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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붕괴의 긴 그림자
[Issue]위기의 유로존
[3호] 2010년 07월 01일 (목) 이코노미 economyinsight@hani.co.kr

다니엘 그로스 Daniel Gros 유럽정책연구소(CEPS) 소장
 
지난 20년을 놓고 바라보면 유로존 위기가 발생한 경위를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다. 1980년 말 동·서독 통일은 독일에는 내수 붐을 일으켰지만, 독일을 제외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는 경제침체를 가져왔다. 독일 통일에 따른 경제호황은 1995년께 끝났다. 그 뒤엔 상황이 반전돼 독일은 그 뒤 10년 동안 유럽에서 경제 실적이 가장 부진했던 반면,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수출 주도 성장세(1995~2000)에 이어 저금리와 신용조건 완화로 부추겨진 내수 붐(2000년 이후)을 누렸다.

통독 기점 유럽 내부 경기 엇갈리기 시작
이런 유럽 내부의 비대칭적 경기순환은 1989년 말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때부터 시작됐다. 그 전해인 1988년 재정 균형을 달성했던 독일(서독)은 통일 이후 동독의 재건을 위한 재정 수요로 정부 지출이 크게 늘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에 이르렀다. 게다가 동독 지역의 노동자 임금이 빠르게 상승해 서독 수준에 근접하면서 소비 붐까지 일어났다.
이런 요인들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자 독일중앙은행(분데스방크)은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활황 상태가 아니었고, 특히 이탈리아는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 상환 부담이 커 금리도 올리지 않았다. 또한 독일의 통일 뒤 독일 경제의 호황은 마르크화의 과대평가로 이어졌고, 이는 1995년 이후 독일의 경제성장이 저조해지는 한 원인이 됐다.
1995년 이후 독일은 내수가 약해졌지만 유럽의 다른 나라들, 특히 유로화 출범에 대비해 금리를 대폭 내린 나라들에서는 내수 붐이 일어났다.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는 2007년까지만 해도 유로존에서 경제 실적이 좋은 대표적인 나라들로 평가됐다. 이들 국가의 저금리는 자산 붐으로 이어졌고, 이는 2003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번진 신용 확대 열기에 의해 더욱 증폭됐다. 그 결과 주택을 비롯한 실물 자산의 가격이 급등했고, 이는 신용도가 낮은 차입자들도 더 쉽고 풍부하게 신용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전세계적인 신용 붐이 없었다면 유로화 출범 뒤 발생한 유럽 내부의 불균형은 그 규모가 훨씬 작았을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로존 위기 양상 바꿔
지난 20년간 유럽 내부에서 전개된 이런 비대칭적 경기순환은 독일과 남유럽 국가의 경상수지 추이를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1990년대에는 대부분의 기간에 독일의 경상수지는 적자였고, PIGS의 경상수지는 소폭 흑자였다. 그러나 유로화의 출범(1999)을 전후한 시기에 상황이 반전됐다. 다만 2003~2004년만 해도 경상수지 불균형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유럽 내부의 경상수지 불균형이 급격히 확대된 때는 신용 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난 뒤였다.
앞서 살펴본 지난 20년간의 추세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유로화가 출범할 당시 유럽의 제반 상황을 고려하면 유로화는 결국 실패할 운명을 타고났던 것일까?”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은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유로존 위기를 불러온 핵심 요인은 세계적인 신용 붐과 그것을 종식시킨 세계적인 금융위기였다. 세계적인 신용 붐도, 세계적인 금융위기도 유로화의 결함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유로화의 태생적 한계 탓 아니다
세계적인 신용 붐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갑자기 붕괴하지 않고 서서히 가라앉았다면 아일랜드와 스페인에서 일어난 건설 호황은 저절로 꺾이는 추세를 보였을 것이다. 독일에선 내수가 회복되면서 임금이 점차 상승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 뒤의 세계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또 아일랜드와 스페인도 시스템 위기를 동반하지 않는 구조조정을 점진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리스는 완전히 다른 경우다. 그리스 정부는 여러 해에 걸쳐 재정 운영을 방만하게 해왔고, 정부 부채를 포함한 공적 부채를 여기저기에 감추는 장부 조작까지 저질렀다. 그런 식의 재정 운영은 세계적인 위기가 있든 없든 그 자체로 문제를 발생시키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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