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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도 갈 곳 없는 내부고발자들
Cover Story ● 디지털 정글의 사냥꾼들- ④ 미국 정부 사찰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40호] 2013년 08월 01일 (목) 쿠에 파름 economyinsight@hani.co.kr

   
에드워드 스노든은 폭로 이전에도 단기 체류의 연속인 삶을 살았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내 야리야리한 몸이 좋다"고 적었다. 그가 NSA의 감시를 폭로한 직후 한 중국 신문 웹사이트에 실린 사진. REUTERS

돈보다 진실과 자유 원했던 인터넷 1세대 컴퓨터 전문가 스노든… 간첩죄로 중형 받을 수도

30살의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정부의 전세계 감시 행위를 폭로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기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이 돈보다 진실에 가깝다는 것은 그를 만나본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다. 미국 정부는 그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반면 지지자들은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려 한다. 전세계 어디도 그에게 안전한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쿠에 파름 Khue Pharm, 하인리히 벨핑 Heinrich Welfing <차이트> 정치부 기자

누군가 당신의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고 생각해보라. 문밖에 호리호리한 젊은 남성이 서 있다. 그의 얼굴은 초췌하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 초조해 보인다. 이 낯선 젊은이가 "안녕하세요, 에드워드 스노든이라고 합니다. 미국 정부가 내 뒤를 쫓고 있는데 당신 집에 숨어 지내도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바로 문을 닫아버리겠는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겠는가. 혹은 이 낯선 젊은이를 집으로 들여 손님용 침대를 준비하겠는가.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영국과 미국 정보부가 전세계를 사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 국제적으로 추적당하고 있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독일에 올 확률은 아주 낮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라면 스노든은 체포돼 미국 당국에 넘겨질 위험이 크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도피 중인 30살의 스노든은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 정부에 혈혈단신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

"나는 내 야리야리한 몸이 좋다."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은 인터넷의 역사가 시작된 1983년에 태어났다. 스노든은 부모, 누나와 함께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살다가 메릴랜드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해양경비청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지역법원 직원이었다. 당시 이웃 사람들은 스노든을 '컴퓨터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조용한 아이'로 회상한다. 스노든은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를 조립했고 '철권' 또는 '파이널 판타지' 같은 일본 컴퓨터 게임을 즐기거나 일본 코믹영화에 빠지기도 했다.

스노든의 부모는 2002년 이혼했다. 당시 스노든은 이미 오래전에 학교를 그만뒀고 2년제 지역대학의 정보학 강좌도 때려치운 상태였다. 스노든은 이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똑똑한 사람에겐 대학이 필요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국 성취하고 역사에 조용히 발자취를 남긴다"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어린 시절 충분히 스킨십을 받지 못해 거만하고 잔인하다. 나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내 야리야리한 몸이 좋다."

2년 뒤 스노든은 자발적으로 군에 입대한다. 그는 최근 사람들을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훈련 도중 두 다리에 부상을 입고 제대했다. 이후 미국 국가안보국(NSA) 협력업체 경비로 취직하고 중앙정보국(CIA)에 컴퓨터 전문가로 채용된다. CIA는 스노든을 최고 보안등급 직원 신분으로 스위스 제네바에 파견했다. 당시 스노든은 24살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했다.

인터넷 역사가 시작된 1983년 출생

스노든이 제네바에 머문 기간은 2년에 불과했다. 제네바에서 스노든을 알고 지내던 마바니 앤더슨은 "스노든은 아주 똑똑하고 친절하며 진지한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스노든은 일종의 '내적 위기'에 빠진다. 그는 CIA를 떠나 NSA로 직장을 옮겼고, 이후 일본과 하와이에서 일하게 된다. 하와이에서 스노든은 무용수인 여자친구와 동거했다. 그의 삶은 쉴 새 없이 옮겨다니는 단기 체류의 연속이었다.

이때쯤 자신의 일과 자신을 둘러싼 것에 회의를 품게 된 스노든은 비밀스러운 삶을 시작한다. 2010년 스노든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사회는 간첩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우리가 막을 수 있었는데도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된 것일까, 아니면 정부의 비밀주의에 질질 끌려다니며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진 대대적인 변화일까?" 스노든은 강대국 미국에 맞선 저항이라는 일생의 과제를 갑작스럽게 찾은 것처럼 보였다.

스노든은 CIA와 NSA에서 일하며 미국이 사찰 국가임을 확신하는 증거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몇달에 걸쳐 자신의 폭로를 철저히 준비해왔다. 스노든은 NSA의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일부러 NSA의 인프라 분석기관인 부즈앨런에 취업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털어놓았다.

지난 1월 스노든은 내부고발자(Whistleblower)에 관한 영화를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로라 포이트라스에게 익명의 전자우편을 한통 보냈다. 그는 포이트라스에게 자신의 신원은 밝히지 않은 채 아주 민감한 자료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스노든은 지난 6월1일 홍콩의 오성급 호텔에서 포이트라스와 영국 일간지 <가디언> 기자 2명을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스노든이 누구인지, 그리고 스노든이 털어놓을 이야기가 그들의 인생을 바꿔놓을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

이 3명은 스노든에게서 "주룽반도의 미라호텔 3층에 가서 큰 소리로 길을 물어보세요"라는 연락을 받았다. "루빅스큐브를 손에 쥔 사람이 바로 나예요." <가디언>의 이완 매카스킬 기자는 "스노든은 차분하고 지적인 인상이었다"고 회상했다. 몇시간에 걸쳐 스노든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노트북 4개에 나눠 저장한 비밀문서에 대해 설명했다. 이 중에는 '프리즘' 프로그램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 이 자료에는 NSA가 페이스북·구글 및 다른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의 데이터를 해킹하는 방법이 나와 있다.

영국 감청기관인 정부통신본부(GCHQ)의 2009년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 참석한 해외 사절단의 통화 내용이 감청당했다. 영국의 '템포라'(Tempora) 프로그램은 GCHQ가 인터넷 서비스 업체를 도청해 입수한 데이터를 미국 정보국과 공유하는 데 사용됐다. 매카스킬 기자는 "스노든은 자신이 폭로한 정보에 대해 단 한번도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스노든은 "정보국 시스템 관리자는 일반 직원보다 훨씬 많은 내용을 알게 된다"고 비디오 영상에서 말한다. "어느 순간 정보국의 위법 행위를 확인하고 이를 공개할 마음을 굳히게 됐다. 하지만 내가 정보국 내에서 아무리 위법 행위를 말해도 별일 아니라는 말만 들었다. 그래서 결국 위법 행위 여부는 정부가 아닌 일반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적어도 합법과 자유에 대한 전세계적 논의를 촉발한 건 분명하다. 그의 지지자들이 스노든의 행동은 정당하고 필요했다며 독일 베를린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쫓기는 신세가 된 스노든은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 환승 구역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했다(오른쪽). REUTERS

폭로 영상을 찍을 당시 스노든은 회색 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차분히 말을 이어나가면서 계속 옆을 둘러본다. <가디언>은 지난 6월 첫쨋주에 스노든과의 12분짜리 독점 인터뷰 영상물을 공개했다. 유튜브에서 스노든 폭로 영상 비디오는 조회 수 160만건 이상을 기록했다. 스노든이 위법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스노든은 고용주의 신뢰를 악용했다. 미국 사법부는 국가 재산을 절도하고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스노든을 기소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제정된 간첩법은 미국 사법학자들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고무줄 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학 포기하고 CIA, NSA 컴퓨터 전문가로

간첩법에 따르면, 미국에 해를 가하거나 외부 세력을 돕기 위해 국가 기밀을 누설한 행위는 처벌받게 된다. 스노든이 유죄판결을 받으면 수십년간의 자유형, 심지어 사형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중벌은 과연 적절하고 공정할까? 어느새 수없이 늘어난 스노든의 지지자들은 시민불복종을 근거로 그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훨씬 큰 불의를 일반에게 공개하기 위해 현행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스노든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현행법은 권력자들의 위법 행위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스노든의 행위는 불법일 수 있지만, 반드시 필요했고 정당하다는 논리다.

실제 스노든은 자신이 입수한 정보로 개인적 이득을 취할 수도 있었다. 스노든은 비밀문서를 중국, 이란, 러시아 정보국에 수백만달러를 받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높은 연봉의 직장과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대신 미국 정부가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를 불법으로 취합·저장했다고 전세계에 폭로하는 길을 택했다. 스노든은 합법과 자유에 관한 전세계적 논의를 촉발했다. 서구가 자국민을 사찰하는 전세계 독재자를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독재자들은 이제 미국을 가리킬 것이다. 이미 중국 언론은 '악당 국가 미국'에 반대하는 심리전을 시작했다. 과연 누구 탓인가? 정말 에드워드 스노든의 잘못일까?

감시 프로그램 지지자들은 도청이 보안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2007년 이후 독일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50건 이상의 테러를 막았다고 한다. 독일 본 중앙역 테러 미수 사건도 그중 하나다. 2007년 9월에 발각된 자우얼란트 테러 조직도 도청을 통해 알아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련 내용이 모두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에 이런 주장의 신빙성을 확인할 길은 없다. 독일 당국조차 어디서 이런 제보가 들어오는지 속속들이 파헤치지 못한다. 독일 정보 당국도 프리즘과 템포라 등 감시 프로그램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을 것이다.

실제 감시 및 도청으로 50여건의 테러를 미리 막았다고 해도 NSA가 이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NSA가 도청 덕에 테러를 사전에 감지했는지, 아니면 테러 의혹이 제기된 뒤 단순히 데이터만 수집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후자가 더 확률이 높다고 본다. 미국 민주당 출신이자 상원 정보상임위원 소속 의원 론 와이든과 마크 유달은 "정보 당국의 감시 프로그램이 여러 테러 계획을 사전에 막았다는 주장은 진실을 호도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수집 행위가 수많은 테러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52명이 죽고 700명 이상이 중상을 당한 2005년 영국 런던 지하철 테러가 대표적인 사례다. 테러 모의 단계에서 파키스탄과 영국 사이에 수많은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지만, 이들의 전화 통화는 도청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최근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 테러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자신들의 극단적 성향을 수차례 공개했던 두 형제는 보스턴 마라톤 결승 지점에서 사제폭탄을 터뜨렸다. 대체 전세계 감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폭로 이후 스노든은 수많은 친구를 얻었다. 새 친구들은 스노든의 행동을 칭송하며 자신의 집을 도피처로 제공하기도 했다. 위키리크스의 활동가들처럼 정치적 이유로 스노든을 돕는 사람들은 그의 항공비를 내주고 에콰도르 비자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들은 스노든을 불과 며칠 또는 몇주 전에 알게 됐다. 스노든은 이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스노든은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미국을 적으로 만든데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홍콩 변호사 앨버트 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 "스노든은 아직 아이 같다. 그의 미국 본토 소환 논란이 이렇게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테러 예방에 도움 못 된 정보기관의 도청

앨버트 호가 스노든을 방문했을 때, 스노든은 막 30살이 됐다. 스노든의 생일상에 피자와 치킨, 소시지와 펩시콜라가 올라왔다. 스노든은 호에게 도청을 미리 막기 위해 그의 휴대전화를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스노든은 감옥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사실을 가장 우려했다. "스노든은 컴퓨터를 빼앗긴다면 견디지 못할 것이다."

지금 스노든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 자체일 수도 있다. 브래들리 매닝 일병은 미국 감옥에서 썩어가고 있다. 위키리크스 변호사 제니퍼 로빈슨은 "매닝 일병을 보면 미국 정부가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로빈슨은 현재 스노든에게 법적 자문을 하고 있다. "스노든은 매닝 일병보다 더 중벌을 받을 수도 있다." 스노든은 자신의 폭로 행위로 감옥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가디언>의 글렌 그린월드 기자에 따르면, 스노든은 문서의 암호화된 사본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혹시 스노든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사본을 받은 사람들은 해당 문서에 100% 액세스할 수 있다."

스노든 폭로의 특징은 일반 대중에게 알려진 것이 별로 없으며 앞으로도 진실이 밝혀질 확률이 낮다는 사실이다. 스노든의 폭로 동기만 해도 그렇다. 스노든은 왜 홍콩으로 도피했을까? 스노든이 중국과 거래를 했을까? 러시아 정보국은 그의 노트북에 접근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스노든의 폭로로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스노든에게 문을 열어주고 도피처를 제공해야 한다. 최소한 스노든이 공정한 재판을 받는 것이 보장될 때까지라도 말이다.

ⓒ Die Zeit 2013년 27호 Sein geheimes Leben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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