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안철수 대선 후보가 광주의 한 노인복지관을 방문해 식사를 하고 있는 노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2020년이 되면 노인인구 비율이 14.4%에 달해 고령사회로, 2026년께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도달한다. 그럴 경우 일본처럼 투표율이 높은 노인층이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실버민주주의의 폐해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세대 간 분열과 대립을 뼈대로 하는 정치권의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 자신의 지지층이라 여겨지는 세대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다른 세대를 끌어안으려는 통합 전략으로 가야 한다.

'실버민주주의'(Silver Democracy)는 조어에 익숙한 일본에서 나온 표현이다. 모든 유권자가 1인1표의 동일한 권리를 행사할 수는 있지만, 전체 유권자 중 고령자가 많아져 이들의 의견은 수월하게 제도권에 반영되고 상대적으로 소수자가 돼버린 젊은 층의 의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유엔 기준에 따르면 65살 이상이 돼야 '노인'이다. 노인이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라고 하고, 14%를 넘어서면 '고령사회'(Aged Society)라고 한다. 그리고 20%를 넘어서면 '후기고령사회'(Post-aged Society) 혹은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라고 한다. 일본은 1970년에 고령화사회로, 1994년엔 고령사회로 들어섰다. 2006년엔 65살 이상 노인이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프랑스·독일·영국 등이 1970년대에 먼저 고령사회가 됐지만 일본은 앞선 고령사회 국가들을 추월해 초 고령사회에 세계 최초로 진입했다. 2011년엔 노인인구 비율이 23.4%까지 증가했다. 국민 4명 중 1명은 65살이 넘은 노인인 셈이다.

그렇지만 단지 고령층의 비율이 높다고 해서 실버민주주의 국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중의 집합적 의사가 확인되는 선거에서 고령층의 위력이 실제로 확인돼야 한다. 일본의 선거에서는 고령층의 높은 투표율과 젊은 층의 낮은 투표율 현상이 더해지면서 고령층의 의사는 과다 대표되고 그 외 연령층의 의사는 과소 대표되는 일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2010년 7월에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의 투표자 중 60살 이상의 비율은 45%에 달했다. 선거에서 주요한 쟁점이 되는 사안이 존재하고 이들이 그 이슈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갖고 있다면 선거 결과 예측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쟁 결과의 불확실'이라는 선거의 기본 전제가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고령층의 표심이 선거의 최종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고령층의 지지를 받는 자민당은 실버 세대의 충실한 대변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자민당 정부는 이전 정부가 추진한 노인 의료비 인상 계획을 유보했다. 또 재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30~40대 젊은 층이 경제적 수혜자가 되는 아동수당 정책을 폐지했다.

한국,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

20~30대 젊은 층은 1980년만 해도 전체 유권자 중에서 45%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0년 선거에서는 30%로 떨어졌다. 투표한 사람들 중에서 20~30대는 1980년엔 42%에 달했지만 2010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22%까지 추락했다. 30년 사이에 절반이 된 것이다. 2010년 선거에서 일본 유권자의 평균연령은 56살이었는데 20년 뒤에는 60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투표자의 평균연령은 더 높아질 것이다. 정치적으로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일본'이 된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2000년 65살 이상의 노인인구가 전체의 7%로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20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14.4%에 달해 고령사회로, 2026년께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도달한다. 2030년엔 24.3%, 2060년엔 40.1%까지 높아질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라고 했던 일본보다 더 가파르게 진행 중이다. 일본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고령사회 시작에서 36년이 소요됐지만 우리나라는 예측치이긴 하지만 26년 만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고령층의 위력도 지난 대선에서 확인된 바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고령층의 정치적 결집은 일본보다 더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일본만 해도 국민소득이 4만달러로 높은 상황에서 고령화가 나타났지만 우리나라는 고작 2만달러인 상황이다. 게다가 일본은 노인 복지 시스템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갖춰져 있다. 일본의 고령층은 연금으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이미 형성돼 있다.

일본에는 우리에게 당연하게 인식되는 자녀의 부모 노후 부양이 사실상 없다. 같은 집에 사는 경우도 거의 없는데다 자녀가 부모에게 매월 일정액의 경제적 지원을 하는 일도 흔치 않다. 그만큼 독자적 생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고령층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 공급과 관련한 제도적 노력도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다. 반면 우리나라 고령층이 자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활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연금은 부실하고 노인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도 미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면에서 이들이 정치적 파워를 인식하고 정치적 집단행동을 선거를 통해 더 뚜렷이 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13일 강원도 인제문화원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 200명이 소양교육을 받고 있다. 뉴시스

실제 '노년유니온'이라는 적극적으로 노인 복지를 요구하는 단체도 생겨났다. 최근엔 이들이 주축이 돼 박근혜 대통령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을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선거 때 약속한 노인을 위한 복지정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으로 고령층의 사회적 의식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게다가 선거를 앞둔 정당의 속성을 감안하면 고령층의 정치화를 유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표를 먹고 사는 정당은 이들의 보팅파워(Voting Power)에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선거가 다가오면 이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공약을 내놓으려 할 것이다. 권력의 유지와 확장이라는 당면 과제 앞에서 이런 유혹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젊은 층과 고령층이 서로 다른 정치적 경향을 갖게 된 것은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한 동질성 약화가 한 원인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 양상으로 전개된 것은 정치권 탓이 크다. 무조건적 지역주의 투표 경향도 사실은 각 지역의 맹주들이 득표 전략의 하나로 공격용 또는 방어용으로 지역 균열을 활용했기 때문이듯이, '세대 투표' 양상이 도드라진 것도 정치권에서 세대 균열을 확대해 선거 전략의 하나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를 양분해 두 정치세력이 한쪽씩 나눠 갖는 전략은 기본 수준의 득표를 모두에게 보장하는 방법이다. 두 정당이 일정 수준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확실하고 손쉬운 선택인 것이다. 현재의 여당은 안보와 경제성장을 기치로 고령층에 쉽게 다가가 견고한 지지층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분단국이라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실이 이런 전략의 성과를 보장해줬다. 이들의 높은 투표율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야당 역시 세대 구분을 기본 선거 전략으로 채택해왔다. 최근 선거들에서 젊은 층 결집을 제1목표로 해왔다. 20∼30대가 비록 투표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인구 구성 비율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대 이상보다 훨씬 앞섰기 때문에 승부를 해볼 만했고, 대통령 선거처럼 전 국민적 관심이 높은 경우에는 이들의 투표율을 높여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각 정당 모두 나름의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라고 자평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세대를 두 그룹으로만 구분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직무태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균열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령대별로 다양한 요구가 있을 수 있다. 또한 경제적 수준에 따라, 사회적 계층에 따라 바라는 정책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정책적 조합이 필요하고, 다양한 그룹들에 대한 설득과 지지층 흡수를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했다.

세대 균열 전략은 정치권의 직무태만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그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저 양쪽 중 하나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해지고 선거에서 지지를 받는 유권자들로부터도 그다지 신뢰를 얻지 못했다.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게을리하다보니 무능하다는 지적도 늘 받아왔다.

정치권의 불성실한 세대 접근 전략과 우리나라의 급속한 고령화가 계속될 경우 세대 갈등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부담층인 젊은 층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또 고령층은 복지 혜택 확대가 절실하기 때문에 이들이 대립 또는 충돌할 수 있는 것이다. 자칫 우리 사회 통합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고령층을 강력한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는 여당은 젊은 층의 반발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새 정권에서 청와대의 청년위원회에 통합위원회를 설치하려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것이 상징적 행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실제 선거가 다가오면 쉬운 카드를 들려는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사회의 근본 문제를 고치려는 장기적 안목과 의지를 지녀야 한다. 고령층에 대한 복지 공약을 내세워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싶겠지만 먼저 젊은 세대가 노년 세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령 복지정책을 결정할 때도 수혜자와 부담자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 세대가 참여하는 가칭 '세대 간 조정위원회'나 '합의위원회' 등을 설치해 상호 이해와 합의에 기반한 복지정책 결정이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세대 간 갈등과 대립이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야당도 젊은 층뿐만 아니라 고령층도 지지층화할 수 있도록 부단한 정치적·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존 2030세대와 5060세대로 이분화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분법은 50대에게 젊은 층에 대비되는 고령층이라는 인식과 보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작용이 나타난다. 연령을 굳이 구분해야 한다면 20~30대 젊은 층과 40~50대 중·장년층, 60살 이상 고령층 등으로 더 세분화해 접근함으로써 40~50대에 먼저 다가가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불리한 구도를 완화하고 40~50대를 놓고 여당과 경쟁함으로써 종국엔 세대 간 대립을 다소 약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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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웅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서 수석전문위원 겸 조사분석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경기개발연구원 정책분석팀 연구원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waymaker2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