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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스타일, 이젠 즐기며 살자
집중 기획 ● 북핵 위협 이후 ‘평양을 가다’- ① 변화하는 북한
[41호] 2013년 09월 01일 (일) 볼프강 바우어 economyinsight@hani.co.kr
   
 

북한은 전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가운데 하나다. 지난 초여름 독일 시사주간지 <차이트>는 북핵 위기 이후 서방 언론으로는 처음 북한의 입국 허가를 받아 2주간 평양을 둘러봤다. 국내 언론의 북한 방문이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 국외 언론의 현지 르포는 북한 내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다. 평양을 방문한 취재진은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지 1년5개월에 불과하지만 북한 사회가 해빙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스위스에서 유학했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의 개방적 사고가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용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_편집자

김정은 스타일, 이젠 즐기며 살자

평양에 차량 늘고 롤러블레이드·헬스클럽 등장… 사적 경제 통제 완화 등 변화 조짐


2005년 평양을 방문했던 독일 주간지 <차이트> 취재진이 2013년 다시 북한을 찾았다. 이들이 본 평양의 모습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이제는 즐기며 살라고 국훈을 바꾼 것처럼 보였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헬스클럽을 세웠을 뿐 아니라 놀이공원, 아이스링크, 수영장을 건설하고 있다. 주거지역엔 배구 경기장, 인라인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서방에서 들어온 모든 걸 적대시하던 북한에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볼프강 바우어 Wolfgang Bauer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그분에게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당신에게 말을 걸지 않는 이상 그분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김철웅(35)은 말했다. “혹시 우연히 마주칠 경우 그분에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등과 다리가 90도 되도록 고개를 깊이 숙인다. 그분을 ‘각하’라고 부른다. 다시 허리를 펴고 시선을 위로 올리면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햇살 같은 미소를 보게 될 것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그분의 미소는 사람을 위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미소는 북한에 희망과 힘을 주며 북한 주민 수백만명이 이 미소를 위해 장렬히 전사했다고 한다.

“하이네켄 한잔 할래요?” 취재진에게 네덜란드 맥주 하이네켄을 권하는 김철웅은 자신의 말에 스스로 감동했다. 그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동지를 위해 건배했다. 김철웅은 취재진의 공식 안내인 두명 중 한명이다. 취재진은 초여름 날씨의 어느 날 평양에 새로 선보인 유람선 레스토랑 갑판에 앉아 있었다. 이 화려한 유람선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유람선은 그날도 여느 날처럼 텅 비어 있었다. 유람선은 대동강변에 정박해 있었다.

취재진은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이자 ‘장군’, 그리고 ‘새로 빛나는 별’인 김정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은에 대해 알려진 건 이름 석자와 마오쩌둥식 복장, 그리고 핵무기로 미국과 전세계 절반을 전멸시키겠다고 위협한 정도 외엔 거의 없다. 심지어 그의 나이조차 논란이 되고 있다. 김정은의 공식적인 나이는 올해 30살이다.

2400만 인구의 북한을 절대권력으로 통치하면서도 베일에 가려진 김정은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가 가진 비전과 계획은 뭘까? 취재진은 김정은의 자취를 따라가보았다. 그가 방문한 곳을 매일 찾아갔고 행동과 업적을 연구했다. 대동강의 떠다니는 궁전에 앉아 저녁 노을을 바라보던 중 유람선에 불이 들어오더니 평양시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 북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었다. 2년 전 위성사진에 찍힌 북한은 블랙홀이나 마찬가지였다. 취재진이 북한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2005년 평양에 불이 들어오는 가로등은 극소수였다. 평양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도시였다. 그러나 최근 다시 빛이 들어왔다.

   
▲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참석해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각종 놀이공원을 신설하거나 확장하고 있다.REUTERS

변하지 않는 애국주의 광풍

2005년 평양은 조지 오웰의 소설에나 나옴직한 악몽의 도시였다. 개인의 삶은 깡그리 추방당했다. 광장은 오로지 집단만을 위한 장소였다. 김정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평양에 집중적으로 건설한 단조로운 시멘트 건물들은 이제 철거됐다. 대신 통유리 건물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녁이면 평양의 스카이라인은 다채로운 불빛을 띠었다. 이는 대외선전용으로 더할 나위 없는 효과를 발휘한다. 두 안내인은 취재진을 바라보면서 평양의 어둠이 시작되는 순간을 즐겼다. 취재진이 “2005년과 비교하면 평양시가 많이 변했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김철웅은 무뚝뚝하게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현 지도자와 전 지도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지도자는 달라도 일관성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을 방문한 2주 동안 끊임없이 감시당했다. 서양인 외모만으로 충분히 눈에 띌 텐데도 공공장소를 방문할 땐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푸른색 완장을 차야 했다. 취재진은 한순간도 혼자 있지 못했다. 아마 호텔 객실도 도청되고 있었을 것이다. 2005년 방문 때도 취재진은 호텔 안내 데스크 옆에 설치된 카메라에서 도청장치를 목격했다.

안내인은 본인 없이 호텔을 떠나지 말라고 취재진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객실을 비울 때면 트렁크는 여기저기 뒤진 흔적이 있고 사진기자 가방에 부착된 자물쇠는 열려 있었다. 안내인들 중 지니(Jinny)라고 부르던 오진명(43)은 2005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알게 된 사이다. 교수의 아들인 그는 옛 동독에서 공부했고 완벽에 가까운 독일어를 구사했다. 그는 농담도 곧잘 했다. 끽연가인 오진명이 피우는 담배 이름은 ‘고향’이었다. 그는 “인생을 즐길 수 없다면 굳이 오래 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오진명은 “과거 외국인 사절단을 안내하면서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우연히 한번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평양 도심에서 열린 사열식을 관람하던 외국인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해 ‘그분’이 차량에서 내린 순간이었다. 오진명은 “멋진 순간이었다”고 말했지만 취재진이 그의 감동을 이해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진명은 예전과 달리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그의 신념을 전파하는 것을 포기했다.

취재진에게 북한식 인사법을 가르쳐주려 한 두번째 안내인은 이번 방문에서 처음 만났다. 김철웅은 외교관의 아들로 유년기 몇년을 스위스에서 보냈다. 오진명과 달리 김철웅은 취재진을 교화하려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취재진을 대했다. 뼛속까지 애국자인 그에게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는 여전히 동경과 놀라움의 대상이다. 두 사람 모두 인민복을 착용했다. 취재진은 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통역은 물론 접근이 통제된 기관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해줬고 우리를 위해 전화로 싸움까지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진명은 “나는 감시인이 아니다. 단지 도와주고 싶을 뿐이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의도와 다른 내용을 기사에 쓴다면 모욕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평양으로 들어가는 건 올해가 더 이상 서기 2013년이 아님을 의미한다. 장군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예수의 탄생 연도가 아닌 자신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새로운 연호를 북한에 도입했다. 그 연호에 따르면, 올해는 바로 김일성 탄생 102년이다. 김일성은 평양을 자신의 예루살렘으로 만든 것이다. 평양은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에서는 행진곡과 전투·투쟁·순교를 부추기는 노래가 울려퍼졌다. 도시 전체의 레스토랑, 카페 그리고 지하철역 또한 애국주의를 찬미하는 노래 일색이었다.

베일에 싸인 북한 내부에서도 장막에 가려진 한 여성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여성 교통경찰인 리경심(22)이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는 5월 초 리경심 여경에게 북한 최고 명예에 해당하는 ‘공화국 영웅’ 칭호를 하사했다. 국영TV는 진한 남색 유니폼을 입은 리경심이 간부 수천명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메달 받는 장면을 방영했다. “북한에서 리경심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하던 오진명은 그녀가 영웅이 된 뒤 새로 지은 고층빌딩 26층에 살고 있다고 알려줬다. 리경심은 김정은의 아내 다음으로 유명한 여성이다. 그러나 정작 한 여성 교통경찰이 왜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북한 주민 대부분이 알지 못한다.

   
▲ 달라진 평양의 모습은 곳곳에 들어선 위락시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학생들이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팅을 즐기고 있다.REUTERS

헬스클럽 만들고, 수족관 건설하고…

북한 언론은 리경심이 “혁명 수뇌부의 안전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혁명 수뇌부’란 공식적으로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즉 김정은을 가리킨다. 외국인 전문가들은 리경심의 영웅 호칭 수여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리경심이 김정은에 대한 암살 시도를 막았다는 얘기와 리경심이 김정은 장군 일가 선전판의 화재를 막았을 뿐이라는 해석도 그중 하나다. 우리는 리경심을 만나보고 싶다고 오진명에게 말했다. 그러자 오진명은 리경심에게 면담 일정을 물어보겠다면서 “아마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형형색색의 반원형 통유리 건물 앞에 활짝 웃고 있는 젊은 여성이 취재진을 맞이했다. 오진명은 이 여성 역시 장군을 실제로 만났으며 이는 문서로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입구엔 황금색 서체의 붉은 명패가 달려 있다. 명패에는 ‘김정은 장군이 2012년 9월8일 이곳을 방문했다’고 적혀 있었다. 원래 이곳에는 광산기계가 전시될 예정이었지만 김정은이 평양에 헬스클럽이 필요하다고 하자 계획이 뒤바뀌었다. 취재진을 맞이한 젊은 여성은 북한의 유일한 헬스클럽 관장이다. 취재진을 계단 위로 안내하던 관장은 화려한 황금색 진열품에 취재진의 시선이 멈춘 것을 알아챘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도 바로 이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이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헬스클럽 곳곳에 입구와 마찬가지로 붉은 명패가 달려 있었다. 명패에는 어김없이 ‘김정은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쓰여 있었다. 취재진은 명패를 따라가보았다. 최고가의 유럽산 헬스기구에 붙어 있는 운동량 측정 장치 등에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해당 기구를 보았다’고 적혀 있었다. 명패에 쓰인 글씨체는 김정은이 해당 기기를 몸소 시험했는지, 아니면 그냥 눈으로 보기만 했는지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김정은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거나 앉았던 자리는 모두 붉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김정은은 운동하는 사람이 자기 모습을 볼 수 있게 헬스기구 앞에 전신거울을 가져다놓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실제 헬스기구마다 사람 크기의 거울이 놓여 있었다.

김정은이 하는 말은 모두 법이다. 할아버지 김일성부터 아버지 김정일까지 북한의 지도자들은 이른바 ‘현장 훈시’를 통해 북한을 통치했다. 김정은은 하루에 현장 4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정은 옆에는 북한 권부의 최고 핵심인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조직지도부 부장이 항상 자리를 지킨다. 조직지도부는 김정은의 지시를 기록하고 이를 지침으로 옮기는 기관으로 김정은의 의중을 해석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다.

김정은은 헬스클럽 피부관리사(34)와 10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녀는 당시 자신이 너무 흥분한 상태였다고 했다. 그녀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에게 왼쪽 기계는 세포의 노화를 방지하는 뜨거운 오존수증기를 뿜어내고 오른쪽 기계에서 나오는 푸른색 이온수증기는 미백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피부관리사는 김정은이 자신의 전공과목과 출신 대학을 물어봤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헬스클럽에서 유방 확대 시술을 하는지, 유방 확대뿐만 아니라 축 처진 가슴을 탄력 있게 만들어주는 기계를 아는지 등도 물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피부관리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 이런 대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김정일은 진지하고 말수가 적은 스타일이었다.

위락시설 건설 투자비 어디서 나올까?

헬스클럽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누구나 헬스클럽에 올 수 있지만 실제론 고위층에게만 문이 열려 있다. 고위층에서도 헬스기구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당시는 모심기로 아주 바쁜 때였다. 평양 인구의 절반이 계층을 불문하고 상부의 지시에 따라 농사일을 도와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아 문제를 해결하자는 차원에서다. 북한 어린이의 28%, 북한 인구의 10%가 영양실조 상태다.

북한 주민들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평양의 모습은 다소 달랐다. 이제는 즐기며 살라고 김정은이 하루아침에 국훈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김정은은 새로운 놀이공원에 투자하고 아이스링크와 수영장 건설에도 군인 수만명을 투입시키고 있다. 또한 돌고래 수족관을 짓기 위해 황해에서 평양 도심까지 수백km에 이르는 파이프라인을 깔도록 지시했다. 돌고래에게 매일 신선한 바닷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주거지역엔 운동장과 배구 경기장, 인라인스케이트장이 김정은의 지시로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평양은 청소년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서방에서 들어온 것은 모두 비도덕적이라고 매도하던 북한에 1년 전부터 롤러블레이드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투자비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오진명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평양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외국인들 역시 고개를 내젓기는 마찬가지였다. 장군이 어디서 돈이 나서 이 모든 것을 갑자기 지시하는지는 전혀 모르지만 그 배경은 누구나 대충 짐작하고 있다. 수십년간 북한 주민은 북한이 가장 부유한 국가이고 이웃 나라들은 심각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선전에 세뇌당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중국과 거래하는 밀수업자와 북한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해외 영화를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가 점점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중국과 한국의 경제체제에서라면 일반 주민들이 진작 누렸거나 또는 언젠가 요구할 ‘사치품’을 안겨줘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됐다.

해빙기를 맞고 있는 북한 사회와 정반대로 북한과 외부 세계는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김정은은 지난 3월 초 미국에 핵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협박했다. 일본과 미국은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해 로켓을 준비시켰다. 한국도 미국과 함께 함대훈련을 했다. 북한은 자국 영해에 수류탄 한발이라도 떨어질 경우 남한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취재진이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북한 정권은 거의 매일 일본 쪽을 향해 단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이에 북한의 가장 중요한 우방국인 중국마저 유엔 제재 조치에 합류했다. 중국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에게 북한이 핵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중국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뒤 자신들이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강국임을 내세우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농업과 경공업 분야에서도 기술 수준을 높여 경제 강국을 건설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REUTERS

전세계는 김정은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하고 있다. 김정은은 로켓 발사와 개성공단 폐쇄 이후 갑작스레 다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 합의도 그중 하나다. 김정은의 정치는 모순투성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통치하는 북한의 앞날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까. 김정은에게 계획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다음날 평양에는 비가 내렸다. 취재진이 탄 관광버스는 물구덩이 도로를 내달렸다. 길거리에는 북한 주민 수천명이 무릎을 꿇고 아주 작은 낫으로 파릇파릇한 잔디 묘목을 하나하나 자르고 있었다. 장군의 명령이라고 했다. 오진명은 김정은이 기존 잔디가 녹지대 조성과는 거리가 멀다며 싫어했다고 설명했다. 새로 심는 잔디는 ‘Penn A-1 타입’(사시사철 푸른 잔디 품종의 하나로 골프장 그린에 주로 심는다 -편집자)으로 국영언론은 ‘Penn A-1 캠페인’ 보도에 혈안이 돼 있었다. 오진명은 잔디 심는 작업이 인민위원회에 해당하는 ‘인민반’에 의해 조직된다고 설명했다. 30여가구 단위로 조직된 인민반은 주거지역의 쓰레기 처리와 옥외 계단 청소를 맡고 있다. 인민반 여성 감독관들은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불륜사건을 신고하는 일도 맡고 있다. 그리고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는지도 감시한다.

취재진이 버스에서 내리자 다시 붉은색 명판이 보였다. 명판에는 ‘2012년 11월11일에 장군님이 유방암연구소를 방문하셨다. 이로써 장군님의 방문은 벌써 두번째다’라고 적혀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한 여의사가 취재진에게 지멘스의 최신 컴퓨터 단층촬영기를 보여주었다. 의사는 첨단기계라 아직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지멘스 로고 옆에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붉은 기념패가 걸려 있었다. 김정은은 방문 당시 질문을 아주 많이 했다고 한다. 여성은 유방암 검사를 얼마나 자주 받아야 하는지, 미혼 여성이 기혼 여성보다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더 높은지 따위였다. 과거 무용수였던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는 유방암에 걸려 2004년 프랑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생모의 사망을 둘러싼 내용도 김정은과 관련된 대다수 정보처럼 소문에 불과하다. 김정은의 키는 약 180cm에 몸무게는 90kg가량이라고 한다. 그의 나이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김정은이 1983년에 출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공식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82년에 태어났다. 1912년에 태어난 김일성과의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해 김정은의 출생년도가 의도적으로 수정됐을 수도 있다. 김정은은 유년기 대부분을 두 형제와 함께 스위스 기숙학교에서 보냈다. 김정은은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어린 시절을 보낸 평양의 궁전을 2012년 완전히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지금 그곳엔 나무들이 심겨 있다. 위성사진엔 울창한 숲으로 나온다. 궁전을 철거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오진명은 저녁에 “영웅 칭호를 받은 여경과 통화했다”고 알려주었다. “여경이 인터뷰를 할지 생각해보겠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호텔을 나와 주민들과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경찰이나 비밀요원들에게 금세 제지당하고 여권을 내놓으라는 명령을 받을 것이다. 이미 수많은 외국인이 이런 경험을 했다. 결국 매일 아침 정해진 일과대로 움직인다. 취재진과 안내인 등 4명은 호텔 앞에서 22인승 도요타 크루저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김철웅은 기사 옆 보조석에 앉고 허가증이 들어 있는 서류가방을 버스 계기판 위에 올려뒀다. 오진명은 김철웅의 뒷줄에 앉았다. 재떨이를 다리 사이에 올려놓고 왼쪽 바짓가랑이를 무릎까지 걷어올렸다. 오진명에겐 이 자세가 가장 편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평양을 처음 방문한 2005년엔 도로에 차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도로를 가득 메울 정도로 크게 늘었다.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자주 욕설을 내뱉고 급제동을 하거나 속도를 올렸다. 운전자들은 난폭 운전을 일삼고 보행자들은 주위를 둘러볼 생각을 도통 하지 않았다. 차량과 보행자 모두 아직은 교통 상황에 좀더 익숙해져야 한다. 버스 창문을 통해 본 도로에는 중국 자동차가 많았고 메르세데스 최신 모델과 아우디, BMW도 보였다. 그리고 검은색 군용 표지판을 부착한 차량도 많이 보였다. “(차를 구입하는) 돈이 대체 어디서 나왔는가?” 취재진은 오진명에게 재차 물었다. “나도 몰라요.” 오진명은 안경 너머로 취재진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답했다. 국가의 절대적 감시를 받는 곳임에도 북한의 지하경제는 공식적인 경제 규모를 이미 오래전에 추월했다.

동구권이 몰락한 직후인 1990년대 북한의 산업생산량은 이전에 견줘 절반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비료와 전력난, 연료 부족도 여전하다. 1995~2000년 북한 인구의 약 2.5%에 이르는 50만여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유휴지를 텃밭으로 일궈야 했다. 북한은 산봉우리를 제외하고 보통 산 전체가 경작되고 있다. 현재 시골 지역에선 연간 수확량의 절반이 텃밭에서 경작된 것이라고 한다. 도시 주민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개인 시장을 만들어 경제난에 대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 전체 상점의 52%, 전체 식당의 60%가 개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화폐개혁 실패 뒤 ‘사적 경제’ 통제 중단


이런 신흥 부유층은 ‘돈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돈주’라고 불린다. 이들은 서류상으로만 해당 행정구역에 소속돼 있다. 북한에서 가장 가치 있는 화폐는 ‘원화’가 아닌 중국의 ‘위안화’다. 중국 경제가 활기를 띠면서 중국 경제인들은 점점 북한으로 진출하고 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통치하던 시기에 북한은 사적 경제활동을 통제하려 했다. 마지막 시도는 2009년에 이뤄진 화폐개혁이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정반대로 김정은은 사적 경제활동을 통제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는 시장의 자유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 Die Zeit 2013년 29호 Der Geliebte Führer befiehlt Luxus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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