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쪼개지든 봉합되든 더는 결론을 미루기 어려운 시기

유로, 운명의 시간 맞이하다

지난해 유럽 경제위기 논란의 핵심 중 하나인 유로존 존폐 여부가 올해는 어떤 방향이든 결론을 맺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유로존이 존속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유로존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유로존을 구하기 위한 시나리오들조차 방향성이 통일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독일의 시나리오는 전혀 다른 경제철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탓에, 마치 ‘종교전쟁’을 보는 듯하다.  _편집자

지난해 11월21일 스페인 마드리드 증권거래소의 중개인들이 주가 급락 추이를 보여주는 전광판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올해 스페인 등 유럽 국가의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지 관심거리다. 뉴시스 AP.

2012년엔 프랑스마저 위험하다
유로화 안정 위해선 대규모 자금 필요하지만 누구도 자금 확충 자신 못해

올해 유로존의 운명을 결정하는 열쇳말 중 하나는 ‘자금’이다. 유럽은 현재 수백억유로의 차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하지만 경기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구제금융 재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2년은 유로화의 미래가 결정되는 절체절명의 해가 될 것이다.

2012년 새해를 맞자마자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바빠졌다. 시급하게 차관을 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많은 액수를 빌려야 한다. 당장 1월에만 150억유로에 달하는 이탈리아 국채 만기가 도래해, 이를 대체할 새로운 국채를 발행해야 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2월에는 530억유로가, 3월에는 450억유로가 필요하다. 올해 경제학 교수 출신의 마리오 몬티 재무장관 겸 총리가 전세계 투자자들로부터 빌려야 할 차관은 1천억유로가 넘는다.

누가 유로존에 많은 자금 빌려줄까?

마리오 몬티 총리 외에 투자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혈안이 된 유럽의 국가 정상은 더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 모두 새로운 자본 유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유로존 국가들이 기존 국가 채무를 갚기 위해 필요한 금액은 2012년 1분기에만 총 4440억유로에 이른다. 일본 노무라증권의 추정치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유로존이 빌려야 할 차관의 총액수는 1조5160억유로에 이른다. 유로존 국가들뿐만 아니라 은행들도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유로존 은행들은 2012년 한 해 동안 영업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6천억유로를 빌려야 한다.

유로존 전체에 올해 필요한 자금을 모두 합치면 총 2조유로가 넘는다. 이제 관건은 대체 누가 유로존에 이렇게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로화의 미래는 이런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빌릴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은 유로존의 운명을 결판내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둘쨋주에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개인 투자자들이 EU에 다시 투자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별 예산을 엄격히 감독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전세계 투자자들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넷쨋주 초반에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무려 6.8%나 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같은 기간 독일의 신규 국채 금리는 2%가 채 되지 않았다. 유럽중앙은행(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지난해 12월19일 “2012년 1분기에 이탈리아가 만기가 돌아오는 국가 채무를 갚기 위해 다시 돈을 빌리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투자자들은 지난해 말 새로 제정된 규정이 실제로 향후 재정 적자 감축에 효력을 발휘할지 확신하지 못해 국채 매입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또한 투자자들은 긴축재정이 경기부양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EU 국가 정상회담은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과도한 국가 부채는 해마다 5%씩 감축돼야 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남부 유럽 국가들은 산업 경쟁력을 다시 높이기 위해 임금과 비용을 감축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유럽 정상들의 합의 사항은 경기침체를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적잖은 사람들이 노무라증권의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 이탈리아공업총연합(Confindustria)은 2012년 남부 유럽 국가들의 국민 총생산량이 1.6% 줄어들고, 경기 한파가 불어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페인의 상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넷쨋주 스페인 마리아노 라호이 신임 총리는 취임연설에서 스페인의 상황에 대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대놓고 말했다. 심지어 프랑스 경제도 2011년의 마지막 석 달간 크게 위축됐다. ECB는 유로존의 일부 국가에서 금융위기로 타격받은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줄이고 있으며, 이는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독일 화폐제조국에서 50유로짜리 지폐를 찍어내고 있는 모습.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이 2012년에는 어떤 해법을 찾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시스 AP.

IMF, 1930년 버금가는 대공황 가능성 경고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위기에 악전고투하는 동안 전세계 다른 지역의 경기가 크게 악화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930년대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대공황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경고할 정도로 IMF는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진단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국가들은 각국의 시장을 걸어잠그면서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악수를 뒀다. 세계가 그런 전철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대표적인 예로, 세계무역기구가 각국이 보호주의로 퇴행할 조짐을 보인다고 경고한 것이다. 브라질과 중국은 자동차 수입에 관세를 부과했고, 세계무역 자유화 협상은 지지부진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유로존에 투자한 이들이 투자액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유럽에서의 투자금 보장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필요하다면 국제사회가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국가들을 2~3년 동안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보장책을 요구하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투자금 안전장치에 해당하는 대책들을 도입했지만, 모두 구멍이 숭숭 뚫린 불완전한 대책에 그치고 있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재원이 1조유로 정도는 돼야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데, 현재 EFSF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태다. 현재 가용할 수 있는 EFSF 기금이 총 2500억유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EFSF는 시장에서 이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EFSF의 자금을 보증해주는 국가들이 경제위기에 처할 경우, EFSF 자금 확보는 어려울 수 있다. 유럽의 경제전문가들은 EFSF 자금 확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도 시간문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유럽안정기구(ESM)가 EFSF를 대체해 올해 7월 출범할 예정이다. ESM은 EFSF와 달리 EU 회원 국가들이 출자한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있다. 즉, ESM은 구제금융기금을 전적으로 빌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장의 상황에 덜 종속적이다. 하지만 ESM의 자본이 아직 확보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독일은 ESM 기금이 5천억유로를 상회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며 5천억유로 상한액을 관철했다.

그렇다면 IMF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것도 쉽지 않다. IMF 또한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들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려면 추가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유럽 이외의 국가들은 유럽의 재정 지원에 동참할 생각이 그다지 없다. IMF가 2011년 12월20일 현재 확보한 자금은 1500억유로에 불과했다. 이 중 420억유로는 독일연방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연방은행은 이 금액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독일연방하원의 예산위원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금을 지원한 뒤 돌려받을 수 없게 될 경우 독일 납세자들이 큰 손실을 입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독일연방하원 예산위원회는 아직 동의를 하지 않은 상태다.

ECB 국채 매입 나서지 않아

그런 가운데, ECB는 유로존의 은행에 대해 추가 지원을 결의했다. 유로존 은행들은 이에 따라 ECB에서 최저 금리로 3년 만기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ECB는 이렇게 중앙은행에서 지원받은 은행들이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할 것이라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러면 유럽 국가들은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은행들은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금융기관에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매입을 적극 권장했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금융계는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거래를 ‘사르코 거래’(Sarko-Trade)라고 부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남유럽 국가 국채 투자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해 이 국가들의 국채 매입에 흥미를 잃은 상황이다. 실제로 유럽 금융기관들은 2012년 새해 벽두부터 280억유로에 이르는 이탈리아 국채를 처분했다. ECB가 유로존 국가들을 진정으로 지원하려 한다면, 유럽 국가들의 국채 대규모 매입에 직접 나서야 한다. 유럽 국가들의 정부는 상황이 악화될 경우 ECB가 실제로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 매입에 나서기를 바란다. 하지만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금까지 유럽 국가 국채의 직접 매입을 저지하고 있다. 드라기 총재는 국가의 구제금융은 중앙은행이 아닌 정치의 과제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유로존 국가들은 충분한 재정 확충 없이 유로존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유로존의 재정위기는 여전히 끝날 줄 모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와 독일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이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2011년 12월을 기점으로 경제 동향이 긍정적으로 나타나면서 실제로 재정위기에 놓인 국가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독일 경제는 계속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독일 기업들의 향후 전망은 긍정적이며, 내수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은 대독일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서 혜택을 보고 있다. 특히 스페인은 국채의 일정량을 유리한 조건에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마지막 몇 개월간의 동향을 보면 유로존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금방 빠질 수도 있다. 경기침체, 은행 파산, 거래가 실종된 국채, 과도한 국채에 시달리는 그리스의 국가 부도 위험 등 온갖 산적한 문제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구제금융기금이 충분히 확충되지 않는다면, 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신속히 충분한 재정기금을 모을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일상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국가와 은행이 부도를 맞을 수 있고 결국 유로화마저 파국을 맞을 수 있다. 그래서 구제금융기금의 조기 확보 실패를 모두가 두려워한다. 금융시장은 2012년 유로존 붕괴를 가능한 시나리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현 유로존 위기의 포괄적인 해결을 기술적·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내다본다.

하지만 피치의 암울한 전망은 좋은 소식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신용평가회사들의 전망은 틀린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글 / 마르크 시어리츠 Mark Schieritz <디 차이트> 경제부 기자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