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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 자사주 매각 논의, 격론 끝 유보
[Special Report Ⅱ] 코스닥 위협하는 정치 테마주
[22호] 2012년 02월 01일 (수) 이춘재 cjlee@hani.co.kr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딜레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1)는 지금 ‘주식시장에서 가장 불안한 이름’이다. 안철수 원장이 유력 대권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투기 주식’이 됐기 때문이다. 안철수연구소는 이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할까?

지난해 12월9일 아침 8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안철수연구소(안랩)의 임원들을 만났다. 유력한 대선 주자로 급부상한 이후 회사와 거리를 두던 그가 이날 모처럼 안랩의 임원들을 만난 것은 이사회 때문이었다. 안랩을 창업한 안 원장은 2005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 최대주주로서 이사회 의장직만 맡고 있다.

안 원장과 4명의 이사들이 논의할 안건은 ‘자사주 매각’이었다. 2011년 1분기까지 1만8천원대에 불과했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랩은 그해 4월과 6월 두 차례 이사회를 열어 회사 주식 43만 주를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자사주가 상장 주식의 10%를 넘어 지나치게 많다고 판단한 이사회는 6개월 뒤 자사주를 매각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자료: 한국거래소

격론 끝에 자사주 매각 유보하기로
안 원장이 주재한 이날 이사회에서 경영진은 ‘6개월 뒤 자사주 매각’ 조건을 상기시키며 139만여 주의 자사주 가운데 일부를 팔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주가가 올랐을 때 자사주를 팔아 회사의 성장을 위한 투자에 나서는 것이 주주들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10월 입주한 판교 신도시의 새 사옥을 마련하는 데 적잖은 비용이 들어 자금 수요도 있었다.

그러나 경영진의 바람은 곧 반론에 부닥쳤다. “지금 주가가 회사의 펀더멘털(2)과는 전혀 상관없이 급등하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자사주를 팔아 엄청난 차익을 챙기면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사주를 매각하면 주가가 떨어질 테고, 그러면 ‘먹튀’ 시비에 휘말릴 텐데, 감당할 수 있겠나?” 실제로 안랩이 43만 주를 매입할 때의 주가는 1만7천~1만9천원에 불과했다. 따라서 자사주 매각은 최소 560억원을 남기는 ‘잭팟’인 셈이다.

그러자 한 이사가 재반론을 폈다. “올해 경기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무엇보다 현금이 중요한 때가 될 것이다. 더욱이 자사주를 매각하면 지금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들에게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경고를 주는 효과도 있다.” 시세 차익을 노리고 뛰어든 단기 투자자까지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논리도 덧붙였다.
하지만 또 다른 반론이 제기됐다. “자사주 매각은 시장논리로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자사주를 팔면 강용석 의원처럼 안 원장과 안랩을 공격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안 원장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사들의 얘기를 주로 듣고 있었다. 매각 불가피론과 매각 불가론 사이에서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 누군가가 “외부 여론을 들어본 뒤 결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자사주 매각에 부정적 여론이 압도적이면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안 원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좋겠군요.”

그날 오후 안 원장의 지인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자사주 매각 불가’였다. 도덕성 시비가 그 이유였다. 안 원장은 이를 이사회에 통보했고, 이사들은 자사주 매각을 잠정 유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대신 때마침 금융감독원이 주가 급등에 따른 조회 공시를 요구한 것에 대해 “주가 변동 요인이 없다”는 답변과 함께 “투자에 주의하라”는 경고를 하기로 했다.

이날 이사회는 얼핏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게 볼 수 없는 ‘사건’이다. 안 원장과 안랩에 잠재해 있는 리스크의 일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안랩의 우상이자 오늘의 안랩을 있게 한 안 원장의 대중적 인기가 오히려 안랩에 부담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랩은 지금 ‘주식시장에서 가장 불안한 이름’이 돼버렸다. 지난해 7월만 해도 2만원대에 불과하던 안랩의 주가는, 안 원장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설이 불거진 그해 9월1일 단숨에 3만5천원에 육박하더니, 안 원장의 지원을 받은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당선이 유력해진 10월24일 10만원을 돌파했다.

이런 추세는 새해 들어서도 계속됐다. 각 여론조사기관의 대권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안 원장이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자, 주가는 15만원을 훌쩍 넘었다. 금융위원회가 정치인 테마주에 대해 긴급조치권을 발동하고 안랩의 2대 주주 원아무개씨에 대한 조사에 나서자 한때 13만원대로 떨어졌으나, 곧 14만원대로 올라섰다.

단타 매매로 몸살 앓아

문제는 안랩의 주가 급등이 회사의 펀더멘털과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안 원장에 대한 정치적 기대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펀더멘털과는 무관하게 테마에 묶여 주가가 오르는 주식은 그 테마가 사라지면 주가가 급락하게 된다. 그 결과 주식시장에서 신뢰를 잃게 돼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장기 투자자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그만큼 작전 세력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실제로 안랩의 펀더멘털은 주가가 2만원대에 머물던 지난해 7월에 견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코노미 인사이트>가 투자전문회사 서울인베스트에 의뢰해 분석해보니, ‘정치인 테마주’로 묶이기 전인 지난해 9월1일 이전의 주가수익비율(PER)(3)은 26 수준이었으나, 12월 이후로는 90~100을 웃돌고 있다. 그만큼 안랩의 주식이 고평가됐다는 얘기다.

안랩의 주식거래 내역을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8월 이전까지는 하루 거래량이 최대 30만 주를 넘지 않았지만, 정치 테마주로 인식된 이후부터는 하루 동안에만도 상장된 주식의 10~20%에 해당되는 100만~200만 주가 거래되는 날이 흔했다. 심지어 1월3일에는 무려 430만 주(상장 주식의 43%)가 거래되기도 했다. 그만큼 단타매매(데이트레이딩)가 활개를 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패턴은 작전 세력이 개입한 종목에서 흔히 나타난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현재 안랩 주식의 PER는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정보기술(IT) 거품이 절정에 달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거품이 꺼져서 주가가 급락하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는데, 이를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랩이 자체적으로 평가한 2012년의 적정 주가는 4만~5만원이다. 따라서 거품이 빠지면 안랩은 최소 4만원대까지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

테마에 편승해 주가가 치솟다가 단기간에 폭락해 ‘잡주’로 전락한 사례는 많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테마주’가 그랬다. 특수건설, 이화공영 등 이름조차 낯선 건설사들이 4대강 사업에 편승해 증권가를 휩쓸다가 단기간에 폭락을 거듭하며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삼천리자전거도 ‘자전거 테마주’란 이름으로 폭등했지만 결국 ‘잡주’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물론 안랩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를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기술력이 뒷받침되고, 재무구조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강록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안랩은 설립 이후 부채를 끌어다 써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내실 있는 회사”라며 “오버슈팅(Overshooting)이 해소돼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간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700명의 안랩 직원들에게 안철수는 닮고 싶은 모델이다. 안랩의 상황실에서 연구원들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벤처 거품이 꺼지길 기다린 안철수

안랩에 잠재해 있는 또 다른 위험 요인은 경영진의 안이한 상황 인식이다. 자사주 매각 논의는 경영진이 시장논리에 매몰돼 자칫 안 원장과 안랩이 갖고 있는 사회적 자산을 잃게 만들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안랩의 성공은 무엇보다 시장논리를 뛰어넘는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이를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안 원장이 회사 경영을 이끌던 시절에 안랩은 종종 시장논리를 초월한 결정으로 소비자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단순한 비즈니스적 관점으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경영철학을 고수했기에 단기간에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안랩의 코스닥 상장 과정이 대표적 사례다. 안랩이 기업공개를 준비하던 2000년은 벤처 열풍이 한창인 때였다. IT 업종의 벤처기업들이 코스닥에서 연일 상한가를 때리며 주식시장을 휩쓸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 가운데 순이익을 내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반면 안랩은 1999년 결산에서 이미 7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었다. 따라서 2000년 코스닥에 등록했다면 수천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CEO 안철수는 기업공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봇물 터지듯 밀려드는 투자 제안도 모두 거절했다. 벤처 열풍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거품이 빠지면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볼 게 뻔했기 때문에 이들을 속일 수는 없었다.

결국 안랩은 1년 뒤 벤처 거품이 완전히 빠지고 나서야 코스닥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안랩 주식이 코스닥 시장에서 처음 거래됐을 때는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로 전세계의 주식시장이 싸늘하게 식은 뒤였다.

안 원장의 결정은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모범답안이 아닐지 모른다. 가깝고 확실한 이익을 놔두고 불확실한 것을 선택해서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직한 모습에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고, 이런 것들이 쌓여 지금의 안랩을 만든 것이다.

아쉽게도 안 원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 안랩에서는 시장논리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홍선 대표이사를 비롯한 몇몇 임원들은 주가가 급등한 지난해 9월과 10월 스톡옵션으로 받았던 주식을 처분해 3배에서 최대 7배의 차익을 챙겼다. 안랩 관계자는 “스톡옵션을 제때 행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세금 때문에 손해를 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처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행위는 스톡옵션의 취지로만 보면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안철수가 지난 16년 동안 걸어온 궤적에서는 분명히 벗어났다. 안 원장과 안랩을 아끼는 이들이 못내 아쉬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영진은 139만여 주의 자사주 매각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사회가 외부의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자사주 매각 안건을 파기하지 않고 유보하기로 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진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안랩이 투자에 주의하라는 공시를 낸 상황에서 자사주를 일반 투자자에게 매각한다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주가에 거품이 끼어 있어 앞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면서도 일반 투자자에게 고평가된 가격으로 자사주를 파는 셈이기 때문이다. 유근철 서울인베스트 부사장은 “지금 안랩의 자사주 매각에 따른 차익은 불로소득과 같다”며 “적정 주가인 5만원대로 떨어질 때 처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치 테마주라는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 안랩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안 원장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자신이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나설 경우 안랩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여부를 저울질할 때 안 원장이 가장 고민한 것은 안랩의 미래였다. 만약 직접 출마한다면 시장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안랩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과도 같은 안랩이 자기 때문에 위험에 빠질까봐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안철수 딜레마’ 극복할까

안랩의 경영진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안랩 관계자는 “최근에 경영진이 안 원장을 만났을 때 ‘제발 좀 가만히 계시라’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강록희 애널리스트는 “12월 대선 때까지 주가가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경영진으로선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랩은 안 원장이 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 상당 기간 매출이 정체됐다가 지난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이젠 ‘안철수’ 없이도 홀로 설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이는 안 원장의 오랜 바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랩 앞에는 지금 ‘안철수 딜레마’라는 또 다른 과제가 놓여 있다. 

/ 이춘재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cjlee@hani.co.kr


(1) 안철수연구소(안랩)가 2008년 회사의 성공 스토리를 담아 펴낸 책의 제목이다. 컴퓨터 백신 소프트웨어 ‘V3’로 국내 IT 보안 기술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업적에 대한 안랩의 자긍심이 물씬 풍겨난다.

(2) 펀더멘털(Fundamental)  매출액, 현금흐름, 배당규모, 장부가치 등 기업의 가치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를 말한다.

(3) 주가수익비율(PER)  주가가 1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지를 의미한다. 어떤 기업의 주식가격이 5만원이라 하고 1주당 수익이 1만원이라면 PER는 5가 된다. PER가 높으면 주당이익에 비해 주가가 높다는 것이고, PER가 낮으면 주당이익에 비해 주가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PER가 낮은 주식은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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