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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일삼는 박근혜 테마주
[Special Report Ⅱ] 코스닥 위협하는 정치 테마주
[22호] 2012년 02월 01일 (수) 이춘재 cjlee@hani.co.kr

‘박근혜 테마주’인 EG가 주가 급등 시기에 자사주를 매각하는가 하면, 경영진이 보유한 주식을 팔아 거액의 차액을 남겼다. 하지만 ‘먹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대주주인 박지만씨가 그 선례를 남겼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친동생 박지만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EG는 지난 1월4일 한국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됐다. 공시 내용을 번복했다는 게 그 이유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대한 정치적 기대에 편승해 이 회사의 주가가 지난해 12월 초부터 가파르게 오르자, 한국거래소는 12월14일 주가 급등 사유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EG는 다음날 “환경설비 신설공사 공급계약을 다각도로 검토 중에 있으나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주가 급등 때 사유를 밝히라는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답변하면 15일 안에 자사주를 처분할 수 없게 된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친동생 지만씨가 2011년 12월14일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주가 급등 공시 하루 만에 자사주 처분해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EG는 불과 하루 뒤인 12월16일 이사회를 열어 자사주 3만9750주를 처분하기로 의결했다. 그러자 한국거래소는 그날 오후 곧바로 EG에 대한 제재를 예고했고, EG가 자사주 매각을 강행하자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과 함께 40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EG 관계자는 “100억원 규모의 엔지니어링 설비를 최근 수주해서 원·부자재 확보를 위한 자금이 필요했다”며 “금융권에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부득이하게 자사주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을 한국거래소 쪽에 미리 다 설명했는데도 제재를 받게 돼 황당하다”며 억울해했다. EG는 “한국거래소에 제재 철회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제재는 철회되지 않고 있다.

이보다 더 의심스러운 것은 경영진의 행동이다. 조회공시가 오간 이틀 동안에 이광형 대표이사와 한 계열사 사장은 각자 보유하고 있던 주식 16만 주와 3천 주를 각각 처분해 88억원을 챙겼다. EG 쪽은 “이광형 대표이사가 장학재단을 만드는 데 쓰기 위해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회공시가 오가는 와중에 주식을 처분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EG의 경영진은 정치 테마로 뜨기 전 2만원대에 불과하던 주가가 6만원대로 치솟았을 때 서둘러 차익을 실현했다. 전형적인 ‘먹튀’ 행위다. 그런데 EG 경영진의 ‘먹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EG의 주가는 2010년 말에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덕을 톡톡히 봤다. 박 위원장이 그해 12월20일 개최한 복지 관련 공청회가 현역 의원만 70명 넘게 참석할 정도로 성황리에 끝나자, EG의 주가는 12월28일과 29일 최고 70%까지 올랐다.

이때 최대주주인 박지만씨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 가운데 20만 주를 팔아 74억여원을 회수했다. 주당 8040원에 취득한 주식을 평균 3만7013원에 처분했으니 차익이 무려 57억여원에 이른다. 박씨의 매도 소식이 알려지자 투자자들이 실망 매물을 쏟아내는 바람에 EG의 주가는 그 뒤 14% 가량 폭락했다. 이에 대해 EG 쪽은 “박씨가 당시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이자 부담이 너무 커서 대출금을 갚기 위해 지분을 처분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씨는 2007년 12월 대선 때도 26만2296주를 3만원 전후의 고점에서 매도해 78억원을 손에 쥐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광형 대표이사도 12만 주를 약 2만9천원에 팔아 35억원을 챙겼다. ‘불가피한 사정’을 핑계 삼아 상습적으로 ‘먹튀’를 했던 셈이다.
 
실적 없는 테마주의 운명

‘정치 테마주’는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부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주가가 급등한 ‘4대강 테마주’와 ‘자전거 테마주’가 그랬고, 참여정부 때 ‘황우석 신드롬’으로 펄펄 날았던 ‘줄기세포주’도 지금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 혜성처럼 등장한 태일정밀은 한때 유망 벤처기업으로 각광받았으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태일정밀은 컴퓨터 부품 제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 시장에서 대재벌인 삼성전자를 눌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6년부터 본업을 제쳐두고 사업다각화에 열을 올리다 된서리를 맞았다. 대구종금과 수원터미널, 대전동물원 등을 인수하기 위해 과도하게 부채를 끌어쓰다 빚더미에 앉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컴퓨터 부품 제조업에서의 실적도 악화돼 운명을 다했다.

당시 금융계에서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 정아무개씨(2011년 사망)가 김 전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라는 점 때문에 대출이 쉽게 이뤄졌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정씨는 1993년 1월 김 전 대통령이 취임 직전 가진 유망중소기업 대표 간담회에 초청받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공장을 방문했던 고합은 화섬업체로 출발한 뒤 석유화학 분야로 진출해 1990년대 중반 재계 21위(자산 기준)까지 오른 대기업이었다. 장치혁 전 회장이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초기까지 남북경협의 메신저 구실을 할 정도로 잘나갔다.

하지만 매출이 늘고 유명세를 타자 고합 경영진은 차입경영으로 몸집 불리기를 시작했다. 결국 외환위기 때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설상가상으로 실적까지 악화돼 워크아웃 등을 전전하다 2002년 상장 폐지되고 말았다.


   
자료: <매일경제>

물론 ‘정치 테마주’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1)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S&P 500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 가운데 공화당 인사가 이사로 있던 78개 기업의 주가는 평균 3.1% 상승한 반면, 민주당 인사가 이사로 있던 47개 기업의 주가는 평균 4% 하락했다.

타이는 대기업을 소유한 탁신 전 총리가 집권했을 때, 탁신 내각과 관련 있는 대기업들과 그렇지 않은 기업들이 주식수익률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탁신 전 총리가 선거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집권 뒤 2년 동안에는 탁신 내각과 관련 있는 주식들의 평균 초과수익률은 82.5%포인트였던 반면, 관련 없는 주식들은 25.2%포인트에 불과했다.

‘정치 테마주’의 흔적은 역사 속에서도 발견된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했을 때 나치당과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했다. 히틀러와 나치는 1933년 초에 집권했는데, 그해 1월부터 3월까지 나치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7% 상승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주가에 큰 변동이 없었다.

/ 이춘재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cjlee@hani.co.kr


(1) 이진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칼럼 ‘집권당과 주가’, <머니투데이>, 2009년 4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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