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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나를 계속 글쓰게 만든다”
[Interview]날카로운 필봉 휘두르는 이준구 교수
[3호] 2010년 07월 01일 (목) 조계완 국내편집장 kyewan@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준구 저 <미시경제학>(법문사·초판 1989년) 교과서’를 떠올릴 것이다. 이준구 교수 본인의 말마따나 한국인 30만 명 이상이 이 책을 자기 집에 소장하고 있단다. 도서관 등에서 빌려 읽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이 책을 본 사람이 100만 명을 넘을지 모른다. 옆방에 연구실을 둔 정운찬 교수가 쓴 <거시경제론>(초판 1982년)과 함께 경제학 교과서의 쌍벽을 이루는 책이다. 정 교수는 오래전부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경제 평론 글쓰기를 활발하게 해왔고, 이명박 정부 들어 국무총리가 됐다. 반면 이 교수는 연구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오다 이명박 정부 출범 무렵부터 일반 대중을 향한 사회경제 평론 글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감세 정책, 대운하(4대강 사업),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후퇴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해오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좌빨 이준구’란 말까지 듣고 있다.
최근 이 교수는 <36.5℃ 인간의 경제학> 등 경제 교양서를 잇달아 펴내면서 대중과의 소통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데, 이 책은 전통적 경제이론을 비판하는 ‘행태경제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이 교수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도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준구 교수가 왜 저러지?’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아왔다. <이코노미 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들이, 내가 다소 거친 말투로 계속 사회경제 비평 글을 쓰도록 조장한다”며 “내 글에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합리적이지 않은 경제정책들을 비판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의 성장을 막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삼성(재벌)의 비중이 커질수록 우리 경제의 취약성 역시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부자라 해도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반면, 한국에서는 그런 부자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우리 사회에 통렬한 돌팔매를 날리는 지식인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6월15일, 이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지금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가 전세계 경제의 핫이슈다. 재정학을 가르치고 계신데, 지금 우리나라의 재정에 대한 평가는?
최소한 노무현 정부까지는 상당히 건전한 재정 수준을 유지해왔다. 남유럽 국가는 그동안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해온 측면이 있다. 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정부 지출 수요가 더욱 커지면서 재정위기가 증폭됐다. 우리나라 재정은 아직까지는 위험 경고를 발령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국가재정과 관련해 현 정부의 감세정책 충격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감세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해오고 있는데….
 감세로 인해 세수는 상당히 감소하고 있다. 부유층을 위한 감세정책으로 인해 조세 부담의 공평성도 해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감세를 통해 우리 경제가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가 감세정책 효과로 소비·투자 촉진을 들고 있으나 감세정책 이후 실제로 소비·투자가 눈에 띄게 개선된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 레이건 정부 시절의 감세정책을 언급한다. 즉, 미국의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1990년대 미국 경제의 번영은 레이건의 감세정책이 그 길을 닦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효과를 사후적으로 검증하기란 어렵다. 나를 포함해 많은 경제학자들은 1990년대 미국의 경제적 번영은 자국 산업 내부에서 생산성 저하에 대응해 혁신을 한 결과고, 덧붙여 미국이 정보기술(IT) 혁명에서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감세 효과가 아니라는 얘기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견해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른바 ‘고삐 풀린 시장’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문제점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은 모든 경제주체가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는 가정 아래 시장이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합리적인 건 아니다.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파생금융상품이 큰 문제가 됐는데 경제주체가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면 파생상품에 따르는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그렇게 복잡한 상품이나 그 리스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몇몇 경제전문가들이 일반인이 잘 알 수 없는 금융상품을 만들어내서 정보의 비대칭을 이용해왔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맹신은 버려야 한다.
그러나 이 교수는 (시장 효율성에 기반한) 전통적 경제이론을 주로 담고 있는 미시경제학 교과서를 썼다. 시장에 대한 견해를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달라.
사실 많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 규제보다는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믿는다. 예컨대 외환 가격이 등락을 거듭하거나 생활 물가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건 시장에서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부가 강제로 누르려고 하면 부작용이 커진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당국이 환율과 물가에 인위적으로 개입했으나 부작용만 키우지 않았나. 물론 시장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모든 일을 시장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 시장이 제대로 흘러가도록 물꼬를 터주는 식의 정부 개입은 수행해야 한다.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통제는 필요하지만 이를 넘어선 자의적인 시장 개입은 독이 된다. 내가 경계하는 건 바로 이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때부터 갑자기(?) 학교 연구실 바깥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사회경제 비평 글을 많이 쓰시는데, 이유가 있는가?
내가 사회경제 비평 글을 언론매체 등에 활발하게 쓰기 시작한 것과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공교롭게 시기가 서로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보수 정권에서도 사실 어느 정도 진보적 경제 개혁이 이뤄져왔다. 그러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진보적 기치를 내걸고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진보적 변화의 실제 속도는 똑같고, 단지 그때그때 정권이 표방하는 캐치프레이즈만 달랐을 뿐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에 이르면서 경제가 일종의 고원(고지대)에 도달한 측면이 있다. 즉,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7∼8%인데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은 한정돼 있다. 여기서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은 기술 진보뿐이다. 그러나 기술 진보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처럼 경제구조적으로 잠재성장률이 한계에 이른 상황인데,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부의 진보적 경제정책으로 인해 성장률이 낮아졌다고 오해했다. 진보의 불행, 보수의 행운은 이런 오해에서 비롯됐다(즉, 보수파가 정권을 장악하게 됐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회경제 비평 글쓰기를 시작한 건 사실 이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때가 노무현 정부 말기였는데, 참여정부가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우리 경제에 긍정적이라고 보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노무현 정부를 옹호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노무현 정부를 두둔하려는 게 결코 아니었다. 나는 참여정부에서 어떤 위원회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 막 사회경제 비평 글을 쓰기 시작하던 무렵 ‘착시 현상’을 주제로 글을 썼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시내에 들어서면 시속 60km 정도로 속도가 줄어드는데 사실 이 정도 속도도 그다지 늦게 달리는 게 아니다. 과거에 10%대 경제성장을 하던 시절에 비하면 낮은 것일지라도 5%대 성장이 결코 우습게 볼 만한 성장률은 아니다. 국민들이 이런 성장률에 이제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내 글의 주장이었다. 이명박 정권은 ‘진보적 정책은 실패했고, 보수적 경제정책으로 전환하면 7%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레토릭을 선전해 대중 유권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대운하 사업을 비판하는 어떤 글에서 ‘(내 자신이) 지식인으로서 통렬한 돌팔매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갑자기 강도 높은 발언을 하시는 걸 보고 적잖게 놀랐다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 나한테 그러더라. 서울대 교수가 글에서 왜 그런 과격한 표현을 쓰느냐고. 누가 그런 표현을 쓰고 싶어서 쓰겠는가? 스스로 격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어서다. 거친 표현이 글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건 나도 잘 안다. 다소 빗나간 얘기지만, 폴 크루그먼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타지 못할 거라는 예상도 있었다. 스웨덴 한림원이 워낙 보수적 인사들로 구성된데다 독특하게 크루그먼 글이 가진 진보적이고 신랄한 어조가 심사위원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 거라는 게 그 이유였다. 한반도 대운하를 정면 비판한 내 글을 블로그에 올렸을 때 2만 명 이상이 읽은 것으로 안다. 친지들한테서 그 글이 거칠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보자. ‘점잖은 글쓰기’만 해서는 내 주장의 강도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원래 거칠게 글을 쓰는 사람이 전혀 아닌데, 대운하 비판 글은 말이 안 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대한 나의 분노와 좌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다.
과격한 사람은 아니라도,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네티즌 사이에 ‘좌빨 이준구’란 말까지 떠도는 것으로 안다.
경제정책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으로 바라보지 말고 합리적인지 아닌지로 판단해야 한다. 물론 감세정책 비판에는 진보적 이념이 깔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대운하(4대강 사업) 정책은 진보 혹은 보수와 전혀 무관하다. 보수파라고 해서 4대강 사업을 지지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비용-편익 분석에 따른 경제적 타당성이 전혀 입증되지 못한 사업일 뿐이다. 현 정부는 이 사업의 편익이 비용을 초과한다는 점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내가 대운하 사업에 반대했다고 “넌 좌빨이다”라고 인터넷에서 누군가 악플을 단 것을 보았다. 전혀 의미가 없는 댓글이었다.  
 

   
이준구 교수의 블로그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 일부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고 마는데 이 교수께서 그런 비슷한 말을 하니까 관심을 더 갖는 것 같다.
우리 경제학부에서 지금 내가 가장 진보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진보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중도우파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현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를 하는 것을 두고 좌빨이니 하는 것을 보라.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보수화됐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부자들 가운데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에서는 이런 부자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상속세 폐지 반대를 앞장서서 주창하는 것을 보라.
정운찬 총리가 엊그제 “4대강 사업 규모 축소·속도 조절 안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환경적 가치를 도외시한 채 대운하의 편익과 비용을 주장하고 있다. 이 사업으로 인한 환경적 비용은 분명히 계산에 포함돼야 한다. 환경과 경제는 별개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정부가 논의할 수 있는 기본 틀을 제시하고 이것이 경제성과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지 판단해줘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수질 개선, 홍수방지, 용수 확보라는 레토릭만 내놓고 있을 뿐 환경적 가치에 대해 합리적으로 논의해볼 여지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경제성을 입증할 책임은 정부에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사회적 발언의 횟수와 강도를 급격하게 줄였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서 걱정이다. 4대강 사업을 접겠다고 선언하면 내가 글을 쓰는 것도 줄어들 텐데 그럴 전망이 별로 안 보인다.
현 정부에 참여한 다른 경제학자들이 개인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는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지난 2년6개월 동안 내가 쓴 사회경제 비평 글이 1980년에 교수 생활을 시작한 뒤 2008년까지 쓴 전체 비평 글보다 더 많다. 저쪽이나 나나 피차 개별적으로 반론을 펴고 있는 건 없다. 사실 정부 쪽에서 내가 지적한 점에 대해 반론할 여지도 없었다고 본다. 종부세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서 부부 합산 과세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렸는데, 내가 이 결정은 ‘수평적 공정성’(경제적 능력이 동등한 사람은 세금도 동등하게 내야 한다는 원리)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내 주장이 맞는지 틀린지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텐데 (정부 쪽으로부터) 아직까지 그런 반론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종부세가 후퇴한 것에 대해 줄곧 비판을 하고 있는데….
사실 종부세의 실질적 무력화는 우리나라 조세제도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명박 정부 경제팀에 불행이자 행운이다.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경제성장률 7% 공약을 달성하지 못한 핑계를 무엇으로 댈 것인가? 감세 등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다소 높일 수 있다손 쳐도 5∼10년의 기간이 필요하고, 현 정부 임기 안에 달성한다는 건 불가능한 목표다.
우리 경제의 재벌 체제에 대한 의견은?
나는 금융 쪽은 잘 모르지만 재벌정책과 관련해 ‘금산분리’가 이슈인 것으로 안다. 금산분리를 완화하면 재벌의 영향력이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이는 위험 요소다. 만약 삼성(또는 일반적 의미의 재벌 기업)이 침몰한다면 국민경제 전체가 위험해질 것이다. 삼성의 비중이 커질수록 우리 경제는 취약해진다. 물론 삼성이란 기업의 성장을 막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삼성(재벌)의 비중이 커질수록 우리 경제의 취약성 역시 커진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 재벌 규모가 커지면서 국제 경쟁력이 커지겠지만, 그 부정적 측면도 있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인간의 경제 행동을 전통적 경제이론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교수의 최근 책(<36.5℃ 인간의 경제학>)이 관심을 끈다. 왜 ‘행태경제학’에 주목하고 계신지?
인간의 선택과 경제적 행동에는 마음의 결이라는 게 있다. 내가 미시경제학 교과서를 쓰고 가르치고 있지만, 전통적 미시경제학에서 가르치는 인간의 경제행위에 대한 설명들을 무조건 맹신하면 안 된다. 건전한 비판의식은 필요하다. 물론 기존 미시적 분석틀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건 결코 아니다. 전통적 이론은 인간을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라고 전제하고 설명하는 반면, 행태경제학은 비합리적인 경제주체가 때로는 소음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행태경제학은 인간의 선택에서 질투심의 작용을 고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버드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졸업 뒤 평균 연봉 50만달러인 직장에서 25만달러를 받고 일할 것인지, 아니면 평균연봉 10만달러인 직장에서 20만달러를 받고 일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실험한 바 있다. 전통적 이론에 따르면 25만달러짜리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압도적인 다수가 후자를 선택했다. 행태경제학은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 행태경제학은 경제 행동에 대한 일종의 심리학적 분석틀인데, 전통적 경제이론의 대가들, 예컨대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이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하고 있다. 다만 우리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고,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측면이 있다. 자신들이 배우고 연구해온 전통적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과 이기심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효율을 중시할 뿐 윤리나 공정성은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제학 교과서에서 정의와 공정성은 별다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경제이론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기심을 강조하는 것으로 흔히 오해받고 있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도 찬찬히 읽어보면 윤리적 기초가 짙게 깔려 있다. 애덤 스미스적 이기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기적 태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 기초 위의 이기심이지 원색적 이기심이 아니다. 어떤 이론을 공부하든 윤리적 측면은 경제학자를 포함해 모든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품성이다.
활발한 블로그(jkl123.com) 활동과 관련해 ‘파워 블로거’라고 이름 붙이는 사람도 있는데….
내 블로그는 하루 한두 번 체크한다. 내 블로그에 출입하는 사람 수는 잘 모른다. 블로그 게시판에 올린 시론의 경우 회독한 수가 2만 명에 이른 글도 있다. 나는 파워 블로거가 전혀 아니다. 그런 말을 붙여준다면 영광이지만. 사실 나를 블로거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블로그에서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지속적으로 쓰고 계신데….
요즘 학생들이 공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하지만 그 공부가 지식 추구보다는 학점 따기나 스펙 쌓기에 치중되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도 이제는 ‘좋은 학점을 쉽게 따려고 전략적으로 수강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 떳떳이 말하고 다닌다. 그래서 제자들이 대학 생활을 좀더 행복하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도움이 될 만한 말들을 생각날 때마다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참고로, 학점 부여와 관련해 이 교수의 예전 별명은 ‘F폭격기’였는데 점차 학점을 후하게 주면서 별명이 ‘CD플레이어’ ‘부자 되세요’(BC를 많이 준다는 뜻에서 BC카드 광고 카피에서 따온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최근에는 학생들이 ‘그룹 아바(ABBA)가 되어 달라’고 요구한다”면서 웃었다).
이준구 저 <미시경제학> 책을 본 사람들이 꽤 많은데….
그 책이 나온 지 21년 됐다. 30만 명 이상이 독자로서 그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 인구 5천만 명 가운데 공부하는 사람이 1천만 명 정도라고 본다면 그중 약 3%가 내 책을 소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운찬 교수가 쓴 <거시경제론>은 초판이 내 책보다 7년 정도 앞서 나왔다. 그런데 정 교수의 책은 지금은 다른 교수님과 함께 쓴 ‘공저’ 체제로 가 있다. 반면 나는 여전히 솔로다. 좀 어거지를 쓴다면(웃음), 순수하게 ‘정운찬 거시’와 ‘이준구 미시’로 치면 내 책이 더 팔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의 인세 수입 덕분에 교수의 박봉에서 해방돼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들을 소개받았을 때 내 이름을 듣고 난 뒤 그 사람이 ‘나도 그 책으로 공부했다’고 말할 때가 많다. 내가 지금껏 쓴 경제학 교과서가 4권인데 이 교과서들을 보완 개정하는 작업만 해도 벅차다. 내가 경제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그 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논문을 많이 쓰는 것 못지않게 좋은 교과서를 써서 학생들이 좀더 쉽고 알차게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 교수를 보면 칼럼을 왕성하게 쓰고 있다. 현실 사회경제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발언에 대한 의견은?
나도 프린스턴대학에서 공부했지만 개인적으로 크루그먼 교수(프린스턴대)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의 글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경제를 보는 눈이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경제이론에 능통한 학자다. 이것이 몇몇 미국 경제학자들을 볼 때 내가 부러워하는 점이다. 경제이론 영역에서 (정교한 수리경제 모델 등으로) 일가를 이룬 뒤 그 이론에 기초해 경제 칼럼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나는 이럼 점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 대가의 반열에 이르지 못 한 상태에서 현실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어쩔 수 없다. 이는 우리 경제학자들이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다.
경제학 전공 교수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참여정부에서는 이정우 교수(경북대)가, 현 정부에서는 정운찬 교수가 정치에 참여했거나 참여하고 있다. 교수의 정치 참여에 대한 생각은?
남에 대해 얘기하는 건 곤란하다. 한 가지만 분명하게 말하면 나는 결코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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