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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맨, KDI 위기 부르다
[Special Report Ⅱ] 위기의 KDI- ① '현오석 원장 연임'에 안팎 비판 분위기
[25호] 2012년 04월 01일 (일) 이춘재 economyinsight@hani.co.kr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비롯한 'MB맨' 국책연구기관장들이 잇달아 연임에 성공했다. 이들은 재임 기간 동안 친정부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국책 싱크탱크를 정부의 '머리'가 아닌 '손발'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샀다. 특히 현오석 원장은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중시했던 KDI의 전통을 무시해 핵심 연구원들이 줄줄이 떠나도록 했다. 갈등과 혼란 속에 KDI의 국제경쟁력은 지지부진하고, 싱크탱크로서의 위상도 크게 추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원장의 연임을 결정한 MB 정부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_편집자

   
박정희 정권 이래 한국 경제개발의 두뇌 역할을 해온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명박 정부 들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 홍릉에 있는 KDI 정문 모습. 한겨레 탁기영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연임 원장이 탄생했다.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는 4월6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현오석(62) 원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초대 원장 김만재 전 포철회장이 연임했지만,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과도기였음을 감안하면 현 원장이 사실상 첫 연임 원장인 셈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KDI 내부 반응은 싸늘하다. 그의 연임을 환영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1년 반짜리(임기 3년) 원장'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왜 그럴까?

전례 없는 핵심 연구원들의 이탈

KDI 안팎에선 현 원장의 연구 자율성 침해 시비를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전통적으로 연구 자율성을 중시했던 KDI에 정부와 같은 목소리를 낼 것을 주문하면서 연구원들의 불만을 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 원장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던 핵심 연구원들이 줄줄이 이직하는 사태가 초래됐다.

<국민일보>는 지난해 7월7일 '정부 정책에 동조를 강요하고 연구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현 원장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핵심 연구원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실제로 2011년 한 해 동안 주요 보직을 맡았던 박사급 연구원 7명이 대학과 민간연구소로 잇따라 자리를 옮겼다. 연구원의 이직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주로 대학교수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처럼 민간 연구소나 일반 기업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 원장은 이런 지적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4월20일 서울 홍릉에 있는 KDI 원장실에서 만난 그는 '연구의 자율성 침해 시비'에 대한 질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현 원장은 "질문의 전제가 잘못됐다. 연구원 이직이 연구 자율성 침해 탓이라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오히려 이직 사태를 연구원의 헌신성이 부족한 탓으로 해석했다. "지금 연구원은 과거에 비해 가족, 이런 것에 더 민감하다. 데디케이션(dedication·헌신)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현 원장은 이직 사태 이후 연구원을 상대로 면담했는데, "연구 자율성 얘기는 나오지 않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더라. 그래서 지금 연구원의 정년 연장을 경사연 쪽과 논의하고 있다"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현 원장은 연구 자율성 침해 시비와 관련해, "그런 말은 KDI 연구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며 "KDI의 연구는 철저하게 펠로십에 따라 이뤄진다. 연구에 한해서는 서열이 없다. 원장도 펠로 자격으로서 논의에 참여한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원장이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 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KDI는 최근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에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정책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아 논란이 됐는데, 모두 현 원장이 개입했다.

KDI는 지난해 11월20일 올해 경제성장 전망을 발표하면서, 현 원장 지시로 애초 원안에 없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성장률 상승효과 자료를 발표 직전에 끼워넣었다. 원안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8%로 전망했는데, 별첨된 자료는 "한-미 FTA가 예정대로 2012년 초 공식 발효될 경우 3.9~4.1%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미 FTA로 0.1~0.3%포인트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시 국회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이 보고서가 발표된 이틀 후 11월22일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했다. 결과적으로 현 원장이 지시한 별첨 자료가 여당의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에 큰 힘을 실어준 셈이 됐다.

그러나 이 자료는 한-미 FTA가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는지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FTA를 반대하는 쪽은 물론 이를 찬성하는 보수언론에도 비웃음을 샀다. 한-미 FTA 효과에 대해 자체적으로 조사하지 않고 다른 국책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치를 도출해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은 한-미 FTA 발효 이후 1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5.66%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KDI는 이를 근거로 2012년 1년 동안 FTA로 인해 성장률이 0.1~0.3%포인트 상승할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중앙일보>(2011년 11월22일치)는 '근거는 없고 자신감만 넘친 FTA 보고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분석이 나왔는지 알 수 없다"는 다른 국책연구소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보고서의 허술함을 꼬집었다. KDI는 기존 연구기관의 연간가능일반균형(CGE) 모형 결과를 기초로 추산했다고 밝혔는데 이 모형은 FTA 같은 외부 충격 효과가 어떤지를 분석할 때 유용할 뿐, 특정 기간을 상정한 분석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 원장은 이 자료를 경제전망 전담팀에 맡기지 않고 당시 KDI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연구원에게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이를 두고 현 원장이 핵심 연구원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 연구원은 이후 서울의 한 대학교수 자리로 옮겼다.

현 원장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준동의안 처리가) 이슈가 돼서 사람들이 궁금해할까봐 자료를 만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보고서 원안에 한-미 FTA의 효과를 언급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게 얼마나 될지 (언론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한 것"이라며 "학자라면 수치가 좀 틀리더라도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DI는 또 4·11 총선을 불과 50여 일 앞두고 '이명박 정부 출범 4년 경제적 성과와 향후 정책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2월22일 발표된 이 보고서는 '이명박 정부가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주장하는 등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데 치중했다.

이명박 정부에 좋은 점수를 준 근거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국가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2009년에도 한국은 0.3%의 플러스 경제성장률을 지켜냈고 2010년에는 6.2% 성장을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수준의 경기회복세를 보인 점을 들었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발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4년 평균 경제성장률이 전세계 평균인 2%보다 1%포인트 정도 더 높은 3.1%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문제는 쏙 빼놨다. 이 자료가 발표된 다음날 한국은행은 "2011년 4분기 가계대출이 912조9천억원으로 900조원을 돌파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해 KDI를 부끄럽게 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도 KDI 보고서 내용이 얼마나 생뚱맞은지 보여줬다. 이 보고서는 국민총소득 증가율이 DJ 정부 3.9%, 참여정부 3.4%를 기록했으나, MB 정부 4년 동안에는 2.2%에 그쳤다고 밝혔다. 또한 소득분배 상태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DJ 정부 0.279, 참여정부 0.281, MB 정부는 0.293으로 계속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KDI 보고서는 또 환경 파괴는 물론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을 둘러싼 논란까지 일고 있는 4대강 사업을 버젓이 경제성과에 포함시켰다. 4대강 사업은 보의 균열과 강바닥 침식 현상 등으로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 대규모 녹조까지 발생해 수질 악화 조짐까지 보인다. 더욱이 정부가 '4대강 수질 관리와 홍수 방지' 명목으로 20조원을 추가로 들여 4대강 지류 하천 정비 사업을 벌이는 등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가 추가로 투입될 예정이어서 경제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KDI 핵심 인력이 모인 연구본부에서 만들지 않고 원장 직할 기구인 경제정보센터에서 작성했다. 이처럼 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자료를 총선을 앞두고 낸 것에 대해 연임을 앞둔 현 원장이 MB 정부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현 원장은 이런 지적에 "말도 안 된다"며 발끈했다. 그는 "가계부채를 뺀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이겠다. 우리는 가계부채가 디폴트가 발생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참여정부와 DJ 정부 때도 이와 비슷한 보고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KDI 안팎에서는 현 원장 체제에서 KDI가 노골적으로 친정부 성향을 띠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KDI 구성원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지난해 KDI를 떠난 한 연구원은 "현 원장은 전임 원장에 비해 연구에 많이 개입했다. 특히 정부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것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한 현직 연구원은 "전통적으로 중시되던 연구 자율성이 침해되고, 여기에 세종시 이전 문제까지 겹쳐서 남아 있는 연구원도 기회가 오면 나갈 궁리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현 원장은 '연구의 자율성'을 연구원들과 달리 해석한다. 그는 "국책연구기관은 정부 지원을 받기 때문에 정부 정책과 밀접한 연구를 해야 하고 정책에 대한 솔루션(해법)을 낼 때 정부와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펠로들한테 '정부와 부딪히지 말고 대화를 많이 하라'고 주문한다"며 "이런 국책연구기관의 한계를 인식하지 않고 정부 정책을 비판만 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현오석 원장(왼쪽)의 연구 자율성 침해로 KDI의 핵심 인력들이 줄줄이 떠나고 있다. 하지만 현 원장은 "국책연구기관의 한계" 탓으로 돌렸다. 한겨레 탁기영

지지부진한 KDI의 경쟁력

하지만 DJ 정부 때 KDI 원장을 지낸 이진순 숭실대 교수는 현 원장과 생각이 다르다. 이 전 원장은 "국책연구기관장의 역할은 '총알받이'다. 청와대나 정부에서 연구 결과에 대한 항의가 오면 원장이 이를 막아줘야 한다"며 "연구의 생명은 자율성이다. 이게 지켜져야 연구원이 신명나게 일한다"고 말했다.

현 원장이 KDI의 전통과 전혀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그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현 원장은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등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그는 사무관 때 KDI를 비롯한 국책연구기관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관료는 학자와 달리 KDI를 독립적인 싱크탱크로 보지 않고 정부 부처의 산하기관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원장과 연구원 간의 갈등은 KDI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KDI는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이 주관하는 2010년 세계 싱크탱크 순위 조사에서 세계 75위에 랭크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종합 6위(2009년 12위)에 올랐고, 국제개발 (International Development) 분야에서는 세계 22위를 차지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2011년 조사에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과 인도, 일본에 밀려 11위로 떨어졌고, 국제개발 분야에서도 미국과 유럽 선진국은 물론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조차 밀려 27위로 내려앉았다. 또한 미국을 제외한 지역의 싱크탱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레바논 등에 밀려 순위(5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이진순 전 원장은 KDI의 현 상황을 총체적 위기로 진단했다. 이 전 원장은 "KDI의 핵심 인력이 내놓은 연구 결과물은 아주 뛰어나고, 기발한 정책 아이디어도 많이 생산한다. 그런데 이들이 계속해서 빠져나간다면 KDI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KDI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현 원장의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현 원장이 연임에 성공한 것은 국책연구기관장을 선임하는 권한을 가진 경사연 이사회의 기형적인 구조와 허술한 심사 탓이다.

경사연 이사회는 국무총리가 임명하는 이사장과 정부 부처 차관급인 당연직 이사 8명, 외부 민간 이사 8명으로 구성된다. 이사장을 비롯한 정부 쪽 이사가 과반인 구조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정부가 원하는 인사를 할 수 있는 구조다. MB 정부 이전에는 외부 민간 이사가 1~2명 더 많았다.

심사도 매우 허술하다. 후보자의 소견 발표와 이사의 면접, 그리고 이사의 토론을 거친 뒤 무기명 투표로 원장을 뽑는다. 이사와 안면이 있는 현직 원장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경사연은 KDI를 비롯한 국책연구기관장에 대한 내부 설문조사를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원장 선임 때 이 자료를 이사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한 외부 이사는 "경사연 사무국에서 그런 자료를 받아본 적 없다. 후보자에 대한 적절한 정보가 외부 이사한테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영근 경사연 사무총장은 "기관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이사에게 제공하지 않았지만, 만약 요청했으면 제공했을 것"이라고 궁색한 해명을 했다.

KDI를 머리가 아닌 손발로 쓰려는 MB 정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설립된 KDI는 박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우리나라 대표적 싱크탱크로 성장했다. KDI 연구 결과물이 정부 경제개발전략 수립에 중요한 구실을 하면서 연구원의 자긍심도 커져갔다.

하지만 KDI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은 더이상 새롭지 않다. 현 원장은 "과거에 비해 정부 부처 능력도 향상됐고 삼성경제연구소 등 역량 있는 민간 연구소도 많이 생긴 탓"으로 돌리지만, 연구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 고참 연구원은 "(MB 정부는) KDI를 더 이상 '머리'로 여기지 않고 '손발'로 사용하려는 것 같다"며 "어떤 것이 국책연구기관의 기능으로 바람직한지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춘재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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