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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오해가 일본 IT 몰락 불렀다
역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42호] 2013년 10월 01일 (화) 임재덕 economyinsight@hani.co.kr
   
▲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 유노가미 다카시 지음 | 임재덕 옮김 | 성안당 펴냄 | 1만3800원

임재덕 번역자·SK하이닉스 경영전략팀

<일본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은 전작 <일본 반도체 패전>의 개정 증보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작이 ‘반도체’란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디램(DRAM)에만 치우친 반면, 신작은 DRAM을 포함한 반도체 전반과 전자산업을 아우르는 ‘대붕괴의 공통적 원인과 교훈’을 깊이 있고 알기 쉽게 쓰고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생존을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고객과 시장을 창출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변화를 감지하고, 나아가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제1장 ‘전자산업 괴멸의 진짜 원인’에서 저자는 당대 최고의 성능을 구현한 게임기인 소니의 PS3가 이노베이션을 일으키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또 일본 DRAM 산업이 한국의 파괴적 이노베이션에 의해 몰락했다고도 평가한다. 두 사건의 공통적 원인은 일본이 이노베이션을 잘못 인식한 데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노베이션을 “(제품 혹은 기술이) 신시장을 창조하여 이것을 폭발적으로 보급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하면 “만든 것을 파는 게 아니라 폭발적으로 팔릴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노베이션이 꼭 고성능·고품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품질은 조금 뒤떨어질 수 있다. 그 대신 ‘작거나, 싸거나, 사용이 편한’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이노베이션의 영향은 실로 엄청나서 세계 산업의 지도를 바꾸는 괴력을 지닌다. 이러한 이노베이션을 일으키려면 전세계의 소비자를 다각도로 연구·분석해 그들이 원할 수밖에 없는 제품과 기술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케팅·상품기획의 본질이며 이노베이션의 시작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제2장 ‘일본 반도체 패전, 재판(再版)’에서는 한때 세계 마켓셰어의 80%를 차지하던 일본 DRAM 업체들의 몰락 과정을 분석했다. 일본 DRAM 업계의 ‘빅 3’가 합쳐진 ‘엘피다 메모리’조차 모회사·은행·정부의 도움을 12년 동안 받으면서 4번이나 패전했다. 저자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경영자와 위기감이 결여된 사원들을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나아가 이를 ‘회사 도산의 전형’이라고 단언한다. 코미디 같은 에피소드도 소개한다. 결과는 준엄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에도 그 여파가 컸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강국에서 시스템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정보도 있다. 장래에 유망한 시스템을 구상하는 마케팅·상품기획 능력을 키워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 더 나아가 플랫폼을 구축하라는 조언이다.

제3장 ‘격변하는 세계의 전자·반도체 산업’에서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성장 규모, 방향성 등에 대한 방대하고도 과감한 예측이 실려 있다. 이 부분은 상당히 대담하고 통찰력 있는 내용이어서 반도체나 전자산업과 관련 없는 사람도 읽어볼 만하다.

제4장 ‘일본의 모노츠쿠리를 재생하는 길’에서는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위해 일본 특유의 조직문화를 깨뜨리고 시장과 기술의 지향점을 재설정하도록 촉구한다. 또한 세계적 관점에서 경영하는 경영자와 세계시장을 읽어내는 마케터의 양성을 재촉한다. 일본이 진짜로 이런 혁신을 실행하면 한국 산업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듯하다.

제5장 ‘자동차 산업에 스며드는 불안’에서는 일본이 전기자동차 시장을 전력으로 공략해 ‘데 팍토 스탠더드’(업계 표준)를 확립해야 하는 당위성을 에베렛트 M. 로저스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의 ‘16% 보급’ 이론을 바탕으로 논한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였던 많은 한국 기업들에 교훈이 될 것이다. 물론 리더는 발을 잘못 디뎌 깊은 구덩이에 빠질 우려도 크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축소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위험을 감수하는 결단도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는 구체적인 자료와 논리를 바탕으로 이노베이션을 기술적 측면으로만 잘못 인식한 일본의 교육·언론·사회를 비판하고, 일본 반도체의 영웅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자를 신랄하게 꾸짖는다. 할 일을 못한 일본 경제부처 공무원에게도 실명을 거론하며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개개인들을 환기시키고, 심지어 은퇴를 권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본의 변화를 촉구한다.

일본을 이긴 한국의 전자·반도체 산업은 잘나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거안사위(居安思危·평안할 때 위험이 닥칠 것을 대비해야 함)의 자세로 올바른 변화의 방향을 잡아내기 위해 큰 틀의 변화를 감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국 전자·반도체 대붕괴의 교훈’ 같은 책이 출판되는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고, 그동안 피와 땀으로 이룩한 자랑스러운 반도체·전자통신·자동차 등 모든 산업을 후손에게 제대로 물려줄 수 있다.

추천사에 나오는 한 구절로 책 소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과거의 경험이나 익숙한 것으로부터만 출발하는 미래 전략은 무의미하다. 뻔한 것은 너무 뻔하고, 낯선 것은 너무 낯설어서 고민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힌트를 담고 있다. 1등으로 도약해야 할 모든 기업들의 미래 설계를 위해 꼭 필요한 책이다.”

jaeduck.l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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