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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없는 순창고추장 고용 없는 한국경제 상징
[이원재의 기업 & 기업人]대상의 ‘순창고추장’과 한국 경제
[20호] 2011년 12월 01일 (목) 이원재 economyinsight@hani.co.kr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HERI) 소장

전북 순창의 고추장이 본격적으로 상품화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이다. 순창식품(현재의 (주)대상)은 그해 순창에 첫 공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고추장을 생산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담가 먹던 고추장이 어엿한 상품으로 시장에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1년, 순창고추장의 연간 생산량은 4만여t이다. 한 해 국민 1인당 약 1kg씩 순창고추장을 먹고 있는 셈이다.

   
지난 11월5일 ‘제6회 순창장류축제’가 열린 전북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에서 황숙주 순창군수 등이 참여한 가운데 순창고추장을 넣어 비벼 만드는 ‘2011인분 대형 비빔밥 만들기와 나눔행사’가 열리고 있다.

‘임금님 진상품’이란 홍보에 구매자 지갑 열어
당시 대상의 경영진은 천재적인 발상의 전환을 했다. 당연히 집에서 담가 먹는 것으로 여기던 장류를 공장에서 생산해 시장에 내다 팔겠다고 나선 것부터 참신했다.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장을 담글 줄 아는 주부는 줄고 있었다. 고추장과 된장을 사먹는 가정이 슬슬 생겨나고 있었다. 옳은 통찰이었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이 기업의 경영 통찰력은 이를 훨씬 넘어선다. 전북 순창군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인력 채용에서도, 물류에서도, 판매 편의성에서도 수도권이 분명 가장 나은 장소였다. 논란이 거셌다. 그러나 대상은 자동차로 3시간30분 이상을 달려야 도착하는 순창을 생산 거점으로 삼기로 최종 결정했다. 옛날부터 왕에게 진상되는 고추장이 이 지역에서 만들어졌다는 스토리가 그 이유였다.
고추장을 사먹는 새로운 문화가 잉태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다. 사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맞벌이라 해도, 시부모님에게 인스턴트 고추장을 사다 먹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아이들이 밥 비벼먹는 고추장을, 좀 편하다고 대충 사다 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대상은 최고급 루트를 선택했다. 발효식품에는 물과 기후가 중요하다. 그래서 임금님에게 바칠 만한 고추장을 만드는 순창에 가서 그곳의 물과 기후 아래서 생산했다. 공장에서 만든 고추장은 위생 상태가 걱정이다. 그래서 대기업이 만드니 위생 하나만은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설득했다. 100% 콩메주를 넣었고, 전통적 방법으로 발효시켰다. 고추장 발효에 가장 적합한 균주를 개발하기 위해 5여 년에 걸쳐 전국 각지의 균주를 수집해 시험하고 개발했다. 지속적으로 광고와 홍보를 해서 소비자에게 ‘임금님에게 진상하는 순창고추장’을 노출시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는 서서히 설득됐다.

사업 성공했지만 고용증대 효과 크지 못해
그 시도는 성공했다. 영영 집에서만 담가 먹을 것 같던 고추장을 사기 위해 한국인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2010년 대상의 고추장 매출은 1200억원이다. 수출도 80억원어치를 했다.
대상은 순창 지역에서 고추장·간장·된장 등을 포함하는 장류산업 전체를 자극해 일으키는 효과를 냈다. 순창의 장류 가공업체 전체가 2010년에 낸 매출은 3400억원이다. 대상이 다른 대기업들을 불러모아 지역 장류산업의 규모를 키운 것이다. 2011년에는 사조산업이 180억원 규모의 장류공장을 착공했다. CJ도 순창에 진출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대상과 같은 공장을 지어 생산하는 곳은 13개가 됐다. 이들이 내는 매출액은 모두 3천억원이다.
순창 장류산업의 전국 시장점유율은 30~40%다. 대상의 순창고추장 생산이 적잖은 선순환을 일으킨 덕이다. 순창은 장류산업의 본거지로 떠올랐다. 게다가 대상이 순창공장에 고용한 직원은 230명인데, 이 중 200명이 순창 주민이다. 대상이 순창 지역에 한 기여는, 전국 지역산업의 모범 사례로 거론된다.
그러나 순창고추장의 눈부신 성공 뒤에는 한국 경제 전체의 운명과 관련해 유심히 살펴봐야 할 측면이 있다. 순창 지역의 13개 공장에서는 연간 3천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375명이다. 1인당 8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대단한 노동생산성이다. 전국 평균 장류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을 따져보면, 1인당 연간 2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자본집약적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까지 합친 제조업 전체로 따져도 3억원가량밖에 나오지 않는다. 순창고추장 공장의 생산성은 제조업 최고 수준이다. 적은 인력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고생산성을 보여주는 공장인 셈이다.
적은 인력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고생산성이라면, 거꾸로 따지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는 뜻도 된다. 고용을 줄이는 혁신을 우리는 ‘모범 사례’라고 칭송하는 것일까? 그렇게 이익을 늘렸다면 그 이익은 어디로 갔을까?

   
‘제6회 순창장류축제’가 한창인 지난 11월8일, 전북 순창군 순창읍 시가지에서 ‘순창고추장 임금님 진상행렬’이 재현됐다.

순창고추장에 순창 고추 거의 안 들어가
사업에서 생긴 부가가치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인건비로 분배되지 않는다면, 지역의 재료나 장비를 구매하는 방법으로 분배될 수도 있다. 그럼 좀더 꼼꼼히 순창고추장의 재료비를 살펴보자.
3천억원어치 고추장을 만드는 공장형 업체들은 순창에서 계약재배한 농산물을 15억원어치 구매한다. 0.5%밖에 되지 않는다. 콩도 고추도 순창 지역에서는 일부만 구매한다. 나머지 농산물 대부분은 외국산이다. 수입 농산물이 대거 순창고추장 재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부가가치는 재료비로도 분배되지 않는다.
외지에서 어느 지역에 진출한 기업이 그 지역에 기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과, 지역 제품 구매다. 공장형 고추장 생산업체들은 분명 순창에 ‘고추장 산업’을 일으키는 혁신을 일궈냈다. 대상은 그 선두주자였다.
대상은 본분을 다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매우 노동절약적인 고추장 공장을 만들어냈다. 순창의 대상 공장에는 2010년 현재 230명이 고용돼 있다. 이 가운데 지역 주민을 200여 명이나 고용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기업으로서는 할 만큼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매출 1200억원과 상당 규모의 이익을 창출하며 주주에게 봉사했다. 다른 지역 및 산업과 비교하면 모범 사례로 불릴 만하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하다. 재료 구매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순창 지역의 2008년 고추 계약재배량은 60t이다. 지역 내 가공업체의 총수요(2176t)를 겨우 2.7% 충족할 수 있는 양에 불과하다. 콩의 사정은 더 나쁘다. 전체 지역 내 수요량 7437t의 1.9%인 139t만을 계약재배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순창고추장에는 순창 고추도, 순창 콩도, 순창 사람도 거의 없다. 게다가 순창에서는 사람이 빠져나가고 있다.
대상이 고추장 공장을 처음 짓던 1989년, 순창군 인구는 4만9천여 명이었다. 순창에서는 계속 사람이 빠져나갔고, 2010년 현재 3만 명 선을 위협받고 있다. 대상의 순창고추장은 성공했지만, 그것만으로 순창 경제를 살리기는 역부족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순창고추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적 모범 사례다. 순창에 들어와 혁신과 자극을 주고 순창을 전국에 알리고 결국 사업까지 성공시킨 대상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고용 없는 순창, 고용 없는 대한민국
모범 사례라서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다. 놀라운 성장도, 모범적 경영도 정작 순창을 구하지는 못했다. 순창에 의미 있는 규모의 고용을 창출하지도, 의미 있는 규모의 농산물 구매 수요를 발생시키지도 못했다. 대기업 성장의 과실이 결국 지역사회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산산이 깨뜨린다.
순창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대상과 순창의 관계는, 사실 한국 대기업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9월 보고서 한 편을 발표했다. ‘21세기 한국 기업 10년: 2000년 vs 2010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인데, 한국의 2000대 기업이 10년 동안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분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기업의 글로벌 약진이 두드러졌다고 흥분한다. 2000년에는 정보기술(IT), 자동차, 철강, 조선, 화학 등 각 산업에서 한국 대표기업의 매출 규모가 글로벌 기업에 크게 못 미쳤다. 그러나 2010년에는 글로벌 대표기업과 당당히 견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기업의 성장은 눈부셨다. 2000대 기업의 매출액은 10년 동안 815조원에서 1711조원으로 늘었다.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놀라운 성장이다.
외형적 성장을 했으면서도 재무건전성은 오히려 좋아졌다. 부채비율은 2010년 101%에 그쳤다. 10년 전의 200%에서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상당수 우량기업은 차입금보다 현금이 오히려 많은 상태다. 영업이익률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10년 동안 6.2%에서 6.9%로 소폭 올랐다. 규모가 2배로 커졌다. 재무건전성도  좋아졌다. 이익도 안정적으로 낸다. 한국 대기업의 10년간 성적표다.
그런데 삼성경제연구소가 살짝 언급하고 지나친 대목이 있었다. 그 10년 동안, 2000대 기업의 일자리는 2.8%밖에 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생산성 향상을 높게 평가했다. 매출액과 종업원 수를 분석한 결과, 한국 기업의 생산성이 10년 동안 2배 향상됐다는 결론을 내린다.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이 5억2천만원에서 10억6천만원으로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생산성 2배 향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2000대 기업의 매출은 10년 동안 2배로 늘었다. 그러나 종업원 수는 10년 동안 2.8%밖에 늘지 않았다. 그러니 직원 1명당 매출이 2배씩 늘어난 것이다. 돈은 900조원가량 더 벌었는데, 고용한 인원은 10년 동안 156만 명에서 161만 명으로 딱 5만 명 증가했다. 그것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친 수치니, 정규직 수는 오히려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반성장 주장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
한국의 대표기업이 돈을 벌어도 고용은 늘지 않는다. ‘고용 없는 성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잘나가는 대기업일수록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이런 기업에서 일자리가 늘지 않으니, 성장해도 그 과실이 나눠지지 않는다.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더라도 한국 사회 전체에서 보면 극히 미미한 영향밖에 끼치지 못한다. 순창고추장이 성장해도 순창 주민들은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한국 대기업이 성장해도 한국인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한국 대기업의 성장과 한국인의 행복 사이에 연결고리가 끊어진 지 오래다.
한때 우리는 대기업에 기대를 걸었다. ‘트리클다운(Trickle Down) 이론’이 그 논리적 근거였다. 잘되는 쪽을 더 잘되게 밀어주면 그 떡고물이 모두에게 잘 배분되리라는 이론이었다. 이 기대는 이제 무너졌다.
이제 글로벌 기업이 창출하는 부가 사회에 배분되려면 인위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늘고 있다. 동반성장과 법인세 증세 같은 주장에 자꾸 귀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wonjae_lee@twi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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