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제
     
유로존은 해체된다
[Finance] 해체 위기에 몰린 유로존
[20호] 2011년 12월 01일 (목) 윤석천 economyinsight@hani.co.kr

윤석천 경제평론가

얼마 전 ‘MF글로벌’이란 미국의 선물중개 회사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유럽 국채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원인이었다. 이 회사는 왜 이처럼 무모한 투자를 한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다. 유로존에 속한 어느 국가도 디폴트(채무불이행)로 가지 않을 것이며, 설사 디폴트 위기에 처하더라도 다른 유로존 국가가 그것을 막아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렸다. 끝내 유럽은 민간 투자자에게도 자발적 손실을 압박하고 있다. 디폴트 상태임을 자인한 셈이다.

불량 채권을 우량 채권으로 만든다고?  
유럽의 위기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한 금융사를 파국으로 몰았다. 세계는 이미 촘촘한 그물망처럼 서로 엮여 있다.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다른 곳도 쓰러진다. 유럽 위기는 언제든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유럽 위기를 말하면 이젠 모두 하품을 한다. 지난 2년 동안 계속돼온 정치가들의 레토릭이 성공한 셈이다.
언뜻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된 듯 보이기도 한다. 착시효과다. 유럽은 지연 전술을 쓰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시간을 끌며 현상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시간만 끄는 대증요법만으론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문제를 키워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게 일반적이다. 진퇴양난, 이게 유럽의 오늘이다.
지난 2년 동안 유럽은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그것들은 모두 일회성 요법에 불과했다.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모르핀만 투여한 꼴이다. 암을 치료하려면 암덩어리를 도려내는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 ‘외과적 수술’이란 유로존 해체다. 하지만 유럽은 그것을 겁낸다. 지금까지 유럽 통합을 위해 해온 모든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통합은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통화연맹 체제만으론 그 꿈을 이룰 수 없다. 정치적·재정적 통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로존이란 가족을 꾸렸으나 책임질 주체가 없다. 책임질 주체가 없는 가족이 해체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렇다면 유럽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을 알려면 구제금융안의 실체를 파악하면 된다. 그것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세워졌는지 이해하면 된다. 구제금융안이 실패하면 유로존은 해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구제금융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EFSF는 태생부터 허약하다. 연금술의 꿈을 꾸고 있다. 부도 위기에 몰린 국가나 은행의 불량 채권을 매입해 우량 채권으로 되팔아 각종 구제금융 자금을 마련하는 게 이 기금의 핵심이다.
불량 채권을 우량 채권으로 바꾸는 건 연금술이나 마찬가지다. EFSF 채권은 통화연맹에 속한 국가의 담보 능력을 매개로 새롭게 탄생한다. 불량 채권을 매입해 그것에 강국(독일과 프랑스)의 담보 능력을 더해 우량 채권으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물질을 써도 돌덩어리를 금으로 바꿀 수 없듯, 어떤 방법을 써도 불량 채권을 우량 채권으로 바꿀 수는 없다.
이 기구의 추가 담보 능력은 온전히 프랑스와 독일이 제공한다. 프랑스와 독일의 보증 능력으로 최우량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기금에 참여한 나머지 국가들은 이미 신용등급이 떨어졌거나 실질적 담보 능력이 없다.
최근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시장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만약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강등된다면 기금의 신용등급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독일 혼자서 이 기금을 지탱해야 하는데, 독일이 이를 반길 리 없다. 독일도 부채의 덫에서 자유로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 민간의 부채를 합한 총국가부채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훌쩍 넘는다.
결론적으로 언제까지 EFSF가 최고 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FSF는 튼튼한 반석 위에 세워진 게 아니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위태로운 토대 위에 세워졌다.
문제는 또 있다. 이 기금이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대상은 국가만이 아니다. 은행도 구제해야 한다. 지난 10월 벨기에의 최대은행인 덱시아가 파산 위험에 몰렸다가 간신히 구제됐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유럽 거대 은행들의 부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연 EFSF가 은행까지 구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일을 방문 중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지난 10월9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을 마치고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FSF와 유럽 은행의 현실
유럽 은행은 체계적 붕괴를 앞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은행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우선, 유럽 은행의 레버리지 비율은 25:1 정도로 알려졌다. 실로 엄청난 레버리지다. 미국 은행 수준의 거의 2배다. 이 상태에선 자산 가격이 4%만 하락해도 보유자산 가치는 제로가 된다. 이 수치도 은행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실제 레버리지 정도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자산 가격 4% 하락은 현실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의 국채 탕감 비율이 50%다. 4% 하락, 손실은 순식간이다. 유럽 은행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유럽 금융기관들의 부채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유럽연합(EU) GDP 전체의 148%에 달한다. 금융기관만의 부채를 말하는 것이다. EU는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이다. 총GDP가 16조달러 이상이다. 그런데 유럽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는 23조달러가 넘는다. 장부상의 부채만  이 정도다. 부외부채, 가령 파생상품에 관련된 부채는 제외한 것이다. 이 부채를 과연 EFSF가 책임질 수 있을까.
유럽 은행들이 2012년까지 차환해야 하는 부채 규모는 은행별로 총부채의 15~50%에 달한다. 자본 확충을 위해 새롭게 발행할 채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존 채권의 차환만 얘기하는 것이다. 유럽이 불길에 휩싸인 상황에서 시장이 이 물량을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사 소화한다 해도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은 가파르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EFSF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건 어리석다. EFSF는 기껏해야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의 국가 부도 위기만 방어할 수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난 10월 말 열린 EU 정상회담에서 유럽 은행의 자본 확충이 1060억유로로 결정됐다. 그 정도면 유럽 은행의 안정성이 보장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택도 없다. 46조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유럽 은행의 레버리지 수준을 미국 수준인 13:1 정도로 낮추는 데 약 1.77조달러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 그런데 1060억유로(약 1470억달러)의 자본 확충이라니 어불성설이다.

‘자발적’ 부채 탕감이 불러온 시장의 혼란
유럽의 구제금융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10월 말 EU 정상회담에서 그리스 부채에 대한 민간 채권자의 손실률이 결정됐다. 50% 손실률과 함께 ‘자발적’이라는 단어가 강조됐다. 이는 일종의 꼼수였다. 이 꼼수로 시장은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채권수익률이 폭등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발적 합의’란 문구로 일단 민간 채권자의 신용디폴트스와프(CDS) 청구는 불가능해졌다. 민간 채권자의 처지에서는 그리스의 디폴트가 공식적으로 확정돼 CDS로 보상받는 게 부채 탕감보다 훨씬 유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가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민간 투자자의 50% 부채 탕감이 ‘CDS 트리거 이벤트’(CDS 보상을 해줘야 하는 신용 사건)인지 여부는 채무 재조정안이 공식 서명될 때 국제스와프파생상품협회(ISDA)가 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조하지만, 정상들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디폴트에 대한 시장의 판단은 아직 유보된 상태다.
신용 이벤트가 발생하면 CDS 보장 매도자가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리스에 대한 CDS 자체는 규모가 작다. 그러나 그리스가 무너지면 다른 위험 국가도 무너질 가능성이 그만큼 커져 일시에 시스템 리스크가 폭발할 수 있다. 물론 CDS 보장매수 가격도 폭등할 것이다. 신용 이벤트가 터질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보장 매도자는 가격을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용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으면 보장 매수자들이 실망할 것이다. CDS 매수가 아무런 보험 기능을 제공해주지 못하니 투자자들은 보유 중인 채권을 매도하려 할 것이다. 안정성이 떨어진 채권에 대한 헤지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누구도 그것을 보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채권 발행자의 조달금리는 폭등할 수 있다. 최근 이탈리아의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7.4%에 달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유럽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방법이라면 유럽중앙은행(ECB)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쇄기를 돌려 제로금리로 무제한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투기적 시장 참여자의 매도세를 막는 방법이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이 방법은 유로존 최대 지분 보유자인 독일이 반대한다. 독일은 인플레이션에 민감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악몽 때문이다. ECB가 인쇄기를 돌리는 순간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독일은 잘 안다.
독일은 유럽통화연맹의 최대 수혜자다. 수출은 물론 국채시장에서 엄청난 이득을 챙기고 있다. 독일의 국채 발행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이다. 유럽의 다른 국가에 불안을 느낀 돈이 독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발행금리 하락으로 독일이 지난 2년간 얻은 순이익(비용절감액)이 90억유로로 추계된다. ECB가 인쇄기를 돌리는 순간 독일은 이런 기득권을 일부 잃는다. 독일이 이를 반길 리 없다.

진퇴양난의 유럽
자본시장은 냉혹하다. 겉으로는 이타심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히 이기적인 행동의 집합일 뿐이다. 시장의 이기심을 누를 수 있는 건 강력한 정치체제다. 유로존엔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위태위태한 평형은 언젠가 깨질 수밖에 없다. 강자는 약자를 돕는 일에 지칠 것이다. 약자는 충분히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게 될 것이다. 강자는 현상을 유지하려 하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약자를 버리려 할 것이다. 반면 약자는 디폴트를 무기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것이다. ‘토사구팽’(兎死拘烹)의 논리와 벼랑 끝 전술이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는 곳이 유럽이다. 결론은 뻔하다. 유로존은 해체될 수밖에 없다. 진퇴양난의 유럽이다.
maporiver@gmail.com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천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2)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