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사업 도외시한 전문경영인의 무리한 사업다각화가 원인… 오너 3세는 속수무책

1960년대 재계 서열 5위권이던 53년 흑자기업 대한전선이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오너인 설윤석 사장은 급기야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다.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 뒤 23살에 회사를 물려받은 설 사장은 손쓸 틈도 없이 금융위기와 경영난의 파고 속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최고경영자(CEO)를 잘못 세웠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이던 임종욱 전 사장은 불과 5년 만에 회사를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이형섭 <한겨레> 경제부 기자

대한전선은 이름 그대로 대한민국 전선의 역사 자체였다. 1955년 국내 최초의 전선회사로 설립됐고 그 뒤 실적 면에서도 국내 전선업계를 대표해왔다. 2000년대 후반까지 LS전선과 함께 국내 전선업계를 양분해왔고 설립 뒤 53년간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초우량’ 회사였다. 그러던 회사가 10년도 안 돼 그룹 해체 위기까지 몰렸다. 창업 3세인 설윤석(32) 사장은 10월 초 아예 경영권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과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 설경동 회장이 세운 대한그룹은 1960년대까지 대한산업, 대한방직, 대한전선, 대한제당 등을 거느린 재계 서열 5위의 기업이었다. 설 회장 사후 네 아들이 그룹을 나눠가졌다. 그 가운데서도 3남인 설원량 회장이 물려받은 대한전선은 그야말로 알짜였다. 대한전선은 내부 심선이 종이로 절연된 전선인 지절연 통신케이블을 국내 최초로 만든 것부터 시작해 광대역 전송용 동축케이블, 가공송전선, 원자력케이블 등 ‘국내 최초’의 역사를 내리 써온 기술력 있는 기업이었다. 회사는 순조롭고 탄탄하게 성장했고, 오일쇼크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도 흑자 기록을 이어가 재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재계 순위도 꾸준히 30위권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