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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를 보는 3D 안경
[Book]<북한경제의 시장화>, 양문수
[2호] 2010년 06월 01일 (화) 이정철 economyinsight@hani.co.kr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 경제를 연구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다름없다는 냉소가 팽배해 있다.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는 현실에서 무슨 경제 연구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비아냥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도쿄대 박사과정에 진학할 당시 경험을 술회하며 쓴 ‘곧 망할지도 모를 북한을 왜 연구하는가’라는 물음만큼이나 ‘북한에 대한 제대로 된 데이터가 있나요’라는 질문은 북한 경제 연구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상황에 따라서 이같은 질문은 북한 연구를 폄훼하는 도발로 간주되고, 때로는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자격지심에 빠뜨리는 관문주의로 받아들여진다.
 
북한 경제 연구 모든 방법의 총화
그러나 북한 경제 연구는 데이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모든 데이터라는 것이 엄밀히 보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이다. 이 점에서 모든 경제 연구는 폴라니식의 사회 속 시장에 대한 연구이자, 마르크스식 정치·경제라는 주장은 곱씹어볼 만하다. 수학적으로 똑떨어지는 무슨 수식 같은 것으로 북한 경제를 분석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신줏단지같이 내미는 데이터라는 것이 사실은 정보기관이 의도적으로 가공하거나, 때로는 남쪽 이데올로기라는 편견이 덕지덕지 붙은 매우 ‘실용적인’ 그 무엇인 경우가 많음을 부정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굳이 내재적 접근이라는 그 논란 많은 인식론 논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북한 경제 연구의 데이터 가공은 조심스러운 작업이고, 따라서 그것은 북한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사회에 대한 통찰이 없는 자가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것이다. 더 이상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는 북한 경제 연구는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는, 바로 북한 연구이기 때문에 경제 연구가 정치·경제적, 역사·제도적 접근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논리로 수정돼야 할 것이다.
이 책과 상관없는 듯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이 정도면 이 책에 대해 중요한 얘기는 다 나온 셈이다. 자존심 센 경제학자가 북한 경제 연구의 아성을 쌓고 이른바 데이터에 의한 연구를 강변해보지만 그 산출물은 제한적이다. 하나의 방법론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관성에 따르는 연구일 뿐이다. 사회과학의 양대 접근법 중 하나인 설명(Explanation) 외의 이해(Understanding)와 관련된 모든 방법에 대해서는 무지한 셈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연구는 북한 연구의 데이터 구축이라는 기초 외에도, 구축한 데이터의 타 경제와의 비교를 위한 방법적 디자인, 북한 당국의 정책과 내부 논쟁을 이해하기 위한 문헌 분석과 북한 현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북한 이탈 주민과의 인터뷰 등 북한 연구를 위한 모든 방법적 수단이 총화된 결과다. 경제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데이터 위주의 연구를 넘어 다양한 방법적 접근을 동원해 자신의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각 장이 도출한 연구결과와 내용에 집착하기보다는 저자가 사용하는 각각의 방법에 주목하기를 권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이 점에서 본서는 연구서이자 교과서다. 학부의 수업 시간에 들고 읽기 위해 만든 교과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북한 연구의 길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교본이다. ‘풀어 쓴 북한 경제’류의 국정(?) 교과서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책을 찾아보기 바란다. 이 책은 ‘북한 경제 연구 방법과 사례’에 관한 총화서이기 때문이다.
 
탁월한 균형 감각
한편 지역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책적 고려 사항, 즉 정무적 판단력에 기반하는 저자의 신중함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씩 연구자는 고개 들어 자신의 연구가 어떻게 정책적으로 활용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정무적 판단을 거부하는 ‘돌쇠형’ 연구나 ‘모르쇠식’ 연구가 결국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동조하고 그에 악용돼온 역사적 사례를 수없이 목도해왔다. 본서의 저자는 학자적 양심과 지역학으로서의 정책적 고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 잡기에 성공하고 있다. 화폐 개혁을 ‘실패’로 단정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이를 ‘진행형’으로서 지켜볼 것을 주문하는 것은 저자의 균형 감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사실 이중구조화 전략같이 번득이는 개념적 통찰은 누구보다 오랫동안 정치, 사회, 생활 그리고 역사의 총체로서 북한 경제에 접근해온 저자만이 내릴 수 있는 역사적 자산이다. 그래서 그의 ‘시장화’가 가리키는 손가락보다는 그 손놀림을 부러워하는, 그래서 학문으로서 북한 경제에 접근하려는 사람이라면 일독은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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