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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집착하다 파국 맞은 사위경영
People ● 무너진 동양그룹의 총수 현재현 회장
[43호] 2013년 11월 01일 (금) 김경락 economyinsight@hani.co.kr

말단 검사에서 재벌 사위, 그룹 회장까지… 구조조정 지연으로 그룹 공중분해 자초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인품이 훌륭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다. 우유부단하고 과거에 집착하느라 과감한 결정을 못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실권이 없는 ‘사위 경영’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일까? 현 회장은 그룹 내 자신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다. 하지만 정작 최대주주가 된 뒤 2007년부터는 그룹의 실권을 사실상 부인 이혜경 부회장에게 넘겨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2013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현재현 회장이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김경락 <한겨레> 경제부 기자

“참 어진 분인데….” 5만명에 가까운 개인투자자를 피해자로 돌려세우면서 공공의 적이 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핵심 계열사 5곳을 법정관리 신세로 내몬 그에 대한 동양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한결같은 평가는 의외다. 이들은 현 회장에 대해 ‘품성이 훌륭하다’ ‘예의 바르다’ 등 칭찬 일색이다.

동양그룹의 전직 고위 임원은 “현 회장은 임직원에게도 매번 경어를 사용할 정도로 바른 품성을 갖고 계신 분이다. 사생활 역시 깨끗해 쓸데없는 루머에 한번도 오르내린 적이 없다. 퇴근할 때도 대부분 부인(이혜경 부회장)과 함께하는 등 가족애도 두텁다”고 말했다.

동양그룹이 운영하는 웨스트파인 골프장에서 현 회장을 우연히 만난 한 보험사 고위 임원도 비슷한 경험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이 임원은 “현 회장이 아들(현승담 동양네트웍스 대표)과 골프를 치러 왔는데, 아들이 골프를 배운 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우리 팀에 찾아와 양해를 부탁하기도 했다”며 “그룹의 오너라고 하기에는 참 배려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회장의 경영자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대해선 여러 전·현직 임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양그룹 출신의 한 금융회사 고위 임원은 “가끔 김승연 한화 회장이 부럽다고 느끼기도 했다. 김 회장은 임직원에게 함부로 말하는 듯하지만 오너로서 굵직굵직한 현안에는 속 시원한 결정을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현 회장은 사람이 너무 좋은 게 흠”이라고 덧붙였다.

인품은 훌륭, 경영 능력은 낙제점

현 회장의 이같은 품성은 동양 사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다. 전·현직 임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 회장은 인간적으로는 훌륭한 품성을 갖고 있지만 사업가로서는 우유부단하고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며 주변 이야기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최악의 경영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동양그룹의 한 현직 임원은 “현 회장은 경영자로서 중요한 덕목인 맺고 끊는 능력이 없다. 동양에서 임원이 되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5년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회장의 이같은 품성은 경영 활동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동양그룹의 과다한 부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채 과다 기업이 되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현 회장의 집착에 가까운 무리한 의사결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동양은 1997년 외환위기 때 동양시멘트 지분 49%를 외국계 기업 라파즈한라에 매각하면서도 콜옵션(지분을 되사올 수 있는 권리)을 챙겼다. 동양그룹 전직 임원은 “2000년대 중반께 콜옵션 행사 시한이 만료됐다. 당시엔 자금이 없어 일단 투자자를 끌어들여 만든 사모펀드에 넘겼다가 2011년 동양생명 매각 자금 등으로 시멘트 지분을 되사왔다”고 말했다. 부채 축소를 위해 내다판 동양생명의 매각 대금 일부를 동양시멘트 지분을 되사는 데 사용했다는 의미다.

동양은 동양생명 매각 때도 콜옵션을 붙였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2008년부터 동양에 기업어음 비중을 줄이도록 권고했다. 동양은 동양생명 매각으로 권고를 이행한다고 했지만 돈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이게 동양이 1조원대 기업어음을 3년 넘게 돌리게 된 패착의 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현 회장은 번번이 자산 매각에 미련을 가지며 콜옵션의 유혹에 빠져들었다”고 꼬집었다.

이런 양상은 위기의 막판에 몰린 최근까지도 반복된다. 막판에 무산된 동양매직 매각 과정이 좋은 예다. 동양은 올해 초 동양매직 매각 작업을 시작해 지난 6~7월 교원그룹과의 협상이 마무리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그러나 교원과의 협상 막바지에 사모펀드인 KTB PE 쪽으로 방향을 갑자기 틀었다. KTB PE 쪽은 동양네트웍스가 600억원을 KTB PE 사모펀드에 후순위로 출자하면 1800억원에 사겠다는 제안을 했다. 교원그룹이 제시한 인수 가격은 1600억원 수준이었다.

   
▲ 검찰은 동양그룹의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혐의와 관련해 현재현 회장의 자택을 비롯해 동양그룹 본사와 계열사 여러 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서울 성북동 현재현 회장의 자택. 뉴시스

2000년 최대주주가 된 현재현 회장

당시 협상 과정에 밝은 한 투자금융업계 고위 임원은 “KTB PE에 매각되면 동양에 들어오는 현금은 1200억원(매각가-동양에트웍스의 출자금)으로 교원에 팔 때 확보할 수 있는 현금(1600억원)보다 낮았다. 하지만 KTB PE 쪽이 우선매수권(콜옵션)을 준다는 제안에 동양이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당시 4조원에 이르는 기업어음과 회사채 등 시장성 부채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할 상황에서 더 많은 현금 확보가 아니라 나중에 지분을 되찾을 수 있는 우선매수권을 우선시한 것이다. 한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는 “교원그룹과의 딜(거래)이 깨진 배경을 뒤늦게 알고 황당했다. 위기 상황을 가벼이 봤거나 동양매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현 회장의 우유부단한 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의사결정은 그의 개인적 품성 탓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그가 그룹 내에 처한 독특한 처지에서 그 원인을 찾는 시각이 많다. 이른바 ‘사위 경영’의 한계라는 것이다. 현 회장이 동양에 입성하는 과정과 이후 모습은 동양 사태를 좀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현 회장은 처가가 일궈놓은 그룹에서 회장이 된 인물이다. 재계에는 꽤 많은 사위들이 처가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다. 현 회장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인물이다. 명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사법고시를 통과한다. 군 법무관 생활을 포함해 검사 생활을 5년 정도 한 뒤 1976년 동양그룹 창업주 이양구 회장의 장녀 이혜경씨와 중매로 결혼하면서 인생의 항로가 바뀌게 된다. 1977년 법조계를 떠나 28살에 동양시멘트 이사로 입사했고, 1979년엔 미국 스탠퍼드대학(국제금융 전공)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았다.

반면 이양구 회장과 그의 자녀들은 현 회장과는 사뭇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고 이양구 회장은 북한 출신으로 광복 뒤 행상을 시작으로 그룹을 일궜다. 밑바닥에서 출발해 그룹 회장에 오른 인물인 것이다. 처음부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현 회장과는 가풍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동양 사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여하튼 현 회장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1983년 동양시멘트 사장으로 명실상부한 그룹 후계자가 된다. 일국증권(현 동양증권)을 인수하며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금융업을 추가했고, 1989년 이양구 회장이 별세한 뒤 그룹 회장에 올랐다.

눈여겨볼 점은 현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 머물지 않고 그룹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기 위해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다는 것이다. 1998년 그룹 주력사인 동양시멘트의 지분 8%가량을 확보해 부인 이혜경(10.7%)씨에 이어 단독으로 2대 주주에 오른다. 이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2000년엔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다. 오리온그룹의 분화에 따른 지분 이동과 몇차례의 유상증자를 거치면서 현 회장은 부인 이혜경씨와 장모 이관희 여사가 보유한 처가 쪽 지분 전체를 넘어서는 그룹 지배력을 갖게 된다.

현 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점차 놓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말부터다. 살림만 하던 이혜경 부회장이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서 그룹 전면에 등장하던 시기다. 사위에게 맏겨둔 그룹을 원주인인 딸이 되찾아가는 모양이었다. 이 부회장의 경영 참여 배경에 대해 동양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살림만 하다가 자녀들이 장성하자 전공(미술)을 살리고 싶어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도 들린다. 또 다른 동양그룹 핵심 임원은 “2007년에 이미 회사 상황은 정상이 아니었다. 지켜만 보던 이 부회장이 직접 경영에 참여해 무능한 경영진을 견제하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 2008년 이후 동양그룹을 이끌던 핵심 임원들은 물러나거나 그룹 한직으로 내려간다. 인사권이 현 회장이 아닌 이 부회장에게 있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이 부회장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힘 빠진 사위 경영은 2008년 이후 가속화됐다.

이와 달리 이양구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날 때 과자회사 하나만 물려받아 독립한 둘째딸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과 담철곤 오리온 회장 부부는 27개 계열사를 거느린 우량 그룹을 일궈냈다. 오리온그룹은 지난 6월 기준으로 총자산이 2조6천억원이고 연간 매출액이 2조4천억원에 달한다. 지분은 이 부회장이 14.49%로 가장 많고, 담 회장이 12.9%, 자녀인 경선씨와 서원씨가 각각 0.53%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지분 가치는 식품회사 오너 가운데 가장 많은 1조8천억원에 이른다. 오리온의 사례는 동양이 무너진 것이 반드시 사위 경영의 한계만은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동양그룹이 나락으로 떨어진 직접적 이유는 자산 매각 같은 구조조정에 머뭇거렸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머뭇거림이 나오게 된 과정이다. 그룹 내에서 자산 매각 요구는 2010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문제는 이런 요구를 한 쪽이 이혜경 부회장에게 무능한 임원들로 낙인찍혀 있었다는 것이다. 동양그룹 전략기획본부 출신의 한 임원은 “현 회장과 이 부회장 양쪽을 설득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자산 매각이 시급했지만 이 요구는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동양그룹이 나락으로 떨어진 직접적 이유는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제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가 관여하면서 주요 의사결정이 꼬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오너 리스크인가 사위 경영 한계인가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다. 이혜경 부회장은 무능한 기존 임원진을 대신할 수 있는 인물로 김철 대표를 그룹으로 영입한다. 김 대표는 사실 동양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과거 이력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인물이다. 단지 이혜경 부회장의 신임을 받는 그룹 내 실력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동양 관계자는 “전략기획본부가 밀려난 그 빈자리를 김철 대표 쪽이 채우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사실상 인사권을 가지면서 최근 2~3년간 동양그룹 경영은 김 대표 뜻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김 대표는 이러한 주장을 반박한다. 그룹 경영에 관여할 위치가 아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지만, 여러 정황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미러스·동양네트웍스 등 그룹 일감 몰아주기로 손쉽게 이익을 낼 수 있는 계열사들을 만들거나 경영했다. 이 회사들은 모두 오너 일가가 대주주로 있다. 손쉽게 벌어들인 이익이 오너 일가로 흘러 들어가게 만드는 데 김 대표의 역할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는 또 웨스트파인 골프장과 동양매직 매각 등에 깊이 관여하면서 그룹 구조조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한 예로 동양매직 매각이나 웨스트파인 매각 작업이 김 대표와 가까운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TSI파트너스 이정민 전 대표를 통해 추진됐다. 동양 전략기획본부의 한 핵심 임원은 “중요한 의사결정 때마다 김철 대표 쪽과 충돌이 반복됐다. 하지만 대부분 현 회장 등이 김 대표 쪽 손을 들어주면서 구조조정이 엉키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동양그룹의 사태 추이는 몰락하는 재벌그룹에서 흔히 보이는 ‘총수 리스크’가 잘 드러나고 있다. 총수의 말 한마디가 그룹 운명을 좌우하는 재벌 그룹의 독특한 토대 위에서 총수가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경우 언제든지 그룹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제군주에 가까운 재벌 그룹의 총수 리더십은 때론 그룹을 고속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동양 사태에서 보듯 그룹을 무너뜨리는 핵심 요인이 되기도 한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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