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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페이스북, 돌연변이 해방구
[IT@econo]
[3호] 2010년 07월 01일 (목) 김국현 IT칼럼니스트 economyinsight@hani.co.kr

김국현 IT칼럼니스트ㆍ블로그 ‘김국현의 낭만 IT’ 운영자
 
   
 
변화가 왔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온갖 스마트폰들이 신기한 모습을 드러내고,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낯선 서비스들로 갑자기 세상이 시끄럽다. 웹이라는, 누구나 만지작거릴 수 있는 보편적 네트워크가 형성된 지 어느덧 21년. 이제 완연한 성인이 된 이 기술은 지금까지 보여온 청소년기의 미숙함과 혼돈을 뒤로하고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힘은 인간의 생활양식마저 뒤바꿔버릴 기세다. 인류 확장의 도구로서 웹은 지금 그렇게 본격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웹에 의한 인류 확장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할 때 역시 가장 뜨거운 이야기 ‘클라우드’(cloud)1)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정보 생산과 소비 행위는 서로 떨어져 있었다. 생산은 주로 PC 안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루어졌고, 데이터도 그 안에 있었다. 그중 일부만 가공돼 웹에 업로드되고 소비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을 PC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저 너머 구름 어딘가에 두고 바로 쓴다. 클라우드와 함께라면 인터넷이 연결된 곳 어디에서도 같은 데이터,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이 PC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정보와 그 처리 활동이 내 소유물에 의존하지 않는 초월성이 클라우드의 첫 번째 본질이있다.
클라우드는 어려운 정보기술(IT) 이야기, 게다가 기업 전산실이나 관심 가져야 할 이야기가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물론 핵심 역량이 아닌 것을 믿을 만한 제3자에게 돌림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경영 전략에서 클라우드라는 개념이 나온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생활인을 위한 클라우드도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을 뿐,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웹메일 서비스다. 포털의 웹메일은 데이터와 조작 방식이 모두 클라우드에 보관되기 때문에 아무 브라우저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메일을 쓰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정도라면 그냥 웹페이지와의 차별점을 알 수 없다. 클라우드라 불릴 만한 신형 웹메일 서비스들은 PC의 아웃룩 애플리케이션, 스마트폰용 프로그램 등으로 접속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클라우드와 연결 가능한 이런 창들이 지금도 증가 중이다. PC상의 브라우저는 물론 스마트폰, 태블릿 단말기 등 무궁무진하다. 작금의 ‘앱’(app) 열풍은 이 클라우드로의 접속 가능성이 불어준 것이다. 바로 이 ‘제3자의 접속 가능성’에 클라우드의 두 번째 본질이 있다.
 
신경세포 웹에서 중추신경 클라우드로 

바야흐로 클라우드란 ‘언제, 어디서나’라는 편리함에 만인의 참여를 허락한 것이다. 이 개방된 참여는 지구를 덮을 중추신경이 되기 위한 환경과 조건을 형성한다. 데이터는 물론 그 데이터를 다루기 위한 조작 체계가 모두 이 신경망 위에 있는데다, 이 조작 체계를 다루기 위한 말단, 즉 창과 단말에 제약이 없고, 또 그 일부는 제3자가 만든다. 실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거대한 기계적 신경 체계가 천공에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요즘 뜬다는 서비스는 모두 이러한 기계 신경망의 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애플의 백병전이 펼쳐지는 최전방도 역시 이 신경망과 말단을 쟁취하기 위한 고지 쟁탈전이다. 표면적으로는 역사상 유일무이한 말단 신경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를 아이폰·아이패드의 애플과 구글이 이끄는 안드로이드 연합군이 공격하는 모양새지만, 이 경쟁의 종점은 말단이 아닌 바로 이 중추신경 전반에 흐르는 신호를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일에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성장세는 괄목상대하다. 트위터를 예로 들면 매일 30만 명이 신규 등록을 하고, 월간 순방문자 수는 1억8천만 명이다. 한국의 경우도 지사는커녕 한글화도 안 된 사이트의 국내 성장률이 전년 대비 19배였다니 실로 손 안 들이고 일취월장이다. 그러나 사용자 계층이 다양하지 않고 절대수도 한국의 지배적 포털 사업자들에 비하면 아직 그리 대단치 않아 보인다.
그러니 그저 새로운 웹사이트 하나가 떴다가 마는 거려니 하면, 그 이면의 변화는 볼 수 없다. 최근의 트위터 열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트위터의 앞면이 아닌 뒷면의 통계다.
트위터 트래픽의 75%는 트위터 사이트가 아닌 제3자, 즉 PC에서 폰까지 퍼져 있는 다양한 ‘앱’에서 온다. 이 앱을 트위터 클라우드와 연결하는 신경회로인 API로 1일 30억 건의 신호가 오고 간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트위터는 그 이용 행태를 볼 때 더 이상 단순한 웹사이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웹으로 트위터에 접속하는 사람들보다 전혀 무관한 제3자가 만든 어떤 프로그램, 즉 앱으로 접속하는 이들이 훨씬 많은 것,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특이한 종류의 팽창을 일으키는 새로운 종류의 맹아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도 많은 이들의 눈에는 그저 외국인의 싸이월드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거의 세계 정복의 기세로 팽창 중이다. 오늘의 페이스북을 해가 지지 않는 왕국으로 만든 배후에는 그 유연한 결합 가능성이 있었다. 한국의 여러 서비스들이 우리야말로 소셜 네트워크의 원조라며 토종 서비스와 흡사한 외산 서비스가 승승장구하는 것에 분개하며 실패 원인을 분석하지만, 페이스북 성공의 내막은 어떠한 아이디어도 바로 세포분열 뒤 배양할 수 있는 줄기세포와도 같은 플랫폼으로 여겨지게 했다는 점에 있다.
 
   
 

맹렬한 세포분열
모든 종류의 아이디어로 분화 가능한 무한한 가능성의 플랫폼, 마치 줄기세포 소동의 신기루와도 같은 ‘원천’ 플랫폼, 바로 이들이 참여자에게 선사하는 비전이다. 예컨대 ‘소셜 네트워크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는 페이스북의 이 비전에서 기인했고, 바로 이 비전을 주는 일이 이들이 몰고 온 변화의 원천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홀로 기능하지 않으며 유아독존도 아니다. 구름 속에 차려진 이 거대한 중추신경 체계는 가치의 회로를 만들고 다른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맹렬하게 결합하며 더 거대한 생체로 거듭 변모해간다. 이 내일을 알 수 없는 돌연변이의 세포분열 가능성에 바로 이 신세대 플랫폼들의 괴력이 있는 것이다.
클라우드란 정말로 구름, 구름처럼 뭉게뭉게 퍼져나가는 모습 그대로의 은유였던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오픈’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열림의 어감과는 달리 매우 철저한 자본주의적 선택이다. 서비스, 즉 기업의 성장에 필연적인 혁신을 아웃소싱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네트워크 외부성, 즉 네트워크 효과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재화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결국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듯이, 이 플랫폼을 선택하는 주체들은 결국 다른 서비스의 영향을 받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 제품과 서비스에 결속된 서비스가 많을수록 사용가치는 더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오픈이란 오히려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얻어야만 하는 성공 조건이었다.
소셜 네트워크는 현존의 인맥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가능할 수도 있는 인맥을 그려주는 사회화 도구다. 그런데 소셜 네트워크의 중흥은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사용자들의 소셜, 즉 수요자의 사회화라기보다 오히려 공급자의 사회화 측면을 위한 필연적 이행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한때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기술혁신이 가져온 고도화로 인해, 불변 자본, 즉 기계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 예측했다. 이는 작금의 IT 혁명을 놓고 보면 타당한 예측이다. 점점 더 많은 기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분명 우리의 고용 상황도 변모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IT 혁명이 생산수단의 민주화를 불러일으켜, 누구나 강력한 생산도구를 소유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불변 자본의 자유로운 임차와 교환, 복제, 확장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PC 등장이 생산도구 민주화의 1차 혁명이었다면, 웹과 클라우드의 등장은 그 혁명의 완수와도 같은 사건이다.
 
마르크스가 예견 못한 혁명
예컨대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는 분명 초거대 자본가지만 누구나 어떠한 노동계급이라도 이들의 플랫폼에 무료로 혹은 필요한 경비만 내고 편승할 수 있다. 전세계를 뒤덮은 그들의 구름을 활용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한다. 그것이 대자본의 혜택을 허락 없이 쓰고 쓴 만큼 지불하는 클라우드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마찬가지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자신을 결합하려는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플랫폼을 아이디어만으로 결합할 수 있다. 이들 자본가의 설비를 자신의 생산수단으로 허락 없이 결합해 사용할 수 있는 세계가 앞으로 우리가 부딪힐 사회인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노동 소외도, 이윤율 하락도 걱정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매출로는 측정할 수 없는 미래 가치에 열광하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시장을 키워갔다. 이 산업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잉여가치를 노동자가 아닌 플랫폼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를 파국으로 몰고 가리라 예측했던,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자본 구성 내 모순적 경향은 자본주의에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현실의 물리적 제약이 리셋된 네트워크 저 너머에서 목격된 가능성이다.
그 시절 마르크스는 분명 정답을 말했다. 그의 말대로 노동자 한 사람이 노동하는 데 들어가는 생산수단 규모는 갈수록 커졌다. 그러나 그 생산수단이 자본가의 반복 투자에 의한 점유물이 아닌, 노동자의 것일 수 있을 때, 그리고 일개 노동자의 생산력이 때로는 자본의 그것을 능가할 수도 있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그는 얘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본가인 마이크로소프트도 구글도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모두 처음에는 다른 자본을 이용하고 그래서 능가할 수 있었던 일개 지식 노동자에 불과했음을.
그러나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을 볼 때 이보다도 소셜 네트워크 본연의 기능, 즉 인간 사회화의 도구이자 장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만약 내가 어린 학생일 때 이렇게 나를 확장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됐더라면, 즉 지금과 같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가 있었다면, 나의 세계 인식 능력은 전혀 달라졌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 지식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라니, 당시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교과서는 진리라고 생각했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암송했다.
지금은 모든 일을 실시간으로 의심할 수 있고, 내 손끝으로 지구 반대편까지 순간 이동해 찾아가 진실을 검색해낼 수 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얼마든지 재구성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다.
자기의 능력과 소질이 아직 발현돼 전개되지 않는 무자각 상태에서 자기 변화와 생성의 계기를 지닌 자각적 상태로 성장하는 장. 이런 장을 가공할 효율로 만인을 위해 운영할 수 있다니, 소셜 네트워크의 괴력은 여기에 있다.
역사란 그 모순에 눈뜬 실천적 주체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이 주체가 주어진 상태를 개혁하는 일이다. 그것이 이 사회를 순방향으로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다. 최근 트위터를 통해 목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들은 이런 사회변혁의 도구이자 전위로서의 소셜 네트워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실천적 주체를 키우는 공간으로의 네트워크가 자본주의하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예고된 수순이었다.
 
로그온과 프롤레타리아 해방
선조들은 세상을 보기 위해 저잣거리에 나가야 했다. 신문이란 것이 생기면서 잘난 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문화가 생겼고, 이를 한꺼번에 대규모로 전달하는 산업이 생겼다. 포털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의 우리가 어디까지 이 정보 중개인을 자처하는 이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가족과 주민과 시민의 이야기는 소외되고, 전대로부터 물려받은 경전과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근대화의 집단적 교의가 정보의 공백을 채울 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말초적 유희물만이 감각기관을 자극할 뿐이었다. 그러나 신문·방송과 같은 대규모 정보 전달 체제의 효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주체를 우리 자신으로 복권시킨 거대한 네트워크가 등장했으니, 그것이 바로 인터넷, 웹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다.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지는 이 공간에서 주어를 다시 ‘나’와 ‘우리’로 되돌리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가상세계에 불과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물질적 생활을 위해 불가결한 생산과 재생산이라는 근대적 의미의 노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다. 오히려 노동을 그리워해 소셜 게임 ‘팜빌’과 같은 유희적 노동에 탐닉한다. 대신 그들은 끊임없이 더 즐거운 노동에 탐닉하는데 그것은 정보를 만들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지식 노동이다. 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대의 공기인 타임라인에 자신의 의지를 흘려보낸다. 현실에선 질곡에 힘들기만 했던 일이 의외로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이익 추구 활동에 집착하는 시민사회의 이기적인 개인이 공민(Citoyen)으로 변모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그 안에서 인간은 현실에서 잃었던 소통의 힘을, 희로애락의 맥박을 재발견한다. 심지어 공공선의 형성과 실현에 현재 자신의 처지, 계급과 무관하게 참여하고 발언한다. 국가도 아닌 시장도 아닌, 어찌 보면 시민사회의 이상과 흡사한, 국가와 시장마저 감시하는 공적이자 중간적인 결사체를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민중은 국가를 통해 환상에 불과한 공동성을 상상하며 자위하고 있고, 시민사회 속에서는 현실의 불행을 은폐하려 종교에 빠져들고 있다. 세상이 그렇기에 우리는 노트북 앞에서, PC방에서, 외로운 현실을 내려놓고 돌아온 그 브라우저 앞에서, 필사적으로 나름의 이상적 공동체를 꿈꾸고 찾아갔던 것이다. 웹에서 클라우드로 우리 생활과 비즈니스의 신경세포로 성장해가는 이 현재진행형의 네트워크. 현세의 경제적·사회적 숙제와 모순을 이야기해내기에, 이 무한한 자유의 네트워크 이외에 적절한 광장은 아직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완전한 상실과 인간의 완전한 되찾음”으로 묘사된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은 우리가 현재 만끽하는 가상세계로 로그온하는 일을 묘사한 것만 같다. 우리는 상실의 현실에서 잊혀진 자신을 되찾으려 이 슬프지만 희망의 네트워크로 로그온하는 것이다.  

1)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은 인터넷 기반(Cloud)의 컴퓨팅 기술을 의미한다. 인터넷상의 유틸리티 데이터 서버에 프로그램을 두고 그때그때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에 불려와 사용되는 웹 기반 소프트웨어 서비스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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