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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사로잡은 ‘하이브리드’ 매거진
[매체 소개] 다양한 관점과 독특한 편집으로 승부한 등 대안매체로 안착
[1호] 2010년 05월 03일 (월) 한광덕/총괄 편집장 economyinsight@hani.co.kr

잡지는 인류 역사에서 최고령 매체의 하나이면서 가장 변하지 않은 매체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최근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최장수 미디어의 생존을 시험하고 있다. 하지만 트위터 시대에도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원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의 노이즈 속에서 정보를 선별하고, 필요한 정보의 깊이를 더해주며 정보를 두루 확산시켜주는 잡지의 존재 의미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신문과 방송에 비해 전문분야를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경제 매거진은 저널리즘보다는 아카데미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이 유기적으로 접목하는 십자로가 될 수 있다.
 
독자들의 미디어 소비 형태 변화
<타임> <뉴스위크> 등 미국의 전통적인 시사 종합지들이 점점 대중문화와 건강과 같은 연성 소재를 다루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지만 1843년 런던에서 창간된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여전히 중후한 논조와 격조 높은 문체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다소 보수적인 <이코노미스트>는 주로 자유주의 제국의 지식인층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시사잡지들과 차별화한 독특한 형식의 새로운 잡지가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이 줄곧 있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2001년 미국에서 발간된 뒤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더 위크>(The Week)가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더 위크>는 뉴스 수집을 위해 기자를 활용하기보다는 다수의 편집자들이 국내외 매체나 출판물에서 한 주의 보도를 수집해 요약한 2차 보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한 주간의 중요한 현안을 상이한 매체를 통해 전달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자연스럽게 진보와 보수의 의견들을 균형 있게 소개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더 위크>는 창간 1년만에 25만 명의 독자를 확보했으며, 2005년엔 10만명이 늘어나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줬다. 물론 새로운 의제 설정이나 취재 아이템의 선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독특한 편집 특성을 가진 이 잡지의 시장 확대는 사람들의 미디어 이용 형태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고, 전통적 잡지의 구독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사의 자체 생산보다 외부 소스의 필터링과 편집으로 독특한 지면을 생산하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잡지의 원조는 프랑스의 <쿠리에 앵테르내셔널>(Courrier International)이다. 전세계 120만명이 보는 국제뉴스 전문 주간지로 자리잡은 <쿠리에>는 1990년 11월, 4명의 젊은이들이 창간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랍, 이스라엘, 동아시아 권역 언론들의 사설과 기사들을 한데 모은 잡지를 만든 것이다. 걸프전이 터졌을 때 아랍권 뉴스를 집중적으로 게재해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뒀다. 그 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의 자회사가 된 <쿠리에>는 세계 1300여 정론지의 기사들을 엄선해 주제별로 이슈화하는 편집으로 2003년 프랑스 최고 잡지상을 받았다. 언론 비평가들은 이 잡지의 대중적인 성공을 독자들의 달라진 소비 심리로 설명한다. 이미 인터넷으로 뉴스는 물론 분석기사까지 일별한 대중은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 뒤 그 사안에 대한 다양한 소스와 관점을 두루 확인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미국만이 세계일까” 문제의식에서 출발
<쿠리에>의 성공은 일본, 포르투갈, 벨기에의 현지판으로 이어졌다. 2005년 12월, 스쿠프도 스캔들도 없는 저널리즘 잡지, <쿠리에 자폰>이 “미국만이 ‘세계’일까요”라는 회두를 던지며 세상에 나왔다. <쿠리에 자폰>은 <쿠리에 앵테르내셔널>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지만 콘텐츠 선택은 전적으로 자체 편집진이 한다. 편집자들은 전문 통역가와 프리랜서의 도움을 받아 1천여 종의 외국 언론을 탐색한다.
<쿠리에>의 독특한 제작방식은 온라인으로 확산됐다. 지난해 5월 <쿠리에 인터내셔널> 웹사이트는 EU 집행위원회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프레스유럽>(www.presseurop.eu)을 만들었다.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르몽드> <슈피겔> 등 약 250개 유럽 언론의 EU 관련 뉴스를 총망라한 포털이다.
 
단일 라이선스 ‘비만형’ 잡지와 차별화
한국에서도 외국 언론의 콘텐츠를 싣는 잡지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 최근 들어선 경제잡지에서 도드라진다. 하지만 대부분 단일매체의 기사를 전재하는 라이선스 잡지다. 같은 로고 모양의 외국매체 제호를 사용하고 뒤에 ‘코리아’를 붙이는 형식에서 알 수 있듯이 특정 매체의 브랜드 후광에 전적으로 기대기 때문에 콘텐츠의 풍부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러 매체로부터 기사를 공급받고 있는 잡지도 소스가 영미권으로 국한돼 있어 시각의 한계가 뚜렷하다. 즉 <더 위크>나 <쿠리에>의 하이브리드 편집방식과는 발상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 콘텐츠는 전시용이고 국내 콘텐츠는 부속물로 전락해 일반 한국잡지에서 흔히 보아온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유럽의 진보언론과 아시아의 신흥 매체와 제휴해 깊은 담론, 넓은 시야를 보여주는 <이코노미 인사이트>가 독자와 만나는 이유다.
 라이선스 잡지들 중에서 <르몽드디플로마티크>를 제외하면 날씬하고 가벼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왜일까? 표지에 나온 기사를 읽어보려면 광고면을 몇 페이지씩 넘겨야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또 대형 화보가 많아 두께를 불필요하게 늘리는 데다 판형이 커서 한 손으로 들기에는 부담스러운 ‘비만형’ 잡지가 되는 것이다. 두꺼운 종이를 쓰는 것도 ‘변종 비만’에 기여한다. 날씬하지만 촘촘해서 한달 내내 읽어야 하는 진정한 월간지 <이코노미 인사이트>가 세상에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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