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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하나라도 실천하기를…"
Cover Story 박근혜와 경제민주화- ① 중소기업 사장들이 말하는 현실
[33호] 2013년 01월 01일 (화) 김연기 ykkim@hani.co.kr

   
 
경제민주화를 약속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당선자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무엇이고, 기업과 일반 국민이 바라는 경제민주화는 무엇일까? 또한 재벌기업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약속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재계에서는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의 도래와 심화되는 경제위기를 이유로 기업 투자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과거 대통령들은 경제 현안이나 위기를 핑계로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_편집자

남동공단 사장들 "거창한 구호 사양… 납품단가 개선, 중기 적합업종 법제화 시급"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당선인이 내놓은 핵심 공약이다. 성장의 과실이 재벌 대기업과 총수 일가에만 집중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 논의는 재벌 개혁과 중소기업 살리기에 모아진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부는 재벌 대기업에 집중돼 있지만 일자리 창출 등 국민을 먹여살리는 주체는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은 전체 노동자의 88.1%를 고용한다. 문제는 이들이 극심한 불황의 덫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커피 한잔 값이 아까워 사무실 커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이들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길을 닦아달라는 게 이들이 새 대통령에게 거는 소박한 기대다.

김연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대선 후보들이 한목소리로 중소기업 살리겠다고 경제민주화니 상생이니 외쳤는데 실제로 얼마나 바뀔지 모르겠네요. 언제는 그렇게 안 외쳤던가요. 선거 때마다 이번엔 화끈한 대책을 내놓겠다고 큰소리를 쳐도 막상 선거가 끝나면 어떻습디까? 결국 말만 그럴싸하게 바뀌었을 뿐이지 기다리다, 기다리다 속 터지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들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려 한다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삶의 현장에서 외면당하는 정치

2012년 12월5일 인천 남동인더스파크(옛 남동공단)에서 만난 최치수(51)씨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로 중소기업인들의 심정을 표현했다. 기자가 18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경제 공약에 대해 물을 때였다. 최씨는 1994년부터 남동공단에서 대형 철제 롤(둥근 통 모양의 주조물) 생산업체를 운영해오고 있다. 한창 잘나갈 때 100억원에 달했던 매출이 2012년에는 60억원으로 줄었다. 자금난까지 겹치며 2012년 가을 직원 4명을 내보내야 했다. "요즘 이곳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일감이 '줄었다'는 말보단 '끊겼다'는 표현이 더 들어맞아요. 견디면 살고 못 버티면 죽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최씨에게 정치는 무엇이고, 대선은 또 어떤 의미일까.

기자 그렇게 살기가 팍팍해졌나.

최씨 과거 10~20%였던 마진율이 지금은 4~5%로 떨어졌다. 대출이자에 건물 임대료 내고 직원들 월급 주면 그걸로 끝이다.

기자 그래도 새 정부에 희망을 걸어봐야 하지 않나.

최씨 무엇보다 우리의 처지를 피부로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선거 과정에서) 박근혜와 문재인이 내놓은 정책들을 봐라. 당장 죽은 중소기업도 벌떡 일으켜세울 것처럼 치장해놓았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으로 되레 허탈감만 키우지 말고 천천히라도 좋으니 작은 부분이라도 확실히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을 우리는 더 원한다.

기자 코스닥 기업의 경영 경험이 있는 안철수씨가 중도 포기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씨 아쉽다. 앞에서 말한 조건을 모두는 아니어도 얼추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만 본인이 꿈을 접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해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기자 박근혜 당선인이 내놓은 중소기업 대책에 대한 기대가 있는가.

최씨 물론 있다. 그렇지만 단서가 있다. 절대 과거 정부들의 되풀이가 돼선 안 된다. 나 역시 과거에 노무현과 이명박을 찍었다. 실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기업을 때려잡을 것처럼 얼마나 시끄럽게 굴었나.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되짚어보게 된다. 소리만 요란했을 뿐 실질적으로 피부로 느낀 혜택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자 청와대에선 "이제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하며 슬며시 뒷짐을 지었다. 그 말이 실정에 대한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새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더 이상 포퓰리즘적인 구호만으로 우리를 현혹시키지 말아야 한다.

기자 '경제 대통령'을 자부한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좀 나아졌나.

최씨 지난 대선에서는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로 실망했다. 굵직굵직한 얘기만 있을 뿐 피부에 와닿는 내용은 거의 없다. 소득은 그대로고 세금은 늘어나는데 우리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없어 답답하다. 기업 경영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풀어준다고 했지만 내가 꼽은 불필요한 규제만 해도 20개가 넘는다. 예컨대 중소기업은 규제 문제 때문에 단순 경리 업무를 보는데도 자격증 있는 전문가를 채용해야 한다.

최씨의 푸념은 실제 지표와 고스란히 맞아떨어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을 살펴보면, 2001년에는 각각 6%와 4.5%였지만 2011년 7%와 4.1%로 벌어졌다. 또한 2001년 대기업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14만7천원으로 중소기업(152만9천원)의 140.3% 수준이었으나 2011년에는 155.7%로 늘었다. 제조업 분야의 생산지수를 보더라도 2000년 100을 기준으로 대기업은 2001년 116.7에서 2010년 182.8로 크게 상승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110.6에서 133.9로 늘었을 뿐이다. 오동윤 중소기업연구원 글로벌경영연구실 연구원은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구호가 현실에선 정반대 상황으로 이어진 셈"이라며 "이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대선 때마다 후보들이 내놓은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씨가 사무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창밖을 보니 최씨를 만났을 때 흩뿌리던 눈발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씨가 근처 부대찌개집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낮 12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식당은 한산했다. 최씨가 소개해주기로 한 다른 종소기업인 5명이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 시간이면 식당이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는데 요즘은 보시다시피 이래요. 대통령들마다 경기를 살려놓겠다고 하는데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진 게 하나도 없어요. 예전엔 출근 시간 때 남동공단 진입로가 꽉 막혔어요. 하지만 지금은 시원하게 뚫려요. 어렵다는 얘기죠."

   
경남 창원공단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제조 중소기업(왼쪽)과 신발 제조 중소기업 직원들이 공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경영환경 악화로 신음하고 있다. 한겨레 이용인

"누구를 위한 경제민주화인가"

식당 한쪽 구석에서는 작업복 차림의 남성 넷이 부대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최씨는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간제 노동자들이에요. 공장마다 매출이 줄다 보니 작업량이 줄어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시간제 노동자가 늘면서 대낮부터 소주를 찾는 이가 많아요." 그들에게선 이렇다 할 대화 없이 가끔 술잔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들은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정치인들이 도대체 무엇을 해줬느냐, 기껏 뽑아줘봤자 아무 소용 없더라.' 팍팍한 삶의 현장에서 정치는 외면당하고 있었다.

박근혜 당선인이 내세운 경제 공약의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는 경제민주화다. 성장의 열매가 대기업과 재벌 총수 일가에만 집중된다는 지적이 거세지면서 경제민주화 논의는 재벌 개혁에 집중됐다. 여기에는 수출·대기업이 잘되면 성장의 과실이 아래로 흘러내릴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트리클다운(낙수) 효과' 정책이 실패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다음날인 2012년 12월20일 대국민 인사에서 지난 4월 총선부터 강조해왔던 경제민주화를 국정 운영의 주요 기조로 앞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당선인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는 분 없이 경제성장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민 대통합이고 경제민주화이고 국민 행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가 적극적인 재벌 개혁에 초점이 맞춰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재벌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는 형태다. 재벌이 불공정거래를 하는 것은 단호히 막겠지만 지배구조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실제 박 당선인은 대국민 인사에서 재벌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때 내세했던 '공정사회' 수준을 크게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는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는 이미 4·11 총선 때와 비교하더라도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며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면 더 느슨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박 당선인이 '당선되면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한 만큼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고 중소기업 분야 공약을 약속대로 지켜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월매출 20억원 정도의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유현(47)씨는 "경제민주화 이슈가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치수씨와 마찬가지로 '당선인이 내놓은 대책이 대통령 취임 뒤 실현될 것으로 믿는가'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자 경제민주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씨 중소기업 사장치고 이 문제에 대해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 비용 전가, 기술인력 빼가기, 서면계약 미체결…. 대기업과 거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겪어봤을 일들이다. 우리 회사만 해도 2012년에만 2명이 거래 관계에 있는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경제 논리로 보더라도 돈 한 푼 더 주는 곳으로 옮긴다는데 이를 어떻게 막겠는가. 하지만 이를 방치하면 중소기업의 미래는 없다. 기업을 운영하는 우리조차 오죽하면 시장 논리에 반하더라도 정부에 이를 막을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겠는가. 납품단가 인하를 일방적으로 휘두르지 않고 중소기업에서 인력을 빼가지 않는다고 해서 대기업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중소기업 기술 유출 현황'을 보면, 2011년 기술 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이 12.5%를 차지했다. 건당 피해액은 평균 15억8천만원에 달했다. 기술 유출 경로는 인력 빼가기가 가장 높아 중소기업의 75%가 최근 5년간 한 차례 이상 기술인력을 납품 대기업에 빼앗겼다.

기자 경제민주화가 이를 해소해줄 것으로 생각하는가.

김씨 대다수의 중소기업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거창한 구호보다는 납품단가 개선 등 현실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경제민주화를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누구를 위한 경제민주화에 초점이 맞춰 있기보다는 지나치게 당위적으로 접근하는 듯하다.

기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가 차별성이 있는가.

김씨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MB 정부 때도 모두 똑같았다. 자기들은 차별성을 얘기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그러니 포퓰리즘 구호에 불과하다고 비난받는 것이다. 우리가 절실히 여기는 것은 추진력이다.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재벌 총수들을 불러놓고 만날 것이고, 거기서 또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면 그걸로 중소기업 대책은 흐지부지해진다.

기자 어떤 대책이 가장 눈에 띄었는가.

김씨 중소기업·소상공인 적합업종 보호 특별법 제정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보호한다며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반드시 법으로 제정돼 강제성을 가져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법으로 제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추진력이다.

실제 대부분의 중소기업인들은 김씨와 비슷한 입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대선을 앞두고 중소기업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인 10명 중 9명은 '이제는 우리 사회가 경제민주화를 논의할 시기'라고 답했다. 또 10명 중 7명은 '경제민주화가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라는 데 동의했다. 반면 경제민주화가 기업 성장의 장애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중소기업인은 9.3%에 그쳤다. 오동윤 연구원은 "대부분의 중소기업인은 경제민주화와 성장이 양립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제민주화가 추구하는 방향과 내용이다. 중소기업인들은 △시장 불균형 △불공정거래 △불합리한 제도 등 이른바 '3불' 해소에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중소기업의 시장 불균형 해결'(63.1%)이 꼽혔다. 이어서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개선'(20%), '신용카드 수수료 등 불합리한 제도 개선'(9.8%) 순으로 조사됐다. 송종호 중소기업청장은 "시장경제에서 강자가 살아남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완전 자율에 맡겨놓으면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가 2012년 10월 광주 북구 대촌동 한국산업단지공단을 방문해 현지 중소기업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소박한 희망

다른 의견을 내놓는 중소기업인도 있다. 정치권이 쏟아내는 경제민주화 공약이 사실상 대기업 때리기에 가깝고, 이에 뒤따르는 후폭풍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주로 대기업과의 거래가 많지 않고 직접 소비자를 상대하는 업종에서 이런 의견이 나왔다. 연매출 100억원 규모의 가구업체를 운영하는 조영환(52)씨는 "성장 위축을 불러와 중소기업이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일종의 경제민주화 역풍이다.

기자 경제민주화가 중소기업의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조씨 불공정한 관행을 시정한다는 데는 대찬성이다. 다만 아래에 있는 쪽을 높이지 않고 위에 있는 쪽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경제민주화는 곤란하다. 이렇게 되면 경제민주화가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보다는 하향 평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기자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조씨 우리는 단지 일반 시민들의 정서에 기댄 재벌 때리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 잘돼야 중소기업도 잘되는 게 당연하다. 그동안 대기업이 한국 경제를 키웠고, 그 결과 중소기업에도 혜택이 돌아간 것은 사실이다. 가뜩이나 저성장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중소기업에 더 큰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가 원하는 것도 절대 대기업 죽이기는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 때리기가 아니라 중소기업인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조정하는 게 정치고, 이런 일을 해달라고 선거 때마다 뽑아주는 것 아닌가.

조씨처럼 일방적인 재벌 때리기보다는 대·중소기업의 상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인이 동의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를 보면 '재벌 해체 또는 재벌 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주된 초점이 돼야 한다'고 답한 중소기업인은 3.6%에 그쳤다.

밥 한 공기를 겨우 비우고 식당 문을 열고 나서자 눈발은 더 거세져 있었다. 바람까지 휘몰아치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오후 스산한 남동공단의 풍경에서 점점 더 나락으로 내몰리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보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기자와 일행은 식당 근처 김씨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값을 아끼려고 어지간하면 식사 뒤 사무실로 바로 돌아와 차 한잔을 마시는 게 이곳 남동공단 사장들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응접실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모금씩 마시고 나니 그제야 잔뜩 굳어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그들이 새 대통령을 보며 품는 희망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기자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겠는가.

최씨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김씨 세상을 확 뒤집어달라는 게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이다. 새 대통령은 꼭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조씨 지금까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많이 펴왔으니 이제는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서민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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