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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철의 노동자’ 보듬는 작은 쉼터
[노동과 삶]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치유센터 ‘와락’
[20호] 2011년 12월 01일 (목) 이선옥 economyinsight@hani.co.kr

이선옥 르포작가

높낮이 없이 일정하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콧날과 볼 사이의 잔근육이 실룩이더니, 입꼬리가 파르르 들썩였다. 무릎 위에 가만히 내려져 있던 그의 오른손이 왼손을 잡아서 꼭 그러쥐었다.
울지 않으려 애쓸수록 박기용(41·쌍용자동차 희망퇴직자)씨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눈엔 눈물이 그렁해졌다. 자기 때문에 목숨을 버린 아버지 얘기를 나누던 순간, 그의 온몸은 눈물을 참으려, 터져나오는 슬픔을 누르려 힘겹게 싸우기 시작했다.
2009년 여름, 강원도에서 경기도 평택으로 달려와 날마다 아들의 무사귀환을 호소하던 늙은 아버지 때문에, 그는 77일 옥쇄파업이 끝나기 직전 공장을 나왔다. 절대 배신하지 말고 끝까지 함께 가자고 한 그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희망퇴직을 썼다. 그도 아버지도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희망퇴직을 쓰면 선처해주겠다던 회사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선처는커녕 복직 기대도 할 수 없는 해고자가 되어 아이들 셋과 함께 내버려진 아들을 보며, 빨리 공장 밖으로 나오라고 강요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던 아비는 우울증을 앓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삶과, 자신의 해고로 아버지까지 잃은 그 역시 자살을 기도했다. 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지난 8월18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겉도는 희망퇴직자들
“지금 심정은 희망퇴직 썼던 거 반납하고 같이 (복직투쟁)하고 싶어요. 나를 해고 명단에 올린 팀장급들한테 가서 당신 때문에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지 않느냐 따지고 싶고…, 많이 힘들었죠. 우리 아버지는 쌍용차 죽음 17명에도 안 들어갔어요. 11번째 희생자인데 원래 아프기도 하셔서 저도 얘기 안 하고 쉬쉬했어요. 만약 지금이라면, 만약 내가 희망퇴직을 안 쓴 무급휴직자라면 아마 폭발했을 거예요. 당장 살려내라고. (울음)”
그는 지난 3월에 시작해 8주씩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의 2차 과정에 참여했다. 희망퇴직자로는 처음 참여한 경우였다. 자살을 시도하던 그를 발견한 아내가 남편 동료들에게 연락한 덕이었다.
해고자들은 집단으로 모여 복직투쟁을 하고, 무급휴직자들도 1년 뒤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와 싸우기 위해 모이고 있지만, 희망퇴직자들은 설 곳도 갈 곳도 없었다. 파편이 되어 떠돌다 목숨을 버리는 이가 점점 늘어났다. 그 역시 아내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17명의 죽음 어딘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노동자들의 구호는 과장이 아니었다.
2600여 명에 대한 강제 정리해고에 맞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지 2년이 지났다. 뜨거운 여름 77일 동안 공장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벌인 옥쇄파업에서 그들은 전쟁을 치렀다. 군인이 있고 총알이 날아다녀야만 전장이 아니라는 걸, 2009년의 평택은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함께 살자고 외친 노동자들은 세상에서 고립돼 헬기와 특공대, 무장한 경찰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궁지에 몰린 그들은 모두 불 지르고 다 같이 죽자고 절규했다. 공장 담 너머의 가족들은 혹여 남편이 죽어 나올까 가시철망 밖에서 하염없이 울 뿐이었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당했고, 처참하게 항복했으며, 그 뒤 2년 동안 속절없이 죽어갔다. 노동조합의 공식 통계로만 지금까지 19명, 통계로 잡히지 않는 죽음은 얼마인지도 모른다. 노동자와 가족들 모두 전쟁을 겪었고, 지독한 상흔이 남았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이들이 전쟁의 피해자와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치유’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3월의 일이었다.
“사람이 계속 막 죽었어요. 그런데 안 모여요. 나중에 보니까 누구도 자살 기도했다, 누구 아내도 떨어질라 그랬다, 목맬라 그랬다… 너무 많은 거예요. 누구 하나 죽는 게 큰일이 아니었던 거죠. 그때 정혜신 박사님이 전활 주셨어요, 조합원들 보고 싶다고. 파업 때부터 계속 걱정하셨대요. 연락처가 있는 900명한테 일일이 전화해서 겨우 50~60명이 왔어요. 그게 3월26일이에요. 정 박사님이 ‘늦게 와서 미안하다, 당신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왔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남자들, 특히 조합 간부들은 막 센 척하잖아요. 구속 1년씩 되고 그래도 안 힘든 척 멀쩡한 척하고 있었는데, 정 박사가 그렇게 얘길 하니까 막 울어요. 깜짝 놀랐어요. 처음엔 민주노총의 누구다, 옥쇄파업 때 노조에서 어떤 직책을 맡았던 누구다 이렇게밖에 말할 줄 모르던 사람들이, 파업할 때 무서웠던 얘기를 하면서 우는데 우리가 그걸 보면서 놀란 거죠. 장대처럼 큰 사람들이 펑펑 울면서 ‘사실 그때 너무 힘들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무섭다…, 짜증나고 이러니까 애들을… 막… 때린다, 아내한테 화내고 애들한테 화내는 자신한테, 나 이거밖에 안 되나 자괴감 때문에 너무 힘들다.’ 그날 오후부터 바로 상담하자 해서 8명이 시작한 거예요. 그거 보면서 울던 아내들도 같이 시작했어요.”(권지영·38·가족대책위 대표·와락센터장)
 
왜곡 보도에 상처받은 청소년 자녀들
16주 동안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쌍용자동차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녀와 가족이 입은 상처도 그에 못지않음을 알게 됐다. 부모들이 치료받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준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이 또래보다 성숙하다고 했다. 6살짜리가 4살짜리 동생을 계속 업고 다니고, 아무리 배고파도 아빠 도시락을 챙겨놓고 나올 때까지 안 먹는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를 수소문해 아이들을 검사해보니 100명 중 20명 정도의 아이들이 문제가 있는 걸로 나타났다. 파업 현장에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어린아이들보다, 뜻밖에도 청소년 자녀들이 겪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다. 너무나 좋지 않았던 언론이나 부정적 지역 여론에 그대로 노출돼 상처를 받은 것이다.
“이기적이다, 지네 살자고 다 죽일라 그런다, 저 귀족노조 쌍용 사람들 일도 안 하고 돈만 많이 받아가고, 저따위로 하더니 망할 줄 알았다. …다 우릴 비난했어요. 그걸 아이들이 그냥 다 받은 거예요. 아빠들에 대해 그게 딱 맺힌 거죠. 그런 일이 아니어도 힘든 나이잖아요. 아빠가 힘든 걸 아는데, 쪽팔리고 짜증나고 돈도 없고, 근데 파업 끝나고 맨날 술만 먹고 싸우고, 엄마한테 짜증내고, 집이 지옥 같았겠다, 그걸 저희가 몰랐던 거죠.”(권지영)
부모와 아이 모두를 위한 가족치료가 필요했고, 이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치유 프로그램은 노동자와 가족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상담 과정이 끝나도 처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겪는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와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따뜻한 지지를 확인하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 됐다. 아내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정아(38)씨도 그랬다.
“얘기만 하면 지금도 또 눈물 나려고 하는데… 8주간 심리치료가 많이 도움됐어요. 그전에는 개인적 기억과 고통 때문에 힘들었지만, 상담받고 나서는 내가 아픈 걸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저는 고통을 참아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용산 참사 유족들에 비하면 우리는 남편이 살아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상담받으면서 우리가 굉장히 힘들게 살았구나, 그걸 안으로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겠구나, 그 기억과 맞서 싸우기 위해 애썼어요. 한 단계 딛고 일어서니까 이제 다른 사람이 보이는 거예요. ‘아, 나는 기회가 좋아서 아팠던 걸 상담받았으니, 이제 내가 가진 여유와 홀가분한 마음, 넉넉함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줘야 하겠다.’ 그런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아주 놀라운 일이었어요.”
이정아씨는 지난 10월30일 문을 연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치유센터 와락’(이하 와락)에서 상근을 시작했다. 가족대책위 대표인 권지영씨와 조합원 가족 조은영(38), 이윤미(35)씨도 함께한다. 2009년 여름 처참하게 끝난 옥쇄파업 77일 뒤, 아니 대량해고 괴담이 공장 안을 떠돌던 2008년, 혹은 비정규직들이 소리·소문 없이 잘려나가던 그 몇 해 전부터 치유가 필요했다.
파업하는 쌍용차 노동자는 다 빨갱이라는 교사의 말에 아이는 아빠를 숨겼고, 말수를 잃었다. 제 잘못이 아닌 해고로 고통받는 노동자, 잠든 남편의 목을 조르거나 베란다 끝에 서서 바닥을 내려다보는 아내, 시름시름 앓아가는 아이를 보듬고 다독여줄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1년 뒤면 복직할 줄 알았던 무급휴직자들은 2년 넘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에 분노하고 있고,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희망퇴직자들은 아예 연락이 안 된다. 와락은 이처럼 불안에 내몰린 노동자와 그 가족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시작했다. 일상과 함께하는 치유 공간, 내 삶과 분리되지 않은 거점이 되는 생활 공간이 있어야 떠도는 이들을 모을 수 있었다.
다행히 치유센터 건립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보탰다. 순식간에 후원자가 6천 명 가까이 모였고, 후원금도 수천만원이 됐다. 평택시와 경기도가 건립에 필요한 예산을 배정해주었고, 여러 기관들이 계속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연대의 마음과 돈이 모여, 와락 건립을 위한 첫 회의 뒤 꼭 5개월 달 만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해고당한 노동자와 가족의 ‘그 이후’까지 보듬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치유센터 와락’의 상근자들. 왼쪽부터 조은영, 권지영, 이정아, 이윤미(왼쪽). 정리해고 피해자들을 환영하는 전시물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오른쪽).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의 가슴 뭉클한 축사
와락이 문을 열던 날, 초로의 어른들이 직접 쓴 축사를 낭독했다. 조작간첩 사건의 피해자인 이들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의 일부를 덜어 선뜻 2천만원을 건넸다. 누구보다 지금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는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 슬픔이 슬픔에게, 고통이 고통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이들의 축사는 뭉클했다.
“우리는 고문을 당해 간첩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겪을 때면 차라리 잠든 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도 간첩의 가족으로 수십 년 동안 고통받고 살았습니다. 오랜 고통이 지난 후 우리가 고문 후유증을 앓고 있고 치유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동굴 속의 동지들을 찾아나섰습니다. 동굴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손 내밀 수 있게 됐습니다.”
와락의 개소식은 떠들썩했다. 아내들은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수다를 떨었고, 아이들은 와락의 온 공간을 점령한 채 구석구석을 웃으며 뛰어다녔다. 상담실·놀이치료실·도서관·카페·교육장 등 아기자기하고 밝게 꾸며진 곳곳에는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필요한 치유와 소통을 위한 공간이 섬세하게 배치돼 있었다. 여기저기서 시끌벅적하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일주일 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도 상근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 중이었다. 품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마음은 급하고 하루하루가 바쁘다고 했다.
토요일마다 치유 프로그램 참여자와 자원봉사자, 가족까지 100명 가까운 인원이 밥을 해서 함께 먹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치료·상담·학습지원을 마련하는 중이다. 도서관도 꾸며야 한다. 아빠·엄마·아이 모두가 각자 올 수 있는 이유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19명씩이나 죽은 뒤에야 비로소 문을 열었지만, 와락이 만들어진 건 노동자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인정하는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했다. 사회구조적 문제로 일어난 개인들의 고통에는 반드시 사회적 치유가 따라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이 책임에 너무나 무심했다. 그 무심함을 죽은 19명의 노동자와, 자고 나면 죽어나가는 이들의 장례를 눈물로 치르면서 끝까지 살아남아 싸우는 해고자들이 일깨워준 것이다.
치유 프로그램을 마친 뒤 박기용씨는 자신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가슴속에 맺힌 것을 털어놓고 동료들의 지지를 받은 경험이 그를 죽음의 동굴 속에서 끌어냈다. 아직도 가끔 일하다 힘들 때면 아내에게 미안해 이혼을 생각하고, 경제적 무능력 때문에 아이들한테 제대로 해주지 못해 힘들지만, 혼자서 끙끙 앓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안다. 자기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내야 풀린다는 걸 치유 과정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처럼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옛 동료들을 설득하는 중이다.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달라고, 더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그러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된다고, 그럼 편해진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자신이 그랬듯, 지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철의 노동자’들은 지금 숨죽여 아프다. 그 아내들과 아이들도 함께 아프다. 조금만 건드려도 와락 눈물을 쏟아내는 이들을, 이제 우리가 따뜻하게 안아줄 차례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와락!
namufr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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