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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라는 어둠 속의 쌍별
[Economic Thoughts]
[2호] 2010년 06월 01일 (화) 박종현 economyinsight@hani.co.kr

박종현 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단 하나의 빛나는 문장으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책들이 있다. 지난 세기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 게오르규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은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별이 총총한 하늘을 지도 삼아 가고자 했던 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 시대 한 영웅이 어떤 확고한 진리를 찾거나 타락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두운 밤길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돈을 버는 데에도 관심이 커졌다. 봉급만으로 집 사고 자녀 교육시키고 노후에 대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재테크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데,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특히 주식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원리만 보자면 주식을 사서 돈을 버는 일은 간단하다. 앞으로 가격이 올라갈 주식을 미리 샀다가 실제로 주가가 올라갔을 때 팔면 된다. 즉 주가의 미래를 제대로 예측할 수만 있다면 주식처럼 쉽게 돈을 버는 길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주가의 미래를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데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성공적인 주식투자를 위한 길잡이가 필요해진다. 루카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은 주식투자라는 어두운 밤길을 걷고 싶어하는데 그 길을 밝혀줄 별빛이나 별자리가 바로 미래의 주가를 예측하게 해줄 투자 비법인 셈이다.
 
   
 
왜 투자이론대로 안 될까 

현재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주식투자의 대표적인 별자리로는 기술적 분석과 기본적 분석이 있다. 기술적 분석이란 과거 주가 패턴을 기록한 차트를 활용해 미래 주가흐름을 예측하고 돈을 벌려는 투자 기법이다. 이들은 주가가 일단 상승하는 흐름을 타면 한동안은 계속 올라가는 추세를 보일 것이므로 대세를 따라 주가가 상승할 때 주식을 매수하는 ‘추세 추종’ 전략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기본적 분석이란 주가는 해당 기업이 진정한 가치와 괴리를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를 향해 수렴한다며 기업 재무제표나 해당 산업 동
   
유진 파마의 1965년 논문과 로버트 실러의 1981년 논문 첫 페이지
향 등 기본적 요인에 대한 분석에 주력하는 투자 기법이다. 이때 진정한 가치란 해당 기업의 앞으로 주주들에게 제공할 배당금 흐름을 현재가치로 나타낸 것이다. 이들은 기업가치 분석을 통해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 매수한 후 주가가 가치를 반영할 될 때까지 인내하는 ‘가치투자’ 전략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차트나 재무제표는 주식시장의 어두운 밤길을 제대로 밝혀주고 있을까? 이에 대한 본격적인 해명이 바로 유진 파마(Eugene Fama)에 의해 체계화된 ‘효율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이라고 할 수 있다. 1939년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파마는 가족 중 최초로 대학에 진학을 했는데, 처음에는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파먹으며 살아가는 불문학보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돈을 버는 경제학”에 매력을 느끼고 전공을 바꾸게 된다. 대학 시절 그는 기술적 분석에 기초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매수와 매도 신호를 제공해주는 주식 정보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이후 주가 행태에 관한 대표적 이론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그는 회사의 투자 신호가 과거 주가에 적용해보면 정확히 들어맞는데 정작 실제 주식시장에 적용하면 신통치 않은 결과를 낸다는 사실에 직면해, 이론상으로는 훌륭해 보였던 아이디어들이 실전에서는 왜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파마는 주가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기술을 습득한 상태에서 시장의 진실을 밝혀내리라는 야심을 품고 대학원에 진학해 시카고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모교 교수로 채용된다.
파마는 1965년 자신의 박사 논문을 요약해 이후 효율시장 가설의 대표적인 문헌이 된 ‘주식시장 가격의 행태’라는 논문을 <저널 오브 비즈니스(Journal of Business)>에 게재한다. 70쪽에 달하는 이 논문의 핵심 주장은, 잘 작동하는 경쟁적인 주식시장의 경우 시장 참여자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향후 배당흐름에 대한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들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어 거래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가는 모든 정보를 신속하게 반영하고 결국 가치와 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요약된다. 이처럼 주가가 가치와 일치되는 상황에서 미래의 주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미래의 주가는 향후 배당흐름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정보가 출현할 때 이를 반영해 움직일 텐데 지금 시점에서는 미래에 어떤 새로운 정보가 출현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파마의 주장이 옳다면, 주가가 새로운 정보의 출현에 반응해 움직일 때는 갈지자 걸음을 그리며 무작위적으로 움직이므로(random walk), 동일한 방향을 향한 주가의 연속적인 변동, 곧 추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추세투자도 불가능하게 된다. 가치투자의 경우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기업의 진정한 가치 존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가치투자와 같은 입장에 있지만, 파마는 주가가 가치를 곧바로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에, 주가와 가치의 괴리를 이용한 투자기법 또한 쓸모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파마도 주가가 일시적으로 가치와 괴리를 보일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균형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령 주식 가격이 가치보다 낮다면 우량 정보를 지닌 똑똑한 투자자들이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해 이익을 볼 것이며 이 과정에서 주가는 다시 가치를 향해 상승할 것이다. 반면 고평가됐을 때는 보유 주식을 매도하거나 공매도를 행함으로써 주관적 판단이나 소문에 의존해 주식을 거래하는 투자자들(noise traders)을 상대로 돈을 벌게 되는데 이때에도 주가는 조만간 가치를 향해 수렴하게 된다. 요컨대 효율적 시장이란 정보가 대단히 빠르게 흐르고 투자 결정에 반영되기 때문에 아무리 비범한 개인도 전체로서의 시장을 능가할 수 없으며 그 결과 지속적으로 다른 참여자들을 압도할 수 없는 공간이다. 따라서 이 때 최선의 선택은 개별 주식이 아니라 시장 전체에 판돈을 거는 투자, 곧 인덱스펀드 투자가 된다.
 
   
 
개미투자자 백전백패는 당연?

효율시장 가설의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이며, 주식투자로 일시적으로는 재미를 보더라도 결국 재산을 날린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현실에도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젤란 펀드를 운용해 13년 동안 연평균 29.2%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피터  린치나 가치투자의 대명사 워런 버핏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시장을 압도한 천재적인 투자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 이론의 옹호자들은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거나 사람들 사이에 지능지수(IQ) 차이가 있는 것처럼 성과지수(PQ· Performance Quotient)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응답하지만, 이 이론을 주식시장이라는 경제적 공간에서 작용하는 일종의 ‘중력 법칙’으로까지 치켜올렸던 사람들의 반론으로는 궁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효율시장 가설의 이론적 순수성을 고수하기 위해 피터 린치나 워런 버핏을 주식투자의 천재가 아니라 비상하게 운이 좋은 사람 정도로 치부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효율시장 가설에 주목하는 더 큰 이유는 주식시장의 역할에 대한 최상의 변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루카치의 문장을 차용하자면, 효율시장 가설이 보는 주식시장이란 주가라는 별자리를 통해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선별하고 이를 통해 국민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워주는 효율적인 자원배분 기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 어렵고 때로는 본연의 활동을 통해 주주에게 더 많은 배당을 줄 기업과 분식회계 등으로 부실을 숨기는 기업을 가려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더라도 주식시장만 잘 작동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결국 주가가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는 한 주가라는 별자리에 기대어 우리의 소중한 돈을 투자하면 좋은 기업에는 더 많은 자원이 유입되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서 자원이 빠져나갈 것이므로 시장의 힘에 의해 합리적으로 자원이 재배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주식시장은 효율시장 가설에 힘입어 어떤 이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재산을 앗아가는 ‘공인된 도박장’이라는 음습한 호칭 대신 ‘시장경제의 심장’이라는 명예를 얻게 된다.
 
투자자의 비합리적 행위
그러나 과연 주가가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고 예측하는 것인지, 결국 주가가 자원배분의 효과적인 신호등인지를 놓고 꾸준한 비판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인데, 그는 1981년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 발표된 ‘주가와 배당 사이의 관계’라는 논문을 통해 주식시장 특징은 정보의 효율적 처리가 아니라 과도한 변동성(excessive volatility)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주장을 최근까지 확장한 장기 데이터를 통해 확인해 보자. <그림>에서 연두 선으로 표시된 P는 1871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130년에 걸친 S&P 500 지수이며, 점선으로 표시된 P*는 각 연도의 배당액에 대해 6%의 할인율을 적용해 계산한 배당흐름의 현재가치로 ‘진정한 가치’의 대리값이다. 효율시장가설이 옳으려면 주가지수를 나타내는 연두 선(P)이 진정한 가치를 나타내는 점선(P*)에 대한 그럴듯한 예측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점선의 경우 완만하게 상승하는 추세를 보인 반면 연두 선은 훨씬 격렬한 변동성을 드러내고 있다. 효율시장 가설의 가장 큰 한계는 1930년대 대공황과 관련해 확인된다. 당시 주가는 엄청나게 폭락했지만, 배당흐름의 현재가치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불황으로 당장 몇 년 동안은 배당이 줄었지만 다시 오랜 기간에 걸쳐 배당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효율시장 가설 논란 격화
실러에 따르면, 이러한 경험적 증거는 사람들이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파마가 주장한 방식으로 정보를 활용하지 않으며, 그 결과 주식시장 또한 효율시장 가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가가 무작위적 운동 대신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미래의 배당흐름에 대한 현재가치 이외에도 일시적 열광과 유행, 공포와 탐욕, 헛소문과 집착, 최근 주가 동향 등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의사결정을 한 결과인 것이다. 최근 성과를 높이고 있는 행동경제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반면, 남들이 성공할 때 자신만 뒤처지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존재다. 이러한 비합리적 특성이 주식시장에서 발현되면 현명한 투자자까지도 주가와 진정한 가치의 괴리를 키우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들은 주가가 진정한 가치와 괴리돼 있다고 확신하더라도, 주가가 어느 시점에서 진정한 가치와 일치할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므로, 현재 추세가 반전되기 직전에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며, 다수에 맞서는 대신 대세에 편승하는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효율시장 가설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규범적 이론일 뿐, 사람들이 실제로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이론은 아니라는 게 실러의 지적이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파생상품이나 증권화와 관련된 월가의 금융공학은 바로 주식시장의 정보 발견 과 정보 전달 기능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인 효율시장 가설의 토양 위에서 발전한 것이다. 효율시장 가설이 월가 금융가를 부자로 만들어준 신종 금융상품에 금융 시스템을 한층 안전하고 경제를 한층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정당성을 제공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이론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은 한층 격화될 것이다. 아무쪼록 이 논쟁이 주식시장의 정보 수집과 정보 전달 기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사람들의 비합리적 행동을 효과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주가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우리의 실천적 지식을 늘리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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