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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엔화 핑계대지마!
[Focus]
[1호] 2010년 05월 03일 (월) 이토 다카토시 도쿄대 경제대학원 교수 economyinsight@hani.co.kr

상하이나 베이징에 있는 내 친구들은 부동산가격 상승률이 지역에 따라 50%~100%에 이른다고 말한다. 젊은 부부가 시내 중심가에 집을 마련하는 것은 바라기 어렵고 1시간 통근 거리에 있는 집이라 해도 평균 연봉의 10배는 줘야 살 수 있다. 하지만 당국의 공식 통계(중국 통계청: 70개 주요 도시의 빌딩 가격 판매지수)는 조금 다른데, 지난 2월 기준으로 부동산 가격은 전년 동기에 비해 10.7%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오름세는 1월의 9.5%보다는 가팔라지고 있다.
공식 수치가 통계 작성의 한계 때문에 실제 가격 상승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동산도 여러 종류인 만큼 나눠서 관찰해 보면 새로 지은 주거용 건물(90제곱미터 이하)의 가격 상승률은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에서 각각 19.3%, 11.6%, 19.6%로 나타났다. 같은 범주에서 가장 상승률이 높은 곳은 하이난 섬의 산야로 57.9%나 상승했다. 어찌됐건 공식 통계에서는 위치나 건물의 질에 따른 차이를 잡아내기는 어렵다.
 
일본 버블 추억과 중국 버블 재현
   
▲ 베이징 싼리툰 지역에서 유명 부동산 개벌업체 소호가 지은 500여채 규모의 아파트 단지 공사현장. 고가 아파트지만 완공도 되기전에 거의 팔려나갔다. 한겨레 자료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1980년대 후반 거품의 생성과 붕괴를 경험했던 일본인들에게는 익숙한 것들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까지 일본인들은 역사상 가장 큰 자산가격 거품을 목격했다. 토지가격 지수는 5년 만에 3배가 뛰었다. 6대 도시의 주거용 토지가격 지수는 1985년 9월에 39.2이던 것이 1990년 9월에는 105.8로 치솟았다. 상업용 건물의 경우는 같은 기간에 29.9에서 104.5로 점프했다. 처음에는 도쿄 중심부의 땅값이 오르더니 주변부로 확산됐고, 지방도시의 중심부와 주변부를 거쳐 나중에는 농토와 임야 가격까지 덩달아 뛰었다. 미국의 주택가격 거품이 프라임 모기지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확산된 것과 마찬가지 경로다. 대출자의 재무 건전성이 빠르게 나빠졌고, 담보인정비율(LTV:Loan to Value)도 급상승하며 버블은 붕괴를 향해 치달았다.
중국의 자산가격 상승은 일본의 1980년대 상황을 여러모로 닮았다. 물론 그렇다고 중국의 자산가격이 반드시 일본처럼 붕괴할 것이란 얘기는 아니다. 현재 중국의 경제 성장 잠재력은 1990년대 일본보다 훨씬 크다. 중국의 은행은 여전히 당국의 손아귀에 있어서 버블에 대응하는 정책이 일본보다는 한층 잘 먹히게 돼 있다.
일본의 자산가격은 1980년 중반부터 탄탄한 경제 기초여건과 금융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초기인 1984년부터 1987년 정도까지는 견조한 거시경제 지표와 맞물린 자산가격 상승이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보였다. 실수요는 규제가 완화된 금융 등 일부 잘나가는 산업에서 창출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일본 내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높았다. 통화정책이 매우 느슨해 정책금리는 1987년 중반부터 1989년 중반까지 2.5%에 머물렀다. 저금리 기조가 거들면서 주가와 땅값은 계속 올랐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거품이 만들어졌다. 부동산을 사는 사람의 유일한 목적은 자본 차익에 있었다. 좀 더 많은 투자수익을 내기 위해 돈을 더 빌렸고, 은행들은 담보물의 가치가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고 돈을 대줬다.
 
일본 자산 거품 붕괴의 교훈

첫번째 교훈은 거품의 징후가 보일때 이자율을 높이고 은행의 영업에 대한 세심한 감독을 통해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LTV가 높아지고, 부동산업에 은행의 대출이 쏠리고, 먼 교외까지 개발의 붐이 일면 거품을 의심해 봐야 한다. 1987년부터 1989년 사이에 금융 긴축과 은행 감독 강화 조처가 시행됐어야 했다. 금융긴축으로 거품 생성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일찍 시행됐더라면 충격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대부분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경기침체는 자산 거품과 그 붕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20년간 연속해서 나온 정책 실패도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먼저, 버블이 터졌을 때 (유연한 통화공급으로) 역자산 효과(Negative Wealth Effect: 부동산, 주식 등 보유자산의 가치가 하락해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현상)를 완화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에는 1991년과 1992년 사이의 통화정책의 기조는 긴축노선이었다.
둘째, 재정을 통한 경기 진작책은 너무 규모가 작고 기회를 놓쳐서 경기회복의 ‘마중물’ 노릇을 할 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 결국 경기는 살리지 못하고 국가 부채만 늘어난 꼴이 됐다. 1997년 4월의 재정긴축과 2000년 8월의 금융긴축은 확실히 성급했고 잘못된 판단에 따른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너무 질질 끈데다 충분한 자본확충을 하지 못하는 실책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소규모 주택금융 업체들이 취약성을 드러냈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 문제는 중소규모 은행에서 대형은행으로 퍼져나갔다. 조기에 단호한 조처가 있었다면 1997년과 1998년에 초대형 은행으로 번진 위기를 막지는 못했어도 그보다는 덜 심각했을 것이다.
중국 당국자들은 자산 거품붕괴에 이은 일본 경제의 20년 침체는 미국의 엔화 절상 압력에 저항하지 못한데서 연유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런 논리를 현재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저항하는 이유로 삼고 있다. 이 논리는 다음의 3가지 정도를 가정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엔화 절상 압력은 △거품의 크기를 키웠고 △ 거품 붕괴에 이은 침체의 깊이를 더욱 깊게 했으며 △일본 수출업자들의 경쟁력을 갉아먹어 20년 침체의 원인이 됐다.
이들 3가지를 하나씩 점검해 보자. 미국의 엔화 절상 압력은 두 번 정도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먼저 19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는 엔화의 가치를 급속히 밀어 올렸다. 합의 직전 달러당 240엔이던 엔화 가치는 3개월 뒤 20% 절상된 200엔으로 치솟았다. 엔화는 계속 강해져 1986년 8월에는 달러당 155원에 이르렀다. 플라자 합의 전에 비해 45% 절상된 수준이다. 두 번째 경우는 1995년에 일어났는데 그 해 1월 달러당 100엔이던 엔화는 5월에 80엔대로 껑충 뛰었다. 이 때는 일본과 미국의 무역 분쟁이 달아오르던 시기여서 시장은 일본이 무역제재를 감수하거나 엔화를 절상하거나 양자간의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 때의 엔화 강세는 그해 9월 엔화가 100엔대로 돌아감으로써 반짝 절상에 그쳤다.
 
엔화 절상이 불황 원인인가

그럼 플라자 합의가 20년 불황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엔화 절상 압력이 거품을 키웠다면 타이밍상 그 말은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무엇보다 플라자합의는 주요 통화에 대비해 고평가된 달러화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고 엔화는 상대 통화 중 하나였을 뿐이다. 게다가 달러당 240엔에서 200엔으로 절상된 것은 당초 목표했던 범위에 있던 것이었고 일본도 반대하지 않았다. 1986년 들어 엔화가 190엔 아래로 절상되자 당국의 개입이 시작됐지만 엔화는 계속 절상됐다. 미국은 1987년 2월의 루브르합의로 환율 안정에 나섰으며, 시장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달러당 150엔~160엔 대의 목표환율에 합의했을 것이란 인식이 확산됐다. 사실 일본의 수출기업들은 1985년부터 1987년 사이의 급속한 엔화 절상으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1986년의 불황은 짧게 끝났다. 유가가 1986년 들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엔화는 유가가 내리면 절상되고, 오르면 절하되는 패턴을 이어갔다.
 
저금리 등 정책실패가 근본원인

통화정책은 1986년부터 1987년 사이에 완화되며 당시로서는 기록적으로 낮은 2.5%의 정책금리가 1987년 2월부터 1989년 5월까지 지속됐다. 이는 빠른 엔화 절상의 속도를 누그러뜨리거나 멈추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다. 따라서 통화정책을 느슨하게 해서 버블을 키운 것은 미국의 엔화 절상 압력에 굴복한 때문이 아니라 미국에 저항하려 했기 때문이다. 맥락이 중국 당국이 믿는 것과는 정확히 반대인 것이다.
두번째 엔화 절상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1994년과 1995년의 자동차 무역 분쟁은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이때의 엔화 절상 압력은 첫 번째 시기 보다는 한층 비공식적이었다. 미국이 요구하는 자발적 수입 확대 목표에 일본이 저항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시장에서는 엔화 가치가 올라갔다.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5달 만에 100엔에서 80엔으로 갈 이유는 없었다. 따라서 대장성 국제금융국장이던 사카키바라의 단호한 개입으로 엔화 가치는 다시 100엔 선으로 돌아갔다. 이는 당시의 엔화 절상이 경제 기초 여건과 별 상관이 없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절상의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수출 부문이 많은 타격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가지 경우에서 볼 때 미국의 엔화 절상 요구는 일본의 20년 불황과 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잇따른 정책실패라고 할 수 있다. 즉 버블이 너무 커지는 것을 막지 못했고, 조기에 버블을 터뜨리지도 못했고, 금융기관의 위기를 단호히 대처하지도 못했다.
거품이 계속 커지는 것을 막지 못하면서 중국 당국자들은 일본이 1980년대에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바로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통화 절상에 저항하는 것이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1980년대 일본에서는 물가 상승이 문제가 안됐다. 자산가격 거품은 분명한 과열의 신호다. 중국이나 1980년대 일본이나 무역흑자는 아주 큰 규모다. 가장 좋은 처방은 금리를 끌어올려 자산 거품을 막고, 그 연장선에서 위안화가 절상되도록 해 핫머니의 유입을 차단해야 한다. 중국 당국은 이미 LTV를 규제하고 대손충당 비율을 올리도록 해 부동산 대출을 억제하고 있는데 이런 조처들은 계속돼야 한다. 위안화를 절상한다면 과열을 보이는 수출 부문이 진정되는 반면, 구매력이 늘어나면서 일반 국민들의 장바구니 경제는 좀 더 나아질 것이다.
 
위안화 절상이 중국에 도움

중국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위안화를 20%절상했다. 하지만 중국 수출 부문의 생산성 향상은 이런 통화가치 절상을 만회했으며 무역흑자는 계속 늘어났다. 중국 위안화는 2008년 달러에 다시 연동(peg)되도록 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금이 바로 중국이 위안화를 다시 절상할 적기다. 미국에 맞서기 위해 이를 거부해서는 안된다. 미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관계없이 국민의 복지를 극대화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위안화 절상은 거시 관리에도 좋은 방책이다. 이는 인민은행에 좀 더 많은 정책 수단을 제공할 것이며, 국민의 복지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은 일본에게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어야 한다.
© CEPR(Voxeu)

* 필자는 1979년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뒤 미네소타 대학 등 미국과 일본의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고, IMF 선임 자문관 등을 역임했다. 특히 2006년 10월부터 2년 동안은 수상, 재무상 등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매년 예산의 틀을 짜는 경제 및 재정정책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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