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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회장 ‘쉰들러 리스크’ 넘을까?
위기의 현대그룹
[45호] 2014년 01월 01일 (수) 이춘재 economyinsight@hani.co.kr
   
▲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10주기인 2013년 8월2일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추모식을 마친 뒤 묘역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해운업계 경영난, 경영권 노리는 2대주주 쉰들러의 공세, 검찰의 비리 수사로 사면초가

전세계적인 해운업계의 경영난으로 고전하는 현대그룹이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을 노리는 2대주주 ‘쉰들러’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를 놓고 대립 중이다. 범현대가에 속하는 KCC와의 경영권 싸움 과정에서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인 쉰들러가 이젠 늑대로 변해 주인을 노리는 형국이다.


이춘재 <한겨레> 경제부 기자

현대엘리베이터는 2013년 12월2일 난데없는 보도자료를 냈다. 2대주주인 스위스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를 비난한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쉰들러는 2013년 11월27일 현대엘리베이터가 217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발표한 직후 성명을 내어, “유상증자는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무리한 파생상품 계약으로 인해 이미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의 주장에 대해 “회사를 인수하려는 목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과 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라며 “쉰들러가 왜곡된 시선과 흠집내기를 통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선량한 주주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현대 쪽은 “2013년 가을 동양그룹 사태 이후 기업어음은 물론 회사채 발행도 어려워졌기 때문에 유상증자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을 잘 알면서도 쉰들러가 괜한 시비를 걸고 있다”고 비난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한때 ‘우군’이었고 단일 지분(30.9%)으로 최대주주이기도 한 쉰들러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을 두고 재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쪽에선 현대엘리베이터가 쏠쏠하게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부실 계열사인 현대상선 등을 지원하느라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쉰들러의 행동은 주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른 한편에선 현대그룹이 금강산 관광 재개 무산과 해운업 불황을 맞아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쉰들러가 사사건건 고춧가루를 뿌리며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쉰들러그룹은 창업주 로버트 쉰들러가 1874년 스위스에 설립한 쉰들러엘리베이터를 모태로 시작한 다국적기업이다. 1900년대 후반부터 독일 등 유럽으로 진출했고 지금은 엘리베이터 시장 세계 2위, 에스컬레이터 시장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3년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해 ‘쉰들러엘리베이터’라는 법인을 세워 국내에 진출했지만 그동안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국내 승강기 시장 점유율은 현대엘리베이터 45%, 오티스엘리베이터 15%,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16% 등이다.

우호세력에서 적으로 돌변한 쉰들러

쉰들러는 10년 전만 해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2003년 현대그룹은 범현대가인 KCC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놓고 지분 싸움을 벌였다. 당시 KCC가 20% 이상 지분을 매입하며 경영권을 위협하자 현정은 회장은 알프레드 쉰들러 회장을 직접 만나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0%를 사들이는 데 합의했다. 쉰들러가 현 회장의 ‘우호지분’ 구실을 하는 대신 현대로부터 엘리베이터 부문을 인수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의향서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상 쉰들러의 지분 매입이 불가능해지는 바람에 파기됐다.

현대와 쉰들러의 앙숙 관계는 2006년 쉰들러가 KCC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5%를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쉰들러는 현 회장 쪽에 지분 매입 사실을 알리며 우호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고, 현 회장은 2007년 쉰들러 회장을 금강산으로 초청하는 방식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현 회장은 이때부터 쉰들러의 속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KCC처럼 언젠가는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10년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참여는 양쪽이 확실하게 갈라서는 계기가 됐다. 쉰들러가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현대건설 인수에 반대하자 현 회장의 분노가 폭발했다. 쉰들러는 현대건설 우선협상 대상자로 현대차그룹이 선정된 직후 지분을 더 사들여 지분율을 35%까지 끌어올렸다. 이로 인해 현대 쪽은 쉰들러가 적대적 인수·합병(M&A) 의사를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쉰들러는 2004년부터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그룹에 대규모 자금 수요가 있을 때마다 자금 지원을 빌미로 승강기 사업부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2012년부터 회계장부 열람 신청 등 각종 소송을 냈으나 줄줄이 패소하자 여론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쉰들러가 ‘선량한 주주’가 아니라, 전형적인 *‘그린메일러’(Green Mailer)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쪽이 제시하는 사례는 많다. 쉰들러가 2013년 한 해 동안 8차례나 회사 경영진에 서신을 보내 주요 경영 현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며 그 배경은 무엇인지 등 ‘미공개 정보’를 제공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 2013년 3월 정기주총 때 회사 쪽이 사업 확장을 위해 포장공사업을 정관에 추가하려고 했는데, 쉰들러가 뚜렷한 이유 없이 반대하는 바람에 막대한 차질을 빚었다고 주장했다. 현대 관계자는 “쉰들러가 지난 6월 유상증자를 반대한 것도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상증자를 통해 쉰들러의 브라질 및 중국 자회사와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걸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쉰들러는 단순 투자자가 아니라 신흥시장을 두고 현대엘리베이터와 경쟁하는 ‘경쟁자’라는 설명이다.

   
▲ 2013년 6월 미국 터코마의 전용 터미널 WUT에 정박해 있는 현대상선 화물선. 현대상선은 전세계적인 해운 경기의 불황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쉰들러를 비판하는 현대그룹 자체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1월20일 “현 회장이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를 동원해 현대상선을 부당 지원하고 있다”며 현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현 회장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파생상품 계약을 남발하는 바람에 현대엘리베이터에 막대한 손실을 끼침으로써 이사로서의 임무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산별연맹 중 하나인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정보경제연맹)도 현 회장을 같은 혐의로 고발했다.

실제로 현대엘리베이터는 파생상품 계약으로 매년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2009년 이후 현재까지 총거래손실은 710억원으로 추정되고, 총평가손실은 4291억원에 달한다. 최근 나이스(NICE)신용평가정보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내리면서 “파생계약 관련 손실에 따른 자금 부담 증가”를 주요 근거로 들었다. 2013년 3분기까지 파생상품 관련 손실 등으로 168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부채비율도 2011년 말 150.9%에서 2013년 9월 말 287.1%로 악화됐다고 나이스는 밝혔다.

취약한 경영권이 근본 원인

설상가상으로 현대상선이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던 영구채 발행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상선 채권단은 최근 산업은행이 한진해운에 대한 자금 지원을 영구채가 아닌 신디케이트론으로 결정한 뒤 현대상선의 영구채 발행도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자금 사정이 더 좋지 않은 한진해운의 영구채 발행을 안 해주면서 현대상선의 영구채 발행을 지원하는 것이 특혜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구채를 발행하면 회계상 자본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부채비율이 늘지 않아 그만큼 부채 부담이 줄게 된다.

영구채 발행이 무산되면 900%에 육박하는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더욱 악화된다. 업계 관계자는 “최고경영자(CEO)는 경영 성과로 말해야 하는데, 현 회장의 성적표가 워낙 나쁘기 때문에 쉰들러의 공격이 상대적으로 잘 먹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 관련 소송을 비롯해 다른 공격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사안은 또 있다. 한때 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황두연 ISMG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다. 황 대표는 미국의 물류 담당 용역업체를 통해 현대그룹 계열사에 실제 단가보다 부풀린 가격으로 부품을 납품한 뒤 차익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340만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황 대표는 현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현대그룹의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또한 현대상선, 현대로지스틱스 등 5개 현대 계열사로부터 컨설팅 자문료 명목으로 부당이득을 챙긴 의혹도 받고 있다. 황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현재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현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1%대에 불과하다. 대신 특수관계인,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등 우호지분 40%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의 ‘자금줄’ 구실을 하고 있다. 현대그룹 노조 쪽은 “지난해부터 황두연씨의 불법 비자금 형성과 부당 경영 개입을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노력은커녕 주요 노조 간부들을 부당하게 징계·해고했다”며 수사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cjlee@hani.co.kr

*그린메일러: 경영권을 위협할 만큼 주식을 사들여 경영자를 위협한 뒤 자신이 매입한 주식을 비싸게 되팔거나 경영권을 빼앗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주주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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