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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돈 1조달러를 훔친 사나이
Business: 에어버스 최고운영책임자(COO) 존 리히의 성공 스토리
[27호] 2012년 07월 01일 (일) 클라스 타체 economyinsight@hani.co.kr

   
에어버스의 존 리히 최고운영책임자(오른쪽)와 최고경영자 톰 엔더스가 2009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신화

상상 초월한 열정과 전략으로 항공기 1만 대 판매한 신화의 주인공

유럽의 항공기 제작회사 에어버스의 존 리히는 최고경영자(CEO)가 아무리 바뀌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에어버스 항공기 10대 중 9대를 그가 팔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180일을 비행기에서 보내며 시장점유율을 20%에서 50%대로 끌어올린 그의 성공 비결을 살펴봤다.

존 리히(61)는 죽어서 하늘에 가서도 하느님에게 비행기를 팔 사람이다. 에어버스의 존 리히 최고운영책임자(COO)의 영업실적은 상상을 초월한다. 에어버스가 제작한 항공기 10대 중 9대는 그가 판매한 것이다. 존 리히가 에어버스에 재직하는 동안 최고경영자(CEO)만 5명이 교체됐지만, 그가 미친 듯이 에어버스 항공기를 판매하면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한 CEO가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에어버스에 벌어준 돈은 1조달러에 달한다.

물론 항공기 비즈니스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와 다르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나 기업 고객이나 판매자로부터 유혹받고 싶은 심리는 마찬가지다. 존 리히는 고객의 마음을 훔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난 소질을 갖고 있다.

존 리히가 지닌 발군의 영업실적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답은 간명했다.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다. 제품만 좋다면 판매는 저절로 된다." 그러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정오인데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굴은 창백하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으며, 두 빰에는 분주한 오전을 보낸 뒤 상기된 붉은 기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는 에어버스 항공기 문제로 오전을 정신없이 보냈다. 대표적 모델인 A380기 날개에서 미세한 갈라짐 현상이 포착돼 항공사로부터 불만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존 리히는 항공사들을 돌아다니며 쉴 새 없이 해명을 했다.

존 리히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바로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객은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고객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 해결하는 일이다. 그는 전세계 300여 개 항공사들에 조금의 소흘함이 없도록 비행기를 타고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항공기 판매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홍콩 캐세이퍼시픽항공사의 CEO였던 토니 타일러는 장난 삼아 그에게 뱀수프를 주문시킨 적이 있다. 존 리히가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볼 요량이었다. 존 리히는 기꺼이 뱀수프를 먹었다.

저가항공사 에어아시아의 CEO 토니 페르난데스는 존 리히를 디스코텍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날은 공휴일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일단 파티부터 열고 자정이 지난 뒤에야 비즈니스를 논의할 생각이었고, 그날 둘은 광란의 밤을 보낸 것으로 존 리히는 기억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A320 구매 양해각서에는 존 리히와 토니 페르난데스의 서명과 더불어 여승무원들의 립스틱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필요하다면 존 리히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굴욕도 기꺼이 감수한다. 다혈질로 악명 높은 카타르항공사의 CEO 아크바르 알바케르는 2011년 화물항공기 몇 대를 납품받은 자리에서 한 화물항공기의 승강구 금속 부분에서 지문 몇 개를 발견하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객 앞에 넙죽 엎드린 존 리히는 이렇게 말했다. "귀하는 고객입니다.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고객 직접 대면이 첫째 성공 비결

이처럼 존 리히의 성공 비결은 고객과 직접 만나는 것이다. 항공사를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존 리히와 직원 400여 명은 피눈물이 날 정도의 노력을 쏟아붓는다. 특히 경쟁업체인 보잉사를 밀어낼 필요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유럽의 저가항공사 이지젯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지젯항공사는 2002년에만 해도 보잉사 항공기만 구매했다. 존 리히는 보잉사의 독점을 깨뜨리기 위해 거의 2년 동안 치밀하게 이지젯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에어버스에서 유럽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크리스 버클리는 이렇게 설명했다. "존 리히는 케이터링은 어떻게 이뤄지고, 기내 음식으로 무엇이 제공되고, 기내 주방은 무엇을 사용하며, 좌석 간격은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탑승 시간 등 이지젯항공기의 모든 것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존 리히는 이지젯항공기를 보잉사보다 효율적으로 재편하는 방법을 구상해냈다. 존 리히는 A319 기종에 좌석 간격을 최대한 좁게 하고 비상탈출문을 하나 더 설치해 90초 안에 승객 전원을 대피시킬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납품할 항공기에 좌석 156개를 설치했다. 보잉 737기의 좌석은 149개였다. 두 회사의 운명을 뒤바꾼 것은 항공기 좌석 수였다. 이지젯은 에어버스에 항공기 120대를 주문했다. 에어버스의 한 직원은 "존 리히의 집중력은 레이저를 연상시킨다. 일단 목표에 집중하면 절대 눈에서 목표물을 놓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995년 존 리히가 프랑스 툴루즈의 에어버스 본사에 처음 부임했을 때를 직원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상륙에 비유했다. 에어버스 본사 직원들에게 존 리히는 태평양을 건너온 문화적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존 리히는 프랑스인이 아닌 미국 뉴욕의 토박이였다. 뉴욕의 퀸스와 브루클린에서 자란 그는 대학 등록금도 택시 운전 등을 해서 스스로 번 돈으로 충당했다. 당시 에어버스의 CEO 장 피어슨이 존 리히에게 고급 레드와인과 시가를 권하자, 리히는 이를 마다하고 콜라를 마셨다고 한다. 그러자 피어슨은 기겁을 하며 "여기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렸다는 후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존 리히는 허풍쟁이에 가깝고 뼛속까지 자신감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프랑스 본사에 부임하자마자 그는 에어버스의 시장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에어버스는 당시 시장점유율 20% 유지만으로도 힘겨워하던 터였다. 존 리히의 측근 필리프 컴베이는 '미국인이 드디어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단다. 2000년이 되기 전에 경쟁업체인 보잉사를 앞지른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운 존 리히는, 계획보다 1년 앞서 목표를 달성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는 시장점유율 50%로 트렌드를 지배할 수 있고, 고객이 에어버스사에 프리미엄을 지급할 것임을 확신했다.

명확한 목표 설정은 두 번째 성공 비결이다. 존 리히는 직원들을 마치 폭주하는 증기기관차처럼 휘몰아친다. 항공사들과 협상 중인 직원들은 주말에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존 리히의 전자우편과 전화를 감수해야 했다. 존 리히는 어떤 변명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결과로만 말한다. 툴루즈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하루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여비서들이 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존 리히는 1년 365일 중 180일을 비행기에서 보낸다. 한번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프랑스에 도착했다가, 추가 협상을 위해 오후에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출국한 적이 있다. 크리스 버클리는 그의 근성에 대해 "존 리히는 입에 뼈를 물고 있는 개와 같다. 그는 한번 입에 문 뼈는 절대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1년에 한 차례 존 리히는 '에어버스가 입에 문 뼈를 세어보는' 의식인 전략미팅을 연다. 그는 전략미팅에 전체 직원을 소집한다. 팀장들은 무대에 올라가서 연간 목표를 달성했는지 보고한다. 연간 목표 달성에 성공하면 무대 뒤에 설치된 스크린에 대형 연두색 표시가, 실패하면 대형 붉은색 표시가 뜬다. 그래서 전략미팅은 순식간에 파티 또는 공개재판이 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에어버스 최종 조립공장에서A350 XWB 항공기의 시험용 기종인 MSN1이 조립되고 있다. 뉴시스 신화

"한번 문 뼈는 절대 놓지 않는다"

전략미팅이 열리는 날이면 존 리히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셋째 성공 비결을 주입한다. "네가 최고라고 자만하지 마라! 고객 앞에서 절대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마라!" 존 리히가 자신이 설파하는 성공 비결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지는 아랍에미리트항공사의 CEO 아흐메드 알자빈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존 리히는 현장을 떠나지 않는 결정권자다. 그는 협상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아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항공기는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항공기 구매 고객과 판매자도 직접 만나야 한다. 고객들의 세부적인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자동차 구매시 무료로 제공받는 자동차 라디오는 항공기의 경우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비견된다. 자동차 음료대는 기내 주방에 해당하고, 항공사들은 A380 기종 항공기의 첫 정비가 폴크스바겐 골프 모델의 정비만큼 저렴하리라고 기대한다(에어버스가 첫 번째 정비 비용 부담). 또 우수 고객은 항공기 정가에서 30~40% 할인을 받는다. 존 리히가 고객들의 개별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 엔지니어 수백 명을 인내심과 기술의 한계 상황까지 몰고 갔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항공사들이 에어버스사에 제시한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기내 좌석 위 별밤 모양의 발광다이오드(LED) 램프 설치, 퍼스트클래스 승객용 샤워시설 설치, 국내 영화 DVD 구비 등이 있다.

존 리히는 지금까지 에어버스 항공기 9726대를 판매했고, 6천여 대의 납품을 완료했다. 이는 에어버스에 신규 수주가 없어도 향후 8년 동안 직원들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1조달러의 사나이 존 리히도 자신의 성공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는 2006년 심장혈관에 스텐트 삽입 수술을 받았다. 당시 수술실로 들어가는 중에 그는 페덱스의 CEO 프레드 스미스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화물항공기 주문을 취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제가 일을 관두기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존 리히의 말이다.

클라스 타체 Claas Tatje <차이트> 경제부 기자

ⓒ Die Zeit 2012년 23호 Der Billionen-Dollar-Mann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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