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내 > 이슈
     
신흥국 위기, 한국은 과연 무풍지대일까?
국내 이슈 ●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신흥국의 금융불안
[47호] 2014년 03월 01일 (토) 최정희 economyinsight@hani.co.kr
   
▲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 2월 하원 청문회에 참석해 양적완화 축소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REUTERS

거시경제 지표 상대적 안정세…
금리 상승 본격화하면 1천조원 가계대출이 뇌관 될 수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충격이 신흥국을 뒤흔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큰 흔들림이 없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기업과 금융의 부실을 대부분 걷어냈고, 70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와 35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정말 무풍지대일까? 금리가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면 1천조원을 넘는 가계부채는 언제든지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정희 <이데일리> 금융부 기자

지난 5년간 달러를 풀어대던 미국이 올해 들어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테이퍼링)하면서 전세계 경제에 후폭풍이 불고 있다. 양적완화 정책에 행보를 같이했던 유럽·일본 등에 견줘 미국이 한발 앞서 달러 자금을 거둬들이자 신흥국을 비롯한 국제 금융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코스피 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올해 들어서만 3조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미국의 정책 변화는 단순히 외국자본의 주식시장 이탈에만 그치지 않는다. 테이퍼링은 어떤 식으로든 국내 시장금리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1천조원에 이르는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뇌관을 건드리는 불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상당 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며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감을 달랬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회복세가 빨라질 경우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수 있다. “연준은 세계 중앙은행이 아니라 미국의 중앙은행”이라고 외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고위 인사들이 최근 매파(경제성장보다 물가관리 중시) 성향의 태도를 보인 것도 미국의 출구전략이 속도를 낼 수 있음을 방증한다.

예고된 테이퍼링에도 금융시장 ‘출렁’

미국의 양적완화 추가 축소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런데도 신흥국을 중심으로 전세계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경상수지 적자로 외환보유액이 300억달러 미만으로 감소한 아르헨티나와 반정부 시위 등으로 정정 불안을 겪은 타이 등은 직격탄을 맞았다.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던 일부 신흥국들이 미국의 기침에 몸살을 앓는 형국이다.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악화되면서 중국 경기둔화 우려가 번진 것도 불안을 촉발했다. 여기에 테이퍼링 이후 미국 제조업 지표의 개선이 둔화되자 큰 폭으로 상승 중이던 다우존스 등 뉴욕 증시가 하락했다. 결국 테이퍼링은 선진국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금융시장 불안이 장기화되면 실물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외 개방도가 높은 만큼 살아나던 경기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에서 중국을 비롯한 베트남·인도 등 신흥 10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1%에 이른다. 이들 신흥국은 경기가 채 살아나지 못한 상황에서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자금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했다. 그만큼 내수시장 위축 등 경기둔화가 예상된다.

터키는 지난 1월 말 기준금리를 5.5%포인트 인상했고 인도 역시 0.25%포인트 올렸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의 재정이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만큼 튼튼한 것도 아니다. 신흥국 경기가 둔화되면 우리나라의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낄 수 있다. 최호상 국제금융센터 선임연구위원은 “신흥국 통화 및 금융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세계 교역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우리나라 수출도 영향받아 성장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양적완화 축소는 미국의 경기회복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에 우울한 소식만은 아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우리나라의 총수출 증가율은 2.1%포인트, 경제성장률은 0.4%포인트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면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1천조원의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질 전망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땐 기업 부채가 부실의 원흉이었지만 지금은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 체력이 당시보다 튼튼해졌다고 하지만 가계부채 부실 위험이 커질 경우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터키 등 신흥국의 기준금리 인상 대응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순 없는 이유다.

다만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더라도 과거처럼 달러를 구하지 못해 위기가 커질 우려는 적다는 게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지난해 700억달러를 넘어선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와 35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이 외화유동성을 확보하는 안전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 쪽으로 방향이 틀어지면 가계부채발 위기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부에선 이르면 올해 하반기 기준금리가 인상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저금리로 싸게 빌렸던 대출금 이자가 올라가면서 가계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가계신용은 991조7천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10~11월 가계대출이 9조원을 넘어서면서 가계부채가 1천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신흥국 금융위기 우려로 우리나라 증시도 급락했다. 그 여파로 지난 2월 초 한때 코스피 지수가 1880대로 내려앉았다. 뉴시스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으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늘리는 데 주력했음에도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돼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진 점도 가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지난해 말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중 고정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2.9%(신규 취급액 기준, 잔액 기준으로는 21.3%)에 불과했다. 나머지 87.1%는 변동금리 대출이다. 가계대출 중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2012년 11월 50.5%까지 증가했지만 이후 빠르게 감소했다. 현재도 소비를 짓누르는 가장 큰 요인이 가계부채인데 이자 부담이 늘어날 경우 소비 위축에 따른 내수경기 악화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빚내어 주택을 사도록 권했던 정부 정책도 역풍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경기의 회복 속도가 느려 주택을 팔아 빚을 청산할 가능성도 낮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단 연준은 오랜 기간 제로(0)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지난 2월11일(현지시각) 첫 의회 증언에서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지는 시점이 훨씬 지날 때까지 제로금리 수준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적 안내)를 통해 실업률이 6.5% 아래로 내려가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해왔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1월 실업률이 6.6%까지 하락한 반면, 취업자 수는 시장 예상치보다 낮아 고용지표 해석에 혼선이 생겼다. 옐런 의장은 “고용 회복은 갈 길이 멀었다”고 밝히면서 시장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양적완화 축소가 계속되는 만큼 미국의 경기회복세가 짙어지면 언제든지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더라도 시장의 기대가 기준금리 인상으로 옮겨가면서 장기 채권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도 높다(이번에는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에도 장기 채권 금리는 안정됐다. 양적완화 축소 전망으로 미리 올랐던 금리가 조정받은 측면과 미국 경기지표의 악화 때문이다). 미국 금리가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줄 경우 국고채 금리를 따라가는 고정 대출금리가 인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를 인상했을 때의 타격보다 크지 않겠지만 장기 채권 금리 상승에 따라 대출금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금리 상승에 취약한 변동금리 대출 80%

세계경제가 떨고 있는데 미국만 잘나갈 수 있을까. 영국 경제정보평가기관 ‘옥스퍼드 애널리티카’는 “미국이 신흥국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미국의 주가 급락 또는 경제지표 부진이 확대될 경우 양적완화 축소 속도 조절 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 양적완화 축소→신흥국 금융불안 및 경기악화→미국 등 선진국의 금융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 만큼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결정시 신흥국 등 다른 나라의 사정도 고려하는 등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 부실장은 “신흥국 불안은 단순히 그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외부 효과”라며 “장기적으론 미국 등 선진국의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속도 조절 등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 공조가 제대로 성사될지에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금융위기 때는 미국이 급했던 반면 지금은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결국 키를 쥔 것은 미국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취임과 함께 바뀐 12명의 FOMC 멤버(7명 교체)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린 것이다. 일단 옐런 의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현 국면에선 미국 경제 전망에 큰 리스크를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옐런 의장이 비둘기파적(성장 중시)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적완화 축소를 지지한데다 FOMC 멤버가 교체되면서 전반적으로 매파 성향의 인물이 주도권을 쥐게 됐다.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FRB) 총재는 최근 “예상대로 경기가 회복된다면 매달 100억달러씩 줄이는 것으로 부족할 수 있다”며 양적완화 축소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서도 “너무 늦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아쉬울 것 없는 미국과 미국만 쳐다보는 세계경제가 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jhid0201@edaily.co.kr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일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최우성 | 편집인 : 박종생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대표전화번호 : 02-710-0201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박종생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