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출석한 김균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원전 부품 시험 결과 조작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균섭 전 사장, 안승규 전 한국전력기술 사장(왼쪽부터). 뉴시스

한수원·관료·기업·학계 집단의 30년 공생과 유착 관계가 만들어낸 어둠의 카르텔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조작 파문 이후 '원전 마피아'란 말이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원전 운영사업자)과 한국전력기술(원전 설계·부품 검증 기관)을 둘러싼 관료·학계·기업들의 공생 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전문성을 내세워 원자력과 관련한 모든 것을 독점해왔다. 물론 어느 분야나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공생과 유착 관계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준 <한겨레> 경제부 기자

한국에 '원전 마피아'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원전 건설을 중단하기로 한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의 기술은 미국의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에 대부분 의존했다. 원자로를 비롯해 원전에 설치되는 모든 부품을 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운영체제도 미국 모델을 그대로 따왔다. 하지만 미국이 1979년 핵연료봉이 녹아내린 스리마일섬 사고를 기점으로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자 국내 원전산업이 호황을 맞게 된다. 미국 부품업체들이 연이어 도산하며 '부품 국산화'란 새로운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원전은 1기를 건설하는 데 300만개의 부품이 들어가고 2조~3조원의 비용이 든다. 게다가 전문성을 앞세운 폐쇄적인 산업의 특성상 진입 장벽은 높은 대신 한번 진입하면 안정적 수익을 꾸준히 얻을 수 있다. 당시는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고,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패러다임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감시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너도나도 원자력 산업계에 뛰어들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된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는 정부의 원전 중심 정책, 원전 건설 및 부품·정비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의 이해관계, 원자력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학계 등의 입장이 맞아떨어지면서 형성됐다. 국내 원자력 학계와 산업계의 공생관계에 대해 비판을 이어온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학 교수(경제학부)는 "원전 카르텔의 구조가 원전 중심 정책과 퇴직 뒤 관련 업계의 재취업을 노리는 공무원(관료), 연구비와 이해관계가 얽힌 원자력 전공자(학계), 원전 건설 확대에 매달리는 건설업체(자본) 등으로 구성됐다"고 진단한다.

시민단체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펴낸 '탈핵 에너지 전환의 정치·사회 시나리오 연구' 보고서도 장 교수와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보고서는 "1990년대 한국형 원전 개발을 매개로 한 정부의 원전 중심의 전원 정책(관료), 핵 관련 기술인력 양성(지식), 신규 원전 건설에 따른 시장(자본) 확장이라는 관료·지식·자본의 카르텔을 강화하는 순환구조를 갖추게 됐다. 이러한 '핵 카르텔'의 강화 과정에서 에너지 정책은 군사 정부는 물론이고 민간 정부에서도 폐쇄적인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 결정됐다"고 평가했다.

공생과 유착이 만들어낸 회전문 인사

현재 가동 중인 국내 원전은 23기로 전체 전력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운영과 관리, 신규 원전 건설 모두 독점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책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수원의 독점 구조는 안전불감증과 각종 비리로 이어졌다. 지난해 재판에 회부된 한수원 직원들의 원전 비리를 살펴보면 주로 부품 납품 과정에서의 로비와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이는 유일한 '원청업체'인 한수원이 발주한 일감을 1천여개의 납품·용역 업체가 나눠 갖는 구조에서 비롯됐다. 최근 벌어진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 역시 이런 구조 속에서 이뤄졌다. 대기업 LS전선의 계열사인 JS전선과 제어케이블 시험기관인 새한티이피는 10년 이상 한수원의 사업을 수행하고 원전 부품을 납품해온 회사다.

게다가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의 퇴직자들이 원전 협력업체를 차리거나 취업하는 일도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문제가 된 시험기관인 새한티이피는 서류를 최종 점검하고 승인하는 기관인 한전기술의 퇴직자가 차린 회사다. 현재 한전기술의 일부 임직원이 주식까지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한수원 고위 간부 퇴직자들은 원자력발전소 설계·건설·정비·안전 검사와 관련된 업체에 재취업해왔다. 지난해까지 한수원을 퇴직하고 관련 업체에 재취업한 1·2급 고위직 간부들은 81명에 이른다. 70명은 퇴직한 날 곧바로 재취업했다. 이들의 민간기업 재취업은 주로 고문 자리를 받고 1년을 계약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원전 관련 업계에서 1급 출신의 퇴직자를 채용하는 것은 일감 수주와 로비를 위한 영업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고 말했다.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조작 파문으로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이뤄진 관료·학계·업계 핵심 인사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주목받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들을 '원전 마피아'라고 부른다. 강창순 전 원자력안전위원장,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장순흥 전 대통령직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인수위원(왼쪽부터). 뉴시스

원청업체가 한수원 하나뿐인 상황에서 한수원 출신 퇴직자를 고용한 업체들은 경쟁 업체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고, 상시적인 유착 구조를 만들어낸다. 원전 관련 중소업체의 한 관계자는 "계약이 안 되면 '우리가 부족했다'는 생각보다 퇴직자가 있는 업체들 때문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이 원전 확대와 함께 독점 사업자로서의 지위를 누려왔다면, 원자력 정책을 짜고 원전의 안전을 규제하는 정부·국책 기관 역시 특정 학맥이 독점해왔다.

옛 교육과학기술부가 펴낸 '2010년 국가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원자력 분야 인력수급 전망 및 인프라 개선' 보고서를 보면, 국내 원자력 분야의 인력은 2만1천명이 넘고 이 중 연구 인력은 1500여명이다. 2003~2008년 해마다 배출되는 관련 분야 박사의 75~88%는 서울대와 카이스트(KAIST) 출신이다. 현재 국내 원자력 관련 전공을 개설한 대학은 이들 대학과 한양대·경희대 등 9개다.

한수원에 한양대 출신이 많은 데 비해 학계, 원자력 연구기관, 감시기관에는 서울대 출신이 자리를 잡고 있다. 원전을 감시하는 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초대 위원장인 강창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은철 현 위원장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이들이 소속된 한국원자력학회는 2000년 이후 학회장 10명 가운데 8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신임 원자력학회장에 취임한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는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문성을 이유로 정부와 공공기관 사이에서 '회전문 인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관련 전공을 개설한 학과가 전국에 9개밖에 없고 정부기관 자리도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의 진출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한 원자력공학 전공 교수는 "특정 학맥이 많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구조이고 이들이 비리와 연루된 적도 없다.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해야 하는 게 먼저지 무조건 특정 학교 출신이 많다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대·카이스트·한양대 학맥이 독식

하지만 견제와 균형, 감시의 독립성이 중요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원자력안전기술원까지 특정 학교 출신들이 장악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은 대부분 원전의 진흥과 확대를 연구해온 학자고, 이 때문에 원전 안전에 소홀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자력안전법은 '최근 3년 동안 원자력 이용자 단체가 수행하는 사업에 관여한 사람은 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강창순 초대 원안위 위원장은 한수원과 옛 과학기술부 한국원자력연구소 등에서 20건 이상의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수억원에 이르는 연구비를 받은 이력이 있다. 장정욱 교수는 "특정 학교끼리 한통속이 돼서 원전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연히 소수 의견은 무시되고, 원전 안전이나 사고 예방 등 중요한 사안은 소홀히 다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비판했다.

원전 확대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대기업들도 드러나지 않은 채 공생관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라는 단체는 두산중공업·현대건설 등 80여개 대기업과 원자력 관련 학계 인사로 구성돼 운영되는 단체다. 원자로를 만드는 두산중공업과, 플랜트 건설을 맡는 현대건설 등의 대기업들은 원전 확대에 따라 계속 일감을 따온 기업이다. 원전 운영을 감시하고 안전성을 점검해야 하는 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원장인 강 교수는 이 단체의 부회장을 맡다가 2011년 위원장에 내정된 바 있다. 또 원자력 전공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원자력학회에도 두산중공업·삼성물산 임원들이 소속돼 있다. 원전을 둘러싸고 민·관·학이 뒤섞인 모양새다.

'선수가 심판을 겸하는 경기'는 원전 마피아와 함께 발전한 국내 원전 정책의 왜곡된 구조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최근 2년 사이에 드러난 원자력 관련 사고와 비리는 1956년 예전의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가 생긴 이래 50여년간 이어온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안으로 곪아온 일이라는 지적이다.

원자력발전소 신월성 1호기 등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올해 유례없는 전력난이 예상되는 가운데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국내 원전에 대한 안전과 감시 체계는 2011년 10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출범하기 전까지 원전 진흥 정책을 담당하는 과학부처(옛 교육과학기술부 등)에 속해 있었다. 원자력 관련 법률도 50여년간 '원자력법' 단일 체계로 유지되다 2011년 7월에야 원자력진흥법, 원자력안전법, 원자력안전위원회법으로 분리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오래된 지적 사항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반영한 것이다.

원안위가 2011년 이후 심판으로서 규제 기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선수'와 '심판'이 뒤섞여 있는 것이 문제다. 원전 안전 점검 등을 담당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킨스)은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으로부터 2000~2010년 270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는 등 독립성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킨스의 지난해 예산을 살펴보면 1064억8500만원의 예산 가운데 한수원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예산이 549억원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올해는 460억원이 책정돼 있다. '을'이 '갑'의 안전을 감시하는 모양새다.

선수가 심판 겸하는 원자력 안전 규제

이에 대해 킨스는 "원전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니 '사업자 부담' 원칙에 따라 한수원이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다. 또 예산은 한수원이 아니라 기획재정부가 엄격히 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킨스가 원전 점검 용역을 할 때마다 한수원에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원전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기획재정부가 안전 예산을 얼마나 꼼꼼히 따질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으로 원전 3기가 가동을 중단하는 등 파장이 커지자 '원전 마피아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원전 인력 풀이 좁고, 과학과 전문성의 영역이라는 특성상 원전 마피아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원전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 기관의 역할을 강화해 심판이 선수를 겸하는 지금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출범 2년째를 맞는 원안위의 독립성 강화와 규제 인력 확충 등이 필요하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현재 국내 원전 1기당 규제 인력은 18.2명으로 캐나다 47.2명, 프랑스 37.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37.67명), 일본(22.7명)의 인력 규모보다 작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시민사회의 참여도 필요하다. 지난 6월14일 국회는 원안위 상임위원 9명 가운데 야당이 추전한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과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의 임명안을 통과시켰다. 이들은 대표적인 탈핵 인사로 처음으로 규제 기관에 참여하게 됐다.

궁극적으로 원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우리의 에너지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불량 제어케이블 사건이 터지자 성명을 내고 "원전은 출력 조절이 불가능하고 가동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수시로 변하는 전력 수급을 맞출 수 없고 안전 문제로 인해 갑작스럽게 장기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국내 전력 수급을 당장 싼값에 원전 위주의 공급 정책으로 맞춰온 기존 전력 정책의 대폭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전력 수급을 핑계로 원전 안전 문제가 2차적인 문제로 밀리고, 폐쇄된 구조에서 원전 안전 문제가 좌지우지되는 현재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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