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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비운의 황태자 이재현
국내 이슈 ●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굴곡진 삶
[39호] 2013년 07월 01일 (월) 김연기 economyinsight@hani.co.kr

삼성가 장손으로 태어나 고난 끝에 재계 12위 총수에 올랐다가 검찰 수사로 다시 위기에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막대한 비자금 조성 의혹에다 해외 조세회피처를 통한 재산은닉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장손으로 태어나 비운의 황태자로 자라났고, 재계 12위의 대기업을 일궈냈지만 검찰 수사로 인생 최대의 위기에 몰린 이 회장의 평탄치 않은 삶을 따라가봤다.

김연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6월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모 김윤남 원불교 원정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진짜 강한 칼은 딱딱하고 잘 드는 칼이 아닙니다. 유연해서 마음껏 휘어지지만 부러지지 않고, 그러면서도 힘을 발휘하는 칼이 21세기에 필요한 진짜 강한 칼입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007년 신입사원들과 나눈 대화 중 한 구절이다. 실제로 이 회장이 걸어온 삶은 그가 예로 든 '강한 칼'을 꼭 닮았다. 삼성가(家) 장손으로 태어났지만 적통을 이어받지 못한 설움, 삼성그룹에서 분리돼 나온 뒤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삼성과의 악연, 무죄판결이 나긴 했으나 2008년 비자금 의혹과 부하 직원의 청부살인 논란 등 숱한 풍파가 휘몰아쳐도 이 회장은 그때마다 유연하게 대처했고 그의 칼은 부러지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유연한 칼이라 하더라도 자꾸 휘어지다보면 언젠가 부러지기 마련이다. 이 회장이라고 이를 모를 리는 없다. 이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 전체가 해외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면서 다시 한번 이재현의 칼이 시험대에 올랐다. 과거에도 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차례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지만 예전과는 비교되지 않는 큰 쓰나미가 지금 이 회장을 덮치고 있다.

이 회장의 아버지는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다. 이맹희 전 회장은 조선시대의 양녕대군으로 자주 비유된다. 양녕대군이 그랬던 것처럼 이맹희 전 회장은 동생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대권을 넘겨주고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야 했다.

삼성가 장손으로 태어났지만…

경영권이 이건희 회장에게 넘어간 배경에는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이 있다. 이맹희 전 회장의 주도로 한국비료가 울산에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밀수를 하다 적발된 이 사건은 이병철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마무리됐다. 이 사건은 이맹희 전 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에서 배제되는 단초가 됐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광경을 지켜본 이재현 회장은 그 뒤부터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그늘 속에 살아야 했다.

이런 성장 배경 때문일까. 이 회장에게는 '비운의 황태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이 회장은 삼성가의 장손이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은 삶을 살았다. 경복고를 거쳐 고려대 법학과에 들어간 그는 삼성가 3세들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곳도 삼성이 아니었다. 이 회장은 "누구 덕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다"며 1983년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에 입사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이병철 창업주가 "장손인 재현이에게 왜 남의 집살이를 시키냐"며 호통을 치는 바람에 1985년 당시 삼성의 주력 계열사인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겼다.

제일제당 입사 뒤 이 회장은 7년 넘게 경리부 및 기획관리부에서 근무하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옮겼다. 그가 재무통으로 거듭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기간 중 이병철 전 회장이 별세했고,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 회장직을 승계한다. 1993년 잠시 삼성전자에 몸담은 이재현 회장은 몇달 뒤 다시 제일제당 상무로 복귀했다. 이후 이 회장은 삼성에서 떨어져나온 제일제당의 부사장(1997년)과 부회장(1998년)을 거쳐 2002년 3월 회장에 올랐다.

'장손 상속'에는 실패했지만 이 회장은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회장 취임 직후인 2002년 사명을 제일제당에서 CJ로 바꾸는 등 차츰 그룹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그룹의 실질적 모태인 제일제당을 식품회사에서 종합생활문화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삼성에서 떨어져나온 1996년 1조7천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2012년 26조8천억원으로 늘었다.

비록 삼촌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경영권을 이어받았지만 이 회장은 장손으로서의 적통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이 회장은 재계에서 '리틀 병철'로 통한다. 걸음걸이부터 말투까지 할아버지와 닮은꼴이어서 이런 별명을 얻게 됐다. 이 회장도 자신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은 할아버지를 정신적 지주로 의지하고 있다. 서울 남대문로 그룹 사옥에 할아버지의 좌상을 벽면 부조로 조각해넣을 정도로 장손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하고 도전정신이 넘친다는 평가를 한다.

경영철학 면에서도 이 회장은 할아버지를 빼닮았다. 대표적으로 인재 중시 경영을 꼽을 수 있다. 부하 직원들을 허물없이 대하는 것도 할아버지를 닮은 부분이다. CJ가 다른 대기업에 비해 호칭이나 복장이 자유로운 것도 이 회장 특유의 소탈함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달리 이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언론에 나타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그 흔한 인터뷰조차 거의 없다.

   
이재현 회장의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이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지난 5월29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CJ그룹 본사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뉴시스

이 회장의 굴곡진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삼성과의 계속되는 악연이다. 장자로서의 적통을 의식하는 CJ와 회사를 공식으로 물려받은 삼성이 서로 편한 사이일 수는 없다. 하지만 창업주의 선영 참배를 놓고 벌이는 실랑이는 주위 사람까지 민망하게 만든다.

양쪽의 대립은 제일제당의 계열분리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10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제일제당의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임명하면서 양쪽이 날선 대립각을 세우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이 회장은 모친에게 제일제당 주식을 증여받아 경영권을 갖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인사에 대해 극렬히 반발했고 결국 이학수씨는 부임 한달 만에 삼성으로 복귀했다. 1995년 3월에는 삼성이 서울 한남동 이건희 회장 집 3층 옥상에 바로 옆집인 이재현 회장 집 정문을 향해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둘의 신경전은 2011년 CJ의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CJ는 대한통운 인수를 위해 삼성증권을 인수 자문사로 선정했다. 그러나 삼성SDS가 뒤늦게 포스코와 함께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해 CJ와 양자 구도를 형성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지난해에는 이 회장에 대한 삼성 직원의 미행 사건이 터졌고,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 사이에 상속 소송이 벌어지면서 양쪽의 갈등은 극에 이르렀다.

삼성과 별개로 이 회장은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대부분 존재 여부, 규모, 관리 실태 등이 제대로 확인된 적은 없었다. 2008년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관리하던 CJ 간부가 살인청부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는 과정에서 비자금의 존재가 비로소 드러났다. 그러나 이 회장은 1700억원의 세금을 납부한 뒤 창업주의 상속재산이라는 이유로 비자금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그 이듬해인 2009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의 수상한 거래가 도마 위에 올랐다. CJ그룹이 2008년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을 때 천 회장을 통해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었다. 이 회장은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관련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소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당시 별다른 혐의점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계열 분리 이후 삼성과의 악연

하지만 이번에는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 역외 탈세, 편법 증여 등 다양한 혐의가 하루가 멀다고 터져나오는 상황이라 과거처럼 쉽게 빠져나가기는 어렵다는 게 재계 안팎의 관측이다. 검찰도 "이번만큼은 예전과 다르다"며 수사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어 사법처리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다.

이 회장은 검찰의 그룹 압수수색 2주 만인 지난 6월3일 임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사과의 뜻을 전하고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번 사태를 계속 방치할 경우 그룹에 최악의 위기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이 회장 체제가 위기를 맞으면서 CJ그룹의 내부 권력 관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CJ그룹의 지주회사인 CJ(주)를 비롯해 8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CJ 주변 인사들은 "이 회장이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검찰 수사의 진척도에 따라 그룹 내 모든 공식적인 직위를 내려놓고 수사에 협조하는 수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그뿐 아니다. 만약 이 회장이 사법처리를 받을 경우 현재의 등기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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