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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이 빚어낸 1500일의 농성
[노동과 삶] 노동삼권 박탈당한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
[22호] 2012년 02월 01일 (수) 이선옥 namufree@gmail.com

1월28일이면 재능교육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이 1500일을 맞는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삼권을 박탈당해 차디찬 아스팔트에서 다섯 번째 겨울을 나야 한다. 세상의 무관심이 이들을 텐트도 없는 노숙농성으로 내몬 게 아닐까.

   
노동조합 인정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1500일 가까이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노조 유명자 지부장이 지난해 4월6일 서울광장 환구단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괜찮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너무 춥습니다. 싸움을 시작하고 다섯 번째 맞는 겨울인데, 지난겨울을 알기 때문에 다가올 겨울이 더 무섭습니다. 지금 몸 누일 천막을 철거당해서 그냥 노숙하고 있는데,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는 상태라서 다시 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네 번째 겨울이 지났는데도 죽지 않고 살았으니까 이번 겨울도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

지난해 세밑 자그마한 공연장에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그녀는, 날씨가 많이 추워질 텐데 농성투쟁이 괜찮으냐는 관객의 물음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괜찮다고 말해주길 바랐는지, 솔직한 그 대답에 문득 민망해졌다. 그녀의 농성장이 10여 차례나 구청·경찰·용역들에게 철거당할 때마다 상황이 끝난 뒤에야 들러보곤 했던 방관자의 부끄러움을 들켰기 때문일 것이다.

힘들어도 괜찮다, 기약 없어도 곧 끝날 거다, 자위 섞인 거짓 희망을 말하는 것도 이제 지쳤는지, 그녀는 “이 겨울이 춥고 무섭다”고 또렷하게 관객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여기 있는 나를 똑바로 보고, 내 목소리를 귀담아들으라는 듯. 5년 동안 그녀와 11명의 해고자들을 유령 취급해온 세상은, 사진 찍기 좋아하고 춤추기 좋아하던 그녀를 그토록 물기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스스로 ‘유령’이라 부르는 사람들

유명자(44).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지부장, 2012년 1월28일이면 복직투쟁 1500일을 맞는 장기 해고자. 무엇보다 대한민국 노동계의 ‘유령’인 특수고용노동자가 바로 그녀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 실체는 있으나 실제 없는, 고용한 자는 있으나 고용된 자는 없고, 노동하고 있으나 노동한 적 없는, 유령 취급을 받는 이들이 바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간병인, 퀵서비스 기사, 대리운전 기사, 덤프트럭 기사, 레미콘 기사, 화물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우리가 하루에 한 번쯤은 만나는 이들 중 하나가 바로 특수고용노동자다. 특히 학습지, 보험, 퀵서비스, 대리운전 등은 요즘 너무나 흔할 뿐 아니라 우리 생활과 뗄 수 없는 밀접함을 가진 직종이다. 그러나 이들의 직종 앞에 ‘특수고용’이란 단어가 붙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 형태가 아니라 ‘고용’ 형태로 노동자를 규정하는 단어다. 이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엄청나다. 노동자이긴 하나 특수하게 고용됐으므로 이들은 결국 노동자가 아니다. ‘특고’라고 불리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문제는 고용 형태라는 족쇄에 묶여 10년 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정권은 물론, 그 이전 정권에서도 특고 문제는 번번이 입법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고, 핵심 사안인 노동자성 인정은 변죽조차 못 울리는 내용으로 노동자들의 분노만 샀다. 그러는 동안 화물 노동자, 덤프트럭 노동자, 학습지 교사 노동자들 여럿이 투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유령이라 부른다. 어디에나 있는데 세상이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보면서도 이들의 처지에 무관심한 우리도 어쩌면 이들을 세상의 유령으로 만드는 데 한몫하는지 모른다.

“특고 문제를 아무리 얘기해도 결국 언론에 나오는 건 ‘저 불쌍한 것들’ 이런 시선이야.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은 고사하고 노동조합법으로도 인정 못 받는 상황, 그래서 사람 목숨까지 버려가며 싸워서 만든 단체협약(이하 단협)을 회사가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현실. 하루 종일 함께 다니며 기자한테 아무리 특고 문제의 심각성, 절박함을 얘기해도 결국 기사로 나오는 건 ‘용역한테 당하는 불쌍한 여성노동자’ 이런 식이야. 물론 그것도 우리한테 힘든 것 중 하나고,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지만, 이제 제발 우리 특고 얘기 좀 제대로 짚어줬음 좋겠어.”

   
아파트 경비원과 퀵서비스 기사들은 노동자이지만 특수하게 고용됐다는 이유로 ‘특수고용자’라 불린다. 이들은 노동삼권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한겨레 엄지원.

‘특고’라는 단어는 그녀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천형 같은 것이다. 기를 쓰고 싸워 끝이 보이는가 싶다가도, 결국 실정법상 고용관계가 특수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는, 그래서 5년 싸움, 10년 투쟁이 다시 무위로 돌아가는 굴레.

‘희망퇴직’이란 용어가 형용모순이듯, 특수고용노동자란 말도 그렇다. 노동이 보편적이면 고용 형태를 따질 필요가 없을진대, 특수하지 않은 노동을 특수한 노동으로 만든 형용모순의 단어가 200만 명이 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오늘도 벼랑 끝에 몰아세운다.

근로계약 대신 위탁계약, 임금 대신 수수료를 지급받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특고 노동자들은 노동삼권을 적용받지 못한다. 4대보험도, 작업장 내 복지도 없다. 해고를 당해도 위탁계약 해지일 뿐이고, 다치거나 죽어도 산재가 아닌 그냥 자영업자의 죽음이 될 뿐이다.

학습지 교사가 개인사업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재능교육 선생님, 빨간펜 선생님, 눈높이 선생님들이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고, 회사의 업무 지시를 받고, 회사에서 임금을 받을 뿐 아니라, 실적을 쌓지 못하면 임금이 깎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학습지를 시키는 학부모라면, 친구가 학습지 교사라면, 혹은 내 가족 중 누군가 학습지 교사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퀵서비스 노동자도, 보험모집인 노동자도, 화물운송 노동자도 모두 회사의 일감을 받아서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라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그들이 노동자란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특고 노동자들의 싸움은 정부와 자본을 상대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을 향한 싸움이기도 하다. 다른 노동자들이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를 외칠 때 이들은 그 전 단계의 외침에 목을 놓아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다, 노동자성 인정하라!” 먼저 노동자 취급을 받아야 인간 취급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그래서 노동자 계급 안에서도 약자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회사가 노조 간부 집에 압류경매까지 들어가서 압류한 건 재능이 처음이야. 방송에 나가고 시끄러워도 잠깐뿐, 우리처럼 조합원도 몇 안 되고, 장기투쟁하는 데는 짐이지. 어디 가면 저 불쌍한 것들 또 왔네 하는 눈으로 쳐다보니까. 우리 문제가 이렇게 안 풀리는 것도 우리는 단협 회복, 해고자 복직이 현안인데, 노동자가 아니니까, 불법 임의단체일 뿐이라 단협은 성립 자체가 안 된다는 게 회사 논리야. 우리는 국가나 회사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단협을 통해 임금도 올리고 복지도 개선하고 그럴 수밖에 없어. 근데 세상이 바뀌었다고 회사가 아예 이번 기회에 노조도 없애고 단체협약도 없애버린 거야.

암투병 환자에게 날아든 해고 통보

회사는 법과 제도의 지원, 자본의 힘으로 완강하게 버티는 마당에, 자기 진영 안에서조차 소외되기 일쑤인 약자로 싸운다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녀와 해고자들의 농성장인 서울시청 귀퉁이 환구단 앞은 언제나 초라하고 쓸쓸하다. 시청 광장이 새로운 개혁 시장의 탄생으로 환호할 때도,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로 술렁일 때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발길은 언제나 광장에서 멈췄다. 불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 년째 혹독한 싸움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있지만, 그 둘 사이에는 장강(長江)이 흐른다.

텐트가 철거당한 뒤 비닐을 덧대어 임시로 만든 누덕누덕한 농성장을 찾은 어느 날도, 그녀는 그날 저녁 썰물처럼 모였다 사라진 시청 광장의 시위대 얘기를 전했다. 재능은 한 번도 이슈가 됐던 적이 없고 늘 묻혀왔기 때문에 이제 그런 일에는 이골이 났다며 그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체념인 듯 무심한 그 웃음에 마음이 저렸다.

5년이 넘은 노숙생활 동안 그녀의 몸은 엉망이 됐다. 팔을 들어 구호를 외칠 수 없을 정도로 어깨와 팔에 통증이 생겼고, 불쑥불쑥 치솟는 분노 때문에 가슴속엔 늘상 울분이 차 있다. 함께 투쟁하는 해고자들의 몸과 마음도 성한 사람이 없다. 2천 명 넘게 시작해 해고자 11명만이 남아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는 싸움. 그런데도 13만 학습지 교사들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기는 여전히 날이 서 있다. 한껏 당겨진 활시위를 보는 듯 그 결기가 불안하고 긴장스럽다.

특수고용이라는 비정규직 문제, 3년이 넘는 장기투쟁, 여성 조합원들에게 가해지는 용역깡패들의 행패, 중구청, 종로구청, 문화재청, 경찰로 이어지는 농성 방해, 천막도 없는 야생 노숙, 그리고 처음으로 해고자의 집에 집달관이 들어와 압류 딱지를 붙인 일까지. 재능노조의 5년 투쟁은 굽이굽이가 고통이었다.

거기에 동료를 떠나보내는 아픔까지, 어느 것 하나 쉬이 지나간 적이 없다. 지난 1월13일, 쌍용자동차를 포위하자는 2차 행동의 날 행사가 경기도 평택에서 열렸을 때, 그녀는 장기투쟁 사업장 대표로 인사말을 하기로 했지만 평택 대신 장례식장으로 가야 했다. 12명의 해고자 가운데 한 명인 이지현 조합원이 암투병 끝에 사망한 것이다. 트위터에 고인에 대해 애도의 글을 올렸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녀는 암투병 중인 걸 뻔히 알면서 해고통지서를 보낸 회사에 치를 떨었다. 14년 동안 열심히 노조 활동을 했고, 사실상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면서도 어려운 내색을 하지 않던 동갑내기 동료. 아파서 누워 있을 때도 이 사람 저 사람 찾아가 답답한 얘기들만 잔뜩 해서 보낸 게 미안하고 후회스럽단다. 마지막 병원에 들어갈 때 혼자 가발 사서 쓰고 사진 찍고, 잘못되면 그냥 뿌려달라고, 그렇게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기고 죽음을 준비한 동료. 상가에 모인 노조의 원년 조합원들을 보면서 그녀는 “죽으면서 이렇게 조합원들 얼굴 보게 하고 갔다”며 울먹였다. 투쟁을 시작하고 세 번째 보내는 동료다.

동료의 허망한 죽음 앞에 더 간절해지는 건 꼭 이기고 싶은 꿈이다. 엄밀히 말해 노동자들의 싸움에서 승리란 없다. 더 얻으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잃은 걸 되찾으려는 싸움인지라 이겨야 겨우 원상회복이다. 복직한다 해도 1500일 동안의 고통이 보상받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 기간의 고통이 평생을 따라다닐 상처가 되어 계속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그래도 꼭 이기고 싶다. 힘들더라도 끝까지, 남들이 다 답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들에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모습으로 답을 주고 싶다. 해고자들 모두 현장에 돌아가서 위축되어 힘들게 일하고 있는 학습지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뭉쳐서 싸우면 이긴다는 걸 다시 한번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다시 이 겨울을 이겨내겠다고 한다.

1월28일이면, 재능교육지부의 투쟁이 1500일을 맞는다. 비정규직 장기투쟁의 상징이던 기륭전자노조가 2010년 11월, 6년 동안의 투쟁을 노사 합의로 마무리한 이후, 2011년에 동희오토, GM대우 비정규직 등 장기투쟁 사업장들의 쟁의가 속속 타결됐다. 몇 년 동안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족보다 더 진한 애정으로 함께 울고 웃으며 싸웠던 동료들의 타결 소식이 누구보다 기뻤지만, 여전히 농성을 이어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프기도 하다. 투쟁에 마침표를 찍은 동료들은 한결같이 다음 차례는 재능이어야 한다고 했다. 장기투쟁의 상징이 된 재능노조의 농성장이 희망버스의 출발지가 되었던 이유다.

사업자 신분이라 노동자가 아니고,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동조합은 성립이 안 된다는 회사의 앵무새 논리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그들. 해고자 12명이 사람으로 존재하는 경우는 가압류의 대상이 되거나 수없는 재판의 피고로 호명될 때, 무단점거 가처분 따위의 벌금 대상으로 경고문에 쓰일 때뿐인 그들.

그래도 다시 옷깃을 여민다. 가족한테조차 지지받지 못해 서럽고 슬픈 싸움. 생계 때문에, 새끼 때문에, 가정 때문에 포기하거나 도망가고 싶은 싸움. 마지막 남은 결사대냐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슬퍼지는 싸움. 어느 날 돌아보니 5년 투쟁사업장의 노조지부장이 돼 있는 자신이 낯설고, 평범한 일상이 간절히 그리운 지금, 그녀는 유령이 된 자신의 존재를 되찾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에 다시 시동을 건다.

“특고 싸움이 왜 어려운지 알아? 특고는 다 대자본이야. 특고에 자본들이 침을 흘리는 이유가 뭐겠어. 고용비용이 나가지 않으니 돈 안 들고, 노사관계에서 자유로워지니까 노조를 상대 안 해도 되고, 꼴 보기 싫은 노조 없애고. 특고가 자본가들한테 얼마나 매력적인 고용 형태인지 몰라. 결국은 제조업까지 들어올 양상이거든. 비정규직은 그래도 원청이니 뭐니 사용자성 가지고 싸우기라도 하지만, 특고는 죽든지 다치든지 자본이 하나도 책임 안 져도 되거든.”

1500일을 견뎌낸 힘은 어디서 왔나 

200만 특수고용 노동자의 문제가 해결되기가 얼마나 녹록지 않은 일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재능을 비롯한 학습지 자본들은 100대 기업 안에 드는 자본력을 가지고 오늘도 날로 성장하고 있다. 특수고용 업종들도 마찬가지다. 물류회사도, 보험회사도 모두 대자본이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대신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고, 그걸 기반으로 점점 더 천문학적 금액의 부를 쌓고 있다.

지난해 가을, 텐트를 칠 때마다 부수곤 하던 때, 큰 텐트가 부서진 뒤 누에고치처럼 자그마한 텐트 안에 그녀와 나란히 누운 적이 있다. 좁은 텐트 안의 우리가 서러워 가슴이 짠했다. 즐거운 여행자의 텐트에서는 새소리, 바람 소리가 들리고 하늘의 별이 보일 테지만, 고통스러운 노동자의 텐트에서는 자동차 소리, 발자국 소리, 텐트를 부수러 오는 용역들의 거친 발소리만 있다.

작은 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하는 긴장 속의 선잠. 그리고 행인들의 욕설이나 의미 없는 비난에 상처받고 울어야 하는 숨죽임. 그런 것들뿐이다. 그러니 그 텐트마저 허락되지 않은 시멘트 바닥의 잠은 오죽하랴. 그 춥고 시린 싸움을 1500일이나 견뎌낼 수 있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 이선옥 르포작가 namufr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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