡고 만든 이 연합체는 세계 컨테이너 운송 물량의 40% 가까이를 점유해 해운시장의 ‘공룡’으로 불린다. ‘빅3’가 하나로 뭉치는 것은 중·하위 선사들의 연합체(얼라이언스)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양홍근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공정거래위원회에 P3 기업결합 승인을 보류하거나 운임 담합 등을 적발할 경우 운항 금지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조건을 부과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호영 한양대 교수는 “P3는 묵시적 담합을 할 여지가 농후하다. 기업결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못한다면 묵시적 담합 금지와 특정 노선의 제한을 조건으로 승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선사들은 ‘빅3’의 시장지배력 강화를 우려하면서도 자사가 속한 해운동맹과 협력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한진해운이 속한 ‘CKYHE’ 얼라이언스는 세계 4위 업체인 에버그린(대만)을 참여시켜 덩치를 키웠고, 현대상선이 속한 ‘G6’ 얼라이언스는 협력 항로를 확대해 대응할 계획이다.

오랜 불황의 터널을 지나온 국내 해운업체들이 맞닥뜨린 험로는 올해도 한두 갈래가 아니다. 지난해를 고비로 해운 경기가 바닥을 다졌다고 보는 이가 많지만 새로운 악재가 또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입지를 바탕으로 해양 강국을 이끌어온 해운산업이 눈앞의 위기에 몰려 좌초할지, 아니면 세계경제 회복세를 타고 반등할 키를 잡을지 분수령에 점차 다가서고 있다.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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