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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남한, 젊은 북한 내치다
[NK economy]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경제
[2호] 2010년 06월 01일 (화) 김보근 economyinsight@hani.co.kr

김보근 <한겨레> 기자·경제학 박사(북한경제)

“‘한반도’라는 동네에서 아랫집 아저씨가 윗집 불량소년과 주먹 다툼을 한다. 아저씨의 주먹이 소년의 얼굴을 여러 차례 가격하는 동안, 소년의 주먹도 간간히 아저씨의 몸에 가닿는다. 소년의 얼굴은 시퍼렇게 멍들어가지만, 아저씨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듯하다.”
지난 5월24일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관련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정부 주장대로 해석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이날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통일·국방·외교 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일련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내놓으면서 “우리 경제 규모로 봤을 때 이번 대북 제재 조치는 미미해 보일 수 있지만, 북한의 경제 규모로 봤을 때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경협이 단절되면, 경제 규모 측면에서 볼 때 ‘아저씨’인 남한 경제는 별 타격이 없겠지만, ‘소년’ 수준인 북한 경제는 큰 충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정부 주장은 경제 규모만을 고려한 ‘초등 산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에 대한 실질적 타격은 경제 규모 외에도, 세계경제와의 관계, 발전 동력, 장기 발전 전략 등 많은 변수를 고려한 ‘고등 수학’으로 풀어야 한다. 이 경우, 어쩌면 남한이 입을 경제적 타격은 북한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그럼 먼저 정부의 ‘초등 산수’부터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경제분야 대응은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의 전면 중단’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남한 당국은 이번 조치로 북한이 연간 2억5천만~3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해 남북간 일반 교역 반입액(2억4,519만달러)과 위탁가공 반입액(2억5,404만달러)에 근거한 것이다. 남한 정부는 일반 교역 반입액 중 운송료나 보험료를 제외한 약 90%의 금액인 2억2천만달러와 위탁가공 반입액 중 전체의 10~15%에 해당하는 임가공료(약 3천만~3,500만달러)가 이번 조치로 북한이 입을 피해로 추산했다. 여기에 북한 지역 선박 운행  운임 900만달러가 보태졌다.

   
군 합동 조사단이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고 발표한 5월 20일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으로 가는 남쪽 업체 관계자들이 차량 틈새에서 출경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다.
북 피해 3억달러 추정

2009년 북한의 총 무역액이 50억9천만달러였고, 이중 수출은 19억9천만달러에 불과했다. 따라서 남한 정부의 주장대로 2억5천만~3억달러에 이르는 손실은 북한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세계 10위권인 남한 무역 규모를 생각할 때 이는 남한에는 ‘미미한 영향’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정부 주장은 경제에 영향을 주는 다른 변수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결론’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의 개방 수준과 자유로움’이라는 변수다. 이번 조치는 1987년 이후 높아져오던 우리 사회의 ‘개방 수준과 자유로움’을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웹2.0 시대’라는 새로운 경제 상황에서 남한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경협 전면 중단은 남북교역의 출발점이 된 1988년 7·7 선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분단의 벽을 헐고 모든 부문에 걸쳐 (남북) 교류를 실현”하자고 강조했다. 이 선언으로 북한의 물품이 남한에 오고, 남한의 설비가 북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선언의 영향은 단순한 물자 반출입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선언은 남한 국민들에게 들씌워진 ‘상상력의 족쇄’를 깸으로써 남한 경제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이전까지 남한은 저임 노동력을 이용한 중저가 생산품을 양산해 수출하는 경제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반공주의’로 사회를 단단하게 옥죄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빨갱이’라는 말 한 마디에 설 자리를 잃었다. 이런 패러다임은 노동 단가를 낮추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주민들의 ‘창발적 상상력’은 틀어막는 구실을 했다.
당시 세계경제는 극소전자(ME) 혁명을 경험하면서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극소전자 혁명은 남한 경제에도 첨단 기술과 창조적 상상력이 결합한 고부가가치 상품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기회를 제공했고, ‘극단적 반공주의’라는 족쇄를 푼 남한 경제는 ‘고부가가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관련해 몇해 전 대북 경협 사업자와 가진 인터뷰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당시 북한에서 휴대폰용 모바일 게임을 주문 제작해 들여온 뒤, 남한 이동통신사에 이를 공급하고 있었다. 그에게 “북한에서 멀티플레이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을 주문 제작하면 제작 단가를 훨씬 낮출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MMORPG같은 첨단 고부가가치 상품 제작에는 창조적 상상력이 제일 중요한 요소인데, 북한 주민들은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독재’를 극복한 남한과 그렇지 못한 북한의 경제적 운명은 그렇게 갈라진 채 확대돼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 ‘천안함 관련 조치’는 20여 년 간 꾸준히 넓혀온 남한의 ‘창조적 상상력’을 1988년 이전 수준으로 다시 되돌리려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남한의 ‘창조적 상상력’은 불완전하다. 남한 당국은 인터넷 실명제, 인터넷 모욕제 등 다른 어떤 나라에도 없는 인터넷 규제를 강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계바늘을 되돌리려는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대응은 ‘개방과 연대’로 대변되는 21세기 경제 전쟁에서 남한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변수를 생각하면, 남한 경제가 받을 타격은 더욱 명확해진다. 왜냐하면 남북교역의 전면 중단은 중국 경제의 ‘추격 속도’를 더욱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한 기업체 사장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개성공단이 없을 때 많은 남한 기업들이 중국을 찾았다. 그러나 중국은 몇 년 안에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흡수해버린다.” 이는 기업 자체로도 불운이지만, 남한 경제 전체로서도 불행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흡수된 기술을 이용해 남한과의 기술격차를 더 줄여왔기 때문이다. 남한이 북한과 교역한다는 것은, 남한 기업이 자신의 기술을 중국에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남한은 북한과 교역함으로써 ‘중국의 남한 따라잡기’를 지연하는 효과도 얻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남북교역이 금지되면 많은 남한 기업들이 중국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남한은, 머지않아 훌쩍 성장해버린 중국 기술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남북이 싸우면 모두 패배
이번 조치로 남한은 장기 비전 수립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급격하게 노인 사회가 돼가는 남한 현실과도 연결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5월12일 남한이 2030년에는 OECD 국가 중 ‘네 번째 노인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노인사회가 되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세계경제에서 남한의 경제적 지위도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교역 확대는 이런 상황을 완화·저지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지금까지 인식돼왔다. 대표적인 분석으로 지난해 9월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통일코리아, 북한 리스크 재평가>를 꼽을 수 있다. 세계적 투자기업인 골드만삭스는 이 논문에서 통일 코리아가 40년 뒤인 2050년에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독일과 프랑스를 추월하여 세계 8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핵심 이유 중 하나가 고령사회로 접어들지만 기술이 뛰어난 남한과, 기술은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북한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였다.
앞에서 언급한, 소년과 싸운 아저씨는 소년에게서 결정적 타격을 받지 않고 소년을 혼내줬다고 기뻐해야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다른 이웃 동네 아저씨들로부터 “꼬마와 싸운다”는 비웃음을 받을 수 있다. 그 비웃음은 소년이 날리는 주먹보다 훨씬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더욱이 ‘중국’이라는 옆집 아저씨가 상처입은 소년을 감싼다면, 이 싸움으로 그가 입을 피해는 측정하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남한이 ‘싸워야 할 상대’는 이미 북한이 아니다. 대결 상대는 세계 경제대국이며 빠른 속도로 추격해오는 중국이다. 싸울 상대를 잘못 택해 싸운다면 그것은 자해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변수를 모두 넣어서 남북교역 중단에 따라 손익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점은 남북한이 서로 싸운다면 남북 모두가 엄혹한 국제사회에서 패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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