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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힘을 틀어막아라
[Scholars Column]
[3호] 2010년 07월 01일 (목)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economyinsight@hani.co.kr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워릭대 정치경제학 명예교수
 

   
 
수십 년 동안 케인스주의는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의 ‘큰 정부’ 정책과 동일시돼왔다. 그러나 정작 존 메이너드 케인스 자신의 사민주의에 대한 태도는 복잡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케인스가 완전고용 같은 사민주의 핵심 정책들을 설계했지만, 그는 공공 소유나 복지국가의 거대한 팽창 등 사민주의의 또 다른 핵심 목표들까지 지지한 건 아니다.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하  <일반이론>)의 말미에서 케인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강점과 약점을 요약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 기업가의 진취성을 가장 잘 보장하는 체제다. 그러나 ‘규제되지 않은 시장’은 문명사회의 두 가지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결점은 완전고용 제공의 실패, 그리고 불평등한 소득분배이다”. 이는 좌파 사상과 딱 맞아떨어졌던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시사한다.

빚더미로 바뀐 금융자본
1936년 <일반이론>이 나올 때까지 사민주의자들은 완전고용을 어떻게 달성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자본가들로부터 생산수단을 박탈하는 정책을 추구했을 뿐, 어떻게 하면 이것이 완전고용 달성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전혀 해답이 없었다. 자본가계급은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실업 예비군’을 필요로 한다는 건 애초 리카르도와 마르크스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윤이 제거되면 실업 예비군의 필요성도 사라질 것이다. 이때 노동은 그 가치만큼 제대로 보상받을 것이고, 일할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일자리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총수요의 역할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이윤만 제거된다면 노동 수요가 항상 충분할 것이라고 가정해버린 것이다. 케인스는 심각하고 장기적인 실업 사태의 주요 원인은 노동자들이 자본 이윤을 잠식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에서 민간 기업의 투자 전망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라고 주창했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의 거의 모든 실업은 투자 수요 부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완전고용 달성을 위해 중요한 건 자본을 국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사회화하는 것이다. 만약 국가가 완전고용을 보장하는 수준의 투자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에 충분한 구매력을 보장해준다면, 산업자본은 여전히 민간자본의 손에 안전하게 맡겨질 수 있다.
그런 수준의 투자 수요는 저금리와 대규모 정부투자지출 등 통화·재정 정책으로 달성될 수 있다. 요컨대 케인스는 소유권 변혁 없이도 핵심적인 사민주의 목표들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또 소득재분배가 완전고용 보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소득층 소득이 증가해) 소비 성향이 커지면 “투자 유인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완전고용 유지에 필요한 저금리는 자본으로부터 발생하는 지대를 먹고사는 ‘이자 생활자들의 안락사’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들은 국가 개입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공공 부문은 민간 영역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고, 단지 보완할 뿐이다.
오늘날 완전고용과 평등사상은 사민주의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정치적 투쟁은 새로운 전선을 따라 치러져야 한다. 그 전선은 그동안 정부와 생산수단 소유자(산업가와 임대업자) 사이에 그어졌으나, 이제는 정부와 금융 사이에서도 그어지고 있다. 파생상품 시장을 규제하려는 유럽의회의 노력, 금융위기 이후 공매도를 금지하려는 영국 정부의 조처, 은행가의 보너스를 규제하라는 요구 등은 경제에 해악을 끼치는 금융 투기의 힘을 줄이려는 우리 시대의 표현들이다.

금융위기 방화벽 세우기
금융의 힘을 길들여야 한다는 요구는 대부분 세계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본은 상품이나 노동에 비해 더욱 쉽고 신속하게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대형 글로벌 기업들이 고도로 집중된 금융 자원을 활용해 각국에 대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리겠다”고 위협하면서) 탈규제를 요구해왔는데, 덩치가 커진 금융자본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더 큰 부채로 바뀌고 말았다. 케인스는 “충분한 투자를 보장하지 못하는 원인은 금융시장의 위태로움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의 시대보다 70년이나 더 지난 오늘날에 더 강력한 진실이다. 금융은 경제의 실물 생산 영역에 대한 투자를 보장하기보다는 금융적 수익 투자 자체를 확대하는 쪽으로 발달해왔다. 이런 현상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또다시 요구한다. 국가 개입은 민간 영역이 자체적으로 메우기 어려운 경제의 어떤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 현재의 위기는 민간 시장이 자기 규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국제적인 세금을 통해 자본 흐름에 다시 장벽을 세움으로써 위기를 글로벌화하기 전에 틀어막는 것 또한 정부가 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사민주의에 대한 케인스의 주요한 기여는 특정한 정책적 처방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공선의 궁극적 보호자’로서 국가의 임무는 시장의 힘을 보완하고 규제하는 데 있다는 그의 통찰에 주목해야 한다. 만약 국가의 나쁜 행위를 제지하기 위해 시장이 필요하다면, 마찬가지로 시장의 나쁜 행위를 제지하기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 오늘날 금융의 힘과 이윤을 제한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다. 
ⓒ Project Syndicat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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