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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위기 끝나지 않았다
[Finance] 유로발 경제위기 어떻게 되나
[24호] 2012년 03월 22일 (목)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시장은 유로존 위기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이 언제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건 아니다. 위기는 유럽의 다른 국가로 전이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3월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룩셈부르크의 총리 장클로드 융커(오른쪽)가 스페인의 재무장관 루이스 데 긴도스(가운데)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걸고 있다. 둘은 곧바로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인사를 나눴다. 유럽에서는 그리스에 이어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가장 큰 국가로 스페인을 꼽고 있다. 뉴시스 AP

유럽중앙은행이 돈을 뿌리고 있다. 1, 2차 장기대출(LTRO)을 통해 1조유로 이상을 역내 은행에 공급했다. 덕분에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은 2008년 말 1조3천억유로에서 2012년 3월 초 2조6700억유로로 2배 이상 늘었다.

돈을 살포한 이유는 명확하다. 오직 유럽 재정위기국의 파국과 역내 '좀비' 은행의 도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은행의 대출 여력을 늘려 투자를 촉진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유로존 위기

실제 장기대출로 풀린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차 때 풀린 돈은 재정위기국의 채권, 신흥국 자산시장, 원자재 시장 등으로 흘러 들어갔다. 싼 금리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캐리트레이드'다. 2차 때 풀린 돈은 그나마 여의치 않다. 자산시장 금리가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2차 장기대출 금액의 65%가 유럽중앙은행으로 다시 돌아와 0.25%짜리 초단기 상품에 쌓이고 있다. 장기대출 목적이 실물경제를 위한 투자 촉진에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유럽중앙은행의 시도는 일단 성공한 듯하다. 재정위기국의 채권 금리는 비교적 안정돼가고, 역내 은행의 자금 사정도 한숨 돌린 듯하다. 문제가 있다면 인플레이션율인데 2% 목표치를 약간 상회하는 2.4% 정도니 실망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게다가 그리스 위기도 봉합되는 양상을 보인다. 민간채권자와의 국채 교환 협상은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이에 유로그룹은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제공을 최종 승인했다.

이처럼 유럽의 위기는 겉으로 보기엔 수습 국면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거대한 태풍이 오기 전의 고요함이 연상되는 건 기우일까. 민간채권단과의 국채 교환 협상이 타결되던 날, 하필 스페인이 재정 적자 목표를 지킬 수 없다고 발표한 건 유럽의 앞날에 대한 불길한 전조는 아닐까. 그리스에서 촉발된 부채위기가 다른 국가로 전염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은 당연하다. 결론은 유럽은 단지 시간을 벌었을 뿐이란 사실이다. 상처는 더욱 곪아가고 있다. 유럽을 파괴한 균은 더욱 강해져 전염 강도를 높이고 있다. 유럽의 현재만을 놓고 보면 넘치는 돈의 장막에 가려 진실을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면 대답은 한층 명료해진다. 유럽 정치인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해온 거짓말을 오늘도 반복하고 있다.

그리스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던 2009년 말로 돌아가보자. 당시 그리스 총리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와 유럽 정치인들은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을 철저히 부인했다. 2010년 9월까지 그리스엔 채무 조정조차 없을 거라 주장했다. 채무 조정을 하게 되면 주변국에 대한 투자가 끊겨 유로존 통합의 기초가 흔들릴 거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지난 3월, 국제스와프파생상품협회(ISDA)는 그리스의 디폴트를 선언했다. 물론 유로존과 그리스 정치인들도 말을 바꾸어 '질서 있는 디폴트'를 자인했다.

정치인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상황에 따라 교묘하게 말바꾸기를 해왔다. 거짓말이 들통난 현재도 이들은 좀처럼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현실을 왜곡한다. 이들의 호언장담과 말뒤집기는 점점 강도를 더해간다.

이제는 그리스의 디폴트가 유로존의 다른 국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강변한다. 도미노 효과도 발생하지 않을 거라 한다.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의 사정은 호전되고 있으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신뢰성이 제고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명한 사람이면 이들의 말에 더 이상 속지 않고 진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말은 거꾸로 해석하면 된다. 유럽이 고심하는 건 이미 그리스가 아니다. 그리스 디폴트로 인한 악영향이 유로 시스템 전반으로 전염되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그리스는 '질서 있는 디폴트' 상태다. 아름다운 수식어를 앞에 달고 있지만 디폴트는 디폴트일 뿐이다. 승자는 없다. 정치인들은 축배를 들고 있지만 모두가 패자다.

민간 채권자들의 돈 1천억유로는 공중으로 분해됐다. 유럽 납세자들은 1300억유로를 빌려주는 대가로 채권자들의 돈 중 상당액을 보존하게 했다. 50% 이상 손실을 보면서 나머지 원금을 상환받기 위해 그 이상의 돈을 빌려주는 셈이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얼핏 그리스만 남는 장사를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가 1300억유로를 얻기 위해 포기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다.

물론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채권단이다. 그리스가 새로 교환해준 신채권은 벌써 휴지가 되고 있다. <블룸버그> 자료를 보면, 신채권은 만기일에 따라 71~79% 할인 거래되고 있다. 이미 53% 정도 헤어컷 되었으니 겨우 액면가의 12~14% 수준에서 거래되는 셈이다. 채권자들은 투자금의 90% 정도를 날렸다.

시장 거래 기준으로 보면, 그리스 채권은 쓰레기나 다름없다. 새로 발행된 채권도 시장에선 정크본드 이하로 취급된다. 왜일까? 이번 부채 탕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회생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리스는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다. 긴축으로 얻은 건 전무하다. 그렇다고 긴축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자금 조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 경제는 2008년 -0.2%, 2009년 -3.3%, 2010년 -3.4%, 2011년 -6.9%, 지난해 4분기 -7.5%를 후퇴했다. 경제 규모는 5년이 채 안 돼 5분의 1이 줄었다. 경제가 20% 축소되었다면 이는 공황이다. 실업률은 20%, 청년실업률은 50%를 넘는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시민들이 지난해 8월5일 마드리드 중심부의 푸에르타델솔 광장에 모여 정부의 긴축재정 등 유로존 위기에 대한 대응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나치의 악몽 떠올리는 그리스

공황을 탈출하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부채의 완전 탕감, 혹은 그리스가 필요한 만큼의 전폭적 자금 지원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자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그리스가 유럽연합(EU)과 맺은 협약은 경제 개선을 위한 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임금 삭감, 정부 지출 축소, 강력한 세금 부과 등이 EU의 처방이다. 이는 경제 후퇴를 하라는 것과 진배없다.

그리스 언론은 노골적으로 독일을 비난한다. 신문엔 나치 문장의 옷을 입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사진이 등장한다. 이런 상황이니 오는 4월 선거에서 그리스 민심이 어떤 식으로 표출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스가 EU 등이 강요하는 긴축 제안을 순순히 따를 것이라 믿는 건 순진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럽 지도자들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디폴트가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완강히 부인한다. 그러나 전염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스의 국채 교환 협상이 마무리된 날, 스페인은 일방적으로 EU와의 합의 사항인 재정 적자 규모를 지킬 수 없다고 발표했다. 합의 사항인 4.4% 적자를 지킬 수 없으니 국내총생산(GDP)의 5.8% 수준까지 양보하라고 주장했다. 스페인은 지난해에도 6.0% 목표를 지키지 못하고 8.5%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그런데 올해도 약속을 어긴 것이다. 이에 놀란 EU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 5.3%로 조정해주었다. '신재정협약문'의 잉크가 채 마르지 않았는데 벌써 약속을 어기는 국가가 나타나고 있다.

신재정협약 내용은 현재의 유럽 상황에 비춰볼 때 너무 이상적이다. 재정 적자 비율을 GDP의 3%, 누적 채무를 60%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 이를 과연 몇 개국이나 지킬 수 있을까. 위반할 땐 자동 처벌하게 한다. 자동으로 어떤 처벌을 한단 말인가.

스페인 실업률은 지난 2월에 전월 대비 2.4% 늘었다. 전체 실업률은 20%, 25살 이하 청년실업률은 50%를 넘었다. 공식적으로 올해 GDP는 -1.0~1.7% 후퇴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더 비관적일 것이다.

포르투갈이라고 사정은 낫지 않다. 오히려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민간투자자들은 포르투갈 채권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독일 킬의 세계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포르투갈이 부채 악순환에서 탈출하려면 2% 경제성장과 함께 매년 11%씩 재정 흑자를 내야 한다. 이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포르투갈 부채는 지속 불가능하다. 포르투갈은 그리스가 걸은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포르투갈 국채 5년물 수익률은 현재 19.8%에 이른다. 1년 수익률은 6%에 불과했다. 그리스에서도 동일한 일이 발생했다. 1년 전 그리스 국채 5년물은 12%였다. 지금은 50%를 넘는다.

EU는 부채 위기를 진정시키는 한편, 문제 국가를 다독여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만약 EU가 스페인에 재정 적자 용인 같은 특혜를 준다면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도 요구할 것이다. 유럽중앙은행이 이탈리아 채권을 매수한다면 포르투갈과 스페인 역시 요구할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는 엄청난 액수의 부채 탕감을 받았다. 이를 지켜보는 재정위기국들은 당연히 똑같은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과연 EU와 유럽중앙은행이 이런 요구를 모두 수용하며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시장도 위기의 본질 못 보나

유럽이 적자를 통제하고 부채비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부채가 느는 것보다 더 빨리 성장하거나 부채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 부채를 차환해나가기도 바쁜 재정위기국이 정상적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건 무리다. 게다가 강요된 긴축은 그나마 이룬 성장도 방해한다. 유럽중앙은행의 무제한 통화 발행, 북유럽의 남유럽에 대한 전폭적 지원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 디폴트로 인한 부채위기의 전염을 피할 수 없다.

시장은 위기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이 언제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건 아니다. 시장이 2007년 중반에는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없었다. 경고등은 여기저기서 번쩍였지만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위기는 유럽의 다른 국가로 전이되고 있지만 유럽 정치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시장도 넘치는 유동성에 취해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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