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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본드, 그리스 본드
[Focus]그리스 국채
[3호] 2010년 07월 01일 (목) 알렉산더 슈몰치크 Alexander Smoltczyk economyinsight@hani.co.kr

알렉산더 슈몰치크 Alexander Smoltczyk <슈피겔> 기자

  2010년 4월29일 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통화를 했다. 그리스 문제가 주제였다고 한다. 그 직전에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다시 한번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이때부터 그리스의 신용은 투기등급으로 전락했고 ‘정크’(Junk·쓰레기, 투자 부적격)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그리고 독일 언론에는 비웃음이 가득한 ‘그리스인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게재됐다.
바로 그날 나는 그리스를 돕기로 결심했다. 그리스 본드를 살 생각이었다. 어쨌든 그리스는 인류에게 민주주의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그리고 논리학이라는 큰 유산을 남겨준 나라가 아닌가? 수학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리스는 현재 3100억유로 상당의 국가 부채를 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있는 에미리트NBD 은행의 지점장이 직접 고객상담실로 나왔다. 이 은행은 얼마 전부터 이곳에 살기 시작한 나의 새 주거래은행이다. 그는 문을 닫고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고객 보호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국채를 사는 걸 그만두라고 권고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지점장에게 마약을 10g쯤 팔라고 물어보기라도 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우리는 고객님의 낙관적인 투자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우리 은행이 그리스 본드를 거래하고 있는지부터 투자 부서에 확인해봐야 합니다. 요즘 같은 때 낙관적 거래는 거의 없습니다. 확인 뒤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한 번 더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스 국채를 사다
국채는 한 국가의 빚문서다. 국가는 이 본드를 팔아 재정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이자와 함께 그 돈을 갚겠다고 약속한다. 보통 사람들은 국가의 약속을 믿는다.
유럽 국가의 본드는 지금까지 안전한 투자처로, 앞치마를 걸친 시장 참여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어찌됐든 2010년 4월27일, S&P가 그리스가 실제 채무 상환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독일에서 유럽 본드는 대개 프랑크푸르트의 주식거래 시장이 아니라 슈투트가르트에서 거래된다. 녹아웃형 증권(일정 가격 이상 오르면 되레 손실을 보는 상품)이나 높은 변동성을 노린 고위험·고수익형 증권 등 모든 종류의 금융파생상품이 가장 많이 거래되는 곳이 슈투트가르트다. 그리스 본드도 이곳에서 거래됐다.
한 대형 펀드회사의 여사장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무래도 양심의 가책 때문인 것 같다. 그녀의 개인적인 투자 전략에 따른 내 투자 포트폴리오는 지난 2년간 주가 하락이라는 쓴맛을 보았다. 사장은 “본사는 고객에게 그리스 본드의 매도를 권하고 있습니다. 꼭 원하신다면 주문을 할 수는 있지만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본사는 매도를 권합니다.”
나는 그리스 본드를 사기 원했고, 500유로 상당의 그리스 본드 WKN(독일 내 유가증권 인식번호) 248017을 84의 가격으로 매입했다. 여기서 가격은 본드 액면가에 대해 매입자가 몇%를 지급하려는지를 나타낸다. 즉, 84%는 100을 기준으로 할 때 상당히 낮은 가격이다. 내 본드는 신용평가등급 BB+로 정크에 해당한다. 그래서 싸다.
WKN 248017은 1998년 5월20일 당시에는 드라크마(과거 그리스 화폐)로 발행됐다. 그리스 재무부는 유로로 환산해 약 11억4천만유로를 빌렸고 15년 뒤 정확히 연이율 7.5%의 이자를 붙여 갚기로 약속했다. 채무 상환 날짜는 3년 뒤다. 만일 유로가 그때까지 존재한다면 말이다.
내 본드의 지난 1년간 가격 곡선은 마치 헬골란트섬의 해안절벽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난 이제 그리스가 진 빚의 일부를 소유하게 되었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이제 3100억유로 중에서 500유로를 나에게 빚지고 있다. 최소한 이제 난 그로부터 행운을 비는 편지를 받을 권리 정도는 있다.
 
내가 투기꾼?
2013년 5월20일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경제분석가들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채무를 상환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리스는 이르든 늦든 국채 재조정 협상을 해야 하고, 나 같은 채권자들에게 “돈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아예 돈을 못 받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라고 말할 것이다.
은행은 이런 조치를 ‘헤어컷’(시가 하락에 맞춰 증권의 장부상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칭한다. 헤어컷을 하게 되면 채권자인 나에게도 좋지 않지만 채무자인 그리스도 긴축재정과 개혁을 위한 압박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라구람 라잔 역시 나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다. “납세자 아니면 채권자, 누군가는 희생돼야만 합니다. 어느 선택도 기분 좋은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사람에게는 더욱 나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리스 본드를 믿었고 독일 연방 재무부 장관도 이런 나를 지원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은행에 그리스 본드를 구매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언론사들이 보도했다. 그를 방해하는 것은 점점 날카로워지는 정치적 중산층의 공격뿐이었다. 기사당(CSU) 사무총장 알렉산더 도브린트가 “그리스 경제 위기를 기회로 돈을 벌려는 투기꾼들을 처벌하기를 원한다. 투기로 한 나라를 망치는 자들에게는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내가 그런 사람인가? 이 말이 나를 두고 하는 소리일까? 아니다. 도브린트가 말하는 투기꾼은 다른 사람을 가리킬 것이다.
불안감은 걸프 국가에도 퍼졌다. ‘걸프 뉴스’라는 정보란에는 모든 유로존 출신의 외국인에게 아직 남아 있는 “저금을 관리할 수 있는” 해외 계좌를 열 것을 권고하는 글이 있었다.
5월6일, 그리스 본드의 스프레드는 8.18%가 되었다. 나의 두 번째 거주지가 되다시피 한 국채거래 시장은 불이 붙은 듯한 분위기였다. 나는 지금까지 스프레드가 빵에 발라먹는 소스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증권시장에서 스프레드는 가산금리, 즉 두려움을 모르는 투자자를 위한 보너스를 의미한다. 국채가 불안할수록 채권자에게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이제 그리스가 재채기를 하면 세계가 독감을 앓는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한 증권전문가가 얼굴을 감싸고 있다.
바다서 꽝, 산에서 꽝, 증시도 꽝

유럽 시장에서 스프레드는 지난 몇십 년간 채권시장의 바로미터로 인정돼온 독일 연방 국채를 기준으로 측정된다. 8.18%는 그리스 본드가 누군가의 관심을 끌려면 독일 연방 국채보다 8.18%만큼 더 지급해야만 한다는 소리다. 8.18은 좋지 않다. 매우 좋지 않다. 그리스는 사실상 금융시장에서 제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5월 초순, 당시 분위기는 좀 특이했다. 헤드라인 기사는 딥워터 호라이즌호(폭발 사고가 난 멕시코만의 석유 시추 시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원유와 에이야프얄라요쿨(아이슬란드의 화산) 화산재에 대한 보도였다. 주식시장의 공포가 화산재처럼 퍼져나갔다. 닿을 수 없는 경제 예측의 심연에서 진득진득하고 검은 배출물, 점점 더 어두워지는 전망과 부정적 예상이 쏟아져나왔다.
47개 은행 총재들이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장클로드 트리셰에게 편지를 보내, 손 놓고 보고 있지만 말고 빨리 회원국의 본드를 사라고 촉구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산) WKN 248017과 같은 채권을 말이다.
대부분의 본드는 은행들의 금고 안에 있었다. 그리스 본드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은행의 재무 상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은행의 주가도 떨어질 것이었다. ECB는 내가 며칠 전에 했던 것처럼 사상 최초로 평판이 나쁜 국채를 사들여야 한다. 이런 조치는 많은 분석가들이 설명하듯이 혁명인 동시에 항복 선언이 될 터였다. ECB가 중립성을 포기하고 정치적 요구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트리셰는 목요일 회의를 마친 뒤, 이 문제는 언급도 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딱 하루가 지난 뒤 ECB는 미친 듯이 본드를 사들였다.
5월7일 금요일, 주식시장은 침통한 분위기로 마감됐다. 달러 대비 유로 가치가 지난 14개월 중 최저치를 보였다. 그리고 나의 동료, (그리스 본드를 보유한) 연금펀드나 그 외 다른 펀드들은 유로화 가치가 더 하락할 것을 두려워하며 자신들이 보유한 유로화를 달러나 프랑크화 혹은 엔화 등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것을 ‘항복성 매도’(Capitulation Selling)라고 칭한다. 내가 이성적이라면 아마 똑같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해변에 누워 있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금요일은 금요일이니까 말이다.
금융시장의 참여자들은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돈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뛰어나고 양심의 가책 따위를 모를 뿐이다.
나도 본드 가격이 79로 떨어졌기에 공포를 느꼈다.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공기 중에는 화산재가 섞여 있고 멕시코만에서는 원유가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브뤼셀에서는 유럽연합 16개국 정상들을 태운 리무진이, 정치는 지질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트리셰가 유럽 정상들에게 지금 나타나는 징조에 대해 얼마나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EU 집행위원회 위원장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는 나중에 ‘그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지라도’ 유로화를 지키겠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이 문장은 나중에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집권 시기를 설명하는 문장이 될 수도 있다.
재무장관들은 일요일에 마라톤 회의를 했다. 영국의 재무장관은 크게 축소된 자국의 예산을 유로 지탱을 위해 내놓는 것을 거부했다. 프랑스의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EU를 ‘이연동맹’(Transfer Union)으로 변화시킬 것을 촉구했다. 독일 대표들에게 이 말은 나오기만 하면 성호라도 그어야 할 정도로 금기 단어다. 이것은 EU 내의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빚을 책임져줘야 한다는 일종의 국가재정 통합계획이다. 안데르스 보르그 스웨덴 재무장관 은 “이제 우리는 시장의 단체행동이 사실은 늑대 무리의 행동과 마찬가지란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약자들을 집어삼키려 한다”고 말했다.
이는 동물에게 적대적이고 늑대에 대해 선입견이 가득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늑대들은 브뤼셀 도심구역 바깥쪽에 사는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만일 재무장관들이 처음부터 그리스를 지원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면 유로화 환율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메르켈의 망설임은 늑대들을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군침이 돌도록 만들었다.
월요일 새벽 2시, 재무장관들은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 지원 프로그램인 ‘1조 달러 패키지’를 결의했다. 적들이 바로 등 뒤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그들은 극동 아시아에서 첫 번째 주식시장이 개장하기 전에 행동을 해야만 했다.
7시간 뒤 메르켈은 독일 자민당(FDP) 당수 기도 베스터벨레와 함께 총리 관저에서 언론 앞에 섰다.

늑대들의 집단 공격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 앞에 세워진 유로화 상징물.  한겨레 김순배
메르켈은 살짝 구겨진 베이지색 재킷을 입었고 베스터벨레는 광고계에서 제일 선호하는 밝은 파랑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메르켈은 “유로화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유로존 정상들은 우리 통화를 지키기 위해 집중적인 공동 조치를 취하기로 결의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마치 외계인이 침략 중이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적은 금융시장과 헤지펀드의 에이전트, 그리고 정치계에 숨은 그들의 협조자들로 이뤄진 작전세력으로, 월스트리트·런던·프랑크푸르트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진짜 적은 총리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단 두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독일 자민당(FDP)은 모든 시장의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당이다. 베스터벨레는 자세를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 “유로화는 안정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이 현상의 원인을 추적해 싸울 것입니다.” 그는 “이것은 물론 금융시장이 적절하게 통제돼야 하며 투기 감시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통제’와 ‘감시’. 이런 단어는 시장자유주의자가 자주 쓰고 말하는 단어가 아니다. 베스터벨레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메르켈과 베스터벨레가 나란히 서 있는 동안 유로화 환율(통화가치)이 상승했다.
늑대들이 지금 엄청난 돈을 잃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EU 집행위원회는 채권 문제가 발생한 나라들을 빠르게 도울 수 있도록 600억유로 상당의 ‘긴급구제기금’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IMF 또한 2500억유로를 지원했다. 이로써 IMF는 채무국 재정을 감독할 수 있게 된다. 볼프강 쇼이블레가 병상에 누워서 이 일을 진행시켰다고 한다.
그 밖에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결과가 결국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의 승리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이제 독일의 동의 없이도 긴급조치를 위한 유럽 각국의 대규모 지원을 빠르게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이를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칭하고 곧 EU가 새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마도 모토는 박애, 평등, ‘지갑’이 될 것이다.
결의한 조치들이 빠르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ECB는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회원국의 국채를 사들였다. ECB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로 여겨졌던 바로 그 행동이다. ECB는 이제 각 나라가 자국의 ‘채무 약속’(국채)을 사들이는 데 이용하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이는 야바위 노름과 상당히 비슷하다. 늑대들은 아마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이 조치는 성공적이었다. 메르켈과 베스터벨레가 베를린에서 연설을 하는 동안 독일의 한 작은 주식거래 시장에서 WKN 248017의 가격이 상승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지하창고에 처박아둔 그리스 본드를 ECB에 떠넘길 수 있는 것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시장에서 WKN 248017을 거래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기쁜 일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다음날 1면에 “그리스가 2001년 유로존에 참여한 이래 그리스 본드가 하루 기준으로 가장 큰 수익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메르시 무슈 트리셰!(감사해요, 트리셰 총재님!)
그리스 재무장관 기오르고스 파파콘스탄티누가 만기가 된 다른 국채를 EU의 돈으로 상환하자 스프레드는 5.1%포인트 하강했다. 그리스 본드는 더 이상 정크가 아니었다.
주식거래 시장의 일주일이 끝나는 5월14일 금요일, 내 그리스 본드의 가격은 99였다. 이것은 2주일 전보다 1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만일 지금 내가 본드를 판다면 난 89유로를 벌게 되고, 그리스의 채권자 리스트에 끼는 대신 그 돈을 즉시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써버릴 수도 있다.
여전히 헤어컷에 대한 공포가 떠돌고 있었다. 만일 그리스에 국가 부도가 발생한다면 각자 얼마나 손해를 봐야 하는가? 2000년 우크라이나에 국가 부도가 발생했을 때 채권자들은 1달러당 65센트를 받았다. 아르헨티나 때는 부분적으로 20센트밖에 못 받은 적도 있다. 이것이 헤어컷이다. 개별적인 머리 다듬기가 아닌 모두의 머리카락을 일괄적으로 잘라내버리는 것이다. 프랑스 은행은 750억유로를, 독일 은행은 500억유로를, 그리고 나는 500유로를 그리스에 빌려주었다. 만일 그중 절반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타격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국채를 매도한다면 이것은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에 대한 배신이 될 것이다. 그는 독일 은행들로부터 그리스 본드를 2013년까지 팔지 않을 것을 약속받았다.

불쌍한 포르투갈 국채 매입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낙관적인 투자를 하기로 결심하고 500유로만큼의 포르투갈 국채 매입을 원한다고 슈투트가르트에 전자우편을 보냈다. 포르투갈 국채 중에는 ‘AoDY6V’라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아주 불쌍한 국채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내 주식중개인이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포르투갈의 국채는 현재 거래가 전혀 없어 매입에 실패했습니다.” 위로의 의미로 그녀는 “그리스 본드는 지금 가격이 아주 높아졌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독일 정부는 예고도 없이 투기자들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 땅에서 ‘네이키드 쇼트 세일링’(Naked Short Saling·무차입 공매도)을 금지했다. 벌거벗은 공매도 금지? 이건 상당히 청교도적으로 들리는 단어고 사실 그렇기도 하다. 볼프강 쇼이블레는 이 용어를 ‘커버되지 않는 공매도’(보유하지 않은 증권을 판 뒤 가격이 떨어지면 되사서 갚아 차익을 실현하는 것)라고 번역했다. 투기꾼이 실제로 특정 유가 증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 증권의 가격 하락에 돈을 걸 수 없다는 결정이었다.
또 위험에 베팅하는 거래상품인 금융파생상품 역시 이제부터 금지될 것이다. “이 조치는 2010년 5월19일 00:00시부터 2011년 5월31일 24:00시까지 효력이 있으며 계속 점검될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을 위한 전화상담 번호는 0228/41084004”라고 독일 금융감독위원회(BaFin)는 설명했다.
독일의 이러한 조치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이것은 독일 연방의회에서 ‘1조 달러 패키지’를 수월하게 승인받기 위해 만든 정치적인 ‘술책’이라는 것이다. 사실 독일 금융감독위원회는 겨우 몇 주 전에 “지금까지 금융파생상품인 신용부도스와프(CDS·부도 위험에 대비한 보험상품)가 최근 그리스 본드 투기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메르켈과 쇼이블레는 웅덩이에서 헤엄치는 모든 의심스러운 오리를 총으로 일단 쏴버린 다음 자세히 조사해볼 생각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고 한 투자자는 말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독자투고란에는 영국 해협의 건지섬에 사는 한 사람이 올여름 그리스 해안에서 ‘네이키드 쇼트 저먼’(Naked Short German·키 작은 나체의 독일인)을 금지하라고 요구한다는 풍자 글이 실렸다.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은 ‘수출 중독자’ 독일이 자국 국민의 소비 증가를 유도하기를 기대한다. 절약 같은 것은 현 시기에서는 잘못된 방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메르켈과 쇼이블레는 이를 거절하고 있다. 그들은 투표권자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현재 이 투표권자들은 은행가나 펀드매니저 같은 부유한 증권거래 시장의 악당들이 벌 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피를 보고 싶어한다. 독일인이 이처럼 반자본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역사적으로 무척 오랜만이다. 심지어 총리마저 젊은 사회주의자(Juso)들처럼 ‘금융거래세’ 도입을 언급하고 있다.
5월20일, 이날은 내 본드의 생일이다. W248017은 12살이 되었고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다. 본드 가격은 안정적으로 98%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조숙한 아이들은 발달이 빠르게 이뤄지는 법이다. 한 고위급 독일 은행가는 이 가격이 ECB에 의해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프랑스 은행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트리셰의 중앙은행에 그들이 가진 그리스 본드를 팔아넘기고 있다. 5월24일, 메르켈이 아부다비를 방문했다. 방문 하루 전날 저녁까지 방문 일정은 결정되지 않았고, 하마터면 방문이 취소될 뻔도 했다. 메르켈은 아무래도 하루이틀 베를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던 것 같다. 베를린에서는 쇼이블레가 세금인상과 긴축재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81유로를 벌다
아랍에미리트 팔라스 호텔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이다. 이 호텔은 많은 부분이 진짜 금과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호텔 현관에는 유로화 때문에 한밤중에 갑자기 공황장애를 일으킬지도 모를 손님들을 위해 ‘금 자판기’가 24시간 작동하고 있다.
총리는 아랍에미리트 최초의 천연가스 충전소 개장식에 참여했다. “오늘 이 자리에에 함께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는 미래를 위한 전략적인 투자입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마을의 읍장이 하는 연설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단순한 일을 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메르켈에게 걸프국가 순방은 복잡한 독일 수도에서 벗어나 즐기는 잠시 동안의 휴가와도 같았을 것이다. 누구도 그녀에게 국가재정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의 주식거래 중개인은 슈투트가르트에서 기분 좋은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포르투갈 국채를 고객님을 위해 91%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6월7일 화면에 나타난 차트 곡선은 평평하고 안정적이었다. 이 곡선은 이제 잊혀진 4월과 5월의 깊은 하락세로 인해 말리려고 널어놓은 젖은 바지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메르켈과 트리셰 덕이다. 가격은 지난 며칠 동안 97.90에 안정적으로 머물고 있었다. 그사이 그리스 본드 거래는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했다.
어찌해야 할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모두가 일단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질리언 테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시장은 이제 유럽 국가의 국채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모르고 있다”고 썼다. 유로화 환율에 따를까? 지원 패키지에 좌우되나? 아니면 무슈 트리셰의 기분에 따라서?
난 이제 본드를 시장에 내놔 81유로의 수익을 거둘 것이다. 이것은 아주 복잡한 방법으로 1조달러 구조 패키지 중의 내 지분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결정된 총리의 긴축정책에 의해 즉시 매수될 것이다. 그리스 총리 파판드레우는 그동안 트리폴리스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는 혁명 지도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게 돈을 부탁할 생각이다. 이는 매우 이성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포르투갈 국채는 6월9일 87%로 하락했다. 장클로드 트리셰에게 편지를 써야 할 모양이다.
ⓒ Der Spiegel(distributed by NYT syndicate)
번역 황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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