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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한푼 안내는 검은 소득 290조원
[Cover Story] ② 국내의 탈세 및 조세회피 실태
[36호] 2013년 04월 01일 (월) 김연기 economyinsight@hani.co.kr

기업들 역외 탈세 증가로 추징액만 연간 1조원… 고소득 전문직 탈세도 조직화·전문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하경제'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증세 없는 복지 재원 마련 방안의 하나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국내의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0~30%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지하경제란 과세 당국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모든 경제활동을 뜻한다. 밀수 등 범죄 행위뿐 아니라 현금거래를 통해 소득을 감추는 것도 포함된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도 역외거래를 통해 소득이나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수천억원대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법정 구속된 권혁 시도상선 회장이 지난 2월12일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김연기
부편집장

"역외 탈세자들은 과세 당국에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회계법인도 해외 기관을 활용합니다.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세무 전문가, 변호사 등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탈세 전략을 짜는 등 치밀하게 범죄를 저지르죠.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역외 탈세자들에 대한 정보 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현재로서는 해외 민간 정보를 통해 적발에 나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죠."

5년 넘게 역외 탈세 적발 업무를 해온 국세청 관계자의 이야기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기업들의 역외 탈세는 이른바 '지하경제'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지하경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분야의 인력 400명을 보강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하고 지하경제 양성화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역외 탈세,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 가짜 석유 제조·판매자, 불법 사채업자 등 4대 분야가 집중 조사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지하경제는 국내총생산(GDP) 집계에서 빠진 불법적 생산활동을 뜻한다. 지하경제 하면 흔히 사채, 성매매, 마약, 밀수, 도박 등 불법적인 활동을 떠올린다. 그러나 소득을 축소 신고하거나 현금거래를 하고 과세 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도 엄연한 지하경제의 일부다. 또한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 탈세도 지하경제의 한 축을 이룬다. 정부에 보고되지 않는 모든 소득이 바로 지하경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3일 내놓은 '지하경제 해소 방안' 보고서에서 "지난해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약 290조원으로 GDP의 23%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지하경제의 특성상 정밀한 집계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자에 따라 지하경제 추정치도 차이를 보인다. 지하경제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린츠대학(오스트리아) 교수는 2010년 내놓은 연구보고서에서 한국의 지하경제를 GDP의 26.8%라고 추산했다.

또한 조세연구원은 2010년 지하경제 규모가 GDP의 29.9%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 공약집에서 지하경제 규모가 370조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6%를 양성화하면 2014년에 1조6천억원의 추가 세수를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치인 13%에 비해 훨씬 높고 개도국 평균(26.2%)과 비슷한 것으로 낯부끄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세금이 무거워지고 이를 걷는 그물망이 촘촘해질수록 여기에서 빠져나가려는 노력도 더 치열해진다. 매출 수천억원 이상의 대기업들의 탈세 방식은 갈수록 교묘하고 대범해지고 있다. 역외 탈세가 대표적이다. 역외 탈세는 바하마, 버뮤다 같은 조세피난처에 세운 법인 등을 통한 거래로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 거주자의 경우 외국에서 발생한 소득도 국내에서 세금을 내야 하지만 외국에서의 소득은 숨기기 쉽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최근 2200억원대의 조세포탈과 900억원대 횡령 혐의로 법정 구속된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이 사용한 방법이 역외 탈세다. 영국의 비정부기구(NGO) 조세정의네트워크는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한국에서 외국의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 규모가 7790억달러(약 836조646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국세청은 2011년 역외 탈세 조사로 9637억원의 탈루 세금을 추징했다. 지난해는 상반기에만 105건을 조사해 4897억원을 추징했다. 김민정 연구위원은 "역외 탈세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적 규모의 초일류 금융기관이 슈퍼 부자들의 세금 회피를 돕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조세피난처 이용한 기업 탈세 증가세

브로커를 이용해 현지에서 돈을 주고받는 '환치기' 방식은 이제 촌스러운 수법이다. 역외 탈세자들은 대부분 조세피난처에 주소를 두고 국내 비거주자임을 내세우며 국세청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는 이들에게 그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매출을 누락시키거나 현금거래를 통해 탈세를 저지르다 적발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지투데이

지난해 국세청에 적발된 해운업체 A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사 사주 김아무개씨는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버진아일랜드에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한 뒤 해외 현지법인 지분을 SPC에 넘겼다. 이후 해외 현지법인에서 나오는 배당소득은 SPC를 거쳐 스위스 등에 미리 만들어둔 김씨의 비밀계좌로 빠져나갔다. 국세청은 민간 정보까지 구입하는 과정을 거쳐 김씨의 역외 탈세 전모를 파악해 지난해 소득세와 법인세 등 208억원을 추징했다.

분식회계를 통해 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리거나 축소해 고의로 왜곡시키는 것도 기업들의 고질적인 탈세 방법이다. 분식회계는 탈세는 물론 주주와 채권자들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대체로 팔지도 않은 제품을 팔았다고 허위 매출전표를 끊어 매출액을 늘리거나 채권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쌓아놓은 대손충당금을 적게 잡아 이익을 부풀리는 수법이 주로 사용된다. 2007년부터 분식회계에 대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감독 당국의 감시도 강화되면서 이런 수법은 차츰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탈세를 목적으로 이익을 축소하는 방식의 분식회계는 여전하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금 부담이나 노동자에 대한 임금 인상을 피하기 위해 실제보다 이익을 적게 계산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기업 합병 과정에서 편법으로 회계를 처리해 법인세를 빼돌리는 것도 대표적인 분식회계를 통한 탈세다. 피합병회사에 적립해야 할 대손충당금을 합병회사에 쌓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절감하는 수법이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기업들의 탈세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2월 탈세 상위 100대 기업을 공개한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은 "이중장부 작성 등을 통해 세금을 빼돌릴 경우 최소 3년 이상(포탈세액 5억원 이상)에서 5년 이상(포탈세액 10억원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지만 법원의 판결이 관대해 '탈세를 하다 걸리더라도 나중에 뱉어내면 된다'는 심리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매출을 누락시키거나 현금거래를 통해 탈세를 일삼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과세 당국의 끈질긴 단속에도 고소득 전문직이나 자영업자의 탈세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국내 고소득 전문직 개인사업자 수는 2만6870명이다. 1인당 소득은 변리사가 6억180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변호사(4억2300만원), 공인회계사(2억9100만원) 등의 순으로 소득이 높았다.

그러나 매출액(수입 총액)을 정확하게 신고했는지를 평가하는 지표인 매출과표 양성화율을 보면 60%대에 머물러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상반기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339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해서 2229억원의 탈루 세금을 적발해 추징했다. 성형외과 상담실장 출신인 ㄱ씨는 "현금결제 유도를 통해 소득을 탈루하고 차명계좌를 만들어 매출을 빼돌리는 수법은 이 바닥에서 고전적인 수법"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가 전하는 한 치과병원의 신종 탈세 수법을 들어보자. "지난해 초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치과병원이 환자들에게 수술비 15%를 깎아주는 대신 현금거래를 요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죠. 그러곤 우리 직원이 환자로 가장해 직접 현장에서 세금 탈루 사실을 적발했어요. 비용이 30만원을 넘으면 환자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의무적으로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줘야 하지만 이것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죠. 이런 경우는 보통 병원장실 금고나 사무장실에 비밀 장부를 만들어놓고 회계를 이중으로 처리하는 사례가 많아요. 그런데 이 병원은 아예 병원 주변에 별도의 사무실을 차려놓고 그곳에 전산 시스템을 갖춰놓은 뒤 조직적으로 자료를 조작했죠. 우리가 세무조사에 착수하자 전산 시스템을 파기하면서까지 거세게 저항하더군요. 결국 우리 전산팀이 전산 데이터를 복구한 뒤에야 정확한 탈세 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병원은 당시 3년 동안 304억원을 벌어들인 뒤 195억원을 누락 신고했어요. 탈세를 목적으로 비밀 사무실까지 따로 차려놓고 매출 서류를 조작하는 수법을 그때 처음 보고 우리 직원들 모두가 혀를 내둘렀죠."

   
국세청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세무조사 분야의 인력 400명을 보강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하고 지하경제 양성화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국세청 건물. 뉴시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지하경제의 대부분이 현금거래를 통해 이뤄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금거래에 따른 지하경제가 모두 탈세를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골목 상인 등 영세 자영업자들의 현금거래와 일용직 노동자의 생산활동은 탈세 목적보다는 제도가 마련되지 못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는 명분으로 과세 당국이 이들을 무리하게 단속하면 서민층의 생산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해서는 국내 실정에 맞는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며 "영세 자영업자들의 과세 저항 및 서민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고소득 자영업자의 전문적인 탈세와 기업들의 역외 탈세를 집중적으로 단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ykkim@hani.co.kr


전직 성형외과 상담실장 ㄱ씨 인터뷰

"수술비 10%는 상담실장 성과급"

성형외과·치과·피부과 등이 왜 탈세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겁니까.

잘나가는 성형외과 상담실장 월급이 1천만원을 넘어요. 어지간한 페이닥터(월급제로 근무하는 의사)보다 많죠. 이 가운데 기본급은 월 100만원 안팎이에요. 나머지는 전부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죠. 일반적으로 수술비의 10% 정도를 상담실장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병원이 굴러갈 수 없어요. 비급여 항목(질병·부상의 치료 목적이 아니거나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이 많은 성형외과에서는 상담실장이 환자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병원이 죽고 삽니다. 특히 상담실장의 영업에 의존하는 고가의 비급여 항목 수술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보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탈세가 손쉽게 이뤄지고 이는 곧 병원의 매출 증대로 직결되죠. 이뿐이 아닙니다. 성형외과나 치과에 가면 현금결제시 더 싸게 해준다고 하잖아요. 현금결제 유도도 상담실장의 주요한 임무입니다. 카드로 결제하면 소득이 세무 당국에 노출되기 때문에 세금을 내야 하지만 현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병원이 상담실장에게 두둑한 인센티브를 챙겨줄 수 있는 것도 이런 검은 소득이 있기 때문이에요.

왜 탈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합니까.

대부분의 성형외과 의사들 소득이 8800만원(세율 38%)을 넘어요. 100만원을 벌어서 40만원을 세금으로 내는 거죠. 그러니 아깝다고 생각해서 현금거래를 환자들에게 권하는 거죠. 30만원 이상은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행하게 돼 있잖아요. 이를 어기면 미발행 금액의 50%를 과태료로 내게 돼 있어요. 어차피 5년에 한번 하는 정기 세무조사 때 다 걸리게 돼 있어요. 기왕에 걸릴 거, 벌어놓을 때 왕창 벌어놓고 세금도 한꺼번에 내겠다는 마음으로 이렇다 할 죄의식 없이 탈세를 하는 거예요.

국세청의 단속이 느슨하다고 보면 됩니까.

국세청이 단속 대책을 내놓으면 그때는 이미 다른 수법으로 갈아탄 뒤라고 보면 돼요. 어지간한 세무 전문가 뺨치는 수법으로 치밀하게 전략을 짜죠. 병원 상담실장들이 밥 먹고 하는 일이 어떻게 하면 탈세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데 국세청이 아무리 촘촘하게 조여온다 한들 빠져나갈 구멍을 못 찾겠어요? 요즘은 국세청 직원들이 환자로 가장해 현장에서 바로 적발하는 사례가 많아요. 병원에서도 이를 모를 리 없죠. 비용 상담 때 환자를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면 '아, 이 사람이 진짜 치료를 받을 환자구나' 하는 것 정도는 금세 감이 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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