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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경제학은 가라, ‘개도국 경제학’이 뜬다
[경제와 책]<대안의 경제학> 스티글리츠 외 지음
[3호] 2010년 07월 01일 (목) 조계완 국내편집장 kyewan@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은 큰 도전을 맞고 있다. 어느 정도 상처를 입은 건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틀림없다. 전통적인 경제 이론이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이론으로 휴지통에 버려질 수 있을까?
주류 경제학은, 현실 경제에 대한 설명·예측력이란 측면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몇 가지 이유로 당장 폐기될 수 있는 그런 물건은 결코 아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 이후 200여 년의 기나긴 경제학 역사에서 주류 경제학은 현실의 실증 데이터로부터 숱한 검증과 테스트를 받아왔다. 순수 이론적인 측면의 도전도 적지 않았다. 이런 수많은 도전과 시간의 풍화를 견뎌내며 여전히 살아남아 있지 않은가?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가장 흔하게 그 증거로 언급되는 것이 자유무역의 이익을 간명하게 주창하고 있는 ‘비교우위’ 가설이다. 그동안 수많은 쟁쟁한 이론가들이 비교우위설을 대체하는 새로운 무역 이론과 무역 정책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거듭되는 도전을 받아왔지만 비교 우위설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 만한 이론은 아직껏 등장하지 않고 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공부하고 설파해온 전통적 경제 이론을 신념에 찬 어조로 그렇게 옹호하고 있다.
 
각국 상황에 맞는 경제 이론 필요
이런 경제학 세계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미 컬럼비아대)는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 경제학을 다시 쓰려고 분투하고 있다. 그는 과연 주류 경제학의 철옹성을 깰 수 있을까?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미국 재무부가 20년 넘게 전세계에 강요해온 ‘워싱턴 컨센서스’(긴축재정·복지 삭감·규제 철폐·민영화·자본시장 자유화·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정책적 처방으로 표방)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닌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지난 2000년 워싱턴에 모여 정책대화구상(IPDㆍInitiative for Policy Dialogue·의장 스티글리츠)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경제 전문가 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IPD는 전세계 개발도상국들을 돌면서 ‘국가별 대화’라는 이름이 붙은 정책회의를 열었다. <이단의 경제학: 성장과 안정의 이분법을 넘어>은 IPD의 정책 연구 결과물이다. 한국·타이·인도네시아·일본·말레이시아·멕시코·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체코·헝가리 등 아시아·라틴아메리카·동유럽의 이행기 경제까지 망라하면서 개도국(또는 신흥국)의 경제성장과 안정에 관한 거시경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스티글리츠가 새로 체계화하려고 분투 중인 ‘개도국(또는 신흥국) 경제학’은 뭘까? “거시경제학은 선진국에서, 선진국 위주로 발전해왔다. 거시경제 이론과 정책의 관심사는 선진국에서 인플레이션 억제, 완전고용 그리고 경제활동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써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그러나 거시경제 정책은 심지어 선진국에서도 약속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경제학이 이룬 그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거시경제 정책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놓고 견해차가 여전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개발도상국은 여러 학파 이론을 여과 없이 가져다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들 이론을 개발도상국에 적용하는 것이 정당하거나 적절하다는 근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개도국이든 선진국이든 경제법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희소성은 엄연한 현실이며 수요곡선은 우하향한다. 거시경제학의 기본 항등식은 동일하다. 경쟁시장에서 균형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경제법칙은 보편적일지 몰라도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차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훌륭한 경제 이론과 바람직한 정책 분석이라면 모름지기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찾아내고 이런 차이가 경제 성과와 정책 수행의 차이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 즉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각국의 고유한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러 대안적 관점 통합한 제3의 관점 
그럼 왜 ‘이단’인가? 이 책은 전통적인 케인스학파 관점, 보수파 관점, 그리고 여러 대안적 관점을 통합하는 ‘제3의 관점’ 등 세 가지 전형적인 정책적 관점을 이용해 복잡한 각종 거시경제 정책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저자들은 제3의 관점을 ‘비정통파’(Heterodox) 관점이라고 부른다. 전편에 걸쳐 발견되는 단어는 ‘증거’다. (그 처방의 정책적 효과에 대한)“증거가 없다” “증거가 극히 취약하다” “제시된 증거가 극히 제한적이거나 빈곤하다”. 보수파 관점에 입각한 개도국에 대한 기존 경제학적 처방들은 ‘증거 부재’를 앞세운 스티글리츠의 글 속에서 전혀 맥을 못 춘다. 사실 경제학 역사에서 1990년대 이후의 경제학은 주류의 표준적 경쟁 모형의 중요한 한계들, 특히 경제변동에 대한 설명력의 한계들을 제시하거나 더 나아가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시 차원의 ‘행태경제학’이 그렇고 거시 차원의 ‘신흥국 경제학’이 그렇다. 그럼에도 주류 경제 이론은 여전히 강고하고 또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할 것 없이 그 이론의 가르침을 받아 수많은 경제정책 처방들이 수립되고 있다.
모든 개도국을 경제적 번영으로 이끌 표준적 지도 지침으로 제시된 ‘워싱턴 컨센서스’는 주류 경제 이론이 정책적으로 표현된 것에 불과했다. 컨센서스의 핵심 내용 중 자본시장 자유화는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가장 먼저 비판에 직면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자본시장 자유화를 반대하는 주장들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논의는 이제 대부분 시효가 지난 것으로 생각한다. 대다수 나라가 이미 자유화됐으며 뒤집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 즉 그들은 자유화가 엄연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유화를 한 뒤에도 대다수 개도국은 여전히 대규모 (경제적) 충격과 사회·경제적 비용을 이겨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거시 안정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부의 능력은 약화돼 있다. …이미 진행된 일은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유화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주류 거시경제학 비판서
흔히 경제학에서 ‘이단’은 마르크스주의를 지칭하지만, ‘이단의 (개도국) 경제학’은 전혀 볼온하지 않다. 개도국 경제학은 △어떤 경제정책이든 채택할 때는 상충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은 정책 당국의 목표, 해당국의 거시경제적·제도적·정치적 특징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장 개입이 이론적으로 바람직한가의 여부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경제적 편익이 비용보다 크도록 개입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느냐다, 라고 제시한다. 정책 효과에서의 상충관계, 비용과 편익 모두 주류 경제 교과서에서 흔히 동원되는 분석 도구다.
이 책은 재정·통화·환율·물가 등 개도국의 경제성장과 안정을 좌우하는 거시경제 변수들을 총망라해 짚고 있다. “경제는 누를수록 더 세게 튀어오르는 강한 스프링에 비유할 수도 있고, 너무 세게 누르면 아예 찌그러져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약한 스프링에 비유할 수도 있다. 증거를 보면 경제는 강한 스프링보다는 약한 스프링에 더 가깝다. …보수파 경제학자들은 개도국이 완전고용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선진국 채권자들이 대출금을 온전히 돌려받는 것에 더 관심을 쏟는다.” 보수파 거시경제학자일수록 항상 ‘물가 안정’을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와 달리 비정통파는 ‘실질 경제변수의 안정’(성장·고용·소득분배 등)과 빈곤층의 장기적 후생 향상을 경제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시장경제는 언제나 높은 수준의 변동을 겪었다. 경제학이 발전했어도 변동은 없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증거가 있다. 경제를 안정시키고 경기 하강에 대처하고 인플레이션을 예방하는 안정 정책을 어떻게 수행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경제학은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경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정교한 계량경제 모형이 발전했는데도 우리는 몇 년은 고사하고 몇 달 앞의 경제 상황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다.” 

‘개도국 경제학’을 주창하다
스티글리츠가 1994년에 쓴 <시장으로 가는 길>(Whither Socialism?)이 유인과 정보 불완전성 개념 등을 동원한 미시경제학 비판이라면 <이단의 경제학>은 거시경제학 비판이다. 주류적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스티글리츠의 경제학 비판 작업은 이제 미시와 거시가 합쳐친 ‘개도국 경제학’ 주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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