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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투자 그리고 내기
[Editor's letter]
[3호] 2010년 07월 01일 (목) 한광덕 economyinsight@hani.co.kr

6월 지방선거 결과는 집권 여당뿐만 아니라 언론사들을 도마 위에 올렸다. 방송 3사의 출구조사와 극명하게 대비된 사전 여론조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물론이고 폐해론까지 제기됐다.
수년 전 한 언론사는 ‘대선 사이버 증시’를 개설했다. 시장 원리로 유권자의 속내를 더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사이버 머니로 거래된 상장 종목은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권영길이었다. 투표 용지에 모든 후보의 기표란이 들어가는 것처럼 투자자에게도 네 후보의 주식을 1주씩 묶어 꾸러미로 배정했다. 개장 초반부터 김대중 주식으로 매수세가 몰렸고 이회창·이인제 주가는 엎치락뒤치락 혼전 양상이었다. 투표일 전날 자정에 마감한 사이버 증시의 종가는 김대중주가 근소한 차이로 가장 높았다.
이윤 동기가 개입되는 선거 주식시장은 자신의 지지 후보가 아닌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뽑는다는 점에서 여론조사와 다르다. 유권자가 아닌 투자자로 ‘표’를 찍는 것이다. 케인스가 증시를 미인선발대회로 비유한 이유다. 투자자는 ‘제 눈에 안경’보다 ‘만인의 연인’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 때도 직장마다 내기가 성행했다. 한국이 좋아서 이기는 쪽에 걸었다면 ‘투표’를 한 셈이다. 우루과이가 이길 것으로 예측해 베팅했다면 ‘투자’를 한 셈이다. ‘사설 로또’라 불릴 만큼 규모가 커진 ‘내기 월드컵’은 여론조사보다는 주식시장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월드컵 증권시장’이 개설돼 축구 못지않은 열기를 뿜고 있다. 참가국들을 월드컵 증시의 개별 종목으로 상장시키고 우승에서부터 조 예선 꼴찌까지 성적에 따라 환매 기준가격을 매겨놓았다. 투자자들은 나름대로 주식(참가국)의 주가(성적)를 점치면서 매매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우승한 종목의 기준가는 300유로인데 16강전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독일, 브라질 등 우승 후보 종목의 주가는 250유로쯤에서 거래된다. 이때 독일 종목을 사들인 투자자는 나중에 독일이 트로피를 거머쥐면 1주당 50유로의 차익을 얻게 된다. 반면 일본 주식 보유자는 일본이 8강 진출에 실패하면 16강 환매 가격인 100유로만 돌려받게 된다.
이번 지방선거 기간에 사이버 증시가 열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인천 업종’에서 송영길주를 선취매한 투자자는 상당한 수익을 거뒀을 것이다. ‘경기 업종’에서 심상정주를 매수한 투자자는 ‘진보회사’를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을 것이다. 저평가된 심상정주의 장기적 전망을 보고 샀는데 주주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자진 상장폐지했기 때문이다.
투표와 투자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시장기구라는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두 시장 모두 쏠림 현상을 부추기려는 ‘작전세력’들에 의해 혼탁해질 위험이 있다. 선거의 대세론과 증시의 주도주가 그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여론조사의 경우는 똑똑한 ‘개미’들에 의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사례가 아닐까?
선거나 경기의 승패 예측만큼이나 독자의 속마음을 읽는 것도 힘들다. <이코노미 인사이트> 첫 호가 나오자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처음 경제를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 주요한 용어를 간단히 풀이해 실어주면 좋겠다”는 대구의 한 독자가 보낸 엽서는 지금도 아프게 간직하고 있다. 6월호는 담론 위주였던 창간호와 달리 대중적인 소재를 표지로 앞세웠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7월호 표지는 ‘중국’이다. 애초 의도와는 달리 담론의 비중이 살짝 높아졌다. 그만큼 번역 수준도 높여야 했다. 두 도마 위에 걸쳐 오르면 큰일이다.   한광덕 총괄편집장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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