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주의 포기하고 각국에 고객 정보 제공하기로…
탈세 부유층 자진신고 속출

스위스 은행들이 탈세자를 과감하게 솎아내고 있다. 고객에게 탈세를 자진신고하도록 권고하고, 필요하면 각국 세무 당국에 계좌정보까지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조세회피처라는 오명을 씻고 다시 태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만큼 부자들이 숨을 곳은 줄어들게 됐다.

다니엘 쇤비츠 Daniel Schonwitz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5년여 전 스위스의 대표적 프라이빗뱅커 중 한 명인 콘라드 훔 러는 은행의 비밀주의를 적극 옹호했다. 은행의 비밀은 자국 국 세청으로부터 자신의 자본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해외 투자자 들에게 일종의 ‘난민 보호권’에 해당한다는 논지였다. 훔러는 이 제 더 이상 프라이빗뱅킹(PB)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다. 그가 일 했던 스위스 베겔린 은행은 몇달 전 탈세를 도운 혐의로 미국에 서 7400만달러의 벌금형을 받은 뒤 영업을 중단했다.

이제 저명한 은행가들은 더 이상 은행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지난해 9월 스위스 베 른에서 열린 ‘은행의 날’ 행사에서 금융업계는 ‘자아비판’을 봇물 처럼 쏟아냈다. 스위스 은행가연맹 회장이자 스위스 PB 전문은 행 롬바르 오디에의 대주주 파트리크 오디에는 “외국인의 검은 돈 비즈니스는 잘못”이라고 반성했다. 그는 또 “앞으로 은행들은 국제 기준을 준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스위스 은행들은 과거 굽실거리며 모셨던 검은 고객들을 솎아내기로 결심했다. 은행가 들은 수천명에 이르는 독일 고객들에게 자국 국세청에 계좌를 신고하든지 아니면 은행을 떠나라고 압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