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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난방비, 보일러 안틀고 산다
Life ● 추위에 덜덜 떠는 영국인들
[46호] 2014년 02월 01일 (토) 크리스티나 리츠 economyinsight@hani.co.kr
   
▲ 영국 버킹엄궁 주변 공원이 꽁꽁 얼어붙었다. 영국인들은 비싼 가스비와 낡은 건물 탓에 추운 겨울을 보내야만 한다. 버킹엄궁 사정도 다르지 않다. REUTERS

낡은 시설, 비싼 가스비, 잘못된 주거문화가 ‘난방 빈곤층’ 양산…
왕궁, 정부청사도 바람 솔솔


영국의 겨울은 습하고 춥다. 그런데도 웬만한 가정에서는 난방비가 무서워 집 안을 따뜻하게 하지 못한다. 비싼 가스비 탓에 기껏해야 아침과 저녁 1시간씩 가동하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오래된 건물이 많아 단열 효과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한해 3천명 정도가 숨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영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크리스티나 리츠 Christina Rietz <차이트> 온라인 기자

어느 집에선가 보일러가 고장나면 로버트 진이 바로 출동한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보일러 수리 업무를 해왔다. 빨간 트럭을 타고 영국 런던 거리를 달려 냉골이 된 가정집의 보일러를 손보곤 했다. 그런데도 그의 명성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 11월 어느 아침 진은 칭퍼드 외곽에 도착했다. 이곳의 집들은 족히 100년이 넘었다. 빨간 벽돌로 지은 건물들은 겉보기엔 무척이나 아름답다. 하지만 이 집들에는 결정적 단점이 있다.

제리 윌리엄스는 몇달 전 이곳으로 이사왔다. 진은 부엌에 있는 보일러를 틀었다. 보일러의 공기압이 너무 낮았다. 그는 풀무로 공기를 불어넣었다. 보일러는 새것이지만 라디에이터 몸체가 너무 낡았다. 요즘 이 가족은 집을 개조하느라 바쁘지만 난방시설을 고칠 계획은 없다. 물론 난방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가스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어차피 집을 충분히 덥히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보일러를 자주 가동할 일도 없다.

윌리엄스는 벽지를 새로 바르고 화장실도 고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라디에이터는 어쩌고? 라디에이터를 새로 교체해야 보일러를 틀어도 난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필요한 방에만 난방을 할 수 있는 라디에이터는 너무 비싸서 새로 사는 걸 생각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단열재를 보강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묻자 “달라지는 게 있나요? 집이 더 따뜻해질까요?”라고 되물었다. 차를 마시고 있던 난방 전문가 로버트 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달랑 유리 한장 끼운 뿌연 창으로 햇살이 이제 막 그렁거리기 시작한 보일러 위로 내려앉았다. 수리를 마친 보일러가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영국인의 일상생활에서 보일러는 매우 소중하다. 영국의 아파트와 주택들은 집집마다 난방을 위해 보일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30년 동안 보일러를 바꾸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보일러 보험을 해지하고 6개월 동안 보일러를 방치해둔다(영국은 비싼 수리비용 때문에 대부분 보일러 보험을 든다 -편집자). 버킹엄궁도 보일러로 난방을 한다. 얼마 전 버킹엄궁이 60년 동안 보일러를 교체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화제가 됐다.

많은 영국인에게 난방은 사치가 돼버렸다. 난방철이 시작되자마자 거대 에너지 공급회사들은 연료 가격을 10% 인상했다. 그 이유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난방 빈곤’에 시달리게 됐다. 사람들이 집을 따뜻하게 할 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300만명에 이르는 영국인이 먹거리를 살지 그 돈으로 난방을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300만명, 식비와 난방비 사이에서 고심

난방 빈곤은 생활비가 비싼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시골 지역도 다르지 않다. 시골은 가스보다 비싼 기름으로 난방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수 성향의 정부도 난방을 복지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극빈층 가정에는 효율이 높은 새 보일러를 무상으로 설치해준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가정들도 선뜻 난방을 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아침과 저녁 1시간 정도씩 보일러를 가동하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여왕도 에너지 비용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런던에서 가장 열효율이 떨어지는 건물인 버킹엄궁의 1년 난방 비용은 360만유로(약 52억2천만원)다. 보일러 교체가 시급한데도 왕실 재정으로는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영국 왕실도 일반 가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정비할 돈도 없고 집 자체도 낡았다. 보일러가 내보내는 열기는 오래된 벽돌벽과 얇은 창을 통과하면서 상당 부분 빠져나간다. 일반 시민들이 보일러를 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겨울이 되자 영국 에너지 회사들이 연료 가격을 인상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난방 빈곤’에 시달리게 됐다. 한 할머니가 작은 난로에 기대 추위를 견디고 있다. FLICKER

로버트 진이 달려간 다음 집의 보일러는 응급조치까지는 필요 없었다. 약간의 수리만 하면 될 정도였다. 런던 북쪽 우드퍼드에 있는 이 집에는 데이비드 개니라는 사람이 산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풍의 이 집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거리 전체가 온통 빅토리아 시대 주택으로 가득했다. 개니는 런던에 있는 모든 골드만삭스 은행 건물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직업이 그러한 만큼 집도 잘 관리되고 있었다. 보일러는 부엌에 설치돼 있었고 작동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집 라디에이터도 개별 조절 장치는 없었다. 거실 라디에이터는 가구 안에 들어가 있었다. 개니와 그의 아내는 지난해 지붕에 단열재를 넣었다. 부부 모두 60살이 넘었기 때문에 공사를 무료로 할 수 있었다. 영국에선 60살 넘은 부부는 이른바 ‘난방 보조 계층’에 속한다. 이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단열공사를 공짜로 할 수 있다. 사회보장금을 받거나 은퇴자처럼 난방 빈곤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부는 무료로 난방시설을 개조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2013년 한해 동안 모두 27만건의 공사가 이뤄졌다. 이 중 많은 사람들이 보일러 교체를 원했다. 의회는 6개 거대 에너지 회사들이 이에 필요한 재정을 부담하도록 결정했다. 인상된 에너지 가격의 일부를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다.

영국인에게 비싼 난방비는 늘 불평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영국 난방기구설비조합의 개리 만 기술이사는 “영국인은 집을 고치거나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보세요. 옷조차 날씨에 맞춰 입지 않잖아요.” 그는 이렇게 무신경한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계절에 따라 관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대다수 사람들은 집 전체에 난방을 하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불평했다. 영국 정부는 7년 전부터 방마다 난방을 따로 할 수 있는 라디에이터를 설치하라고 권고했다.

데이비드 개니는 파란 셔츠와 초록색 스웨터 윗옷에 검은 양복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었다. 17℃는 적정 실내온도다. 그의 집은 추운 날씨에도 잘 견딜 수 있게 수리돼 있었다. 문제는 창문이었다. 창틀은 나무였고 유리창도 한겹이었다. 이중창을 달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개니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현대식 창호가 나온 건 알고 있었다. 30년 전 이곳에 처음 이사올 때도 이미 플라스틱으로 된 창문들이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옛날식 창문으로 바꿨다. 그때부터 집에 찬바람이 들어왔겠지만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니 좋다. 두꺼운 창문 안에서 살면 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개니의 말에 난방 전문가라는 로버트 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주로 실내에서 지내니 공기가 잘 통하는 게 낫다.” 하긴 바람이 술술 새는 창이 달린 추운 욕실에서 덜덜 떨며 면도를 하면 정신이 번쩍 들긴 할 것 같다.

영국인들, 바람 새는 홑겹 나무창 고집

이런 식의 창문이 난방 효율을 떨어트리는 주범 중 하나다. 개니가 사는 집의 내리닫이 창은 크고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한겹이고 나무로 만든 창틀이다. 이 창은 경첩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다. 창문을 열려면 위로 밀어 올려야 한다. 보기엔 예쁘지만 찬공기를 차단하지 못한다. 런던 주택의 절반가량이 내리닫이 창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대다수가 창호를 바꿀 생각이 없다.

왜 그럴까? 현재의 에너지 가격과 창호 교체 비용을 감안하면 6년이 지나야 손익분기점에 다다른다. 게다가 영국 남부의 많은 주택은 여전히 현대식 창문을 다는 게 금지돼 있다. 역사적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런던 동쪽에 사는 창호업자 제리 블레어는 “그렇지만 맨체스터는 완전히 다르다. 그곳 건물들은 역사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플라스틱 창호를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그가 가진 제품 중에는 겉으론 옛날식 한겹 내리닫이 창과 똑같아 보이지만 단열은 뛰어난 이중창 구조의 창호가 있다.

영국인들은 얇은 창이 난방 비용을 더 들게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래서 망가진 나무 창틀에 난 구멍을 휴지로 막기만 할 뿐 창을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영국 의회 건물과 버킹엄궁을 비롯해 정부의 모든 건물도 여전히 나무 창호를 사용한다. 단열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이는 영국인에게 나쁜 본보기만 될 뿐이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웨스트민스터 건물 전체에 바람이 술술 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지금까지 시행한 환경 교육 프로그램은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새로 보일러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3천유로(약 435만원)다. 새 보일러를 설치하면 해마다 몇백유로의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보일러를 교체해도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보일러 내부에 들어가는 물이다. 런던상수도공사는 수도 고정요금제를 폐지하려 한다. 대신 각 가정에 계량기를 달고 쓴 만큼 돈을 내게 할 방침이다. 영국 언론들은 이를 두고 조만간 영국인이 지금보다 더 추위에 떨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학교에 가서 씻으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 Die Zeit 2013년 49호 Fürs Heizen zu arm 번역 이상익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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