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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경제민주화 믿을 수 있을까?
Cover Story 박근혜와 경제민주화- ② 전문가 진단
[33호] 2013년 01월 01일 (화) 이동걸 economyinsight@hani.co.kr

   
30대 그룹 회장들이 청와대가 주재한 수출·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맨 왼쪽) 이 구본무LG그룹 회장(가운데)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공약상 정책 진전 있지만 구조 개혁 방안 없고 공정거래 등 시장질서 개선에만 초점

박근혜 당선인은 경제민주화를 국민 통합, 정치 쇄신, 중산층 재건과 함께 4대 국정지표의 하나로 제시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재벌 지배구조 개혁과 관련해 조금씩 보수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처럼 집권 초반에는 개혁적 모습을 보이다 다시 보수적인 색채를 강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근혜식 경제민주화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결국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준비된 후보'였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선거 과정에 있었던 모든 일을 되돌아보니, 그리고 당시에는 잘 몰랐던 일들도 선거 결과에 비춰 되짚어보니 선거 전문가가 아닌 필자도 이제는 박 후보 쪽이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 얼마나 능숙하고 교묘하게 선거를 치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적어도 '선거 마케팅'에서는 준비된 후보가 완승을 거뒀다. 어찌 보면 15년을 철저히 준비한 후보였고 야당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선거 자원(?)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도 3%가량의 차이로 이겼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선거 마케팅으로 승리를 했지만 판매한 물건의 품질은 그다지 양질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박 후보가 과반의 표를 얻었지만 과연 국민의 마음까지 얻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박 당선인이 국민의 마음까지 얻으려면 '준비된 대통령'이 돼야 한다. 과연 준비된 대통령이 될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준비된 대통령이 될 '준비'라도 돼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 여러 면에서 걱정스럽다. 필자의 전공 분야인 금융과 경제민주화 정책에 관한 한 특히 그렇다. 박 당선인의 공약이나 그간의 언행을 보면 그가 과연 준비된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경제민주화가 선거 과정에서는 광고 문구였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실천해야 할 정책이다. 과연 공약대로 제대로 집행할지, 그리고 공약대로 집행한다고 약속한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 가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5개 분야, 35개 과제를 발표했다. 그중에서 중요한 내용만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경제적 약자 보호 방안이다. 구체적으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실효성 제고와 중소도시 대형마트 신규 입점시 지역 협의, 대형 유통업체 및 프랜차이즈의 불공정행위 근절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공정거래법 집행 체계 개선 방안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을 폐지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재벌 총수 일가의 불법 행위 근절 방안이다. 이를 위해 재벌 총수 일가의 횡령 등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인한 부당이득 환수를 내놓았다. 넷째는 재벌 지배구조 개선 방안이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 소수주주권 강화를 위한 집중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의 단계적 도입, 국민연금 등 공적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가 여기에 속한다. 다섯째는 금산분리 강화 방안이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 축소, 금융·보험사의 비금융 계열사 보유 주식 의결권 행사 제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 등이 핵심이다.

외견상으론 진전, 실천 의지는 의문

2012년 4·11 총선 때 내용 없는 경제민주화 정책이란 비판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이번에는 당시에 비해 정책 내용이 훨씬 더 풍부해졌다. 개혁적 학자들이 평소 주장하던 좋은 정책을 많이 가져와 외견상 상당한 진전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책의 실효성과 실천 의지에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특히 4·11 총선 때 발표한 공약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총선 승리 뒤 다수당으로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음에도 실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공약으로 재탕한 것을 보면 박 당선인에게 진정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가 선거용 마케팅 수단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정책 중 가장 큰 문제점을 들면 구조개혁 방안은 없고 시장질서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재벌들이 순환출자를 통한 가공 자본으로 이미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무분별한 계열 확장을 해 시장 전반에 걸쳐 엄청난 영향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구조적 교정책(기존 순환출자의 해소 및 의결권 제한) 없이 행태 규제만으로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으로 경제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돼 공정한 경쟁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시장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정책 수단을 반대한다는 것은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겠다는 박 당선인의 약속과 배치된다. 더 나아가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진정성에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박 당선인은 재벌 총수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려는 의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박 당선인이 기존 순환출자의 해소를 반대한 이유는 "국민경제에 불필요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재벌들이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투자자금을 이쪽에 써야 하기 때문에 투자가 위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출자를 해소하면서도 재벌 총수들이 지금 수준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총수 개인적으로는 그만큼의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회사는 순환출자 해소를 통해 오히려 여유자금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박 당선인의 설명은 회사와 총수 개인을 혼돈한 것이고, 결국 재벌 총수의 처지에서 기존 순환출자의 해소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재벌 총수가 부당하게 확보한 과도한 기득권이 문제의 핵심인데 이를 그대로 모두 인정해주고 털끝 하나 안 건드리겠다는 것이니 재벌 문제의 본질적 부분은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명백히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즉,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본질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곁가지만 친다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 큰 문제점은, 설령 구조적 교정책은 안 쓴다 하더라도 재벌들의 잘못된 행태만이라도 철저히 규제한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데 과연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주로 공정거래법 개선과 집행으로 구성돼 있는데, 스스로 "파괴력이 있다"고 자화자찬하듯이 여러 가지 개선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행태 규제와 집행을 위한 관련 법 개선안의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어떻게 만드느냐, 그리고 그 개선안을 얼마나 진정성과 일관성 있게 집행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천양지차가 될 수 있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개선안을 만들어도 세부 사항을 교묘하게 뒤틀어놓으면 법이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아무리 규제 방안을 잘 만들어놓았어도 집행 주체가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외면하면 이 또한 사문화돼 유명무실해지는 사례도 수없이 보지 않았던가. 재벌에 포섭된 수많은 관료와 정치인들이 법과 규제를 뒤틀고 외면하는 데 탁월한 전문성과 능숙함을 보여온 것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했다. 허울 좋은 정책을 내놓았다 하더라도 박 당선인의 그동안의 언행이나 경제민주화 정책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의 시끄러웠던 잡음, 그리고 친재벌적 관료와 보수 정치인들의 행태를 생각하면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경구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전국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이 2012년 12월 첫 자율 휴무에 돌입한 가운데 서울 이마트 은평점을 찾은 고객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뉴시스

'줄푸세'가 경제민주화라는 인식 벗어나야

박근혜 당선인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이 서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박 당선인은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도 경제민주화라는 궤변을 주장해 많은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부자의 세금을 줄여주고 재벌 규제를 완화해주고 서민·중산층의 정당한 권익 보호 요구는 엄하게 법으로 다스리는 친재벌·친기득권 정책을 경제민주화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경제 인식을 갖고 있는 한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실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둘째, 새누리당과 박 당선인의 주변에는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제대로 실천할 사람도 없다. 친재벌 인사들로만 두루 둘러싸여 있다. 이것은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멘토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평가였다. 심지어 같은 당의 원내 사령탑이라는 사람조차 "정체불명" 운운하며 김 위원장과 권력 싸움을 할 정도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셋째,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재벌과 기득권 집단의 덫에 걸려 실천이 불투명하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잘 보았지만 경제위기론으로 재벌과 호흡을 맞추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경제민주화를 내려놓고 김종인 위원장을 팽시키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성장에 치중하면서 재벌에 대한 태도를 더욱 친화적으로 바꿀 것이 확실하다. 태생적으로 친재벌·보수 성향 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 당선인은 "재벌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되, 잘못된 점은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는 극대화하겠다"고도 했다. 좋은 말은 다 가져다 썼다. 그런데 박 당선인이 생각하는 재벌의 장점이 바로 그가 지적한 잘못된 점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할 수 있다. 또한 박 당선인이 걱정하는 부작용이 허구이고 이를 걱정하면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경제민주화의 결실을 볼 수 없다. 박 당선인의 잘못된 경제 인식을 걱정하는 이유다. 잘못된 경제 인식 아래서는 절대로 잘못된 시장질서를 바로잡을 수 없다. 경제적 약자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앞으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lee.dong.gu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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