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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기득권부터 과감히 버리겠다"
Interview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37호] 2013년 05월 01일 (수) 정남기 등 economyinsight@hani.co.kr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을 만난 날은 모처럼 찾아온 봄다운 봄이었다. 꽃샘추위가 물러난 뒤 늦은 꽃망울을 틔우는 벚꽃 속에 소리 없이 숨어 있던 봄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미처 계절을 느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전날 국회 업무보고를 준비하느라 미뤄둔 일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대폭 물갈이를 예고한 금감원 인사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최 원장과 공식 인터뷰를 하고 금융감독 방향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4월17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인터뷰 정남기 편집장·정리 이재명 부편집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국외 점포 하나당 한국인 직원이 3~4명에 불과한데 뭘 할 수 있겠느냐"며 "금융회사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조만간 국외 진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탁기형
새 정부의 첫 금융감독기구 수장이 됐다. 어디에 방점을 두고 조직을 이끌 생각인가.

원장에 취임했다는 기쁨보다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더 크다. 금융감독원의 역할은 금융산업 선진화와 금융시장 안정, 금융소비자 보호를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런 핵심 가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겠다. 중요한 건 국민의 눈높이다. 우선 금감원의 기득권과 우월적 지위부터 과감히 내려놓겠다. 또 국민이 직접 검사나 감독에 참여하는 '열린 금융감독'을 구현해가겠다. (최 원장은 취임사에서 국민이 금융기관 검사를 요구할 수 있는 국민검사청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다시는 저축은행 같은 감독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일하는 시각과 방식을 바꿀 것이다. 금감원이 변해야 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금감원 직원들이 공인 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도록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겠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중요한 건 방향이다.

금융감독의 중심을 공급자에서 수요자 위주로 바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겠다. 이를 위해서는 금감원 직원들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기존 업무 방식이나 관행을 바꿔야 한다. 특별한 이유나 논리도 없이 '전(前)과 동(同)'이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없애겠다. 예를 하나 들면, 지금은 금융기관 검사를 나가서 최종적으로 제재를 내릴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너무 길다. 어떨 땐 300~400일이 소요되기도 한다. 검사를 받은 처지에서 얼마나 불안하겠나.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면 그렇게 끌어서는 안 된다. 담당자가 관심과 성의만 있으면 150일 안에 할 수 있다. 제재 처리 표준 기간을 만들어서 되도록 신속하게 처리할 생각이다.

"감독 시스템 수요자 위주로 바꿔야"

'수요자 위주 금융감독'은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금감원이 그동안 건전성 감독에 집중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간의 감독 관행을 반성하고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내부 기구, 인식, 제도 등을 뜯어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지난 3월 초 일본 출장 때 일본 금융청 장관에게서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 누락 건수를 10년 만에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반면 우리는 민원이 2010년 7만2천건에서 지난해에는 9만5천건으로 늘었다. 양도 많고 증가 속도가 가파른데 직원들은 으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도 못할 이유가 없다. '왜 늘어날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관심과 정성을 기울인다면 줄여나갈 수 있다. 민원 감축 노력이 일회성에 그치거나 실적 위주로만 흐르지 않도록 이를 뒷받침하는 전담조직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직원들이 소송 등을 우려해 일처리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충분히 안다.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검사를 했는데 왜 문제점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느냐, 봐준 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인력 부족이나 시간 문제 때문에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 검사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윤리적 문제가 없는 경우 외부에서 이해해주고 신뢰를 줘야 한다. 그런데 저축은행 사태로 신뢰가 무너지면서 싸잡아 비판을 받는다. 국민에게 신뢰를 쌓으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검사 시스템을 바꾸고 제재 수위를 높여야 적은 인원으로도 효율적 감독이 가능한 것 아닌가.

물론이다.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존에 일하던 방식이나 절차를 바꾸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버리겠다. 다 끌고 갈 수는 없다. 덜 중요한 일은 금융기관들의 자율규제로 넘기자고 직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내 생각만으로 직원들이 변할 수 없다. 내 논리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추진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직원들과 대대적인 토론을 벌일 계획이다. 지금은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고 업무가 빨리 되는 것도 아니다. 책임을 질 건 확실히 지고, 절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직원을 늘려야 한다. 제재 수위는 지금도 결코 낮지 않다고 본다.

금융전산망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 금융회사에 전산망 사고가 재발되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책임을 묻겠다. 은행들이 전산 쪽에 예산이나 인적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금융회사들의 정보기술(IT) 보안 현황을 점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IT 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정작 전문 인력이 없다. 금감원이 IT 직원을 뽑으려고 하면 컴퓨터 고치는 사람이 전문가라고 지원한다. 금융회사 인력의 5%를 IT 전문가로 뽑도록 했는데 1500명 이상이 부족하다. IT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리스크·파생상품·외환 전문가가 없는 게 한국 금융의 현실이다. 금융 관련 자격증 소지자나 장기연수를 받은 금융 전문인력 비중이 한국은 9%밖에 안 된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51%와 44%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창조금융'을 말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달라.

상상력과 창의성, 전문성을 갖춘 금융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인재 양성이 선행되지 않고는 창조금융을 구현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낡은 제도나 관행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신심사 기준은 담보나 재무 상태 중심이었다. 이를 벗어나 기술력과 사업성, 성장성 중심으로 평가하도록 유도하겠다.

그동안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금융회사들이 건전성에 치중하다보니 성과가 안 났다. 길이 좁아진다고 정도(正道)를 포기할 순 없다. 앞으로 금융회사들이 여신심사 담당자를 채용할 때 기술직 경력자나 이공계 출신을 우대하도록 권장해 실질적 개선이 이뤄지도록 할 생각이다. 셋째는 실물경제 지원이다. 금융은 '산업의 혈맥'이라 말하는데, 기업 입장에서 불합리한 게 뭐가 있는지 살펴보고 기업, 특히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살리는 자금 지원이 가능하도록 감독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상상력과 창의성 갖춘 금융인 키우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회사들의 지배구조가 흔들린다. 부작용이 큰데 원칙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에서도 이런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장이 금융회사의 인사 문제를 거론하는 건 적절치 않다. 그러나 금융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대표적 금융회사인 금융지주회사들이 부정적 내용으로 언론에 거론되는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겠다.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통해 한국 금융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개선 방안을 만들어보겠다.

금융기관들이 나라 밖으로 나가긴 하는데 경쟁력이 없어 보인다.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본격화되고 국내시장 경쟁도 심화돼 금융회사들이 국외로 진출해야 먹거리를 찾을 수 있다. 일본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외국 금융회사와의 인수·합병(M&A)이나 업무 제휴를 통해 국외 진출을 본격화했다. 그 결과 상당 수준의 국제화를 이뤘다. 국내 금융사들은 1960년대부터 해외 진출을 추진했지만 성과가 미흡하다. 국내 금융기관이 나라 밖에 둔 점포 수가 358개다. 한 점포당 서너명이 나가 있는데 그걸로 뭘 하겠는가. 외형은 커지고 있지만 수익 창출은 미미하다. 지난해 상반기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에서 국외 점포가 차지하는 비중은 7.1%에 불과하다. 우리도 해외 진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 부임한 최종구 수석부원장에게 새로운 시각에서 해외 진출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라고 특별 지시를 내렸다.

일본 금융감독기관과 교류하고 있는데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는가.

일본 금융청과 '셔틀 미팅'(Suttle Meeting)을 하고 있다. 지난해 하타나카 류타로 당시 금융청 장관을 만났는데 일본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과 수익원 다변화가 금융산업의 불황 타개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일본은 1990년대 말부터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했다. 그 뒤 2000년대 중반부터 국외 진출을 늘렸다. 지금은 일본 3대 금융그룹의 영업이익 가운데 국외 비중이 26%에 이른다. 일본 은행들은 유가증권 투자나 각종 수수료 수입 비중을 늘리고, 증권사는 자산관리 서비스 비중을 확대해 수입원 다변화를 하고 있다. 또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금융청이 지역 금융기관들에 중소기업 성장 단계별로 차별화된 맞춤형 금융지원을 하도록 했다. 이런 정책이 일본 중소기업의 경쟁력 유지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지난 4월17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장 접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중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왼쪽)이 정남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편집장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서민금융 아는 사람이 소비자보호 맡아야"

일본 양적완화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그렇잖아도 최근 일본은행의 대규모 양적완화에 따른 엔화 약세와 관련해 각종 지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주식시장이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금융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까지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식·채권 시장의 일본계 자금은 현재 각각 6조원과 5천억원에 불과하다. 올해 들어 빠져나간 자금이 2500억원가량이다. 국내 은행의 엔화대출 잔액도 지난해 말 1조엔가량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엔화 약세 지속은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출에 많이 의존하는 기업이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지 않도록 자금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

재산공개 내역을 보니 보유 재산이 고위 공직자 중 꼴찌 수준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무능하다는 얘기 아니냐. (웃음) 아버지가 사업하다 망하는 바람에 부채만 물려받았다. 한번 마이너스가 되니까 메우기 쉽지 않더라. 그래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아쉬운 소리 할 게 없었다. 월급으로 밥 먹고 아이들 교육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공직자는 권력과 돈과 명예 셋 중 하나만 가져도 행복하다. 재산으로만 보면 내가 서민이라 서민금융을 제일 잘 알 것이다. 조만간 소비자보호처장을 뽑아야 하는데 서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모셔올 것이다. 가능하면 여성 금융인, 그것도 은행에서 서민을 상대로 밑바닥 금융을 해본 사람이면 좋겠다.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마음대로 올려서 문제가 됐는데 그런 걸 해본 사람이 소비자나 서민을 보호하는 일을 하면 내부 사정을 잘 아니까 훨씬 잘하지 않겠는가.

리더의 방침을 충실히 따르는 '참모형'이라는 평가가 많다.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금융감독원장을 보좌하는 참모로 밖으로 나서면 안 되는 자리다. 수석부원장으로 재직한 지난 2년 동안 단 한번도 기자회견이나 언론 인터뷰를 한 적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젠 금융감독 수장 역할이 주어진 만큼 금융감독원의 얼굴로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이 고민할 것이다. 금감원 임직원들이 이뤄놓은 일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금융위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도 있나.

그동안 금융정책 현안에 대해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언론에 비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표현상의 차이를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일 뿐 두 기관의 기본적인 감독 철학과 정책 방향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또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오랜 기간 공직 생활을 함께하면서 동고동락한 친한 동료이자 존경하는 분이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두 기관의 협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외아들이다. 판잣집에서 자랐다는 그는 어머니 얘기를 꺼낼 때면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여전히 25평 아파트에 사는 그는 지금껏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그는 행정고시 25회로 재무부 이재국에서 공직 생활의 첫발을 디뎠다. 모피아(재무부 관료)의 피가 흐르지만 그는 지금껏 모피아로 분류된 적이 없다. 서울대 상대와 법대 출신이 득세하던 재무부에서 서울대 생물교육학과는 비주류였던 셈이다. 청와대 근무 뒤 미국 세계은행 파견근무에서 복귀한 그는 이전까지 동료들 가운데 선두주자였음에도 한동안 보직을 맡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 업무보고 때 사용한 무보직국장임을 뜻하는 '금융위 국장' 명패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때의 아픔과 상실감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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