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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력,새로운 ‘빅 브러더’
[Special Report]한국경제 금융화
[3호] 2010년 07월 01일 (목)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conomyinsight@hani.co.kr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21세기 현대 자본주의에서 금융은 지난 30여 년 전의 모습과 달라졌다. 예전에는 주로 예금·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상업은행이 중심이 돼 여유자금을 흑자 주체인 가계로부터 적자 주체인 기업에 중개하는 것이 금융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또 금융업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가 존재해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파생금융상품시장이나 심지어 국제 금융시장과 외환시장도 크게 발달하지 못해 초라한 규모였다. 투자은행(증권회사) 규모도 작았을 뿐만 아니라 연기금이나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들도 지금처럼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금융에서는 상업은행보다는 투자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심지어 거대 상업은행도 고수익을 내는 투자은행 업무로 진출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금융이 실물경제와 기업의 성장, 발전을 위한 도구 역할을 했던 데 비해, 현재에는 그 자체가 핵심 성장산업의 지위, 나아가 제조업을 압도하는 위치에 있다. 특히 ‘전세계화된 금융’(Global Finance)은 이제 지배적인 권력이 됐다.
 
실물경제 지배자로 

   
서울 잠실 재건축 아파트 상가 전면에 여러 증권사들의 간판이 내걸려 있다.  한겨레 김정효

21세기 선진국 경제의 서비스화 과정에서 금융은 결정적으로 중요해졌다. 영국과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대국인 독일과 일본, 게다가 한국도 금융 산업(시장)의 경쟁력 강화에 혈안이 돼 있다.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금융산업의 육성·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요컨대 이제 금융산업이 제조업의 생산과 실물경제로부터 자립해 그 자체가 목적이 돼버렸다. 금융이 실물경제 지배자로 등장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21세기에 금융이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학자금 융자, 자동차 할부 금융, 신용카드 융자, 주택담보 대출, 각종 연금 및 펀드 투자 등이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우리의 가치 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금융화는 어느 정도 진전될 수 있을까? 전세계에서 금융화가 가장 많이 진전돼 자본시장이 선진화되고 투자은행이 발달한 나라는 모두 판례법(Common Law) 전통의 영미형(자유시장형) 자본주의 국가다. 미국은 물론 자본시장통합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영국·오스트레일리아, 나아가 영미형 자본주의의 법적·제도적 틀을 갖춘 동아시아의 홍콩, 싱가포르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에 비해 일본과 독일, 네덜란드는 우리보다 훨씬 일찍 영미형 자본주의의 금융화를 도입해 미국·영국과 어깨를 견줄 금융 허브로 발돋움하려 했지만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특히 다른 사민주의 국가들에 비해 자본시장이 일찍부터 발달하고 성문법주의 전통이 강한 네덜란드에서 금융화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문법 전통의 나라들에서 법과 제도가 금융화와 잘 조화되지 않고 서로 이질적이라는 경험적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일본·독일 등은 가계의 자산 보유 구조에서 상업은행과 저축은행, 심지어 우체국에 맡기는 예적금 비율이 절반을 차지하는데 비해 영미형 국가는 20%에도 못 미친다. 이에 비해 주식투자 비중은 서로 정반대다. 
한국은 독일, 일본보다 상황이 더 열악하다. 한국에서는 공정한 법질서와 투명한 규제 체계보다는 관치가 오랫동안 지배해왔기 때문에,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창의성이 부족하고 타성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세계 금융 언어인 영어 능력의 향상을 요구한다. 이런 근본적인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하기만 하면 대형 투자은행이 출현할 수 있고, 금융기관의 겸업화·대형화가 용이해져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보장될 수 있다는 주장은 매우 피상적이다.
과연 제조업 중심의 재벌이 금융 분야에서, 특히 투자은행 업무의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암묵적 지식과 숙련 기술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증권·보험회사뿐만 아니라 은행마저 지배한다고 해서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경쟁력이 높은 금융기관이 출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세계 주요 거대 금융기관 중 비금융 제조업 기업이 지배하는 회사는 없다. 금산분리 완화는 금융의 규율 기능을 허물어 오히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미국처럼 금산분리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얼마든지 금융산업 및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도외시되고 있다.
 
일본·독일, 영미식 금융화 실패 

금융화의 실현 가능성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금융화가 초래할 여러 가지 경제·사회적 부작용이다. 우선 금융화로 금융기관의 대형화·겸업화가 진전됨에 따라 금융적 위험(Financial Risk)이 커지고 있다. 2007∼2009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금융화가 광범위하게 확산됨에 따라 금융 수익성 극대화가 개인과 기업뿐만 아니라 전 사회에 지배적 규준이 됨으로써 금융 수익성을 높이려는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다. 때문에 사회적 연대나 통합은 더 어려워진다. 최근 국민의 경제적 삶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화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셋째, 기업 경영자가 스톡옵션 등의 인센티브 보수를 염두에 둔 자발적 동기이든, 아니면 기관투자가의 압력이든 간에 주주 가치 극대화에 집착함으로써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이나 가치 창출 기반의 확대·강화를 등한시하게 된다. 넷째, 금융투자회사, 나아가 은행 및 보험사까지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 등이 더 빈번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은 물론, 비금융 기업이든 금융 기업이든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금융 관료, 금융자본, 금융 엘리트(회계법인, 신용평가회사 등)의 권력이 전례 없이 강화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융의 이상 비대화가 촉진돼 금융이 제조업과 실물 부문의 재무적 요구에 묵묵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 실물 부문을 억압 내지 압도하여 궁극적으로는 제조업의 위축을 초래한다. 금융화는 실질적인 생산보다는 금융 활동이나 거래, 나아가 이자·배당·자본이득 등에서 수익을 올리는 특정한 자본가 계급의 경제·사회적 권력 확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노동자·서민에게는 불리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와 경제의 금융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상업은행의 지위와 역할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주식·채권·파생금융상품 등이 거래되는 자본시장과 여기서 주된 역할을 하는 자본시장 중개자(증권회사·투자은행·자산운용사·투자자문사·연기금·뮤추얼펀드·사모펀드 등)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이 자본시장 중개자는 전세계 자본시장을 대상으로 최고의 유동성을 발휘함과 동시에 고수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금융자본이다. 경제 금융화가 여러 의미를 내포하지만 결국 자본시장 중개자의 지배력과 자본시장의 규율이 경제 및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주주 가치·금융 수익성 극대화의 맹목적인 추구 △상시적인 기업 구조조정의 정당화 △기업연금·개인연금·펀드 등 개별적 자산 수익률만을 최우선시하는 자산적 개인주의 만연 △금융 정보 해독 능력의 중요성 확대 등 경제·사회 전반에 중대한 변화가 야기된다. 더불어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금융 관련 의제가 소수의 금융 엘리트와 금융자본, 그리고 금융 관료 등 금융 권력의 전유물로 전락할 위험성이 커진다. 그 결과 금융 관련 의제가 공론의 장에서 배제돼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민주적 담론 구조와 토론 정치의 토대를 밑바닥부터 허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변화가 상대적으로 금융 정보에 어둡거나 소외돼 있는 노동자와 서민의 삶에 불리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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