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부터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의 ‘윤희웅의 선거와 경제’를 연재한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잇따라 있는 선거의 해를 맞아 ‘윤희웅의 선거와 경제’는 선거 속에 숨은 경제적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해줄 것이다.

“경제를 생각할 때면 선거를 염두에 두고, 선거를 생각할 때면 경제를 염두에 둬라.”(When you think economics, think elections. When you think elections, think economics.)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닉슨의 재선을 위해 인위적인 경기부양에 나섰음을 증명함으로써 ‘정치적 경기변동론’(Political Business Cycle) 연구 활성화에 기여한 에드워드 터프트의 말이다. 이 표현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와 경제가 한 몸임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국내총생산(GDP)의 4분기 연속 마이너스라는 ‘호재’가 없었다면 미 국민과 ‘흑인 대통령’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없었다면 당시 김대중 후보는 1.6%포인트 차의 승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렇듯 경제는 유권자의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에 절대적 영향을 준다. 만약 다수의 유권자들이 경제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권력은 회수되고 다른 세력에 넘어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경제 분야에 비교우위에 있다고 인정받는 세력은 경제 이슈를 선거에서 부각시켜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확장하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경제가 선거에서 첫손에 꼽히는 것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1위 응답은 단연 ‘경제’로 나온다. 지난 대선에서 ‘묻지마 경제’가 휘몰아쳐 탄생한 정권이 실망을 안겨도 여전히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다. 지난 1월 조사에서 ‘다음 대통령이 가장 중시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경제’라는 응답은 50.1%나 되었다. ‘복지’(15.9%)나 ‘정치개혁’(14.6%), ‘사회통합’(12.2%) 등은 10%대에 그쳤다. 3대 세습으로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 높아졌지만 ‘남북 및 대외관계’라는 응답은 4.8%에 그쳤다.
　
‘북풍’보다 위력 있는 경제 변수

혹자는 ‘북풍’이 더 위력적이지 않으냐고 물을 수 있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라는 특성상 때로는 안보 이슈가 선거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1987년 대선 하루 전날 대한항공 폭파범으로 검거된 김현희의 국내 압송은 노태우 후보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북풍으로 보수 정치세력은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런데 최근 안보·북한 문제가 독립된 이슈로서의 특성이 약해지고 있다. 북한과 관련한 사건이 지속되는 경우 처음에는 안보 이슈 그 자체로 인식되지만, 얼마 뒤부터는 주가와 대외신인도 하락 등으로 이어지면서 안보 이슈가 경제 이슈로 전환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약 2개월 전 발생한 천안함 사건으로 안보 정국이 형성된 바 있다. 보수 정치세력은 이를 선거 이슈화해 득표 극대화를 도모했지만 경제 불안정성이 이어지자 40대, 직장인층 등 주요 경제활동층에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선거일에 여당을 철저히 외면했다. 최근 복지 열풍도 이름은 복지라고 불리지만 유권자 개인의 처지에서는 먹고사는 문제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경제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도 경제는 중요한 변수다. 큰 틀에서 대통령 임기 말에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집권세력의 공과를 평가하는 특성의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 경향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물가 상승으로 대표되는 현 정권의 경제실적 평가 역시 부정적이어서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시민들의 회초리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회고적 투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더라도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 경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망적 투표는 각 정치세력이 내세우는 공약과 비전을 비교해 지지세력을 선택하는 투표 특성을 말하는데, 특히 경제와 연관성이 큰 공약이 나올수록 전망적 투표 경향이 강하다.
　
민주당, 반대와 폐기 동일시 혼란 자초

최근 야당에서 먼저 들고 나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는 유지를 주장하는 쪽과 폐기를 주장하는 쪽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지지세력 선택에 상당한 편의를 제공한다. 유권자에게 여야가 내세우는 공약에 따라 투표하게 하는 전망 투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진보적 성향이 뚜렷한 20~30대 젊은 층의 투표 대상은 별로 변하지 않겠지만 여전히 성장과 개방에 가치를 둔 중·장년층은 이를 계기로 보수세력의 친화성을 회복하려고 할 것이다. ‘2040’으로 젊은 층에 엮여 진보성을 드러내는 주요 경제활동층인 40대들에게도 고민을 안겨줄 수 있다.

야당에서는 한-미 FTA 반대를 폐기 여론으로 읽고 있는 듯한데 이는 무리한 해석이다. 반대와 폐기는 엄연히 다른 의미다. 반대 여론이 50%라고 해서 우리 국민 50%가 폐기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 강행 처리 뒤 ‘한-미 FT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어보았다. ‘일부 잘못된 부분이 있으므로 미국과 재협상해야 한다’는 응답이 59.9%로 높아 재협상 여론이 높다고 할 수 있지만 ‘매우 잘못된 것이므로 완전히 무효화해야 한다’는 무효화·폐기 응답은 11.6%에 그쳤다(<한국일보> 2012년 12월27일). 정교한 접근 없이 처음부터 폐기를 쟁점화하는 것은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한-미’ FTA이기 때문에 한-미 간 동맹을 중시해온 보수 성향층의 결집을 유도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보수 및 여권 성향층은 보수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 강도가 느슨해진 상황이다. 또한 수세에 몰린 여당은 제대로 된 선거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정부·여당 심판론’이라는 야당의 공세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여당은 야당이 흘린 고깃덩어리를 놓치지 않았다. 여당은 야당 주요 인사들의 한-미 FTA 관련 말바꾸기를 지적하고, 국내 선전전을 위해 주미대사까지 국내로 불러들였다. 물론 한-미 FTA 폐기·존속 여부가 쟁점화하더라도 대통령 임기 말에 치러지는 선거의 특성상 ‘여당 고전, 야당 선전’이라는 기본틀을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 석이라도 더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총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승패의 격차를 줄이는 효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 지지층이 이완돼 고민하던 보수 정치세력으로서는 쟁점화를 회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먼저 이슈화를 시도한 쪽은 야당이지만 이를 더 반기는 쪽은 여당이 되었다. 치밀한 계산 없이 자신감에 충만해 ‘폐기’ 목소리를 높이던 야당은 여당의 반격에 주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야당이 한-미 FTA 폐기 주장을 총선의 살벌한 전쟁 중에 별 준비 없이 내놓은 것은, 마치 허허벌판에서 무장해제된 적장을 만나서는 그냥 체포하면 될 일을 창칼을 던져주고 제대로 싸워보자는 격이다. 다양한 정권 실정에 대한 심판론의 쉬운 싸움터를 두고 곤혹스러워질 수도 있는 경제 이슈의 싸움터를 굳이 왜 새로 만들려고 하는지….

글 /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서 수석전문위원 겸 조사분석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경기개발연구원 정책분석팀 연구원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waymaker2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