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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집과 함께 사라진 ‘평미레’ 인심
[박물관 속 경제] 되와 말
[21호] 2012년 01월 01일 (일) 윤승일 economyinsight@hani.co.kr

   
이미지투데이.

옛날 쌀가게는 되와 말로 쌀을 팔았다. 마음씨 좋은 주인은 한 되를 팔더라도 한두 홉 더 얹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러기 힘들다. 10kg짜리나 20kg짜리 포대로 정확히 판매되기 때문이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사라지는 것이 늘고 있다. 용적을 가늠하는 측정 도구인 ‘되’와 ‘말’도 그중 하나다. 1980년대만 해도 시장이나 웬만한 골목 어귀마다 한 곳씩 있는 쌀가게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되는 어른의 두 손에 가득 담을 수 있는 양을 기준으로 하고, 1되의 10배가 1말이 되고 1말의 10배가 한 가마의 기준이 되었다. 1되의 10분의 1은 홉이었다. 상고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되와 말의 측정 기준은 신라 문무왕(서기 689년), 고려 문종(1052년), 조선 세종(1446년) 시대에 큰 변화를 겪었다. 문종은 4가지 곡식을 기준으로 종류에 따라 되의 크기를 달리하는 개혁을 했지만, 세종은 다시 같은 크기를 기준으로 하는 단일량제도로 바꾸었다.

1970~80년대 석유곤로에 넣을 석유도 되를 단위로 사고팔았으나, 되는 이제 더 이상 거래 기준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쌀이 무게가 적힌 봉투에 담겨 마트를 통해 팔리면서 ‘싸전’으로 불리던 쌀가게는 재래시장에서조차 보기 어려워졌다. 산처럼 쌓인 쌀더미 꼭대기에 떡하니 놓여 있던 사각형의 ‘되’와 원형의 ‘말’의 풍경이 사라지면서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도 잊혀지고 있다. 아이들은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화를 당하는 경우’를 빗대어 말하던 속담이라고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되와 말을 보지 못한 탓이다.

쌀과 정 함께 주고받던 투박한 그릇

되와 말은 ‘양’을, 주고받는 행위는 경제활동의 기본인 ‘교환’을 의미한다. 이익은 교환행위를 통해서 발생한다. 값은 시장을 통해 결정되기에 한 가게의 주인이 임의로 정할 수 없으니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면 양을 속이거나 교환 빈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되와 말이 용적 기준의 도구였던 시절, 일부 쌀가게 주인은 되나 말의 규격을 줄여 이익을 더 취하다가 단속에 걸려 구속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더 능숙한 이들은 되나 말에 담긴 곡식을 편평하게 하는 둥근 막대기인 ‘평미레’질을 할 때 되를 기울여 쌀이 더 많이 쏟아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쌀가게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거리가 멀어도 평미레질을 넉넉하게 하는 쌀가게를 찾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소문 내지 않아도 이런 쌀가게에는 단골이 줄을 이었다. 이런 쌀가게의 평미레질은 가난한 이에게 더 넉넉해, 같은 값에 더 많은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 같은 값에 더 많은 쌀을 가져가는 가난한 이들은 주인의 인심이 아니라 되의 크기가 좀더 크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쌀가게 주인의 배려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기업들의 사회적 활동이 늘고 있다. 사회적 활동의 수혜자는 대부분 가난한 이들이다. 자신이 취한 이익에 비해 너무 적은 비용을 내면서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기업들도 있다. 야박하게 말하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의 행위는 미래의 고객을 확보하거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또 하나의 투자다. 더 야박하게 말하면 과도하게 취한 이익을 반환하는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숫자로 치환되는 디지털 시대다. 그러나 인심은 정량으로 측정할 수 없다. 때로는 부정확하지만 보이지 않는 인심을 담을 수 있는 되와 말의 사라짐이 아쉽다.

윤승일 기획위원 nagne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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