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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부자는 '라이프홀릭'… 노는 데 쓴다
대한민국 슈퍼리치- ① 그들은 무엇으로 사나
[37호] 2013년 05월 01일 (수) 김연기 economyinsight@hani.co.kr

   
 
한국 사회에서 부자라고 하면 대체로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슈퍼리치를 말한다. 물론 그 범위는 넓다. 재산 50억~60억원의 단순한 강남 부자에서 수백억원대 자산가, 수조원을 가진 재벌기업 회장까지 다양하다. 특이한 것은 불경기임에도 이들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성채에 머물며 특별한 삶을 영위하는 한국의 슈퍼리치. 그들이 누구인지 살펴봤다.

김연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개나리꽃으로 노랗게 물든 구룡산이 눈앞에 훤히 펼쳐진다. 발아래로는 양재천이 유유히 흐른다. 따사로운 봄햇살이 창문에 부딪히며 반짝 빛난다.

지난 4월5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34층. 스포츠센터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바라본 낮 풍경이다. 타워팰리스의 스포츠센터 '반트'는 아파트단지에 독립적으로 위치한 대규모 체육시설이다. 피트니스센터, 수영장, 골프연습장, 사우나탕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남자 1명은 보증금 3천만원에 연회비 214만원, 부부는 보증금 5600만원에 연회비가 429만원에 이른다. 4층 라운지에 마련된 미니바는 천장에 매달린 대형 샹들리에와 곳곳에 놓인 야자수가 조화를 이루며 이곳이 특별한 공간임을 보란 듯이 과시하고 있다. 2층 야외 정원에 군데군데 심은 수십년짜리 등 굽은 소나무들도 주변 아파트의 나무와 대조를 이루며 타워팰리스의 품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운동하면 양재천 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게 꼭 하늘을 달리는 것 같아요. 이건 '단순한 헬스클럽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들죠." 지난해 말 타워팰리스 C동에 입주했다는 주부 조아무개(42)씨가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조씨는 "매일 아침 반트에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오전에 반트에서 운동으로 땀을 빼고 4층 라운지에서 잠깐 쉬다가 반트 회원들과 함께 인근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게 조씨의 하루 일과다. 조씨를 비롯한 타워팰리스 거주 주부들에겐 반트가 사교의 장이자 정보 교환소다. 조씨는 "사교 모임을 통해 관계망을 늘려가는 사람이 많다"며 "단순한 친목 도모뿐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도 사교 모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타워팰리스 인근 선명공인중개사 최성훈 대표는 "타워팰리스 입주자들 사이에 가장 활성화돼 있는 것 중 하나가 동호회 활동"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소득수준의 '멤버'들끼리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아이를 유학 보낸 주부 모임에선 진학 문제나 숙박 시설 등과 관련된 얘기가 오가는 식이다."

부자들은 활발한 사교 모임을 가지면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가고 있다. 자신과 같은 부류와 어울림으로써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간다. 상류사회의 네트워크를 분석한 <한국 사회의 연결망 연구>의 저자 최항섭씨는 "상류사회의 동질성을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아무래도 사교 모임"이라며 "멤버들은 모임을 통해 인맥을 관리하기도 하지만 와인을 마시고 재즈를 감상하며 문화적 취향도 고급화한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활발한 사교 모임을 통해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해가고 있다. 서울의 한 호텔 와인바에서 열린 와인 동호회 모임. 뉴시스

1명당 참가비 100만원짜리 파티

부자들의 상당수는 유학을 경험했고 아이들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유학길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서양의 파티 문화에 익숙하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핼러윈데이 때는 빠지지 않고 파티를 연다. 파티 기획업체 '369파티'의 이필영 대표는 "부유층 파티는 1명당 참가 비용이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며 "지난 2월 수도권의 한 스키장에서 열린 파티는 참가자 1명당 1천만원을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꼭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명품 브랜드 등이 협찬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로 호텔에서 파티를 했는데 지금은 청담동이나 서초동의 고급 카페를 통째로 빌리거나 룸이 있는 와인바를 많이 찾는다. 최근에는 명품 브랜드 론칭쇼의 오픈파티도 늘고 있다. 주로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오는 사람들은 국내에서 모일 경우 서울 근교나 유명 리조트의 빌라 한동을 빌려 그들만의 공간에서 유흥을 즐긴다. 때로 몇 가족이 모여 실내악 파티를 열기도 한다. 아이들이 모두 악기 하나 정도 다룰 줄 알기 때문에 가족만 모여도 실내악을 구성할 수 있다." 이필영 대표의 이야기다.

상류 사교 모임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영국이다. '런던 시즌 모임'은 가장 대표적인 부자들의 사교 모임으로 꼽힌다. 이 모임은 연회비가 6천파운드(약 1200만원)에 이른다. 여성 회원은 이브닝드레스 가격으로 최소 5천파운드(약 1천만원)를 지출해야 한다. 사교 모임에 가입하는 데 기본적으로 2천만원 이상 드는 것이다.

취향 맞거나 건강에 좋으면 아낌없이 투자

파티 문화를 즐기는 방식은 같은 부자라 해도 강북과 강남에 다소 차이가 있다. 강북 부자들은 주로 집에서 파티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파티 음식도 서양식 뷔페보다 한국 전통 음식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강남은 주로 카페 등에서 파티를 열고 와인이나 핑거푸드를 즐긴다. 성북동에서만 30년 넘게 부동산중개업을 해온 평화부동산 정한술 사장은 "이곳 부자들은 칠순이 넘은 고령층이 많아 경영 2선으로 물러나 있는 경우가 많은데다 부자들끼리 사교 모임이 많지 않아 커뮤니티는 약한 편"이라고 말했다.

21세기형 신흥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전통 부자와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의 젊은 부자들>의 저자 박용석씨는 "요즘 부자들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지보다 어떻게 여유 있는 삶을 누릴지에 더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돈에 대한 집착은 강하지만, 돈에 얽매이는 생활은 기피한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합리적 소비 성향을 보이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부자학 강의'를 처음 개설한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경영학)는 250억원대의 자산을 가진 어느 부자를 예로 들며 "평소 5천원짜리 순댓국으로 점심을 때우는 구두쇠지만 취향에 맞으면 1억원이 넘는 외제차도 서슴지 않고 구입한다"고 말했다. 일부는 무차별적 소비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린이 전용 피트니스클럽이다. 청담동의 한 어린이 전용 피트니스클럽은 2~10살 어린이의 회원가가 1500만원을 넘는다. 초고가임에도 아이들에게 미래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과 어릴 때부터 끼리끼리 어울리게 하고 싶은 부모들의 폐쇄성이 맞물려 가입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 남산의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연인이 나란히 누워 마사지를 받고 있다(왼쪽). 부자들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최고급 시설에서 특별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불가리 매장에서 판매되는 8억원 상당의 뱀 모양 손목시계. 뉴시스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차별성'이다. 서울 청담동에서 에스테틱·스파센터를, 송파에서 피부과를 운영하는 의사 박경훈씨는 2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다보니 부유층과 일반인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에스테틱·스파센터를 찾는 이들은 10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들어와 이곳에서 그야말로 왕처럼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다. 옷을 벗어놓으면 양말까지 차곡차곡 개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마사지를 마치고 욕조에 들어가면 차가운 물수건과 생수를 갖다주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재빨리 수건을 건네준다. 목욕을 끝내고 나오면 엎드려 발을 닦아주기도 한다.

"에스테틱·스파센터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연봉 1억원이 넘는 전문직 여성이거나 부유층 집안의 주부들입니다. 한번 마사지를 받고 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50만원을 넘어요. 여기에 피부관리까지 받으면 100만원을 훌쩍 넘죠. 싸다고 할 수 없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어요. 최고급 시설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쉴 수 있다는 게 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죠. 반면 송파 병원을 찾는 이들은 평범한 직장 여성이 많습니다. 이들은 항상 조바심을 내요. 어떻게든 빨리 피부가 좋아지기를 바라죠. 그런 심리적 불안감이 오히려 치료 효과를 반감시키기도 합니다."

부자들은 건강 유지에도 아낌없이 투자한다. 주치의에게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고 6개월에 한번씩 고가의 VIP 건강검진을 받는다. 보통 개인 주치의를 두는 데만 1년에 수천만원이 든다. 그러나 CEO나 고위 임원 등은 건강관리를 하려고 해도 시간을 못 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이 헬스케어서비스다. 헬스케어서비스는 평소 건강검진을 자주 받지 못하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24시간 건강상담과 관리를 해주는 서비스다. 연매출 300억원 규모의 안경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백경한 대표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 대표들은 요즘 같은 불경기에 회사를 챙기느라 자기 몸 돌보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많다"며 "하지만 헬스케어서비스 업체가 평소 주기적으로 직접 찾아와 건강관리를 해주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예외 없이 재테크의 달인"

부자들은 인맥관리에도 과감히 투자한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를 반드시 갖춰놓고 있다. 주로 돈의 힘을 빌려 탄탄한 인맥을 쌓는다. 외과 전문의 김아무개(42)씨는 부동산 매물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에게 항상 수익의 10%를 사례금으로 준다. 부동산 법정 수수료와 상관없이 좋은 물건을 소개받아 3억원을 벌면 3천만원을 선뜻 내주는 식이다.

"모이면 재테크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요. 그만큼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은 돈을 모으거나 지키고 싶은 욕구가 강하거든요.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재테크 지식도 해박합니다." 이종혁 KB국민은행 명동PB센터 팀장은 "재테크는 부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예전 부자들이 악착같이 아껴서 착실히 부를 쌓아왔다면 요즘은 광범위한 인맥을 통해 얻은 정보로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부자가 많아요. 부동산 일변도로 재산을 형성한 과거 세대와는 달라요. 부동산은 물론 여러 금융상품에 번갈아 투자하면서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최근에는 큰손 부자 고객을 중심으로 현대판 '계'로 불리는 사모펀드 출시 붐이 일고 있다. 소수의 부자들이 수억~수십억원씩 돈을 모아 사적으로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다. 때로는 거액 자산가 한명을 위한 1인용 사모펀드도 출시된다. 올해 초 펀드 냉풍 속에 큰손 고객들의 거액 자금이 손해를 입자 대형 은행의 PB들이 이를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모펀드를 내놓기도 했지만, 이는 일부 큰손 고객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한상언 신한은행 투자상품부 팀장은 "보통 사모펀드의 목표수익률은 시중 정기예금 금리의 4~5배 정도"라며 "대부분 목표치만 달성되면 즉각 해지해 골고루 이익금을 배분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다 같이 해지하기 때문에 환매 수수료를 물 필요가 없다. 선취 수수료도 공모펀드에 비해 0.5%포인트가량 낮다.

일부 부자들은 매월 1천만원, 일시에 10억원 이상의 보험료를 내는 '황제보험'에 가입한다. 한 생명보험사의 부자 고객 현황을 분석해보니, 월 1천만원 이상 보험료를 내는 부자들은 2008년 말 2600명에서 2013년 3월 말 3200명으로 20% 이상 늘었다. 또 가입과 동시에 한꺼번에 10억원 이상 보험료를 내는 부자도 2008년 말 700여명에 불과했지만 2013년 3월 말 1100명으로 40% 넘게 증가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부자들이 고액 보험에 가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 때문"이라며 "사망시 수십억원의 보험금을 탈 수 있는 고액 종신보험은 부자들 사이에서 세금(상속세) 절약용 상품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부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남들이 할 수 없는, 단순히 돈으로만 구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한끼에 1인당 30만원이 넘는 강남 지역의 고급 일식집에 괜히 밀실이 많은 것이 아니다. 폐쇄적이기는 해도 그만큼 남들과 다른 특별한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강남 땅부자들>의 저자 김현기씨는 "부자들은 지나친 차별화와 자기보호 등으로 그들만의 성채에 들어가 숨어버리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 때문에 부자들을 쳐다보는 사회의 시선이 차가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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