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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주주의가 빚지고 있다
노동과 삶 ● 3년째 단체협상·해고자 복직 위해 싸우는 한국3M 노동자들
[30호] 2012년 10월 01일 (월) 이선옥 economyinsight@hani.co.kr

   
한국3M은 비인간적인 노조 탄압으로 노조를 와해하려 한다. 3M 최고경영자(CEO)인 조지 버클리. 뉴시스 REUTERS

600명이 넘던 3M의 노조원들은 3년 만에 160명으로 줄었다.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이란 이미지 속에서 벌어진 온갖 탄압을 견디고 남은 수다. 용역들은 생산라인까지 들어와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괴롭힌다. 밖에서 알아주는 이 없지만 누가 부여하지도 않은 의무감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선옥 르포작가

서울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옥쇄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경찰특공대의 잔인한 폭력에 대해 한 인권운동가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국민들이 용산을 참아주었기 때문에 그 폭력이 쌍차로 갔다. 언제까지 국가의 저런 모습을 용인하고 참아줄 것인가. 용산은 '아, 이 정도는 국민이 봐주는구나' 하는 아주 몹쓸 교훈을 남겼다."

지난 8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용역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의 증언자로 나선 금속노조 한국3M지회 박근서 지회장의 발언을 들으며 그 장면이 떠올랐다. 3M 노조가 당한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증언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용역들에게 무조건 맞았습니다. 2010년 6월17일에 저희가 고소를 해서 용역깡패들이 벌금을 문 사건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컨택터스였습니다. 만일 그 당시 저희가 (용역폭력에 대해) 호소했을 때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번에 SJM 사태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M에서 저지른 용역들의 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단호하게 '이런 폭력은 안 된다'고 했더라면, 2년 뒤 경기도 안산의 자동차부품업체 (주)에스제이엠(SJM)의 노동자들 머리가 터지고 살점이 파여 떨어지는 폭력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폭력은 그걸 용인해주는 순간 반드시 더 큰 폭력이 되어 다음 대상을 찾아간다.

특히 요즘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용역깡패의 폭력을 각오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맞거나 신체를 훼손당하는 건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드문 일이다. 사고나 재해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의 일이 노조 활동에서는 거의 100% 일어난다. 용역깡패들에게 폭행당한 조합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이런 폭력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다 큰 어른인 내가 남에게 두들겨 맞고 다칠 수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2012년의 노동자들은 이렇게 살고 있다. 특별히 대단하고 거창한 투쟁, 격렬한 싸움을 하지 않는 3M 같은 노조의 조합원들이 일상다반사로 겪는 일이다.

3M은 우리가 쓰는 포스트잇, 수세미, 방진마스크, 선팅지, 자동차 용품, 액정표시장치(LCD)용 필름 등 여러 생활용품과 소모품을 만드는 회사다. 미국 자본이 소유한 기업으로 한국·일본·중국·인도 등 세계 곳곳에 60여 개 공장을 가진 다국적기업이다. 2009년 노동조합이 생긴 뒤 이 다국적기업이 보여준 행동은 글로벌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구호이며, 해당 국가의 노동관이 천박한 이상 어떤 선진국 자본도 현지 수준으로 천박해진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깨끗하고 이미지 좋은 회사,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뽑히는 한국3M에 왜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까? 3M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근무평가제라고 관리자가 평가를 해서 임금 인상과 진급에 반영하는 제도가 있어요. 단체회식에 가서 쇠고기를 먹으면 벌점 주는 식으로 완전 관리자 마음대로예요. 팀장 부인이 정수기를 팔면 사야 하고,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근무시간도 아닌데 화장실 청소하고, 휴게실 청소하고 그래요. 일하다 다치면 벌점을 받으니까 말도 못하고 혼자 치료해요. 모든 문제는 근무평가제였어요."(유선호·36·나주공장)

폭력·해고·고소로 이어지는 탄압

"3M이 월급을 많이 주고 사회봉사 활동도 많이 하는 이미지 좋은 기업이지만, 안에서는 좀 심했어요. 소모품 비용을 아낀다고 여름에도 동복 바지 입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생산성 높인다고 교대로 봐야 할 기계를 혼자 보게 하고, 휴식시간도 없이 밥 교대를 해야 하니까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몰라요. 주말에 결혼식에 간다고 하면 '왜 쉬냐'고 '청첩장 복사해와라' 그래요. 부당한 일이 있어도 따지면 찍히거든요. 다 근무평가에 반영되니까. 노조가 생기고 그런 게 바뀌었어요. 노조에 90% 이상 다 가입한 건 그런 게 너무 심했기 때문이에요."(백승철·35·화성공장)

그러나 3M 경영진은 노동자를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평화롭던 공장에 용역깡패를 상주시켰고, 노조를 탈퇴하지 않는 조합원들은 힘들고 낯선 부서로 옮기고 탈퇴를 종용했다. 수백 명을 상대로 끝없이 해고와 징계, 고소·고발, 손해배상 가압류로 위협했다. 설마 회사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 꿈에도 몰랐던 노동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현장 라인에서 파트장까지 했던 고참 노동자는 그게 너무 억울했다. 그는 노조를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부의 신생 부서인 TPM(Total Position Maintenance)으로 옮겨졌다. 하루 종일 쓰레기를 줍거나 4만5천 평 공장 둘레의 풀을 베는 게 그의 일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땡볕에서 풀을 베면 입에 단내가 난다. 어떤 날은 예초기를 든 손이 덜덜 떨린다. 20여 일을 걸려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풀이 자라 있는 넓은 땅. 유배된 노동자 4명은 현장 조합원들과 격리돼 그렇게 형벌인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노조를 탈퇴할 수는 없단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고,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국3M이 상명하복 문화라 많이 힘들었어요. 현장에서 모멸감을 주죠. 이런 허드렛일을 시키면 분명히 탈퇴한다 생각한 거예요. 처음엔 모멸감보다 현장에서 여태껏 내가 쌓아왔던 경력이나 그런 것들을 회사가 분명 알 텐데, 노조가 생기든 아니든 내가 지금까지 (내 일을 사랑하는) 한결같은 마음이 있는 걸 분명히 알 거라고요. 여기서 이겨내려고 합니다."(진건수·41·나주공장)

   
한국3M 해고자들이 지난 9월7일 오후 서울 여의도 3M 본사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제가 입사한 지 18년이에요. 저도 파트장이었고 일에 대해서는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어요. 근데 미국 경제가 위기일 때 한국3M도 해고를 했어요. 능력을 인정받았어도 불안하죠. 출근하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감과 후배들한테 안전한 작업장, 할 말을 할 수 있고 노동자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현장을 물려주려는 생각에 노동조합에 가입을 했죠. 노동조합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습니다."(김범룡·43·나주공장)

TPM 부서의 노동자 4명이 땡볕에서 풀 베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박근서 지회장은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했다. 일 잘하고 현장에서도 신망받던 그들이 "우린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웃으며 말할 때마다, 해고자 처지라 현장에서 그들을 지켜줄 수 없는 현실, 노조를 만들자마자 겪고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 때문에 2년 동안 설사를 달고 산다. 정말로 속이 썩어 문드러졌다.

"600명 넘던 조합원이 1년6개월 만에 500명이 빠져나가는데, 진짜 애간장이 녹아버리더라고요. 안에선 관리자들이 탈퇴 작업을 하고 있고. 나는 못 들어가니까. 나보다 더 선배인 고참 사원들이 2년 동안 풀만 베고 있어요. 숨도 못 쉬게 더운데 예초기 메고…. 그거 보고 있으면 눈물이 눈에서 흐르는 게 아니라 가슴속에서 막 흘러요. 돌아버려요. 15년 이상씩 근무한 최고참들이에요. 얼마나 쪽팔리겠어요. 모멸감을 주는 거예요. 잔업 특근 안 시키고 임금 인상 안 시키니까 임금도 적고 비참하죠. 근데 당당하게 버텨주니까 정말 너무너무 고맙죠."(박근서·39·지회장)

2009년 5월14일, 수십 년 된 공장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회장이 된 뒤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회사가 큰돈으로 유혹도 했고 금속노조만 탈퇴하면 다 들어주겠다고 회유와 협박을 하고 있지만 조합원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민주노총 총파업이 있던 날 전남 나주와 경기도 화성 공장에서 서울 여의도 본사 앞 결의대회를 위해 올라온 조합원들에게 그는 단호하게 다짐했다. "이렇게 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저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지회장의 파업 지침을 받고 일제히 올라온 조합원들은 뜻밖에도 밝은 모습이었다. 온갖 탄압에 떨어져나가고 600명이 넘던 수에서 이제 160명만 남은 조합원들은 함께 견딘 3년 세월의 힘을 보여주었다. 지도부에 대한 신뢰와 서로에 대한 대견함이 보였고, 불안해하지 않고 해고자들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단단히 여문 속이 느껴졌다. "지금 남아 있는 분들은 그 자체로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분들"이라고 해고자들이 입을 모았듯 공장 밖의 해고자들은 이들이 있어 버티고, 조합원들은 버티고 있는 해고자들을 보면서 공장 안의 수모를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노동자 1500명이 1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해마다 수천억원의 배당금을 미국으로 보내는 게 한국3M이라고 한다. 세계 공장들 중에서도 알짜배기에 노다지다. 같은 공장 안에 정규직과 다른 무기계약직 직군을 두어 저임금으로 여성들을 차별하고, 근무평가제로 옴짝달싹 못하게 쥐어짠 결과다. 이들은 노조를 만들어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직군을 없애 정규직화했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대의를 위해 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주로 아주머니인 여성노동자들이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자신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에 상여금도 없고 진급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런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노동조합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대우를 받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정규직이던 한 해고자가 말했듯, 노동운동의 대의나 원칙은 아직 몰라도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했다.

정규직의 기득권만을 위해 싸운다는 비난은 가득하지만,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최우선으로 걸고 싸워서 이뤄낸 한국3M 노조 같은 사례는 알려지지 않는다. 금속노조를 두고 정규직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강성집단으로 묘사하는 언론은 많지만 하루아침에 해고돼 생계가 막막한 노동자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조직임을 알리는 곳은 거의 없다.

"금속노조 아니었으면 저희 노조는 진작 끝났죠. 징계가 시작되면서 1년 넘게 한 달이면 50명씩 (징계자가) 나왔으니까. 끝나고 들어가면 수십 명이 또 나오고, 또 들어가면 또 나오고 그랬어요. 정말 징계가 무섭더라고요. 사람이 월급을 못 받고 6개월 동안 심사를 받는다고 하면 회사를 떠나야 가능하지, 임금 한 푼 안 받고 살 수 없잖아요. 이 사람들 다 어떻게 하겠어요. 그나마 금속노조가 신분보장기금을 주어서 살았어요. 우리 생계비로만 수억원을 썼어요. 아마 쌍용차 다음으로 우리가 돈을 많이 가져갔을 거예요. 솔직히 우리가 낸 조합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만약에 기업노조였다면 어떻게 버텼겠어요. 그런 지원이 없었더라면, 그런 연대가 없었더라면…."(박근서)

3년 내내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싸움인데도 한국3M은 장기투쟁 사업장 가운데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구조조정, 정리해고, 비정규직 같은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죽은 것도 아니고, 용역폭력은 아직 사회에서 관심도 받지 못할 때였다. 사회적 쟁점 없이 그냥 당사자들만 죽어라 힘든 싸움, 그게 바로 한국3M처럼 노조를 지키는 싸움이다. 지금 공장에는 용역들이 라인까지 들어와 노동자들을 감시하며 괴롭히고 있다. 회사는 노조파괴 전문가를 고용해 조합원들을 탄압하고, 단체협상 교섭장에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 협상 중이라는 이유로 조합원들의 임금만 3년째 동결하고 있다. 비조합원과 한 달에 7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참다 못한 해고자들이 간판도 없는 여의도 3M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 중이다. 오늘도 담담하게 이런 싸움을 이어간다.

   
한국3M 해고자들이 서울 여의도 3M 본사 앞 농성장 주변에 쳐놓은 펼침막들. 한겨레 김명진

가장 힘들고 지난한 노조 지키기 투쟁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과 힘듦을 표현하지 않는 싸움의 수고를 알아야 한다는 걸 한국3M의 투쟁은 보여준다. 수십 명이 죽어 나가지 않아도, 고공농성이나 단식이 없어도, 삼보일배가 없어도, 노동조합을 만들 당연한 권리가 이런 모멸을 받아야 하는 세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게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왜 사회적으로 필요한 존재인지도 이들은 입증한다. 하루아침에 해고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들을 지탱해준 건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아닌 금속노조였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떠드는 따뜻한 경제, 사회안전망 확충을 사실상 노조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손 내밀 마지막 보루조차 무너진다면 이들의 현재와 미래는 누가 책임져줄까? 기약도 없는 재판을 7∼8년씩 기다리도록 하는 사법부가? 비정규직 양산과 정리해고를 법적으로 보장해준 입법부가? 입만 열면 정규직 귀족노조, 강성노조가 나라 망친다고 떠드는 행정부가? 교통 불편만 탓하는 언론이? 근로기준법조차 가르치지 않는 교육이? 과연 누가 이들의 구체적인 삶을 책임져주는가? 이 모든 곳이 노조 욕하기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묵묵히 노동자를 조직하고 교육하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노동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면 백번도 더 망했어야 할 서구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왜 노동조합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제발 글로벌 기업이라는 곳들이 아는 날이 언제나 올 것인가?

'용역깡패들이 노조를 파괴하러 일터에 들어가선 안 되는구나'가 아니라 '용역깡패라는 존재가 있어선 안 되는구나' 하는 걸 더 늦기 전에, 선을 넘기 전에 막아야 하고,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3M 노동자들은 말하고 있다. 어디선가 한 번은 이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누가 부여하지도 않은 의무감을 붙들고 용역깡패의 폭력에 맞서고, 지난한 재판을 이어가는 이 작은 노조의 노동자들에게 우리 민주주의가 빚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아닌 우리인들, 알기는 아는 걸까.

namufree@daum.net


바로잡습니다

2012년 6월호 '철저히 파괴된 복직 노동자의 삶' 기사 전문의 '현대중공업 복직 노동자 김석진씨'는 '현대미포조선 복직 노동자 김석진씨'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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