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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보티카’ 당신은 준비됐나요?
도약기 맞은 한국의 로봇산업
[45호] 2014년 01월 01일 (수) 조일준 economyinsight@hani.co.kr
   
 

로봇은 더 이상 어린이의 장난감이나 호기심 어린 실험 대상이 아니다. 산업 현장 에서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거나 전쟁 또는 재난 현장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 지는 오래됐다. 사람 곁에서 집안일과 사무 및 행사를 돕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로 봇 기술의 발전 속도는 예상을 앞지른다. ‘여보, 아버님 댁에 로봇 한대 놓아드려 야겠어요’라는 광고 카피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_편집자

국내 로봇시장 매년 37%씩 성장… 산업용 로봇에서 전문 서비스용 로봇으로 확산 추세

오늘날 로봇은 3D 업종의 노동 대체 수단에서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돕고 사람과 공존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개인 시중부터 의료·구조·학습·경비·엔터테인먼트까지 로봇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정부가 ‘성장동력 지능형 로봇사업단’을 출범시키는 2014년 새해를 맞아 국내 로봇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본다.


조일준 부편집장

2025년 어느 날. 강빛나씨는 한껏 기지개를 켜며 상쾌한 아침을 맞는다. 가사도우미 로봇이 아직 젖먹이인 둘째아이의 기저귀 교체와 우유 먹이기를 밤새 도맡아준 덕분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식탁엔 갓 구워낸 빵과 모닝 커피가 따뜻한 김을 피워올린다. 남편 노보택씨는 비서 로봇이 영상 홀로그램과 음성으로 제공하는 하루 일정과 간추린 뉴스, 날씨 정보를 확인하고 옷까지 고른 뒤 출근길에 나선다.

스마트카에 올라타 “회사”라고 말하자 차는 자동주행을 시작한다. 조금 뒤 자동차는 “전방에 교통사고가 났다”며 우회로를 선택한다. 사고 현장에선 인명구조 로봇들이 바삐 움직인다. 회사에 도착하자 감독 로봇이 공장 라인의 현황과 생산 계획을 브리핑한다. 집에 있던 아내는 무선 인터넷으로 내려받은 학습 콘텐츠를 첫째아이의 교육용 로봇에 입력한 뒤, 의료 로봇을 이용해 가정 주치의에게 원격 진료를 받는다. 그동안 가사도우미 로봇은 설거지와 청소를 한다.

미래의 가상 시나리오다. 그러나 로봇 기술의 발전 속도로만 보면 뜬구름 잡는 공상이기보다 몇십년 안에 실현 가능한 쪽에 더 가깝다. 오늘날 로봇은 단순노동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첨단 정보기술(IT)과 자동제어공학의 발달에 힘입어, 외부 환경을 인식하고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며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지능형 로봇’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로봇 연구자들은 인간과 감성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로봇의 개발까지 꿈꾼다. 세계 3~4위권의 기술과 시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국내 로봇산업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12년 10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로봇 미래전략 2013~2022’라는 중·장기 로드맵을 내놓았다. 모든 산업·기술에서 로봇이 보편화하고 ‘1인 1로봇’과 ‘팍스 로보티카’(Pax Robotica)가 현실화하는 ‘로봇 빅뱅’이 임박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여러 산업 분야의 첨단 기술이 로봇으로 수렴되고, 로봇 기술의 발전이 다시 다른 산업 분야로 퍼져가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정부는 새해 ‘성장동력 지능형 로봇사업단’을 출범시킨다.

   
▲ 로봇제조업체 로보티즈의 ‘똘망’(영문명 Thor·왼쪽)과 카이스트(KAIST)의 ‘DRC휴보’. 두 로봇은 2013년 7월 재난구조용 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미국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1차 예선을 나란히 통과했다. KAIST 제공

세계 3~4위권의 국내 로봇시장

흔히 ‘로봇’ 하면 사람의 형상을 본뜬 로봇 ‘휴머노이드’를 떠올린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에게 로봇은 <우주소년 아톰>, <로보트 태권V>, <스타워즈>의 R2와 C3PO 등 어릴 적 영화 캐릭터들로 다가왔다. 그러나 로봇의 실제 의미나 쓰임새는 생각보다 훨씬 폭넓다. 생김새가 꼭 사람을 닮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로봇을 ‘2개 이상의 축을 갖고 주어진 환경에서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장치’라고 정의한다. 로봇의 축은 인체의 관절에 해당한다. 축이 많을수록 자유도가 높아 동작이 자연스럽고 정교하다. 로봇업계에선 최소 6축 로봇은 돼야 사람 손의 움직임에 가까울 만큼 유연하고 정밀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2013년 12월4일 저녁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는 로봇산업 종사자, 학계, 김재홍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비롯한 정부 로봇정책 담당자 등 우리나라 로봇인 35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8회 대한민국 로봇 대상 시상식 및 로봇인의 밤’ 행사였다. 이날 시상식에선 미취학 어린이 교육용 로봇 ‘누리아띠’를 개발한 SK텔레콤이 기업 부문 대통령상을 받았다. 또 안내·홍보용 로봇인 ‘아로’를 개발한 (주)이디의 박용후 대표가 산업포장을 받았다.

누리아띠는 농구공 크기의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의 교육용 로봇이다. 흰색의 둥근 얼굴 겸 몸뚱이에 ‘뽀로로’처럼 공군 모자를 썼다. 한 손에는 각종 센서가 내장된 마술봉을 들었다. ‘누리아띠 앱’을 내려받은 스마트폰을 머리 위에 얹어 블루투스(기기 간 무선통신) 기능으로 로봇을 작동시킨다. 그러나 흔히 기대하는 로봇에 견줘 동작이 단순하고 완구와의 경계가 모호한 점도 있다. SK텔레콤 스마트 앱세서리팀의 한정희 매니저는 “4~7살 미취학 어린이용이다보니, 첨단 로봇공학 기술보다 이동통신 기술을 응용한 콘텐츠 활용과 교감 표현 기능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누리아띠의 스마트폰 앱에서 영어놀이 콘텐츠를 선택하자 “리스닝 교재를 펼쳐줘”라고 한 뒤 “내가 말하는 단어를 찾아서, 마술봉으로 찍어줘, 렛츠 고!”라고 말한다. “Milk(우유)!”라는 음성에 마술봉으로 교재의 젖소 그림을 터치하자 “굿 잡(잘했어요)!”이라며 몸을 흔든다. 틀리면 “트라이 어게인(다시 해봐)!”이라고 한다. 정답과 오답의 판단은 앱이 연결된 컴퓨터 서버가 하며, 스마트폰 단말기는 시연자와 서버를 중계한다.

(주)이디의 ‘아로’는 키 170cm로 사람 크기와 비슷한 지능형 로봇이다. 행사장, 영화관, 쇼핑시설, 병원, 관공서 등에서 안내·홍보 로봇으로 활약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이지만 이동은 바퀴로 한다. 아로는 내장된 센서가 주변 공간의 좌표 마크와 교신해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며,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목적지를 찾아 이동하거나 고객을 안내한다. 장애물을 만나면 잠시 멈추거나 돌아간다. 어깨, 팔꿈치, 손목 부분에 모두 5개의 모터와 축을 달아 자연스러운 팔 움직임을 구현한다.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툭툭 치면 내장 센서가 이를 칭찬 또는 장난걸기로 인식해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충전량이 낮아지면 스스로 알아서 충전 장소를 찾아가 충전기 아웃렛과 몸체의 충전단자를 접속하는 기능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휴머노이드는 대단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일본 혼다가 개발한 ‘아시모’(Asimo)는 걷고 뛸 수 있을 뿐 아니라 관객에게 손을 흔들고 춤을 추기도 한다. 심지어 한발을 들고 서서 앞으로 뛰며 나아가거나 옆으로 깡충깡충 뛰기도 한다. 손가락 5개 모두가 사람과 똑같은 관절 구조를 갖고 있어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두손으로 보온병을 열어 커피를 컵에 따르고 쟁반을 나르기도 한다.

   
▲ 2013년 10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3 로보월드’에서 시연 중인 의료용 로봇. 한겨레 정용일

사람 동작 거의 따라잡은 휴머노이드

프랑스 알데바란로보틱스(Aldebaran Robotics)의 휴머노이드 ‘나오’(NAO)도 아시모 못지않다. 걷고 뛰는 것은 물론이고 쪼그리고 앉거나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기도 한다.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웃는 등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동작을 따라한다. 넘어지면 알아서 다시 일어난다. 국내에서는 2004년 카이스트(KAIST)가 개발한 ‘휴보’(HUBO)가 아시모에 맞먹는 기능을 갖고 있다. 손과 발이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뒤로 걸어가기도 한다. 몸을 약간 비틀어 바닥에 놓인 공을 줍는 것도 가능하다. 손가락의 움직임도 아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업체들이 개발한 휴머노이드는 어떤 수준일까? 2013년 10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3 로보월드’는 우리나라 로봇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보여주는 행사였다. 개막식에서 눈길을 끈 행사 중 하나는 재난구조용 전문서비스 로봇 ‘똘망’(영문명 토르(Thor))의 시연이었다. 중견 로봇제조 업체 ‘로보티즈’가 내놓은 키 150cm의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똘망은 4~5m가량 두 발로 걸어가 2개의 계단을 오른 뒤 가스가 새는 파이프관 밸브를 잠그는 동작을 보여줬다. 하지만 똘망이 앞으로 재난 구조 역할을 하려면 많은 기능이 개선돼야 한다. 예를 들어 똘망은 계단을 오를 수는 있지만 내려오지는 못한다.

똘망은 앞서 7월 미국 국방성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관하는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전세계 200여개 경쟁팀을 제치고 1차 예선을 통과한 7개 팀 중 한 팀인 ‘토르팀’의 로봇이다. 똘망은 2014년 여러 차례의 심사를 거쳐 12월 최종 결선에 진출할 자격을 따내야 한다. 장애물을 넘고, 사다리를 오르고, 좁은 구멍을 통과하는 등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재난 현장에서의 임무 수행을 가정한 고난도 과제를 수행하는 시합이다.

로봇산업은 크게 네 분야로 나뉜다. 산업용 로봇, 개인 서비스용 로봇, 전문 서비스용 로봇, 로봇 부품 및 부분품이다. 산업용 로봇은 공장에서 부품 운반과 조립, 기계 가공, 입·출하, 검사·측정, 프레스, 용접, 도장 등의 일을 수행한다. 산업용 로봇과 대별되는 게 “인간을 위해 유용한 임무를 수행하는” 서비스용 로봇이다. 전문 서비스용 로봇은 위험한 임무, 의료·보건, 인명 구조, 국방 등 특정한 전문 분야의 일을 한다. 개인 서비스용 로봇은 가사, 학습, 오락, 경비 등 사람의 일상생활과 관련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도 이에 맞춰 다양한 로봇산업 육성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10년간 3500억원을 투입하는 ‘로봇 미래전략’은 2022년 국내 로봇시장이 25조원 규모로 10년 새 10배 이상 급성장할 거란 예측에 따른 것이다. 극한 재난 대응 로봇, 로봇 헬스타운, 인간협업형 로봇 공장, 인간친화형 가사지원 로봇 등 ‘4대 로봇 챌린지 프로젝트’가 그 핵심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우리나라 로봇산업이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와 정책 지원으로 성장하다보니 정부 의존도가 너무 커진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 전략산업이라지만 로봇업계의 자생력을 더 키워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우리나라 로봇산업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르다. 국제로봇공학연맹(IFR)의 최신 통계를 보면, 세계 로봇시장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사이에 연평균 13% 성장했다. 2012년 말 현재 세계시장 규모는 133억달러(약 14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제조용 로봇이 약 87억달러로 전체의 3분의 2, 서비스용 로봇이 46억달러로 3분의 1을 차지한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로봇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36.5%씩 고공행진을 했다. 2003년 1679억원 수준이던 국내 로봇시장 규모는 불과 10년 만인 2013년 14배에 가까운 2조3천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 2013년 12월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대한민국 로봇 대상’ 시상식에서 로봇들이 아이돌 그룹의 공연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특히 개인 서비스용 로봇의 생산이 최근 3년 새 연평균 70%나 급증하면서 전체 로봇산업의 성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국내 개인 서비스용 로봇은 로봇청소기와 에듀테인먼트(교육+오락) 로봇이 대부분이다. 정부의 ‘로봇 미래전략 2013~2022’에 따르면, 유럽은 의료·재활 로봇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2014년부터 ‘호라이즌(Horizon) 2020’이라는 이름의 ‘로봇 동반자(RoboCom)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한다. 일본도 세계 1위의 산업용 로봇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실버·의료 부문 서비스용 로봇의 국제 표준 및 인증 선점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견주면 국내 서비스용 로봇은 초기 단계다. 기술이 실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장도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미국·일본·독일과 함께 선도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IFR의 최신 통계를 보면, 2012년 말 현재 우리나라는 피고용자 1만명당 산업용 로봇 대수를 뜻하는 ‘로봇 밀도’가 396대로 단연 세계 1위다. 일본이 332대, 독일 273대, 스웨덴 164대로 뒤를 이었다. 조사 대상 45개국의 평균은 58대였다. 2013년 세계에서 판매된 산업용 로봇 16만2천대 중 70%가 한국·일본·중국·미국·독일 등 5대 로봇 수요 국가에 팔렸다.

현대중공업은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국내 1위(시장점유율 60%), 세계 4위 업체다. 1984년 자동차 조립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연간 4천대 생산 능력의 대형 로봇공장을 세웠다. 현재 20여종의 자동차 조립 로봇과 10여종의 액정표시장치(LCD) 운반 로봇을 생산해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다.

로봇이 사람의 생활을 바꾸는 걸 실감케 하는 것은 산업용 로봇보다 서비스용 로봇이다. 2012년 세계 서비스용 로봇의 매출은 약 46억4500만달러다. 2007년 매출이 22억3200만달러인 것에 견줘 불과 5년 새 2배 이상 시장이 커졌다. 로봇산업과 다른 산업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쪽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로봇산업의 전체 매출에서 개인 서비스용 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5.9%에서 2012년 14%로 커지고 있다.

   
▲ 슬로바키아에 있는 기아자동차 공장 조립라인에서 현대중공업이 개발한 산업용 로봇들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4위의 산업용 로봇 제조 기업이다. 현대중공업 제공

산업용 로봇에서 서비스용 로봇으로

전문 서비스용 로봇은 임무 특성상 형태와 기능이 천차만별이다. 반면 개별 모델의 수요는 그리 크지 않다. 주문에 맞춰 최적화할 수 있지만 한 종류를 양산하기는 어렵다. 반면 개인 서비스용 로봇은 소품종 대량생산과 표준화가 상대적으로 더 쉽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는 “전문 서비스용 로봇은 사람과의 상호작용보다 특정 임무를 위한 기계적 성능이 더 중요하며, 해당 과제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는 오퍼레이터가 로봇을 통제한다. 반면 개인 서비스용 로봇은 사람과 소통하고 스스로 알아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시장창출형 로봇보급사업’을 들여다보면 서비스 로봇의 방향을 어림잡을 수 있다. 새해 상반기까지 지속되는 2013년 선정사업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로봇 제품들의 상용화 가능성과 개선점을 점검하는 ‘테스트베드’ 프로그램이다. 교육부·환경부·방위사업청 등 정부 부처 주도형 12개 사업에 136억원, 민간의 아이디어 발굴형 4개 사업에 34억원의 국비가 지원되고 있다.

정부 주도형 사업에는 로봇을 활용한 학교 수업, 상수도관 진단 및 누수 탐사, 무인 소방, 의료재활 보조, 공군용 조류 퇴치, 해수욕장 수상 구조, 군용 감시·정찰 초견 로봇 등이 포함됐다. 또 아이디어 발굴형 사업에는 승마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레저 문화, 대형 구조물 도장 처리, 케이팝(K-Pop·한국 대중음악) 콘텐츠와 연계한 공연 로봇 등이 눈에 띈다.

몇가지만 살펴보자. 보건복지부와 국립재활원은 2012년 보행재활로봇을 시작으로 식사보조로봇, 전동이동로봇, 상지재활로봇 등 모두 4종의 재활로봇 8대를 전국 5개 병원에서 시범운용하고 있다. 보행재활로봇은 다리에 입는 로봇, 트레드밀(넓은 벨트를 이용한 제자리걷기·달리기 장치), 체중 지지부로 이뤄졌으며 가상현실 영상을 이용해 재활 동기와 흥미를 북돋는다. 환자가 마치 갑옷처럼 다리 부분에 로봇보행기를 착용하면 로봇 다리가 앞뒤로 움직이며 걷기 훈련을 시켜준다. 재활 파트너는 눈앞 모니터에 보이는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 모니터에는 푸른 초원이나 집 앞 거리 등 실제 생활 환경을 표현한 가상공간이 나타난다. 환자는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를 조종해 가상공간에서 산책하고 위험 요인을 피하며 걷기 연습을 즐긴다.

물 새는 상수도관 보수도 로봇으로

식사보조로봇은 탁자 위에 설치돼 뇌질환이나 척수 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돼 양팔을 쓸 수 없는 환자에게 상 위에 놓인 음식을 먹여주는 로봇이다. 전동이동로봇은 거동이 불편한 증증장애 환자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사람에게 업히듯 의지해 화장실 등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장비다. 또 상지재활로봇은 팔 기능이 마비된 환자의 운동 능력과 의지를 측정하고 게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재활을 돕는다.

한국환경공단이 시범운용 중인 상수도관 로봇은 화상진단로봇, 상수도관 매핑 및 누수 탐사 시스템 로봇, 세척·갱생 로봇 등 모두 5종류다. 화상진단로봇은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장착하고 4개의 바퀴로 움직인다. 무선 원격조종으로 지름 15~50cm의 수도관 안에 들어가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내부 결함과 노후 정도를 정밀 진단한다. 미세한 누수는 지상의 차량과 케이블로 연결된 ‘장거리 이송형 진단 시스템’ 장비를 투입해 파악한다. 음향 인식 센서가 물이 샐 때 나오는 고유한 음파를 탐지해 송신하면 지상에서 모니터로 정확한 누수 지점을 알 수 있다.

그다음엔 원격조종 견인기에 부착된 세척·갱생 장비가 상수관 내부에 들어가 고압 살수로 오염 부위를 씻고 폴리우레아 수지를 쏴서 누수 부위를 막는다. 환경공단 상수정책지원팀의 김동찬 과장은 “누수 진단 장비를 케이블로 연결하는 것은 장비가 상수관 내부에서 무선으로 움직이면 지상과 무선통신이 끊기는데다 물의 흐름과 수압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앞으로 강력한 추력과 방향 선회 기능을 갖춘 무선조종 로봇을 개발해 실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인 산업용 로봇업체인 현대중공업도 2010년부터 전문 서비스용 로봇 분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2012년에는 국내 최초로 5축 다관절 형태의 인공관절 수술용 의료 로봇을 독자 개발해 미국의 유명 수술 로봇 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로봇개발 부문의 정성현 상무는 “30년 동안 축적한 산업용 로봇 기술을 사람의 몸을 다루는 수술용 로봇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임상 검증으로 확인했다”며 “세계 최초로 6축 다관절 형태의 정형외과 수술로봇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로봇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인 정 상무는 “현재 골절 복구 및 인대 재건 수술 로봇과 영상 기반 생체조직 검사용 중재 시술 로봇 등 다른 의료 분야 로봇의 연구·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수술용 로봇은 정교함과 정확성이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는 추세다.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는 시대

의료 로봇은 사람의 몸을 다루는 만큼 민감한데다 시장성이 커서 경쟁이 치열하다.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은 필수다. 박일형 경북대 의대 교수는 “의료 로봇은 ‘퍼스트 무브’(First-move·기술과 시장 선점)가 특히 중요하다. 바쁘고 보수적인 의사가 로봇 조작법을 겨우 익혔는데 조금 개선된 장비가 나왔다고 다시 배워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료 로봇은 개발 중에도 대폭 수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은데 아직까지는 의료진이 로봇 연구·개발 과정에 참여하기 힘들어 엔지니어의 시각에서만 접근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중공업이 서울아산병원과 손잡고 의료 로봇 공동연구실을 운용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로봇산업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대다수 로봇업체들이 아직까지 소규모 벤처기업이거나 영세기업 수준이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2013년 10월 내놓은 ‘2012 로봇산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국내 로봇기업 수는 368개사다. 이 중 연매출 100억원이 넘는 중견기업은 42곳(11.4%)뿐이다. 매출 50억원 이하의 소기업이 305곳으로 전체의 83%를 차지한다.

반면 2012년 로봇산업 전체 매출 2조2710억원의 약 82%가 100억원 이상 대기업에서 나왔다. 또 전체 매출의 4분의 3이 산업용 로봇업체의 몫이었다. 개인 서비스용 로봇(12%)과 로봇 부품 및 부분품(9.6%)이 뒤를 이었고, 전문 서비스용 로봇은 2.3%에 머물렀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는 “현재 로봇산업의 흐름은 전통적인 산업용 로봇에서 서비스업용 로봇으로 이행하는 단계”라며 “앞으로 로봇이 공장 바깥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 안에서는 주변 환경이 기본적으로 로봇에 맞춰지게 된다. 그러나 공장 바깥에선 모든 게 사람 중심이고 로봇도 그런 환경에 맞춰야 한다. 결국 로봇이 사람에게 더 가까이 오게 되는 것이다.”

로봇업계는 로봇의 일상화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본다. 문제는 ‘어떻게’다. 김종형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지금은 변화의 시대고 갈수록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며 “로봇의 변신은 무죄”라고 선언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변화는 없으며, 변화를 따라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있을 뿐이다.” 지은숙 카이스트 교수는 “로봇산업은 먼저 사회 이슈를 반영하는 트렌드를 연구하고 인간의 ‘니즈’(Needs·실생활의 필요)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변화 속에 들어가면 변화를 뒤좇는 관찰자가 아니라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인간이 ‘로봇’이라는 개념을 상상한 것은 수천년 전부터다. 그러나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건 100년이 채 안 된다. 영어 단어 ‘Robot’의 어원은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단어 ‘robota’에서 나왔다.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작 에 영문으로 ‘Rossum’s Universal Robots’(로섬의 만능 인조인간들)이라는 부제를 달면서부터다. 신조어 ‘로봇’은 순식간에 세계 공통어로 자리잡았다. 그로부터 100년, 로봇은 이제 공상과학 영역에서 걸어나와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며 인간과의 공존을 기다리고 있다.

iljun@hani.co.kr


국내 첫 인간형 로봇은 KIST의 ‘센토’

우리나라의 로봇산업은 1978년 현대자동차가 울산공장에 일본 도요타의 용접로봇을 도입한 것이 시초다. 1981년에는 대우중공업이 고유 모델 1호기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1988년에는 LG산전이 4축 산업용 로봇을 자체 개발해 상용화했다. 1999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국내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센토’를 선보였다. 국내에서 로봇 연구·개발이 본격화한 시점은 2003년 정부가 지능형 로봇을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의 하나로 선정하면서부터다. 이후 2008년 ‘지능형 로봇 개발과 보급을 위한 촉진법’을 제정하고 지원을 확대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2010년 정부 산하에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설립했고, 2011년부터 대규모 로봇시범보급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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