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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봉건국가를 꿈꾸다
[Special Report Ⅱ] 깊숙이 들어가 살핀 독일 최상위 1%의 삶
[24호] 2012년 03월 22일 (목) 마르쿠스 데트머 外 economyinsight@hani.co.kr

   
 
상위 1%에 대한 99%의 증오가 지금처럼 강렬한 때가 또 있었을까? 전통적으로 부(富)는 안락의 영역이자 금기의 영역인 특이한 위치를 차지했다. 하지만 경제화가 극에 달한 사회에서 돈은 거의 모든 것의 척도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더 신뢰를 잃고 있다. 그 결과 재력가들은 부에 대해 말하는 걸 꺼리게 됐다.
특히 1%보다 적게 가진, 이른바 '중산층'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점점 커지면서 부의 분배 과정에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분배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품은 지 이미 오래다. 정치가와 언론, 심지어 학자들까지 1%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1%에 해당할까? 그들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추구하며, 자본주의에 점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슈피겔>이 그들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_편집자

사람들은 독일 내의 빈곤에 대해서는 잘 안다. 하지만 최상위 1%의 삶은 어떤지, 그리고 이들은 점점 자본주의에 비판적으로 되어가는 나머지 99%를 어떻게 보는지 잘 모른다. 그들은 새로운 경제적 봉건국가 건설을 꿈꾼다.

옛날에 참나무처럼 튼튼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가 살던 곳은 독일 최남단 도시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시보다 더 남쪽에 있는 한 산골 마을로 인적이 드물었다. 그의 이름은 디트마르 뮐러엘마우. 첫 번째 아내가 낳은 세 아이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자라야 했다. 당시 학생이던 그의 수입은 한 달에 1천마르크에 불과했다. 그 후 그는 갑자기 수백만마르크를 벌게 되었다. 두 번째 아내가 낳은 세 아이는 그의 5성급 호텔에서 실내 온수 풀장, 직원 220명, 그리고 현관 앞에 세운 스포츠카 포르셰 카이엔을 포함한 최고의 호사 속에서 자라고 있다.

'부'에 대해 말하기 꺼리는 부자들

나중에 뮐러엘마우의 여섯 아이 중 누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될까? 가난했던 세 아이? 아니면 부자였던 세 아이? 뮐러엘마우는 그의 호텔 바에 앉아 있다. 벽난로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유명 가구업체의 긴 의자가 놓인 테라스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해는 서서히 산꼭대기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57살의 이 남성은 광기와 증오,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로 가득 찬 그의 가족사를 몇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부르주아의 이상과 상류층의 귀한 딸들이 왜곡된 방식으로 이용당하고, 마지막에는 거의 모든 것이 화염 속에서 불타버리는 대하소설 같은 내용이었다. 그에게 '돈'과 같은 고상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 물어보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의 특급호텔 슐로스엘마우 어디에나 독일의 부가 넘쳐흐르고 있다. 이 호텔의 지하 차고를 BMW부터 레인지로버 등으로 가득 채우고, 때때로 야간 콘서트와 낭독회로 분위기를 살리는 것도 부 때문에 가능하다.

슐로스엘마우 호텔에서 열리는 이벤트의 출연자들은 오버바이에른의 민속음악밴드 따위가 아니라,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나 철학자 페터 슬로터디크와 같은 문화의 대가들이다. 이 문화적 사치는 심지어 무료로 제공된다. 그 밖의 것이 나름의 가격을 내세울 뿐이다. 그렇더라도 세계적 음식점 평가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애피타이저로 내놓는 쌀 음료를 곁들인 최고급 블루핀 참치와 해초 수프는 전채 가격으로만 31유로(약 4만5600원)를 내고 먹을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슐로스엘마우 호텔을 떠도는 부는 조용하고,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수성가한 부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호텔을 통해 다른 이들의 부에 사탕발림을 하는, 이 작지만 커다란 세계의 주인보다 독일의 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적합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독일에서 부는 안락의 영역이자 금기의 영역인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화의 극을 이룬 사회에서 돈은 거의 모든 것의 척도가 되었지만, 동시에 측정 기준으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신뢰를 잃고 있다. 그 결과 큰 재력을 지닌 사람은 그에 대해 말하는 걸 꺼리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그들이 살고 있는 월세 아파트의 이웃조차 그들이 부자라는 사실을 모르게 숨어 사는 백만장자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로 인해 곤혹스러워하거나, 자신의 부가 정당함을 입증해야 하는 데 지쳐 있다.

또 다른 부유층은 그들보다 가진 것이 적은 자(정치가·사회학자·언론인도 대다수 포함됨)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해한다. 분배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 역시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독일의 많은 언론인은 부유층에 대해 언급하려면 의심스러운 태도로 다루거나, 심지어 경멸하는 어투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독자들에 대한 언론의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기꾼이나 졸부의 우스꽝스럽고 비호감을 느끼게 하는 행태가 있다. 동시에 부유층을 공격하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부유층은 현재 그들에게 가해지는 공격에 거의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아기 예수의 아버지 요셉으로 분장한 <디 차이트> 리포터가 마리아로 분장한 여배우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부촌 크론베르크임타우누스를 돌아다니며 벌인 해프닝은 뭔가 감상적이면서도 위선적이었다. 그들은 프랑크푸르트 금융계의 고위 인사들이 머무는 휴식처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아기 예수의 부모(로 분장한 기자)가 현관의 초인종을 누른다 해도, 그들이 금방 손님방을 치우고 아기 예수의 부모를 맞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기록했다. 그 글은 기사로서 가치는 크다고 볼 수 없다. 그럼 베를린의 마르찬 구역이나 뮌헨의 하젠베르클 지역 같은 이른바 '사회적 취약 지역' 주민들은 누더기를 걸친 이들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지만 이 해프닝은 엘리트 계층에 대한 비난이 이제는 상위 중산층 독자를 대상으로도 얼마나 간단하고 쉽게 행해지는지 보여주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도대체 누가 부유층이냐'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믿고 있고,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리고 자본주의에 점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독일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슈피겔>은 독일의 백만장자와 억만장자, 젊거나 나이 든 재벌 2세, 가십지에 등장하는 부유층 스캔들의 주인공, 특이한 기업 소유주, 최고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CEO)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에서 만난 어떤 기업가는 베를린 거리에서 공병을 모으는 자신의 기괴한 취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젊은 억만장자는 기업의 총매출 2억5천만유로(약 3679억원) 가운데 그의 몫이 얼마인지 최초로 공개했다.

이 여행은 전통적인 독일 부촌 함부르크 근교 엘브강 유역이나 뮌헨 근교 슈타른베르거 호수 주변, 에센의 브레데니 지역, 베를린의 그루네발트 숲, 프랑크푸르트의 위성도시 크론베르크에 있는 철쭉이 핀 고급 빌라에서 시작된다.

   
지난 1월18일 영국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 앞에서 열린 ‘런던을 점령하라’(Occupy London) 시위에 참석한 런던 시민들이 기업의 탐욕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AP

빈민은 비만으로, 부자는 영양실조로

부촌에서 삶의 모습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촌의 고용인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믿는다면, 부촌은 다른 지역사회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에게 특별한 고향 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부여한다. 달리 말하면 별로 알고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도 모두 알고 지낸다는 소리다. 동시에 부촌 주민들은 그곳이 '황금 새장'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 지역의 주민, 즉 독일의 부유층은 보통 셋 혹은 그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다. 자녀는 모두 같은 인문계 학교에 다니며, 하키를 하거나 첼로나 피아노를 배우고, 영국이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다. 안주인들은 4륜 구동 자동차로 장을 보러 나갈 때 '제로 사이즈' 청바지를 입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한다. 한 심리 상담사는 "독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비만으로 죽고, 부자들은 영양실조로 죽는다"고 말했다.

독일 부유층의 목소리에는 대부분 자조와 거리감이 섞여 있다. 이를 통해 부유층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그림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지 모른다. 물론 부촌에도 바깥세상에 있는 모든 문제가 존재한다. 다른 것은 오직 재산의 단위일 뿐이다.

소외된 부자 아이, 마약 복용, 결혼 파탄,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가사도우미 소녀를 집주인이 임신시켰는데 그 소녀가 불법노동자라는 게 밝혀져 더 큰 문제가 되는 일은 부유층에 대한 '클리셰'(진부한 고정 관념)이지만, 동시에 실제 현실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부유층도 있다. 부촌보다 훨씬 교묘한 부의 은신처는 다름 아닌 대중이다. 부는 이제 저질 상업방송 <9Live>의 주식을 매각해 번 막대한 돈을 지금은 예술작품에 투자하고 있는 미디어 기업가 크리스티아네 코플러가 사는 베를린 중심부는 물론, FC 바이에른의 축구선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안락하게 사는 뮌헨 시내 중심부 가르트너 광장에도 있다.

현재 독일의 경제적 상류층은 포뮬러원(F1)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 선수 세바스티안 베텔이나 독일인 NBA 농구 선수 디르크 노비츠키 같은 스포츠 스타(둘 다 연수입이 약 1600만유로로 추정된다)부터 코미디언 백만장자 마리오 바르트, 게르하르트 리히터나 안젤름 키퍼 같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화가, 폴크스바겐의 회장 페르디난트 피에히, 독일 방송사 <ARD>의 스타 MC 토마스 고트샬크, '인쇄왕'이라고 불리는 람베르츠사의 CEO 헤르만 뷜베커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독일의 운동선수, TV 스타, 기업 창립자가 지금처럼 빠르게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은 없다. 예를 들어 독일의 진정한 정보기술(IT) 신흥 부자라고 할 수 있는 삼버가(家)의 삼형제 올리버·마르크·알렉산더는 온라인 경매 사이트 '알란도'(Alando)를 만들어 이베이에 팔고, 그다음에는 휴대전화 벨소리 사이트 '잠바'(Jamba)를 만들어서 팔았다. 그 뒤에는 그루폰과 페이스북에 투자해서 큰 수익을 얻고 빠져나왔다. 온라인 대학생 커뮤티니 'StudiVZ'가 아직 인터넷상에서 큰 자산 가치가 있다고 여길 때 이를 홀츠브링크 출판에 넘기기도 했다. 지금 이 삼형제는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독일의 온라인 쇼핑 사이트 '잘란도'(Zalando)에 참여해 또다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와 같은 신흥 세력 외에 전통적인 부유층도 있다. 계속 분가로 생겨나고 있는 빌레펠트와 베를린의 외트커 재벌가, 뒤스부르크의 하니엘 가문, 빠른 속도로 최상류층에 진입한 골드만삭스의 독일총괄사장 알렉산더 디벨리우스, 그리고 자동차 핵심 부품 납품업체 브로제의 상속녀이자 예술작품 수집가인 줄리아 슈토셰크, BMW의 상속녀 주잔네 클라텐, 스프링거 출판 기업의 상속녀 프리데 슈프링거 같은 자신에게 상속된 재산을 날리거나 늘리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상속자들이 있다.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의 고급스러운 사무실에서 독일 재벌 2세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패밀리 오피스 포캠'(Family Office Focam)의 크리스티안 프라이헤르 폰 베히톨스하임 같은 사람도 부가 어디에 어떻게 몸을 숨기고 있는지 감지하지 못한다. 그는 "맞춤 양복과 기성품 양복은 구분할 수 있지만, 누가 부자인지는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현상은 그의 가족 내부에서 시작된다. 30년 전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창업에 참여한 그의 사촌 안드레아스는 아머제 호수 유역의 농가에서 자랐다. 선마이크로시스템 덕에, 그리고 구글을 포함한 몇몇 다른 곳에 현명하게 투자한 덕에 안드레아스는 오늘날 수십억유로의 자산을 가진 거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는 그와 비슷한 미친 이야기가 많다.

몬타바우어 출신의 IT 재벌 랄프 도머무트는 그의 회사 유나이티드 인터넷 AG에서 일하는 CEO 4명에게 페라리 스포츠카를 한 대씩 선물했지만, 아들에게는 첫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 5천유로밖에 지원해주지 않았다는 걸 누가 알겠는가. 또 함부르크의 광고회사 창업자이자 카피라이터인 장레미 폰 마트가 어떻게 그 유명한 사회적 질투(Sozialneid) 슬로건 '내 집, 내 차, 내 보트'를 만들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는 이 장면을 동창회에서 경험했다. 당시 작은 회사의 카피라이터에 불과했던 그에게 이미 출세한 학교 동창들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굴욕을 주었다. 친구들의 무례한 자기 자랑에 화가 난 마트는 몇 년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TV 광고를 만들었다.

독일 부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실제로 하는 일은 드물다. 자기 자랑을 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고,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월가 점령운동이 일어난 뒤 미국에서마저 금융업계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주의까지 비난받기 시작했다.

전 도이체방크 총재 힐마르 코퍼는 "지금까지는 아메리칸드림이 사회적 질투가 발생할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빈곤층과 부유층 사이에 명백한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수장이었고,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들의 행동을 무익한 것으로 간주해온 앨런 그린스펀은 너무 커진 빈부 격차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국가적 위기'에 대해 경고했다.

양극화 심화는 사회적 긴장을 유발하고, 이 긴장은 한 국가의 경제력을 약화시키고, 정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당장 혁명은 발생하지 않더라도 런던에서 시작돼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폭동시위나, 프랑스 파리 교외 지역의 폭동은 지금 어디에서 얼마나 큰 불만이 끓어오르고 있는지 보여준다.

   
독일 정치인의 ‘부자를 향한 구애’는 진보와 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았다. 사민당 출신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오른쪽 사진 왼쪽)는 소득세의 최고한계세율을 줄였고, 기민련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왼쪽 사진 왼쪽)는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없앴다. 뉴시스 신화

극단으로 치닫는 미국의 빈부 격차

독일에 빈부 격차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지만, 이 현상이 현재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어린이 중 4분의 1이 국가에서 주는 식권으로 연명하고 있고, 실업 인구가 1300만 명에 달한다. 미국의 실업률이 최근 약간 낮아진 것은 실업자 수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수의 실업자들이 이젠 더 이상 관청에 등록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이에 비해 미국 부자들의 수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 리처드 프리먼은 이런 현상을 '새로운 경제적 봉건주의'라고 했다. 20년 전 월스트리트에서 200만~300만달러의 수입이면 대단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많은 월스트리트 헤지펀드 매니저의 연봉은 2억~3억달러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상장하면 이 27살의 젊은 청년이 가진 주식의 자산가치는 280억달러(약 31조5560억원)에 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천문학적인 금액은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다. 따라서 새로운 엘리트 계층은 자기 나라에서는 자신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비슷한 상황의 동료를 다른 나라의 경제적 최상층에서 찾는다. 이들은 아스펜에서 스키를 타면서 만나거나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만나 인맥을 형성한다. 현재 햄프턴에서 사는 억만장자는 그의 집에서 일하는 고용인보다 중국 광둥이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사는 다른 억만장자와 더 가깝게 지낸다.

미국 작가 크리스티아 프리랜드는 "최고 부유층과 나머지 세계 사이의 문화적 유대가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월간지 <애틀랜틱>에 기고한 글에서 '신(新)금권정치'에 대해 경고했다. 그녀는 모든 언어·종교·교육의 경계를 넘어 최고 부유층들이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유목민 집단을 형성하면서 궁극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침범할 수 없는 계층이 될 것이라고 본다. 중국·인도·러시아에서 아주 적은 수의 승자에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를 축적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그 금력으로 언론·사법기관·정계를 매수할 수 있는 곳은 어디나 위험해지지만, 부자가 점점 더 부자가 되는 현상은 겉보기엔 건실한 국가인 독일에도 나타나고 있다.

역사상 독일에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의 부유층이 있은 적은 없다. 최근 통계 조사에 의하면, 약 1만7천 명이 연간 100만유로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통계학자들은 독일 북쪽 끝의 실트섬에서 남쪽 끝 가르미슈 사이에 백만장자 83만 명이 살고 있다고 본다. 컨설팅 회사 보스턴컨설팅이 발표한 '세계 부 보고서'에는 독일인 초고액 자산가 수가 839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1억달러 이상 자산을 보유한 사람 혹은 가문을 의미한다. 이수는 세계 1위 미국보다 적고, 3위인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다. 역사상 최고 부유층들이 2012년보다 더 부유했던 적도 없다. <슈피겔>의 자매 월간지 <매니저 마가친>에서는 10억유로 이상의 자산을 가진 독일인이 최소 100명 이상이라는 기사를 냈지만,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억만장자들도 있다.

   
세계적 명차 BMW의 상속녀 주잔네 클라텐은 독일의 전통적인 갑부에 속한다. 지난해 3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1 서울모터쇼’에 공개된 BMW 신차 모습(큰 사진). 중세시대 봉건 영주의 성을 개조해 만든 독일의 특급호텔 슐로스 엘마우를 소개한 인터넷 사이트. 이 호텔을 소유한 디트마르 뮐러엘마우는 독일의 신흥 갑부다. 뉴시스
역사상 최고 부유층과 일반 대중의 격차가 이렇게 크게 벌어진 적도 없다. 독일경제연구소(DIW)의 최근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하위 50%의 수입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거의 제자리에 머문 데 비해 상위 50%의 수입은 상당히 증가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옛 서독은 과거 수십 년간 자본주의 세계 에서도 특수한 사례가 아니었던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곳 독일에는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적 시장경제'가 생겨났다. 당시 경제부 장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모두를 위한 번영'을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1990년대 말께부터 독일에서도 소득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됐다"고 DIW의 사회적 분배 분야 연구원 마르쿠스 그라브카는 말한다. 그는 "경제성장으로 이득을 본 것은 거의 부유층뿐이었고, 이런 현상은 높은 확률로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 현상의 핵심적 원인 중 하나는 자본소득이 부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돈이 돈을 만든다'는 말은 거짓이면서 동시에 진실이다. 이 말이 거짓인 까닭은 경제적 먹이사슬의 저 끝 어딘가에서 당연히 인간이 노동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이 진실인 까닭은 현재 자본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국제적 이익이 있는 곳으로 몰려가기 때문이다.

자본은 언제나 가장 큰 수익을 내는 곳으로 움직이지만, 노동은 언제나 가장 값싸게 획득할 수 있는 곳에 가장 많은 수요가 발생한다. 독일 안에서 노동은 전세계를 놀이터로 삼는 자본에 비해 훨씬 더 강한 제어를 받고 있다. 글로벌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독일 노동자들은 체코·러시아·인도·중국의 노동자들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했다. 그 결과 "상류층은 노동의존성에서 풀려났고, 하류층은 계급 상승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여론조사 연구자 코허는 말한다. 현재 인구의 하위 25%는 더 이상 아무런 자산을 보유하지 못하고 빚만 지고 있다. 이처럼 점점 벌어지는 빈부 격차에는 사회·경제적 원인이 있다. 하위 소득 계층의 임금과 연봉은 지난 10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에 비해 CEO들의 봉급은 같은 시간 동안 122% 이상 상승했다.

독일에서는 현재 1천만 명 이상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지만, 1986년에는 파트타임 노동자 수가 단 200만 명뿐이었다. 소득이 높은 맞벌이 세대가 늘어난 만큼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싱글 세대나 편부모 세대도 증가했다.

사민당-녹색당 연정, 기민련-사민당 연정, 기민련-기사련 연합에서도 재산세는 도입되지 않았다. 그 대신 사민당 출신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소득세의 최고 한계를 줄이기 시작했고, 기민련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대연합은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마저 없애버렸다.

사회주의자들마저 부유층 친화적인 독일의 정계를 변화시킬 수 없었던 것은, 전 사민당 원내총무 페터 슈트루크의 의견에 따르면 연방의회의 잘못이었다. 슈트루크는 "재산세 도입은 사민당이 정부는 물론 주 대표들의 의결기관인 렌더카머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뒤에야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의 당 동료들이 부자세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로 인해 빈곤층이 더 피해를 보게 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트 계층은 즉시 "당신들이 그렇게 하겠다면 우리는 아직 남은 공장과 본사를 바로 외국으로 이주시키겠다"고 협박했다.

부와 빈곤은 과연 상대적 감정일까

슈트루크는 쿤젤자우어 출신의 나사 제조업 재벌 라인홀트 뷔르츠가 사민당-녹색당 내각 전체를 베를린 남동부 하벨강의 작은 섬 슈바넨베르더에 있는 영빈관으로 초대한 일을 기억한다. 그곳은 베를린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지역이다. 영빈관 벽에는 바젤리츠, 루페르츠, 키퍼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슈트루크는 "그림을 보여준다면서 초대했지만, 세금 개혁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죠"라고 회고했다.

몇 년 뒤 뷔르츠는 탈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아직도 그에 대해 화를 내고 있다. 그는 기업인이자 일자리 창출자, 세계시장 선도자이자 예술의 후원자로 사회적 공로가 큰 자신이 탈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국가가 자신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국가와 사회로부터 배신당했다고 느낀다. 독일 국민의 15.6%는 현재 빈곤 위험에 처한 차상위계층이고 이들은 1200만 명에 달한다. 고전적 정의에 의하면, 빈곤 위험에 처한 자는 수입이 가중평균 소득의 60% 이하인 사람들이다. 즉, 4인 가족의 한 달 소득이 1735유로 이하면 이들은 빈곤 위험에 처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금액은 루마니아에서는 상류층에 속하고,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한 부족의 족장 소득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처럼 빈곤은 상대적이다. 하지만 부 역시 마찬가지로 상대적이다. 퀴즈쇼에 나가 100만유로를 상금으로 탄다 하더라도 그 돈 때문에 직업을 포기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500만유로라면 어느 정도 걱정 없이 살면서 인생을 즐길 만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해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포커게임으로 870만달러를 딴 22살 대학생 피우스 하인츠는 생계 걱정의 한계선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매년 각각 수억유로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보이는 독일의 유명 연예인 스테판 라브, 귄터 야우흐, 디터 볼렌이 생계를 걱정할 필요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온라인 게임 제작사 '빅포인트'의 창업자 하이코 후베르츠도 최고 부유층에 속한다. 그는 자신의 회사 지분 70%를 매각한 뒤 몇억유로의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후베르츠는 한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와 알스터 지역의 큰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는 이틀에 한 번씩 자신의 재산이 얼마인지 확인한다. "그 뒤에 내가 지금부터 아무런 수입이 없을 경우 죽을 때까지 하루에 얼마를 쓸 수 있는지 계산해본다." 그는 자신의 수명을 약 85살로 생각한다. 그는 계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이 사라질까봐 두려워한다. 몇 년 전 새로 내놓은 게임 몇 개가 실패해서 빅포인트의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을 때다. "당시 여자친구가 장바구니 없이 장보러 나가 슈퍼마켓에서 에코백을 하나 사려고 해서 잔소리를 했다." 그는 장바구니를 새로 사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했다. <슈피겔> 기자가 그에 대해 질문하자 여자친구는 후베르츠에게 다른 사람에게 그의 자산이 얼마인지 밝히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후베르츠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한 사회에서 부와 가난의 분배는 감성적·사회적 정의의 문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독일에서 여성 노인 요양사들이 받는 평균 월급은 1753유로다. 이 금액은 도이체방크 총재 요제프 아커만의 시급에도 못 미친다. 이는 공정한가? 독일 금속노조의 조합장 베르톨트 후버가 월급으로 2만1750유로를 받는 동안, 독일 정부의 수장 앙겔라 메르켈이 월급 158만3279유로를 받는 것은 정상적인가?

그러나 독일에서 강력한 노조의 조합장인 후버의 봉급을, 2010년 930만유로를 받던 폴크스바겐의 회장 마르틴 빈터코른의 연봉과 비교하면 그는 상대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볼 때 가난이 선천적으로 부보다 가치 있는가? 다른 이의 부에 대한 경탄이 어디에서 끝나고, 그들이 받는 월급·보너스·상여금의 과잉에 대한 분노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그 한계는 점점 밀려나고 있다. 부유층에서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충분히 느끼고 있다.

도이체텔레콤 회장이자 고액 연봉 수급자인 레네 오버만은 "설문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약 50%가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신호다"라고 말했다. 대중은 더 민감하고 비판적이고 의심이 많아졌다.

분배를 위한 투쟁은 더욱 격화될 수도 있다. 부자들이 더 많은 돈을 내놓아야 할까? 세금으로? 재단을 통해? 기부로? 그들은 그럴 생각이 있는 것일까?

500만유로의 한계선 저쪽에서는 많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문제도 시작되고 있다. <슈피겔>이 45년 전 독일 부자들에 대한 시리즈 기사를 게재했을 때 독일 부유층 구조는 명확했다. '독일 경제 기적'의 일족 크루프 일가, 네커만 일가, 그룬디히 일가가 대표적인 부자였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공산주의자나,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와 동일하게 여기던 운영위원회 정도다.

오늘날 세계는 조금 좌파 성향이고 친환경적이 되었다. 동시에 인터넷과 국제적 데이터 교환으로 인해 재무구조가 더욱 투명해졌다. 그래서 부자들은 여러 방면에서 그들에게 쏟아지는 반감과 비난을 두려워하게 됐다. 비열한 언론, 불만에 가득 찬 주식투자자, 나쁜 국세청, 기민련에서 녹색당에 이르는 탐욕스러운 정치계, 잘못된 친구, 진짜 범죄자, 세무조사관, 그리고 이 시대의 분위기가 부유층을 위협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신흥 부유층인 샤를로테 로체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에 기고한 글에서 "돈이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 틈을 만든다"며 "돈은 마치 끔찍하고 중독성이 강한 마약과 같다. 누구나 원하지만 막상 가지게 되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토마스 드루엔도 이것을 알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유명한 부 연구자다. 사실 이 분야의 연구자가 그리 많지 않기에 유명한 연구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르츠법·사회보장제도·빈곤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도서관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문헌이 있지만, 초고액 자산가를 연구하는 사람은 그를 비롯해 몇 명뿐이다. 5년 전 드루엔은 빈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사립대학에 부 연구 전공 분야를 개설했다. 54살의 학자는 그도 오스트리아의 국민가수 우도 유르겐스의 딸 제니와 결혼해 뒤셀도르프 교외의 부촌 그라펜베르크의 골프장과 승마장 사이에서 사는 부유층이다. 그의 펜트하우스 거실에는 실물 크기의 새빨간 돼지 조각상이 서 있다. 드루엔은 "냉철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부유층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역시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며 "방송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거나 오해가 생기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최고 부유층들은 더 이상 나와 대화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0년 전 처음으로 드루엔이 초고액 자산가들에게 관심 갖기 시작했을 때, 아무도 그와 인터뷰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세계적으로 60명의 억만장자와 인터뷰했고, 수십 명의 백만장자와 대화했다. 이들의 이름은 절대 비밀이다. 설문지를 평가하는 드루엔의 조수들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드루엔의 연구 분야는 광범위하고 아직 대부분 미개척됐다. "부자가 그들의 재산으로 무엇을 하고 있고, 그들이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데도 말이다."

   
독일 시민들이 지난해 10월15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 본사 앞에서 열린 ‘프랑크푸르트를 점령하라’(Occupy Frankfurt) 시위에 참석해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신화

시베리아를 사려고 했던 한 미국인 갑부

그가 들은 것 중 가장 어이없는 말은 한 미국인이 들려준 이야기였다. 이 미국인은 당시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과 수차례 만나면서 시베리아를 사들이려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드루엔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 정도로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거기에 크렘린의 수장과 면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폐쇄적으로 살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독일인 중에는 재산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됐다. 드루엔은 독일에서는 방 3개짜리 아파트에 살지만, 런던의 세컨드 하우스에서는 비싼 자동차와 사치스러운 파티를 즐기는 부자를 안다.

지금까지 드루엔의 연구 결과는 '적게 가진 사람일수록 더 부를 과시한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기 과시가 심한 사람들은 부유층에서 대부분 몇백만유로의 자산가들이다." 벽난로 위 선반에 놓인 도자기 부처상이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독일 부유층의 1차 유형학을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기 과시자들을 피해갈 수 없다.

세상에 알려진 부유층의 모습은 더는 극단적일 수 없을 정도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돼 있다. 거대한 자산 모노폴리 게임의 일명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추한 놈'이다. 여기에는 큰 자선가와 반항아가 있는가 하면, 과거 독일 우체국의 CEO이자 거액의 탈세범이던 클라우스 춤빙켈처럼 나쁜 악당이 있고, 마지막으로 상업방송 <RTL>이나 <VOX>에서 방영하는 얄팍한 부유층 다큐멘터리 속에 우글대는 돈 많은 광대도 있다. 세 그룹 모두 독일에서 부 피라미드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각 그룹 모두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그 이야기와 함께 항상 방송에 모습을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독일의 부유층은 이들보다는 낡은 폴크스바겐 골프 자동차를 타고 실트섬의 최고급 부동산 업체에 눈에 띄지 않게 다가가는 한 쌍의 부부 같은 사람들이다. 부동산 업자조차 처음에는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부부는 1200만유로짜리 부동산을 쉽게 사들였다. 독일 내 최고급 휴양지 중 하나인 실트섬은 100만유로 이하로는 이동식 화장실 한 채를 사기도 힘든 곳이다.

전형적인 독일 부유층은 차 뒷유리에 '원자력? 노 땡큐!'라는 스티커를 붙이기도 한다. 이 정치적 구호는 독일 부유층들의 양심의 가책, 지속성에 대한 갈망,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의식을 독일식으로 철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기들은 전형적인 독일 부유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말하는 것은 상류층의 하위 단계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독일 인구의 최상위 1% 엘리트는 오늘날 이미 연간 총수입이 약 12만유로인 사람들에게서 시작한다.

비정규직을 투잡으로 뛰면서 버는 돈으로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편모 가정의 엄마에게 이는 숨을 멈추게 하는 엄청난 금액이지만, 이 정도 수입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최고 부유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들은 주택융자금을 갚거나, 차 할부금을 내거나, 자녀 유학 비용을 대야만 한다.

부자? 그건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기술 선도 기업인 수백 개의 독일 중소기업의 기업주 같은 사람들 말이다. 두더슈타트의 오토 보크는 의수족보조기로 연간 5억8천만유로의 매출을 올린다. 바트발트제에 본사를 둔 침대차를 만드는 휨메르AG는 연간 매출액이 약 7억9천만유로다. 이외에 수많은 부자들이 있지 않은가?

호텔 경영자 디트마르 뮐러엘마우는 놀랍게도 다양한 카테고리에 속하는 부자다. 그는 기업가이자 창업가이고 동시에 상속자다. 오랜 시간 그는 집에서 내놓은 자식이었지만 결국 가문의 마지막 희망이 되었다. 그는 전통주의자이자 신흥 부자이기도 하다. 이 모든 성향의 조합은 매우 독일인다운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문화 개신교주의 순회 설교자인 뮐러엘마우의 할아버지는 1916년 남쪽의 탈케셀에 호텔을 세웠다. 투자자는 그의 설교에 감복된 백작 부인이었다. 직원을 고용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호텔에 찾아온 손님들의 딸들을 시즌제 도우미로 교육했다. 이는 호텔에도, 호텔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도 이득이 되었다.

엘마우 호텔은 적당한 가격과 좋은 집안 출신의 여성 직원으로 인해 전국에서 가장 교육을 잘 받은 매력적인 직원이 있는 호텔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사교계의 젊은 아가씨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고, '고객 서비스'라는 개념의 그늘도 알게 되었다. 많은 손님들에게 엘마우 호텔은 일종의 '결혼 시장'이 되었고, 밤에 춤을 추면서 젊은이와 노인들이 가까워질 때면 지적으로 치장된 에스코트 서비스로 오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뮐러엘마우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 거만한 위선, 상류층의 어두운 그림자의 혼합이자 독일 교양 시민 계급의 처참한 반문명적 독재가 지배하는 그곳을 일찍부터 경멸하기 시작했다. "난 이곳에서 끊임없이 계속 반항했다." 그는 저녁 콘서트 시간에 딱 맞춰 전기 퓨즈를 빼내던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여기에서는 모두 공동체 정신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난 그걸 무척 싫어했다."

대학입학 시험이 끝난 뒤 그는 가족의 틈에서 빠져나왔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려 했다." 그는 처음에는 뮌헨의 대학에 다니다 미국으로 가서 2년간 컴퓨터 공학을 공부했다. 그 뒤 1년간 인도에 머물렀다.

1980년대 중반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빚과 이혼을 견뎌내고, 3명의 아이들을 키워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에게 자유는 돈보다 중요했다. 그의 인생에서 단 한 번 있은 구직 면접은 1984년 컴퓨넷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이 면접 경험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면접관이 "어느 정도의 봉급을 원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한 달에 2만마르크"라고 대답했다. 면접관이 '2천마르크'를 주겠다고 하자 그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다시는 다른 사람이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뒤 그는 지인들과 함께 회사를 세웠다. 호텔 경영용 소프트웨어 '피델리오'(Fidelio)는 그의 작은 회사를 너무 빨리 국제적으로 성장시켜 또다시 타인이 그의 가치를 규정받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가 과반수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회사를 매각하자마자 몇천만달러가 그의 손에 들어왔다.

"돈은 장점도 단점도 모두 없앤다"

디트마르 뮐러엘마우는 지금도 약간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1996년에야 처음으로 부자라고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뮐러엘마우의 돈은 고향에 남아 호텔을 어떻게든 꾸려나가려 힘쓰던 그가 일부는 증오하던, 가족 친지들에게 훨씬 더 중요했나 보다. "모두 내 돈을 원했다. 내 아이디어는 필요 없다고 했다." 엘마우 일족의 탐욕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수년에 걸친 작은 전쟁이 시작되고, 각종 소송이 진행됐다. 2005년 8월 모든 것이 불에 타버릴 때까지의 상황은 뮐러엘마우에게 '완전한 지옥'이었다. 화재는 하필 뮐러엘마우가 증오하던, 평생 동안 호텔 경영자로 군림했고 오래된 종파 정권의 상징이던 숙부의 방에서 시작됐다. 12시간 동안 마법의 성이 타올랐다. 그것은 종말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역사의 시작이기도 했다. "화재가 없었다면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화재는 그에게 자신의 돈으로 모든 것을 그가 원하는 대로, 새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가족 10인 회의의 공동 독재도 사라지고, '도우미'도 없어지고, 동시에 과거 고객들도 대부분 떠났다.

화재가 발생하고 1년이 지나자 가족 분쟁이 끝나고 뮐러엘마우는 드디어 호텔 지분의 과반수를 인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새 호텔에 국제적인 우아함을 부여하고, 호텔을 찾은 이들에게 사치와 쾌락,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자유를 제공하려 했다. 현재 이 호텔에서 제공하는 어린이를 위한 피부관리 서비스 가격은 83유로다. 이 비용을 내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일 수 없다. 그럼에도 초창기에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목욕용 가운을 거의 모두 도둑맞았다. 지금은 도난율과 구입률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뮐러엘마우는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상속분을 스스로 획득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지금보다 더 사치스러운 5성 별관을 건립해 언젠가는 200㎡ 크기의 스위트룸을 만들 계획이다. 침실 40개가 들어설 별관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천만유로로 계산하고 있다. 인근에 건립할 예정인 또 다른 3성 호텔은 스타 건축가인 마테오 툰이 설계한다.

"내가 언젠가 실패하게 된다면 최소한 겁내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너무 큰 것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의 여섯 자녀는 아버지에 비해 훨씬 위험 회피적인 성향이었다. 그는 호텔을 유산으로 남기지 않을 생각이다. 자녀들이 나중에 이 사업에 뛰어들고 싶으면 그가 했던 것처럼 전부 돈을 내고 사야 할 것이다.

가난? 돈? 뮐러엘마우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부를 현금 기준으로 정의하는 것에 대한 그의 몰이해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자녀들에게서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없애려 노력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돈에 대해 이렇게 말해주었다. "단점이 장점을 상쇄시킨다."

마르쿠스 데트머 Markus Dettmer 카트린 엘거 Katrin Elger 마르틴 U. 뮐러 Martin U. MÜller 토마스 투마 Thomas Tuma <슈피겔> 기자

ⓒ Der Spiegel·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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