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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신(新)정경유착, 한국 경제 걸림돌
창간 3주년 특별기획- 한국 경제의 미래를 말한다
[37호] 2013년 05월 01일 (수) 이재명 economyinsight@hani.co.kr

   
 
이동걸 한림대 객원교수는 재벌이 주도하는 정치권 및 관료와의 신정경유착이 존재하는 한 한국 경제의 앞날은 암울하다고 전망했다. 재벌에 모든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고 재벌은 이를 이용해 다시 경제적 이익을 독식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는 창조경제가 아닌 '창조적 변신자'만 득실거린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한국 경제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진단하는가.

글로벌 경제와 사회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고체계는 여전히 하드웨어적이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구시대의 사고방식과 관행으로는 새 시대를 열 수 없다. 정치·경제 분야 모두에서 새로운 유형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박정희·이병철·정주영·김우중 같은 사람으로 대표되는 구시대는 황무지 개척의 시대이자 모방의 시대였다. 당시엔 추진력과 돌파력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했다. 이젠 미지의 신세계를 열어야 하는 상황이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처럼 미래를 읽고 사람들의 창의성을 끌어낼 수 있는 리더가 나와야 한다. 이를 가로막는 게 '신(新)정경유착'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재벌은 무한하다'는 말처럼 재벌이 정치와 관료를 주도하는 신정경유착은 관 주도의 '구(舊)정경유착'보다 훨씬 영속적이고 영향력도 광범위하다.

재벌이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그렇다. 재벌이 중심이 돼 정관계·언론계·학계를 아우르는 기득권 카르텔이 혁신과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재벌에 자원과 권력이 집중됐고 재벌은 이를 이용해 다시 경제적 이익을 독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다양한 집단이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특정 집단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야 한다. 재벌은 노동자, 소비자, 중소기업 등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중심에 있다. 경제민주화의 요체는 국가나 시장 운영 참여자들의 권리와 권익이 균형 있게 반영되거나 대변되는 것이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전부는 아니지만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출발선에서의 기회 균등, 과정에서의 공정한 경쟁, 결과의 공평한 분배로 요약할 수 있다. 나는 삼성그룹(삼성전자가 아니다)이 없어지면 우리나라가 더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쪽에서 그 정도의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창의성 가로막는 재벌 독식 체제

재벌개혁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무엇인가.

정책적 수단은 이미 공론화돼 있다. 하나라도 확실히 하면 된다. 제도를 만들어놓아도 집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공직을 맡으며 경험한 것은 집행을 위해선 제도가 필요하지만 제도가 있다고 모두 집행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환상이 깨진 게 바로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이었다. 당시 금융기관(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8%로 정해놓고 8% 밑으로 내려가면 자동적으로 조처를 취하도록 했다. 그러나 관료들은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팔리기 직전까지 자기자본비율을 8%라고 속였다. '멀쩡한 은행을 왜 파냐'고 하니까 그때서야 8% 밑이라고 보고했다. 외환은행은 아무리 잘 봐줘도 자기자본비율이 5~6%를 넘을 수 없었는데 관료들이 액션을 취하기 부담스러우니까 수치 자체를 왜곡한 것이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단계에 접어들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는 분명 위기 국면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사람에게서 경제의 활력을 찾아야 한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는 게 우리나라에 재주꾼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돌 위주의 가요계가 밖으로 문을 여니까 인재가 나타나고 활력이 생겼다. 케이팝 한류 열풍도 처음엔 연예기획사의 기획상품으로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자유분방한 싸이, 기획사를 뚫고 나온 JYJ 등이 이룬 게 더 많다. 경제가 성숙하면 성장률이 하락하는 건 당연하다. 대신 안정적 성장의 모습을 갖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희생하는 성장은 무의미하다. 무리한 성장률 제고는 재벌만 혜택을 보게 된다. '부자 기업, 가난한 국민'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이명박 정부가 보여줬다. 성장의 양에서 질로 눈길을 돌려야 할 때다. 성장률이 높아야 더 좋다는 사고방식을 바꿔야 재벌 등에 업히려는 기대 심리도 덜해질 수 있다.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갈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중산층을 확대하고 국민의 평균적 생활과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고 성장을 외면할 순 없다.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경제학에서 재화의 가격은 상대적 희소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인력이 부족하고 자본은 널려 있다. 그런데도 사람값은 안 오르고 자본값만 올라가는 건 비정상적이다. 사람에 대한 보수를 늘리고 투자를 늘려 분배를 개선하면 성장잠재력도 올라간다. 전제조건은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충분하고 노력에 대한 대가나 보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일어난 벤처 붐은 미국 '개러지(창고) 벤처 신화'의 한국판이었다. 적은 월급에도 합숙까지 해가며 죽기 살기로 전력투구한 건 성취감과 함께 성공에 대한 보상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벤처 붐엔 한계가 있었다. 바로 금융시장에서의 과잉 투기와 기득권 및 재벌 대기업의 장벽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100대 기업의 설립 연도와 성장 과정을 분석해보라. 미국은 지난 150년 동안 10년 단위로 현재의 대기업들이 순차적으로 태동해왔다. 구글과 아마존은 1990년대에 마지막으로 탄생한 기업이다. 이런 기업은 대부분 창업주의 생존 기간에 10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대기업은 아이디어와 창의성만 있으면 자본이 따라와주고, 당대에 급성장이 가능한 환경이 150년 동안 지속됐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30~40년 동안 대기업으로 성장한 곳이 한두개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클 수 있는 생태계를 재벌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대부분 크다 말거나 도태된다.

   
한겨레 김명진
신생 기업이 성장할 수 없는 생태계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도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령화는 15~64살 생산가능인구가 65살 이상 노인인구 몇명을 먹여살려야 하느냐의 문제다. 여기에 유소년 부양비까지 포함하면 2060년엔 10명이 일한 몫으로 20명이 먹고살아야 한다. 일하는 사람 처지에선 내가 벌어들인 것의 절반을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더 오랜 기간 자력으로 버틸 수 있게 해야 한다. 고령자의 경제적 기여와 자립 기반을 제고하려면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정년 연장을 잘못하면 전반적인 임금수준을 낮추거나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 청년과 노인이 일자리 또는 임금을 두고 충돌하는 '제로섬' 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 노인에게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일과 다른 성격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대형마트 계산원을 굳이 젊은 여성들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젊은 사람은 더 활력 있고 창의성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이낳기 운동이라도 해야 한다. 나도 딸아이에게 아이를 낳으면 키워준다고 사기를 친다. (웃음) 저출산의 원인은 양육·교육비 같은 경제적 부담도 있지만 여성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로 직장을 떠날 경우 경력이 단절되고 재취업도 어렵다. 매월 양육비로 20만~30만원을 지원하거나 셋째아이 등록금을 깎아주는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과거엔 여성이 결혼하거나 출산하면 퇴직해야 했다. 그땐 남자 혼자 벌어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미래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이 벌어도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세대에 투자하라고 할 순 없다. 핵심은 여성이 직장과 미래에 대한 안정을 찾도록 해야 한다. 또한 여성 차별을 없애고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 잠재성장률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일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잘할 수 있다. 요즘 교사·공무원 등 시험으로 뽑는 직업에서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만큼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방증인데, 정작 기업은 남성 위주의 대인관계를 중시하다보니 여성이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가 최소한 여성이 받는 이런 불이익만 철저히 막아줘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육성, 내수 확대, 서비스산업 육성도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단골 해법이다.

공감한다. 문제는 여전히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던 식으로 서비스산업을 키우려는 것이다. 자본력으로 밀어붙이는 착취적 유통업, 대형 영리병원 등 재벌 의존적 성장 모형이다. 보수집단과 관료집단이 지닌 사고의 한계다. 기업과 산업이 '자본과 재화의 집합체'가 아닌 '사람의 집합체'로 변해야 서비스산업이 발달할 수 있다. 사람이 기계의 일부이고 사람이 기계와 자본을 돕는 체제에선 사람이 소모품이 된다. 기계와 자본이 사람을 돕는 체제가 바로 서비스산업이다. 30명의 재벌 총수가 자본을 동원하는 게 제조업이라면 서비스산업에는 30만, 300만, 3천만명의 우수 인력이 필요하다. 현재 30대 재벌이 서비스산업에서도 경쟁력을 갖는 분야는 자본력에서 비교우위에 있거나 이를 이용해 인재를 독식하는 분야, 그리고 일감 몰아주기와 불공정거래가 통용되는 곳에 불과하다. 내수 확대는 성장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개방경제에선 중소기업의 내수 경쟁력이 곧 국제 경쟁력이다. 지금 문제는 내수 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내수를 키우면 중소기업엔 그만큼 유리하다. 또 내수 기반 확대는 분배 개선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새 정부가 내놓은 창조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참여정부의 '비전 2030', 이명박 정부의 '지식·녹색경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창조경제의 키워드를 '상상력·창의력·융합·문화'라고 하는데 과거와 다른 게 없다. 예전에도 해법이 안 됐는데 지금 와서 해법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본인들도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듯하다. 박근혜 정부에 창조가 있다면 '창조적 변신자', 즉 정권을 넘나드는 기회주의적 창의성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어떻게 창조경제를 추진하겠는가.

선진국들은 너도나도 통화 완화나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에 나섰다. 한국에도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은 수출 대기업의 수익성을 늘렸지만 물가 상승으로 서민·중산층의 생계 부담을 증가시켰다. 서민·중산층이 재벌 대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 셈이다. 엔저로 재벌 대기업의 수출이 줄고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서민들이 타격받을 이유는 없다. 환율전쟁은 국가 간의 '네거티브섬 게임'이다.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환율전쟁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도 고환율 정책을 계속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재벌기업들이 적응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거시적 부양책보다 미시 정책이다.

사람과 중소기업 중심 경제로 가야

   
한겨레 김명진
한국 금융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권과 정부 관료는 금융을 관리·장악하기 위해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는 대신 정책적 편의를 제공해왔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금융 분야를 무주공산으로 여겨 영구히 지배하자는 불순한 의도를 가졌다. 재계는 재벌이 관료보다 우위에 있지만, 금융 분야는 아직 관이 우위에 있다. 여기에 은행 등 금융은 정부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금융지주회장이나 은행장은 금융에는 문외한이나 정치에는 고수였다. 그러다보니 경영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뒀고 손쉬운 돈벌이만 추구했다.

한국이 지향해야 할 경제발전 모델은 어떤 것인가.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반성과 관료 주도 경제의 한계에 대한 재인식부터 이뤄져야 한다. 정부·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박정희 시대의 관 주도 개발독재, 민주화 이후 재벌독재 성장 모형은 모두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변화의 방향이 사람과 중소기업 위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기업은 자력으로 생존·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모든 지원은 개인·중소기업에 집중함으로써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클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일단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

miso@hani.co.kr

* 이동걸 한림대 객원교수는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김영삼 정부에서 금융개혁위원회,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에서 일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금융연구원장을 맡고 있던 2009년 1월 이명박 정부가 연구기관들을 '싱크탱크'가 아니라 (정부 입장만 홍보하는) '마우스탱크'(Mouth Tank)로 여긴다고 비판하며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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