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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통합 11년에 길 잃은 그리스 목동들
Life ● 그리스 양치기 통해 들여다본 유럽 통합의 이면
[32호] 2012년 12월 01일 (토) 랄프 호페 economyinsight@hani.co.kr

   
그리스 크레타섬의 농민들이 지난 10월4일 크레타 국제공항 앞에서 정부의 연금 삭감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AP

양치기의 부당 보조금 수령 고발한 독일 기자, 2년 뒤 씁쓸한 화해의 양고기 파티

<이코노미 인사이트> 창간호(2010년 5월호)에 실린 '유령과 싸우는 그리스 시민의 비애'라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기사를 기억하시는지요? 아테네에 거주하는 평범한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 그리스 재정위기의 원인을 파헤친 기사입니다. 랄프 호페 기자는 이 기사에서 그리스 양치기들의 부당한 보조금 수령 행위를 고발합니다. 크레타섬 양치기들이 유럽연합의 보조금을 많이 받아내기 위해 사육하는 양의 수를 부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소한 부정행위들이 사회 시스템을 위태롭게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크레타섬 양 사육업자조합이 명예훼손 혐의로 호페 기자를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훌쩍 지나 그리스 법정에 호페 기자와 그를 고소한 4명의 양치기들이 나란히 섰습니다. 법원은 이 건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호페 기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지요.

크레타섬의 양치기 4명은 화해의 손짓으로 호페 기자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이들은 크레타섬에서 술과 음식을 성대하게 대접했습니다. 호페 기자는 이 자리에서 유럽 통합 이후 11년간 그리스인들의 삶이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떻게 뒤틀려버렸는지를 생생하게 전해 듣습니다. 통합 당시 꿈에 부풀었던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재정이 파탄 난 상황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호페 기자는 크레타섬 양치기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 못합니다. 진정한 통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호페 기자와 양치기들의 양고기 파티에 <이코노미 인사이트>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랄프 호페 Ralf Hoppe <슈피겔> 기자

양 축사는 크레타섬 헤라클리온 남쪽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의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몇백m 되는 고지대다. 양쪽 언덕에는 엉겅퀴, 타임, 샐비어 같은 허브 덤불이 꽉 들어차 있었다. 택시를 불러 좁고 꾸불꾸불한 거리를 돌고 돌아 다프네라는 마을까지 갔다. 거기서부터는 디오니소스와 마놀리스라고 하는 양치기 둘이 지프로 우리를 태워줬다.

택시 운전사를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디오니소스와 마놀리스가 나중에 우리를 다프네까지 다시 데려다주겠다고 장담하는 통에 그것을 고집할 수 없었다. 우리는 자기들의 손님이고, 크레타에서 손님 대접이란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차편 때문에 우리는 두 양치기에게 꼼짝없이 매인 셈이 되고 말았다.

옹이가 많이 박힌 나무 아래, 네 발을 꽁꽁 묶인 양이 누워 있었다. 뒤쪽에서 디오니소스가 접근하자 밧줄에 칭칭 감긴 발굽을 마주 비비면서 고개를 번쩍 쳐든다. 숨을 헐떡이는 양의 눈이 공포로 가득 차 있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재판받으러 향하는 크레타섬

나무 식탁에는 종이접시, 빵, 유리컵 등이 놓여 있다. 소금물을 담은 플라스틱 사발도 보인다. 사발 속에는 질척한 치즈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 옆에 아이스티 딱지가 붙은 1.5ℓ짜리 병이 2개 있다. 양치기들이 직접 담은 소주 '라키'를 담은 병들이다.

이 양은 자존심 강한 크레타의 양치기들과 독일에서 온 기자가 새로운 친교를 맺기 위해 바쳐지는 제물이라고 했다. "양치기의 삶이 과연 어떤 것인지 두루 살펴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독일 기자들"을 위해 마놀리스는 건배를 했다. 그들은 나에게 크레타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겠다고 했다. 양치기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속속들이 취재하는 게 내가 크레타를 찾은 원래 목적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우리는 라키를 마셨다. 꼭 흐르는 불 같은 맛이었다.

   
지난 10월28일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양 2천 마리가 도심을 활보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스페인에서는 해마다 10월 양치기들이 '고대 동물 이주로 보호'를 촉구하기 위해 시위 겸 양떼 축제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AP

오늘 우리를 위해 양을 한 마리 잡은 새 친구들은 어제까지는 나의 적이었다. 그들이 회원으로 있는 양치기 조합이 나를 고발하는 바람에 바로 어제 법정에서 첫 공판을 치렀다. 고소 이유는 명예훼손이었고, 원고는 마놀리스를 비롯한 크레타 지역 양 사육업자조합 회원 699명의 공동 명의로 돼 있었다.

재판을 위해 내가 크레타로 와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행을 결심한 이유는 내 직업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었다. 또한 기자로서 유럽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기사를 쓰는 게 허용되는지, 그 한계점을 이 기회에 분명히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 일로 소송당했다는 점에서 나는 상당히 분노했다. 크레타에 사는 '양치기들'이 이건 기사로 쓰고, 저건 쓰지 말라고 독일 기자인 나에게 지시·간섭할 권리가 과연 있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법정에서 발언하기 위해 내가 미리 준비해뒀던 것이다. 이걸 법정에서 발표할 기회가 없을 거라고는 그때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기사가 나가고 8개월이 지난 뒤였다. 함부르크에 있는 범죄수사국으로부터 편지를 한 장 받았다. 크레타의 헤라클리온에 있는 검찰의 요청에 응한 사안이라고 했다. 내 행동이 그리스 형법의 명예훼손에 해당돼 기소됐으니 소견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7시간 기다려 법정 섰더니 "소송 기각"

<슈피겔>은 나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상황을 일별한 변호사는 조심해서 다뤄야 할 사항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어느 날인지 모르지만 재판 일정도 확정돼 있었다. 나를 변호하기로 한 그리스 변호사는 내가 개인적으로 혼자 오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가 용감하고 무죄라는 인상을 줄 것이기 때문이라나. 나는 한 가지 조건만 지켜진다면 그리스로 혼자 갈 각오가 서 있었다. 그 조건은 다름 아닌 수감 여부였다. 나는 어떤 경우라도 감옥에 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 내 친구가 된 디오니소스는 그 사이 죽은 양을 나무 위에 매단 뒤 가죽을 벗겼다. 마놀리스가 쇠꼬챙이를 여러 개 들고 와 고기 덩어리를 꿰었다. 지저분한 봉지에서 굵은 소금을 꺼내 고기에 뿌리고, 돌을 모아 모닥불 주변에 빙 둘러 배치한 뒤 고기 꼬챙이를 그 위에 걸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우리는 술을 마셨다.

오전 9시. 법정 문이 열렸다. 재판소 건물 2층에 자리잡은 법정은 나무 칸막이로 공간을 둘로 나눴다. 전면의 조금 높은 곳에 재판장 자리가 보였다. 법정 뒤쪽은 대기실인데 딱딱한 나무 걸상들이 있었다. 이곳에선 전화하는 사람, 아침 먹는 사람, 서로 잡담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상황에 이력이 난 사람들은 아예 방석을 준비해 오기도 했다. 경찰관 한 명이 사람들 사이를 뚫고 다니며 장내 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느 구석에선가 좀 시끄러워지면 '쉬!' 하고 주의를 줬다. 그러면 모두들 고개를 끌어당기며 금세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뿐, 경관이 지나가고 나면 잡담 소리는 다시 커졌다.

법정 안에는 어깨가 떡 벌어진 장정이 4명 앉아 있었다. 손이 단단하고 힘세 보이는 사람들로 무거운 장화를 신었다. 그중 한 사람의 허리에 걸린 혁대에는 칼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장정 하나는 다 식어버린 시가를 열심히 빨아대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젊은 사람은 얼룩덜룩한 재킷을 걸쳤다. 아니나 다를까, 저들이 바로 우리의 소송 상대방이라고 내 변호를 맡은 교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해주었다.

무려 7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양치기 대 <슈피겔>' 사건 차례가 됐다. 나는 앞쪽으로 불려나갔다. 저쪽의 네 장정들도 앞으로 나왔다. 우리에겐 발언이 허락되지 않았다. 변호사와 검사, 재판장이 자기들끼리 한참 동안 수군수군 얘기를 하더니 마침내 판결이 언도됐다. 소송 기각. 양 사육업자조합엔 이 일로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피고인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변론은 허락되지 않았다.

소송 상대자 4명이 법원 출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아주 공손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마놀리스, 디오니소스, 코스타스 그리고 에프스트라티오스라는 이름이었다. 재판에 졌음에도 네 사람은 선의를 보였다. 판결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상 꼭 그렇지는 않을 터였다. 정말 그랬다면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을 위해 변호사가 3명이나 고용되고 검찰에서 두 팀이나 이 일을 맡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크레타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을 때 어안이 벙벙했다. 바로 그 순간 통역이 나에게 급히 눈짓을 해왔다. 크레타에서는 절대로 초대를 거절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우리는 마침내 지금 여기, 이 높은 산 위에서 마놀리스와 마주 앉게 된 것이다. 그의 소주를 함께 마시면서. 디오니소스가 고기 꼬챙이를 들고 왔다. 잘 구워진 고기 덩어리에선 기름 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연기가 꾸역꾸역 솟는 가운데 독특한 냄새가 났다. 고기를 꼬챙이에서 빼서 2인분쯤 되는 양을 접시에 잔뜩 담아 내 쪽으로 건네고는 모두들 기대에 가득 찬 시선으로 나를 주시했다.

기름기가 잔뜩 낀 고기였다. 양념을 하지 않은데다 여기저기 탄 곳도 눈에 띄었다. 이따금 신맛까지 났다. 꼭 축축한 양탄자를 씹는 기분이었다. 모두 6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여전히 잔뜩 기대에 차서 나를 보고 있었다. "에프카리스토!"(고마워요!) 내가 인사를 했다. 아주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모두 만족해서 왁자하니 웃었다. 마놀리스가 내 컵에 술을 다시 채웠다.

11년 전 그리스가 유로존으로 슬쩍 들어갔을 때, 아니 어쩌면 떠밀려 들어가게 됐을 때 그리스 국민은 유럽연합(EU)의 일원이 되면 삶이 확연히 바뀌리라 믿었다. 때맞춰 휴가를 가고 지프도 한 대 장만할 수 있는 삶,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그런 인생 말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그러한 미래를 약속했고, 그리스 국민은 그런 미래를 열망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은?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국민에게는 부채만 지워졌다. 게다가 브뤼셀에서 받은 지원금이라는 건 또 어땠나. 무조건 여기저기 서명만 하라고 사람을 밀어붙이는 것 아니었는가. 그들은 이 새로운 유럽 공동체가 잃었던 여러 가지 가치를 되돌려줄 거라고 믿었다.

   
지난 11월11일 그리스 아테네 의회 앞에서 정부의 긴축재정에 항의하는 한 남성이 나치 복장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려진 포스터를 들고 서 있다. 뉴시스 AP

디오니소스가 말했다. "우리 모두가 너무 낙관적으로 사태를 보았던 게야. 지난 10년간 우린 양떼 규모를 확대했지." 마놀리스가 거들었다. "한데 그게 실수였어. 우리만 그렇게 한 게 아니었거든. 현재 크레타에는 양의 수가 몇 년 전에 비해 엄청 많아졌어. 전엔 언덕이며 풀밭이 지금보다 훨씬 푸르렀지. 이제 와서 풀이 부족하니 따로 사료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엄청나. 결과적으로 우리가 파는 고기는 너무 비싼데다, 매입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운송 과정도 간단치가 않으니 원. 우린 참 팍팍하게 살아. 집사람과 나, 우리 부부는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휴가 여행을 가보지 못했어. 도무지 뭘 해서 돈을 벌 수 있을지…. 관광업을 해야 하나?"

나이가 대략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인 이 남자들. 아이는 둘이나 셋 있고, 지금까지 쉴 새 없이 고되게 일을 해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수입에 견줘 빚을 너무 많이 지고 있다. 한 사람은 4만유로, 다른 사람은 6만유로, 이런 식이다. 이들 중 아무도 크레타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관광업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마놀리스와 그의 친구들, 칼과 장화, 고기 꼬챙이를 지닌 이 중년 남자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의 친구라는 내가 그들의 물음에 대답해줘야 했다. 어쩌다가 그들이 '유럽 함정'에 빠져들게 됐는지 납득하도록 설명해줘야 옳았다.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고작 협동이니 사업 구상이니 따위, 그리고 그보다 더 시시껄렁한 무의미한 말만 줄줄이 늘어놓았다.

내 말을 들으면서 그들은 모두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 게 뻔했다. 못 알아듣는 게 오히려 당연했다. 어떻게 그런 걸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들의 친구가 아니었다. 물론 적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이방인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냥 유럽에서 일어난 일, 유럽 역사의 한 토막일 뿐이다. 양 한 마리가 희생됐다고 해서 역사가 어느 한구석이라도 바뀔까.

그로부터 몇 시간을 더 우리는 함께 둘러앉아 라키를 마셨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머리에 인 채, 고기에서 나는 고래기름 같은 냄새가 코에 절 때까지. 그들이 나한테 실망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U의 환상에서 깨어난 그리스인들

오후 늦게야 나는 마놀리스를 설득해 통역과 함께 그의 차를 타고 세르펜티엔 거리를 지나 헤라클리온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았는데, 내 옆에 놓인 속이 가득 찬 플라스틱 봉지에서 지독한 냄새가 꾸물꾸물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되도록 그 봉지에서 멀리 떨어져 앉았다.

호텔 앞에서 마놀리스는 그 플라스틱 봉지를 나한테 작별의 선물로 건넸다. 비행기 안에서 먹으라는 당부와 함께 크레타 방문 기념이라고 했다. 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낮에 구운 고기가 식은 채 들어 있었다. 마놀리스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나는 호텔로 들어가 접수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고기를 봉지째 주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 직원의 의아한 눈빛이라니.

ⓒ Der Spiegel 2012년 42호 Das europaische Schaf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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